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에 있어야 할 저자가 왜 여기에? 혹시 나를 찾아온 것인가?’
에반스는 좀 더 카베인의 행보를 지켜보기로 하고 일단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곧장 임시 거처로 이용하고 있던 관리의 집으로 향했다.
카베인에게는 섣불리 감시를 붙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에반스의 정체가 노출될 수도 있었다. 카베인의 감시는 직접 하기로 했다.
“영주님, 재무관 이스파한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스파한이? 들라 하라.”
잠시 후, 이스파한이 에반스의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 가지고 들어와라.”
이스파한의 뒤로 하인들이 10개의 상자를 들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약속드린 대로 십만 골드입니다.”
이스파한은 상인 조합에서 거둬들인 10만 골드를 에반스 앞에 내놓았다.
“수고했다.”
에반스는 간단히 이스파한의 노고를 치하했다.
“영주님, 청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영주님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만나 주십시오.”
“이번 중개무역과 관련된 사람인가?”
“네.”
“이미 중개무역의 이권은 다 내어 준 상태다. 굳이 나를 만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그건 만나 보시면 아시겠지요.”
‘도대체 누굴 소개시켜 주겠다는 거지?’
에반스는 의아해 하면서 내일 시간을 내기로 했다.
“알았다. 내일 중개무역 시장이 개장하고 나면 저녁에 만나도록 하지.”
이스파한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럼 그렇게 약속을 잡아 두겠습니다.”
이스파한이 집무실을 나가고 나자 에반스는 사람을 시켜 10만 골드를 로체스 자작성으로 모두 보내게 했다.
다음 날, 드디어 하란 마을에 중개무역 시장이 열렸다. 전날 도착한 야만족 장사꾼들이 모여들면서 시장은 곧 활기를 띠었다.
시장에서 돋보이는 곳은 루키아 상단과 제너럴 상단, 그리고 카나트 상단이었다. 그들은 트렌시아 제국의 3대 상단답게 엄청난 물량으로 다른 상단들을 압도했다.
그중에서도 루키아 상단은 단번에 랄트족과 거래를 성사시켜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그런 루키아 상단을 보면서 경쟁 상단인 제너럴 상단과 카나트 상단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제너럴 상단의 한스는 랄트족의 상품을 독점한 루키아 상단을 욕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그런다고 네놈들이 제국 최고의 상단이 될 줄 알았느냐? 어림도 없다.”
한스는 곤잘레스가 상인 조합을 설립했을 때부터 그가 못마땅했다. 또 상인 조합을 허가한 재무관 이스파한도 싸잡아 욕했다.
“주는 뇌물이나 처먹고 이권을 그냥 내게 넘길 것이지.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라고.”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한스에게는 아직 히든카드가 남아 있었다. 그동안 그의 실수를 한 번에 만회시켜 줄 그런 카드가 말이다.
한스가 한탕을 노리고 있을 때, 제너럴 상단의 테스트를 받고 있던 다이안은 소매 시장에서 번 1만 골드의 돈으로 말을 사들였다. 한데 말 가격이 작년에 비해 2골드가 오르는 바람에 생각했던 것보다 적게 말을 살 수밖에 없었다.
1만 골드로 다이안은 833마리의 말을 구입했다. 수도에 가져가면 많게는 100골드까지 받을 수 있는 말이었다. 대충 계산해도 8만 골드가 넘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목표했던 10만 골드에는 모자랐다.
“어쩌지?”
고심하던 다이안의 눈에 130대 분량의 무기 수레를 끌고 시장을 떠나는 랄트족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단가?”
다이안이 자세히 살폈지만 랄트족은 다른 물품을 하나도 구매하지 않았다.
“왜지?”
고심하던 다이안은 루키아 상단 쪽을 살폈다. 그러자 랄트족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수도로 가져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것을 본 다이안은 랄트족이 모든 상품을 루키아 상단에 넘기고 130대 분량의 무기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랄트족에게도 반드시 농산물과 직물류 등의 생필품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랄트족은 다른 방법으로 제국의 농산물과 직물 등을 살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경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건 의외로 간단했다.
