국경수비대는 생포한 낭인들을 포박해서 한곳에 모아두고 죽거나 다친 병사들을 수습했다. 그러다가 다친 낭인들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죽였다.
“사, 살려…… 컥!”
“다친 포로는 필요 없다.”
주베르 준남작이 피투성이 낭인의 가슴에 검을 깊숙이 찔러 넣으며 외쳤다. 안 그래도 동료들의 죽음에 흥분해 있던 병사들은 분풀이라도 하듯 다친 낭인들을 사정없이 도륙했다.
그때였다.
“멈춰라.”
일단의 병력이 우르르 몰려 왔다. 그들은 국경수비대 병사들이 반응을 보이기 전에 포위해 버렸다. 놀랍게도 그 병력 수가 무려 2천여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너희들은 누군데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냐?”
갑자기 몰려들 병력 중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 외쳤다.
주베르 준남작이 대꾸했다.
“나는 국경수비대 제2연대장 주베르 준남작이요. 이들은 황제 폐하의 물건을 강탈하고 밀거래하려 한 반역자들이오. 이들의 신병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소. 그러니 당장 포위를 풀고 나를 도와야 할 것이요.”
“국경수비대? 이상하군. 국경을 지켜야 할 병사들이 왜 여기 와 있는 것이지? 주베르 준남작이라고 했던가. 그대는 영지법에 대해 알고 있나? 영지법에는 영주의 허락 없이는 절대 영지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네.”
“그, 그건 영지 간의 법이 아니요? 나는 엄연히 황제 폐하의 명령을 받드는 중앙군이요. 중앙군이 영지법을 따를 이유는 없소.”
“하하하, 제법 똑똑한 자로군. 하지만 너는 네 스스로 덫에 걸려들었다. 너의 말처럼 중앙군은 황제 폐하의 명령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그 말은 여기 왔을 때 황제 폐하의 명령이 있었다는 게 아닌가? 어디 네 말대로 정말 황제 폐하의 명령이 있었는지 내가 직접 수도에 알아보겠다.”
당연히 황제가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 없다. 이것은 국경수비대 총사령관인 레몽드 후작이 독단적으로 내린 명령이니 말이다.
이 일이 알려지면 레몽드 후작은 물론, 주베르 준남작 역시 문책을 면키 어려웠다.
“다, 당신이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이요?”
당황한 주베르 준남작이 포위한 병력의 지휘관에게 물었다.
“나는 카라스 영주 로체스 자작이다.”
“헉!”
주베르 준남작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보고 에반스가 크게 소리쳤다.
“당장 무기를 버려라. 내 영지에서 더 이상의 살상은 용납할 수 없다. 저항하는 자는 모두 목을 잘라 성문에 내걸겠다.”
철혈영주에 대한 명성은 국경수비대 병사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에반스의 말을 듣자마자 병사들은 겁에 질려 들고 있던 무기를 버렸다.
“모두 잡아라.”
에반스는 즉시 국경수비대 병사들을 체포하라 명했다.
다이안의 계획은 치밀했지만 에반스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병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병력 2천을 은밀히 하란 마을로 이동시킨 것이다.
“우리는 국경수비대 총사령관이신 레몽드 후작님의 명령으로 이곳에 죄인들을 체포하러 왔소.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레몽드 후작님께서 가만있을 거라 여기시오?”
주베르 준남작은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니까 그 일은 이곳 영주인 내게 말하면 어련히 내가 알아서 역적들을 체포했을 텐데 왜 굳이 레몽드 후작께서 너희들을 보낸 것일까?”
“그건 허크스 백작께 물으시오. 허크스 백작께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실 것이요.”
어차피 이렇게 되면 죄를 면키 어려웠다. 그렇다면 레몽드 후작보다 더 약발이 강한 중앙의 권력자 허크스 백작까지 끌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주베르 준남작의 대답에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이자들과 물건들을 허크스 백작이 묵고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간다.”