“랄트족은 커피와 후추를 판 돈으로 분명 농산물과 직물류 등과 같은 생필품들을 살 것이다.”
그때 루키아 상단에서 준비해 온 농산물과 직물 등의 생필품을 싼 가격에 내놓고 있었다.
다이안은 자신이 구매한 말 중 100마리를 끌고 루키아 상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 책임자인 차일드에게 100마리의 말을 80골드씩에 팔았다.
차일드의 입장에서 수도에 가면 100골드를 받을 수 있는 말이었으니 당연히 구입한 것이다.
그렇게 8천 골드를 마련한 다이안은 그 돈으로 루키아 상단의 농산물과 직물 등을 헐값에 다량 구입했다.
제국 상인들은 야만족에게 팔기 위해 가져온 농산품과 직물 등 생필품들을 다이안이 사는 것을 보고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첫날 중개무역 시장이 문을 닫았다. 상인들과 야만족은 술과 음식을 구해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다이안은 루키아 상단으로부터 구입한 물품을 창고에 두고 어디론가 급히 움직였다.
다이안은 어제 저녁 이스파한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늦지 않기 위해 그녀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때 다이안은 무장한 한 무리의 남자들과 섞여 움직이고 있는 오빠 한스를 발견했다.
“한스 오빠가 왜 저런 자들과 같이 있는 거지?”
다이안은 한스의 뒤를 쫓으려다가 이스파한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그녀의 부친 로드릭은 상인에게는 목숨보다도 신용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숙부님을 뵙고 나서 사람들을 시켜 알아보는 수밖에.”
약속을 어길 수 없었던 다이안은 곧장 약속 장소로 움직였다.
이때, 에반스도 중개무역 시장이 문 닫자 영지의 관리들과 함께 거처로 돌아가다가 이스파한과의 약속을 떠올리고는 몸을 돌렸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저녁을 먹고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먼저 돌아가도록.”
에반스는 호위 기사들과 함께 이스파한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움직였다.
“저기로군.”
이스파한의 말에 따르면 하란 마을에서 가장 스테이크를 잘하는 집이라고 했다. 파란 지붕의 2층 건물은 꽤 오래된 듯 벽 여기저기가 뜯겨 나가 있었다. 그럼에도 가게 안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스파한이란 이름으로 예약된 자리가 있을 텐데?”
“아! 특실을 예약하신 분 말씀이시군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 음식점의 특실은 귀족들을 위해 준비된 장소인 모양이었다. 점원이 문을 열어 주자 에반스와 호위 기사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먼저 와 있던 이스파한이 에반스를 반겼다.
“내게 소개시켜 주겠다는 자는 보이지 않는군?”
에반스는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네, 조금 늦는 모양입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에반스가 자리를 잡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도착했다. 예상외로 그 손님은 여자였다. 에반스와 여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는데 이스파한 혼자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하하하. 이쪽은 제너럴 상단 상단주의 여식인 다이안입니다. 차기 후계자로 유력할 정도로 당찬 레이디랍니다. 다이안, 저분은 내가 모시고 있는 카라스의 영주님이시다.”
이스파한의 소개에 에반스와 다이안은 깜짝 놀랐다. 둘은 일단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동시에 둘 다 이스파한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이스파한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제 머릿속에서 두 사람을 동시에 떠올렸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이스파한의 말을 들은 에반스는 피식 웃었다. 최진철 시절, 대학 때 첫 소개팅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왜 웃으신 거죠?”
그때 다이안이 에반스를 쏘아보며 물었다. 레이디 앞에서 함부로 웃는 것이 큰 결례임을 떠올린 에반스는 정중히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이스파한이 능청스럽게 말하는 것이 너무 웃겨서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이상하네요. 전 숙부님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는데 영주님께서는 웃기다고 생각하시니 말이에요.”
“나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영주를 향한 이스파한의 노력이 가상한지라……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
“알았어요. 용서할게요.”
두 사람이 알아서 대화를 나누자 이스파한은 흐뭇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스파한은 음식점에서 최고 요리들을 주문해 놓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곧 식탁에는 음식이 가득 찼고 고급 와인과 함께 먹는 음식 맛은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
에반스와 다이안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느라 상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나자 둘은 각자 딴생각에 잠겼다.
에반스는 영지 개혁에 대해 생각 중이었고 다이안은 얼마 전 봤던 한스와 함께 다니던 무장한 무리 때문에 고심 중이었다.
꽤 오랜 시간 침묵이 흘렀을 때, 점원이 그릇을 치우는 통에 두 사람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둘은 서로 무안한 듯 억지로 웃어 보였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찻잔이 하나씩 놓여졌다. 에반스가 먼저 물었다.
“아까 꽤 깊게 생각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아, 별일 아니에요. 그러는 영주님께서도 생각 중이신 것 같던데?”
“우리 카라스 영지는 현재 개혁 중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개혁이 막힘없이 잘 진행될까 고심 중이었습니다.”
“개혁이요?”
다이안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에반스는 간단히 현재 카라스 영지가 추진 중인 개혁에 대해 설명했다. 다이안은 놀라워하며 정말 훌륭한 계획이라고 칭찬했다.
에반스와 다이안은 여러 분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화제는 중개무역으로 이어졌고, 다이안의 장사 수완에 대해 이번에는 에반스가 그녀를 극찬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흉금 없이 털어놓다 보니 다이안은 자연스럽게 조금 전 목격했던 오빠 한스의 일을 에반스에게 얘기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그쪽 오빠가 중개무역 시장에서 상인들이 아닌, 무장한 자들과 어울리다니 말입니다.”
“전 오라버니가 또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이에요.”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내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어요?”
“네, 내일 아침까지 그쪽 오빠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자, 늦었는데 그만 일어나시지요.”
즐겁게 대화를 나누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시간이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에반스는 호위 기사에게 다이안의 오빠 한스의 행방을 알아 오라 지시하고는 직접 그녀를 숙소까지 배웅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에반스는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하지만 단지 그뿐, 다이안이 여자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반면 다이안은 멋지고 잘생긴 젊은 영주 에반스에게 호감이 생겼다. 하지만 에반스가 적극적으로 대시하지 않아 약간 실망한 채 숙소로 들어갔다.
에반스가 자신의 거처로 막 돌아왔을 때 한스의 행방을 알아보러 갔던 호위 기사가 돌아왔다.
“한스란 자가 있는 곳은 알아냈는데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이냐?”
“그것이 저희 말고도 한스를 감시하는 자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스가 찾아간 곳이 하필 대내궁장관 허크스 백작이 묵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뭐? 허크스 백작이라고?”
허크스 백작은 중개무역의 가장 마지막 날 황금과 활, 화살 등 전매 물품을 거래하게 되어 있었다. 이때 야만족은 커피와 후추로 허크스 백작과 직접 거래하게 된다.
그 일은 카라스 영주의 권한 밖의 일인지라 에반스도 개입할 수 없었다.
“제너럴 상단의 한스가 허크스 백작과 연관이 있다면…….”
에반스는 즉시 정보 길드로 사람을 보내서 허크스 백작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아 오게 했다.
“으음. 역시…….”
허크스 백작은 전형적인 간신이었다. 그는 황궁의 각종 부패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번에 그가 직접 나선 것 역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허크스 백작의 세력이 워낙 대단해서 일개 지방 영주인 에반스의 힘으로는 그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허크스 백작과 같은 거물을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보나마나 제너럴 상단의 한스는 허크스 백작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몰래 한스를 감시하고 있는 자는 또 누구지?”
에반스는 한스를 감시하고 있는 자를 추적해서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 오게 했다. 일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에반스는 잠을 잤다.
날이 밝으면서 중개무역 시장의 이튿날이 시작되었다.
에반스는 약속대로 한스의 일을 다이안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다이안이 황급히 에반스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오라버니가 허크스 백작을 만났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소.”
“아! 오라버니가 어째서 그런 위험한 자와…….”
다이안도 허크스 백작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때 한스를 감시했던 자의 정체가 알려졌다. 그를 추적했던 자가 돌아왔던 것이다.
“그래 어떤 자이던가?”
“그자가 루키아 상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키아 상단!”
“무슨 말이죠?”
다이안의 물음에 에반스는 한스를 루키아 상단 측에서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곤잘레스 그자가 한스 오라버니의 일을 알고 있단 말인가요?”