에반스는 부상자는 즉시 하란 마을로 후송하고 나머지 살아남은 낭인들과 국경수비대 병사들을 잡아 허크스 백작이 사용하고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물론 허크스 백작이 강탈당한 물건을 싣은 수레도 함께 말이다.
“어이구. 이게 누군가? 로체스 자작이 아니신가?”
허크스 백작은 에반스가 나타나자 자신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를 반겼다. 그러다 그는 옆에 서 있는 주베르 준남작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가 어찌 여기 있는 것인가?”
허크스 백작의 말에 주베르 준남작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이 일은 내가 카라스 영주에게 알려 처리할 테니 자네와 병사들은 돌아가라고 했거늘. 쯧쯧, 공명심에 눈이 멀어서 실수한 모양이군.”
허크스 백작이 혀를 차면서 뒤쪽에 사로잡힌 국경수비대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그런…….”
주베르 준남작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국경수비대 총사령관인 레몽드 후작이 내가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호위할 병력을 보냈지 뭔가? 카라스 영지는 안전하다고 그만 돌아가라고 했는데 가지 않고 엉뚱한 짓을 저지른 모양일세. 킁킁. 이건 술 냄새로군. 자네 술 마셨나? 저런…… 병사들도 거나하게 한잔씩 한 모양이로군.”
거기에 더해서 허크스 백작은 주베르 준남작과 국경수비대 병사들이 술 마신 것을 꼬투리로 잡았다.
“아마도 술에 취해서 딴엔 공을 세워 보려고 그런 모양이네. 영주가 이해해 주게.”
허크스 백작이 아예 알아서 중재에 나섰다. 중앙의 권력자 중 하나인 허크스 백작의 말은 에반스도 감히 무시할 수 없었다.
“국경수비대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로체스 자작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그리고 감히 황제 폐하의 물건을 훔쳐 간 자는 어디 있는가?”
잠시 후 한스가 허크스 백작 앞으로 끌려 나왔다.
“놔라. 무고한 사람을 이렇게 잡아도 되는 것이냐?”
한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이자가 그 짐수레의 주인입니다.”
한스를 보자마자 허크스 백작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감히 황제 폐하의 물건을 훔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느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훔치다니요?”
당황한 한스가 소리 지르자 허크스 백작이 에반스를 보고 말했다.
“더 들어 볼 것도 없다. 물증이 확실하니 당장 형틀을 갖추고 저자를 심문하게. 이번 일에 가담한 자들은 누구도 죄를 면키 어려울 것이야.”
그때 에반스가 끼어들었다.
“백작님, 조금 전 물증이 확실하다고 하셨는데 무슨 물증 말씀이신지요?”
“무슨 물증이라니? 저자가 황제 폐하의 물건을 강탈했다고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 강탈당한 물건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뭐긴? 당연히 전매품인 활과 화살이지.”
허크스 백작이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러자 에반스가 짐수레 쪽으로 가서 덮개를 치우고 그 안에 물건을 꺼내 보였다.
“이것이 활과 화살입니까?”
에반스의 손에 들린 것은 활과 화살이 아니라 파와 시금치 다발이었다.
“헉!”
짐수레 안에는 황제의 전매품인 활과 화살이 아니라 파와 시금치, 무 등 채소들이 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흑흑흑.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한스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그럴 리가 없다. 다른 짐수레를 뒤져 봐라.”
허크스 백작의 명령에 에반스는 나머지 짐수레도 모두 뒤지게 했지만 황제의 전매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런 물증도 없으니 저자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에반스의 말에 허크스 백작이 소리쳤다.
“아니, 아니야. 저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 저자를 고문해서 전매품이 어디 있는지 밝혀내야겠어.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자를 당장 끌고 가라.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
허크스 백작이 한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허크스 백작을 호위하고 있던 황궁수비대 병사들이 한스를 잡아가려 했다.
척!
그때 에반스가 나섰다.
“멈춰라. 백작님.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무엇을 하다니. 죄인을 심문하려는 것이네.”