하긴 에반스도 아는 일을 루키아 상단 측에서 모를 리 없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아! 큰일이에요. 곤잘레스 그자가 알고 있다면 오라버니는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거예요. 또한 오라버니로 인해 저희 제너럴 상단이 큰 피해를 입게 되겠네요.”
사색인 된 다이안이 안쓰러워 보여서 에반스가 말했다.
“아직 일이 터진 것은 아니잖소. 지금이라도 그 일을 막으면 되지 않겠소?”
다이안이 정신을 차렸다.
“맞아요. 아직은 시간이 있어요.”
다이안은 바로 중개무역 시장에 있는 제너럴 상단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 한스는 없었다. 다이안은 즉시 상단 회계 담당에게 금전 출납 장부를 가져오게 했다. 장부를 살피던 다이안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이, 이럴 수가. 도대체 얼마를 꺼내 갔단 말인가?”
금전 출납 장부에 기재된 금액만도 10만 골드에 달했던 것이다.
저녁이 다 되어 한스가 돌아오자 다이안이 금전 출납 장부를 들이밀었다.
“오라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아! 그거 말이냐? 걱정할 것 없다. 며칠 후면 빼낸 공금은 다 채워 놓을 테니.”
“제정신이에요? 정말 허크스 백작과 거래하는 게 맞나요?”
다이안의 말에 한스가 화들짝 놀랐다.
“네, 네가 그것을 어떻게?”
“허크스 백작이 어떤 자인지 잊었어요? 아버님이 가급적 그런 자와는 상대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건 아버님이 허크스 백작님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허크스 백작님은 나를 돕기 위해 이곳까지 와 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한스는 그동안 허크스 백작과 자신이 무슨 일을 해 왔는지 소상히 얘기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허크스 백작이 한스를 이용해 밀거래로 전매품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취하려는 그런 계획이었다.
“뭐, 뭐라고요?”
다이안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스는 끝까지 허크스 백작을 두둔했다.
“허크스 백작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결국 다이안이 차근차근 의견을 내놓자 한스는 그 의견을 수용했다.
다이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카라스 영주 에반스에게 갔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뭔지 말씀하십시오.”
다이안은 자신의 계획을 에반스에게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에반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 기막힌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면 허크스 백작도 쓰고 있던 위선의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겠군요.”
에반스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다이안이 다시 한 번 에반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곤잘레스는 부친 산체스와 함께 소드 마스터 카베인과 같이 시간을 보냈다.
카베인은 원래 하란 마을에 온 다음 날, 떠나기로 했다가 며칠 더 루키아 상단에 머물기로 했다.
카베인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순전히 산체스 때문이었다. 산체스가 압실론 후작령의 남쪽 숲에서 몬스터를 봤다고 했던 것이다.
“그곳이 어딘지 아시겠소?”
몬스터는 이미 3천여 년 전 모두 멸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몇몇 역사학자들은 몬스터가 아직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파르미르 고원 때문이었다. 파르미르 고원은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영역이 많았다.
때문에 그 미지의 영역에는 몬스터들과 숲의 종족 엘프, 뛰어난 개척자 드워프, 그리고 반은 사람, 반은 요정인 호비트 등 다양한 유사 인종들이 존재할 것이라 여겼다.
“물론입니다. 압실론 후작령의 남쪽 숲 끝이지요. 그곳에서 틀림없이 몬스터를 봤습니다.”
“압실론 후작령의 남쪽 숲 끝이라면…….”
카베인가 즉시 지도를 꺼내 위치를 살펴보니 파르미르 고원과 연결된 숲이었다. 그렇다면 산체스가 정말 몬스터를 봤을 수도 있었다. 카베인은 흥분해서 말했다.
“하하하, 몬스터 박제라. 이거야말로 최고의 사냥감이 아닌가?”
카베인은 산체스에게 그곳까지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고 산체스는 흔쾌히 수용했다.
카베인이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고 나자 곤잘레스가 산체스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언제 압실론 후작령의 남쪽 숲 끝에 갔단 말입니까?”