“죄인이라니요? 이자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그야 저놈이…….”
“백작님, 이자를 아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네만…….”
“이름이 한스라고 했던가? 너는 저기 계신 백작님을 아느냐?”
한스가 조심스런 눈으로 허크스 백작을 올려다보고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오늘 처음 뵙는 분입니다.”
한스의 대답에 허크스 백작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서 백작님께서는 어째서 이 한스란 자가 전매품을 강탈해 갔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그, 그것은…….”
전매품을 직접 한스에게 내어 주었으니 당연히 알 수밖에. 하지만 그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일단 이자는 제가 잡아 가겠습니다. 그리고 하란 마을을 샅샅이 수색해서 강탈당한 전매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반스는 즉시 한스를 자경대 본부로 끌고 가게 하고 전 병력을 풀어서 하란 마을을 수색하라 명했다.
허크스 백작은 끌려가는 한스를 보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허크스 백작의 저택을 빠져나오자 에반스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풀어 줘라.”
병사들은 즉시 묶여 있던 한스를 즉시 풀었다.
“오라버니.”
그때, 다이안이 나타나서 한스와 포옹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다이안이 한스의 몸을 여기저기 살피자 그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네 말대로 허크스 백작은 나를 이용해 먹고 반역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다이안의 계획은 한스가 허크스 백작으로부터 물건을 받아서 나올 때, 근처에 야채를 실은 짐수레를 준비해 두었다가 바꿔치기하자는 것이었다.
한스는 그럴 필요 없다고 우겼지만 다이안의 요청을 결국 받아들였다.
그렇게 바뀐 짐수레를 낭인들이 습격했고, 또 국경수비대가 낭인들로부터 짐수레를 뺏었다. 마지막으로는 에반스가 영지군을 동원해서 짐수레를 끌고 허크스 백작에게 가져간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허크스 백작은 당연히 짐수레에 전매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여기고 한스를 죄인으로 몰았다.
그러나 정작 짐수레에는 전매품이 없었다.
다이안은 자신의 오라비를 반역죄로 몰아간 허크스 백작과 중간에서 물건을 강탈하려 한 루키아 상단의 곤잘레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다이안의 말에 에반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소.”
에반스는 우선 국경수비대 병사들과 낭인들을 분리해 각기 다른 창고에 가뒀다. 그런 다음 2천의 영지군을 한곳에 집결시켰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활과 화살을 나눠 주었다.
그 활과 화살은 바로 허크스 백작이 한스에게 넘긴 그 전매품이었다.
전매품은 수레에 실려 있으면 황제 소유의 전매품이지만 이렇게 병사들에게 지급되면 그냥 보통 활과 화살일 뿐이었다.
에반스는 허크스 백작에게는 하란 마을을 뒤져서 전매품을 찾겠다고 하고는 정작 그 전매품을 그의 영지군에게 지급한 것이다.
한마디로 전매품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었다.
“하하하. 공짜로 활과 화살을 지급받다니. 허크스 백작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에반스는 즉시 영지군을 로체스 자작성으로 돌려보냈다.
그런 다음, 하란 마을의 자경대로 하여금 사로잡힌 낭인들을 루키아 상단으로 끌고 가서 그들을 사주한 자들을 모두 잡아 오게 했다.
그 계획도 다이안이 세운 것이었는데 크게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낭인들을 끌어모은 것은 내가 한 일이요. 하지만 그들이 갑자기 폭도로 변해서 우리 상단 역시 피해를 입었소.”
루키아 상단의 간부 차일드가 모든 죄를 뒤집어썼던 것이다. 때문에 상단주 곤잘레스는 잡지 못했다. 또한 다이안의 계획대로 전매품의 강탈 사건을 수도에 알렸지만 그 사실 역시 간단히 묵살 당했다.
다음 날 아침 허크스 백작은 그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에반스에게 나타나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하하. 잠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소. 전매품은 그대로 있었소. 그러니 더 이상 수도에 알릴 필요 없소. 카라스 영주.”
허크스 백작은 웃던 얼굴에서 점점 싸늘한 얼굴로 변해 갔다. 그는 가만히 에반스를 노려보았다. 중앙의 권력자 중 하나인 허크스 백작에게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히게 된 에반스였다.
자신의 계획이 둘 다 실패로 돌아가자 다이안이 에반스를 찾아와서 사과했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아니오.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었소. 비록 둘 다 실패로 돌아갔다지만.”
“루키아 상단의 곤잘레스와 대내궁장관 허크스 백작은 간악한 자들이에요. 둘 다 자신들을 건드린 자는 그냥 두는 법이 없어요. 아마도 영주님을 그냥 두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다이안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에반스는 상관없다는 듯 무덤덤했다.
“오히려 기다려지는군요.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할지 말입니다.”
루키아 상단의 곤잘레스와 대내궁장관 허크스 백작은 트렌시아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와 권력자였다. 그런 자들이 노릴 거라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에반스를 보며 다이안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
꼴레오네파의 일에 이어 한스의 일로 차일드가 잡혀 가자 곤잘레스는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빌어먹을. 하필 이럴 때 카라스 영주가 끼어들다니.”
다행히 차일드가 죄를 뒤집어썼으니 망정이지 자칫 큰일 날 뻔했던 곤잘레스였다.
“가만. 그런데 어떻게 그때 그 시간에 카라스 영주가 거기에 있었던 거지? 게다가 이천이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말이야.”
곤잘레스는 즉시 그 일에 대해 조사를 시켰다. 그리고 곧 그 일에 제너럴 상단의 다이안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다이안과 카라스의 영주가 지금 만나고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다이안 그 계집의 농간이었단 말인가?”
곤잘레스는 제너럴 상단 측에 깨끗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당하고 있을 곤잘레스가 아니었다.
“다이안 그 계집도, 그리고 이번 일에 겁 없이 뛰어든 그 젊은 영주도 그냥 둘 수는 없지.”
곤잘레스가 다이안과 에반스에게 이를 갈고 있을 때 허크스 백작 역시 수하들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아직 못 찾았느냐?”
“네, 하란 마을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끄응. 그럼 그 물건들이 하늘로 솟구쳤단 말이냐, 아니면 땅으로 꺼졌단 말이냐.”
“아무래도 이미 하란 마을 밖으로 빼돌린 것이 분명합니다.”
“감히 어떤 놈들이 전매품을 빼돌릴 수 있단 말이냐? 찾아라. 반드시 찾아서 그 일을 꾸민 자를 내 앞에 끌고 오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인근 영지의 영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허크스 백작과 그 수하들은 전매품이 이미 카라스 영지군의 무기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헛수고를 하고 있었다.
“백작님, 이제 내일이면 랄트족과 거래해야 합니다. 그 준비도 하셔야지요.”
아직 화가 가시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는 허크스 백작에게 에버튼 남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허크스 백작도 정신을 차렸다.
“그들에게 주기로 한 물건들은 준비가 되었나?”
“황금은 충분한데 활과 화살이 부족합니다. 해서 국경수비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레몽드 후작이 뭐라고 하던가?”
“그 정도 물량은 충분히 빼돌려서 보내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 잘됐군. 언제까지 보내 줄 수 있다고 하던가?”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알았다. 그럼 내일 랄트족과의 거래는 그렇게 정리하면 되겠군. 그런데 말이야.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뭐가 말입니까?”
“누가 꼭 우릴 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누가 말입니까?”
에버튼 남작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백작과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굳이 있다면 창가의 나무에 앉아 있는 참새 정도였다.
푸드득!
그 참새도 에버튼 남작이 쳐다보자 놀라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어제 너무 심한 일을 겪으셔서 많이 예민해지신 듯합니다. 내일 중요한 거래가 있으니 이만 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끄응. 그런가? 안 그래도 뒷목이 묵직하군. 그럼 나는 좀 쉬겠네. 나머지는 총관이 차질 없이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총관이 나가고 나자 허크스 백작도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마법사 루크는 종속마법이 걸린 참새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에반스에게 알려 주었다.