곤잘레스의 기억 속에는 사채업에 바빴던 산체스가 거의 수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허허허, 그거? 나도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웬 미치광이 녀석에게 들은 얘기다.”
“거짓말이란 게 들통 나면 어쩌시려고 그러셨습니까?”
곤잘레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산체스가 씨익 웃었다.
“들통 날 리가 없잖느냐? 막말로 그곳에 가서 몬스터가 없다면, 그냥 돌아와 버리면 그만 아니냐? 그사이에 너와 나는 소드 마스터인 카베인과 친분을 두텁게 쌓을 수 있고 말이야.”
산체스는 여러 차례 수도에서 힘 있는 자들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소위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사채업자인 산체스와는 상종하지 않았다.
한데 이번에 수도에서 최고 권력층에 있는 카베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친해질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런 엉터리 거짓말로 잡아 두었던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그 일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십시오.”
“그래, 사람 다루는 건 내가 너보다 나으니 내가 카베인을 맡으마.”
곤잘레스는 산체스의 방을 나왔다. 그는 차일드에게 오늘 하루 결산 보고를 받았다. 보고가 끝나고 나자 곤잘레스가 차일드에게 물었다.
“한스는 어떻게 하고 있어?”
“오늘도 허크스 백작을 만났습니다.”
“허크스 백작은 중개무역 마지막 날 움직일 거다. 그러니 아마 그 전날이나 오늘쯤 물건들을 한스에게 넘길 가능성이 높다. 낭인들은 준비되었느냐?”
한스는 어제 차일드에게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은 낭인들을 최대한 모아 두라고 명령했었다.
“네, 아무도 저희 정체를 알 수 없게 일단 마을 외곽 창고에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좋아. 한스가 허크스 백작에게 물건을 넘겨받으면 우리가 습격해서 물건을 강탈한다. 어차피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물건이니 내가 갖겠다.”
곤잘레스는 이번 기회에 전매품을 랄트족에게 넘겨 루키아 상단과 랄트족 사이에 밀거래망을 구축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크, 큰일 났습니다.”
상인 하나가 허겁지겁 곤잘레스의 방으로 달려와서 소리쳤다.
차일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데 이리 소란이냐?”
“랄트족 장사꾼들이 몰려왔습니다.”
“랄트족 장사꾼들이? 그들이라면 이미 거래가 끝나지 않았느냐?”
“그들이 무기가 실린 삼십 대의 수레를 끌고 와서 사기를 당했다며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뭐라고?”
차일드와 곤잘레스가 동시에 외쳤다.
잠시 두 사람은 시선을 맞추다가 이내 차일드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나가서 자세히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십여 분쯤 뒤, 차일드가 돌아와서 곤잘레스에게 보고했다.
“상단주님, 아무래도 저희가 속은 것 같습니다.”
“속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레지스터 탄광촌에서 받은 삼십 대의 수레 안은 모두 돌덩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확실히 확인하고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때 확인할 때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랄트족이 무기를 빼내고 그 안에 돌을 넣어서 이런 수작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잖은가?”
“그것이 돌에 마법이 걸렸던 흔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저들이 마법 길드에 의뢰한 결과 그 돌에 4서클의 환영 마법이 걸려 있었던 것으로 판명이…….”
“뭐라고? 그럼 무기를 다 꺼내서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았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곤잘레스는 당장이라도 차일드를 해고하고 싶었지만 당장 믿고 일을 맡길 자가 없었다. 그래서 겨우 화를 참으며 말했다.
“지금 즉시 꼴레오네파로 가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와.”
“네.”
차일드가 나가고 나자 곤잘레스는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고심했다.
결국 그는 50대 분량의 가격으로 랄트족에게 받은 금괴를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그 사실을 알리자, 랄트족도 그 정도면 충분한 변상이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물러갔다.
랄트족이 물러가고 나자 차일드가 황급히 곤잘레스에게 보고했다.
“꼴레오네파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뭐?”
“저들의 아지트나 영업소를 다 뒤져 봤지만 똘마니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이것들이 감히 사기를 쳐? 지금 즉시 압실론 후작성에 있는 우리 지부에 연락해서 꼴레오네파 놈들을 다 잡아들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레널드와 부르터, 칼을 현상 수배해.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놈들은 반드시 사로잡아서 내 앞에 끌고 와야 할 것이다. 알겠나?”