“허어. 기가 막히는군. 제아무리 중앙의 권력자라고 하지만 국경을 지키는 국경수비대의 무기까지 마음대로 빼낼 수 있다니 말이야.”
에반스가 기가 찬다는 듯 말하자 마법사 루크가 은근히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어떻게 할지는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마법사 루크가 눈빛을 빛냈다.
“무슨 좋은 수가 있나 보군. 어서 말해 보게.”
“뭐, 그렇게 좋은 수라고 말할 수는 없고 얼마 전 잡아들인 국경수비대 병사들을 이용하는 게 어떨까 해서요.”
“국경수비대 병사들을 이용해?”
“네, 국경수비대에서 몰래 무기를 반출해서 이곳으로 보내려면 아무래도 변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무기를 후방으로 빼돌리는데 그것을 대놓고 시킬 수는 없을 테니 어떤 식으로든 위장해야겠지.”
“그러니 말입니다.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겁니다.”
루크가 설명을 시작하자, 에반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하. 좋은 생각이야. 역시 마법사라 다르군.”
에반스는 루크가 말한 대로 국경수비대 병사들이 갇혀 있는 창고 쪽으로 향했다. 그러곤 지휘관인 주베르 준남작을 불러냈다.
주베르 준남작은 돌아가는 상황으로 자신이 허크스 백작에게 버림받고, 국경수비대에서도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베르 준남작, 올해 서른다섯 살로 아카데미 기사학부를 졸업하고 황실 호위 기사로 일하다가 변방으로 좌천되었군. 부인과 자식이 둘 있고, 국경수비대의 연대장으로 있다가 공명심에 눈이 멀어 전매품을 강탈한 자를 추격, 그런데 엉뚱하게도 제너럴 상단을 공격해서 무수한 희생자를 발생케 함. 병사들에게 술을 먹인데다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중벌을 면키 어려워 보임.”
에반스는 간단히 조사한 서류를 주베르 준남작 앞에서 읽었다.
“부인과 자식들이 안됐군.”
주베르 준남작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가 황실 호위 기사로 출세 가도를 달리다가 변방으로 쫓겨난 이유도 출세를 위해 무슨 일도 서슴지 않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가 처벌을 받지 않고 변방으로 좌천당한 것도 알고 보면 처갓집 덕분이었다. 그의 처가는 수도에서 꽤 유명한 명문 귀족가였기 때문이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주베르 준남작은 재기를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진 그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레몽드 후작에게 이용당해 이제는 꼼짝 없이 죽게 생긴 것이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주베르 준남작이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에반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런 대죄를 짓고 살기를 바라다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주베르 준남작이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때 에반스가 슬쩍 말했다.
“뭐, 기회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주베르 준남작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곤 애원하듯 부탁했다.
“뭐든 시키는 대로 다할 테니 부디 기회를 제게 주십시오.”
“휴우. 사실 자네와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나도 아네. 하지만 이 일에 허크스 백작과 레몽드 후작이 연관되어 있지 않나? 애꿎게 자네와 병사들만 당하게 된 거지.”
“…….”
“하란 마을을 샅샅이 뒤졌지만 전매품의 행방은 찾지 못했어. 이제 허크스 백작은 카라스 영지는 물론, 주변 영지까지 모두 뒤지는 모양인데 오늘쯤에는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네.”
“그, 그곳이 어딥니까?”
“기회라면 기회일 수 있는데 한번 해볼 텐가?”
“물론입니다. 그 물건만 찾을 수 있으면 저와 병사들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주베르 준남작이 눈빛을 빛냈다.
“내가 그냥 풀어 줄 수 없다는 건 잘 알겠지?”
그 말과 함께 에반스는 단검 하나를 주베르 준남작에게 건넸다. 눈치 빠른 주베르 준남작은 그 단검을 받아 들자마자 바로 에반스의 등 뒤로 돌아가서 그의 목에 단검을 갖다 댔다.
그러곤 카라스의 영주를 인질로 하여 갇혀 있던 국경수비대 병사들을 모두 풀려나게 했다.
“무기는 옆 창고에 있네. 그들은 오늘 자정 무렵 아마 이곳을 지나갈 거네.”
에반스가 쪽지 하나를 주베르 준남작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주베르 준남작이 눈을 굴렸다.
“고맙소. 하지만 내 안전을 위해 당신을 여기서 풀어 줄 수는 없소.”
주베르 준남작은 마음이 바뀐 듯 에반스를 계속 인질로 잡고 있으려 했다. 그는 에반스를 인질로 더 많은 것을 얻어 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믿을 수 없는 자다.’
하지만 에반스는 전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반스 혼자서도 주베르 준남작쯤은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주베르 준남작이 에반스를 의심할 것이고 그럼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풀려나야 했다.
에반스가 한쪽 눈을 찡긋 감자 바로 이런 일을 대비해서 근처에 숨어 대기 중이던 마법사 루크가 바로 뇌전 마법을 시전했다.
“썬더 볼트!”
파지지직!
마법은 그대로 에반스의 몸에 작렬했다. 하지만 에반스는 마나를 끌어 올려 몸에 실드를 쳐 둔 상태였다. 때문에 뇌전 마법은 실드를 따라 맴돌다가 단검을 통해 주베르 준남작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크윽!”
강렬한 전류에 주베르 준남작의 몸이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다시 주베르 준남작이 정신을 차리고 에반스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몸을 피한 후였다.
“빌어먹을! 가자.”
주베르 준남작은 국경수비대 병사들을 이끌고 일단 그곳을 벗어났다.
“저자가 과연 저희들의 의도대로 움직일까요?”
걱정스런 표정의 마법사 루크를 보고 에반스가 가볍게 웃었다.
“어떻게든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야겠지. 감시자는 붙였지?”
“네.”
한 마리 까마귀가 주베르 준남작과 국경수비대 병사들이 움직인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럼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그렇게 곧 날이 어두워졌다.
하란 마을을 빠져나온 주베르 준남작과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사이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병사들은 모두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주베르 준남작 때문에 갇혀 있던 곳에서 풀려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만약 이 일로 그들을 탈영병으로 공표한다면 병사들은 더 큰 곤욕을 겪게 될지 몰랐다.
“너희도 살고 나도 살 방법이 있다.”
주베르 준남작은 호주머니 속의 쪽지를 꺼냈다. 그 쪽지에는 오늘 자정에 전매품을 강탈한 자들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자정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어서 서둘러라.”
주베르 준남작은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병사들을 재촉했다.
그렇게 그들이 막 목표 지점에 도착했을 때, 불빛들이 보였다.
“저기다.”
근처로 접근하자 먼저 눈에 띈 것은 짐수레들이었다. 짐수레 주위에는 모닥불을 피운 채 백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 모두 간단히 요기를 하고 여기를 떠난다.”
지휘자로 보이는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짐수레 주위 사람들이 각자 음식을 꺼내서 허기를 달랬다.
국경수비대 병사들의 수는 450여 명 정도 됐다. 짐수레를 지키는 자들이 백여 명이라면 저들을 처리하고 짐수레를 뺏는 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사실이었군.”
주베르 준남작은 에반스가 준 쪽지를 떠올리며 눈빛을 빛냈다.
“너희들은 저쪽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너흰 이쪽으로 해서 배후로 돌아가라.”
주베르 준남작은 병력을 넷으로 나눠서 순식간에 짐수레 주위를 포위할 생각이었다.
잠시 후.
“자, 다 먹었으면 이제 불을 끄고 떠날 준비를…… 컥!”
짐수레를 운반하는 지휘자의 등에 창이 깊숙이 박혔다. 창날이 자신의 배 앞으로 불쑥 삐져나온 것을 내려다보던 지휘자는 맥없이 꼬꾸라졌다.
털썩!
“대장이 당했다.”
“습격이다.”
“와아아아!”
사방에서 숨어 있던 국경수비대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막아라.”
“짐수레를 지켜라.”
짐수레를 운반하는 자들도 필사적으로 무기를 빼들었다.
챙! 챙! 챙!
병장기가 부딪치고 곧이어 처참한 비명이 적막을 깨고 주위로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악!”
비명에 이어서 쇳소리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위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차차창!
“죽어.”
“아아아악!”
검과 검이 부딪치고 비명과 선혈이 어우러져 어둠 속으로 쏟아졌다. 짐수레 주위로 밝혀 둔 모닥불에 의지해서 싸우는 통에, 짐수레를 지키려는 쪽과 그것을 뺏으려는 쪽 모두 적아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더 치열하게 백병전이 벌어졌고 전황은 곧 난전으로 이어졌다. 특히 병력이 많았던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러서 다치는 동료 병사들이 속출했다.
그 가운데, 어쨌든 국경수비대는 짐수레를 지키던 백여 명의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주베르 준남작은 곧장 짐수레로 달려가서 덮개를 열었다. 다행히 짐수레 안에는 활과 화살이 가득 들어 있었다.
“됐다. 드디어 찾았다.”
주베르 준남작은 일단 주변의 시신을 치우게 하고 부상당한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급한 대로 응급 처치를 받게 했다.
그때, 그 모습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까마귀가 퍼드덕거리며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마법사 루크는 종속마법에 걸린 까마귀를 통해 주베르 준남작이 국경수비대에서 몰래 빼돌린 활과 화살을 강탈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즉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에반스의 집무실로 향했다.
“잘됐군. 이로써 내일 허크스 백작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겠어.”
에반스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주베르 준남작이 강탈한 활과 화살을 허크스 백작에게 가져갈 수도 있는 문제 아닙니까?”
에반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하진 않을 거야. 주베르 준남작은 이미 허크스 백작과 레몽드 후작에게 배신당한 상태다. 그들이 또다시 배신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는 거지. 때문에 주베르 준남작은 뺏은 활과 화살을 그들에게는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넘길까요?”
“글쎄…… 그것까진 나도 모르겠군.”
에반스는 계획이 성공하자 과연 내일 허크스 백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것이 궁금했다.
“내일이면 사실상 중개무역 시장이 모두 폐장하게 된다. 모레 아침 일찍 영주성으로 돌아갈 것이니 미리 떠날 준비나 해 둬.”
“알겠습니다.”
마법사 루크가 집무실을 나가고 나자 에반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수도에서 이 먼 압실론 후작령까지 사냥을 온 한 인물 때문이었다.
‘카베인이라…… 어떻게 하지?’
렉터 공작이 남긴 유지는 검공 라마스의 검술이 사장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제자들에 비운의 운명을 맞은 렉터 공작을 생각하니 에반스는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 패륜무도한 자들이 제국에 남아 권력을 쥐고 활개 치게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에반스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렇게 날이 밝아 올 무렵, 에반스는 결국 결심을 굳혔다.
“내 손으로 렉터 공작의 복수를 해야겠다. 그것이 내게 검공 라마스 님의 검술서를 남긴 렉터 공작께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그 첫 시작은 바로 카베인, 그자다.”
에반스는 검을 챙겨 들고 곧장 카베인이 묵고 있는 최고급 여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운명인지 카베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
중개무역 시장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대부분의 상단과 야만족 장사꾼들은 거의 거래를 끝낸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전매품의 거래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새벽에 오기로 한 물건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니?”
허크스 백작이 총관인 에버튼 남작을 보고 소리쳤다.
“알아보게 했으니 곧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잠시 후, 보고를 받은 에버튼 남작이 창백한 얼굴로 허크스 백작에게 달려왔다.
“백작님. 국경수비대로부터 오던 물건이 중간에 습격을 받아 강탈당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이런 빌어먹을. 이제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이렇게 되면 급한 대로 황금을 위주로 거래하고 활과 화살 거래는 추가 거래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추가로 거래한다는 것은 물건이 준비되지 못했을 때, 먼저 거래는 하되, 물량은 뒤에 맞춰 주는 것을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 원래 가격의 80퍼센트 정도밖에 받을 수 없었다.
구매하는 측도 당장 물건을 건네받지 못하니 불만스럽고, 파는 쪽도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불만스러운 거래가 바로 추가 거래였다. 때문에 상인들도 어지간하면 추가 거래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일 경우, 이런 식의 추가 거래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렇게 되면 내 입장은?”
“죄, 죄송합니다.”
중앙의 권력자인 허크스 백작에게도 정적이 많았다. 그가 이번 거래를 원만하게 성사시키지 못하면 그 정적들이 난리를 떨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내궁장관인 그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야만족과 거래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당장 황궁과 수도의 고위 귀족들이 야만족의 커피와 후추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젠장. 별수 없지. 일단 그렇게라도 거래해야지.”
허크스 백작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전매품 거래에 나섰다.
랄트족을 비롯한 야만족 족장들의 최측근들은 각자 챙겨 온 커피와 후추로 황금과 활, 그리고 화살을 구입하려 벌써부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 시작은 야만족에서도 가장 강성한 랄트족과 고란족이 먼저였다.
또한 고란족은 하란 마을의 중개무역에 그렇게 많은 장사꾼들을 보내지 않았다. 때문에 자연 랄트족이 실질적인 야만족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랄트족 장사꾼들의 대표 라사드가 허크스 백작을 보고 말했다.
“거래 물품들은 다 준비되었습니까?”
그러자 허크스 백작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이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일부 활과 화살은 추가로 거래를 해야 할 것 같소.”
그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바로 라사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추가 거래라도 활과 화살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활과 화살을 추가 거래해야 한다니 아쉽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럼 거래를 시작합시다.”
이후 허크스 백작과 랄트족 라사드 간의 거래가 빠르게 이뤄졌다.
거래가 끝나고 나자 허크스 백작은 자신이 데려온 관리들로 하여금 나머지 야만족 족장들의 측근들과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하게 했다.
그렇게 양쪽 전매 물품끼리의 거래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때 약간의 이변이 발생했다. 랄트족의 라사드는 허크스 백작과의 거래가 끝나자마자 두 배의 가격을 제시할 테니 농산물과 직물류와 같은 생필품들을 팔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야만족에게 다 팔아 버린 터라 제국의 상단과 상인들은 당장 생필품을 구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소식을 들은 곤잘레스가 누구보다 아쉬워하며 말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값싸게 파는 것이 아닌데.”
며칠 사이에 생필품의 가격이 두 배로 튈 거라 예상치 못한 루키아 상단은 대충 헐값에 생필품을 팔아 치운 것을 후회했다.
바로 그때 제너럴 상단의 다이안이 랄트족을 찾았다. 다이안은 랄트족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 목록을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그 물품을 모두 구해 줄 경우, 얼마까지 낼 용의가 있는지 라사드에게 물었다.
“그 물건을 오늘 중에 모두 구해 준다면 5만 골드를 주겠소.”
라사드의 확답을 받은 다이안은 루키아 상단에서 8천 골드에 구입했던 생필품을 랄트족에게 전부 넘겼다. 운 좋게 다이안이 확보하고 있던 생필품의 양이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다이안의 예상대로 전매품을 거래하면서 다시 돈을 확보한 랄트족은 무기류를 구입하느라 사지 못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다이안은 제너럴 상단 테스트에 모자랐던 돈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이안은 중개무역 마지막 날 이렇게 5만 골드를 더 벌어서 천 골드로 10만 골드를 버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그 테스트를 통과했다.
다이안은 로드릭의 뒤를 이어 제너럴 상단주가 될 자격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