“네.”
분노에 부들부들 몸을 떠는 곤잘레스를 피해 차일드는 서둘러 물러났다. 레널드와 부르터, 칼로 인해 곤잘레스가 입은 피해는 그만큼 극심했다.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감히 내 돈을…….”
곤잘레스의 머릿속에서 피해 금액이 계산되며 그의 분노는 가히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
허크스 백작은 전매품 중 일부를 한스에게 넘기기로 하고 10만 골드를 받아 챙겼다.
“백작님. 오늘이 그자에게 물건을 넘기기로 한 날이 아닙니까?”
총관인 에버튼 남작의 물음에 허크스 백작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정말 물건을 넘기실 생각이십니까?”
에버튼 남작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시 물었다.
“약속했으니까 지켜야지.”
“허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자칫 백작님께서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전매품을 빼돌리는 것은 곧 황궁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과 진배없으니까.”
“그런 위험한 모험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뭐, 십만 골드나 챙겼으니 잠깐이라도 그놈을 흥분하게 만들어 줄 필요는 있겠지. 흐흐흐.”
허크스 백작이 비릿하게 웃었다.
“네? 그럼?”
“흐흐흐, 내가 미쳤나? 그런 멍청한 놈에게 전매품을 내어 주게 말이야.”
“하지만 방금은 내어 주실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주긴 줘야지. 하지만 되찾아 오면 그뿐 아닌가?”
“어떻게 말입니까?”
“흐흐흐. 곧 연락이 올 거야.”
허크스 백작은 그 말을 하고는 후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허크스 백작의 말처럼 어디선가 연락이 왔다.
“국경수비대 총사령관이신 레몽드 후작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허크스 백작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
“이, 이리로 오시오.”
에버튼 남작은 국경수비대에서 온 전령을 후원으로 안내했다.
허크스 백작은 전령을 보자 손짓으로 그자를 가까이 불러서 물었다.
“병사들은?”
“지금쯤이면 하란 마을 외곽에 도착했을 겁니다.”
“수고했네. 자네는 이대로 가서 레몽드 후작께 이것을 전해 드리게.”
허크스 백작은 보석 상자 하나를 전령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시가 3만 골드어치의 보석이 들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났다.
또다시 허크스 백작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저는 국경수비대 제2연대장 주베르 준남작입니다. 감히 황제 폐하의 물건을 빼돌려 밀거래하려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제야 에버튼 남작은 허크스 백작이 무슨 음모를 꾸몄는지 알 수 있었다.
허크스 백작은 한스에게 전매품을 내어 준 후, 그를 황제의 전매품 강탈과 밀거래법 위반으로 잡아들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한스에게서 다시 뺏은 전매품은 허크스 백작의 수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네.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어디 있나?”
“네, 지금 하란 마을 외곽에서 대기 중입니다.”
“총관, 그들에게 먹을 음식과 술을 갖다 주도록.”
“백작님. 술은…….”
“괜찮네. 놈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자네와 병사들은 내가 가라는 곳으로 가서 놈들을 체포하기만 하면 되네.”
“아, 네.”
연대장 주베르 준남작은 에버튼 남작이 마련한 음식과 술을 한가득 짐수레에 싣고 하란 마을 외곽 지역으로 나갔다.
그곳에 주둔 중이던 500여 명의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음식과 술을 즐겼다.
***
에반스는 좀 더 쉽고 정확한 방법으로 허크스 백작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에반스 본인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칼과 라일라가 있었으면 그들을 침투시켰을 텐데.”
아쉬웠지만 없는 사람을 어쩌겠는가?
에반스는 마법사 루크에게 그 문제를 상의했다. 그러자 루크가 뭐 그런 것으로 고민하냐며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다.
“그건 종속마법을 사용하면 간단합니다.”
“종속마법?”
“종속마법이란 상당히 고등한 존재가 그보다 저등한 대상을 상대로 펼치는 마법의 일종입니다. 피시술자는 종속 계약을 통해 시술자에게 철저히 종속되게 됩니다. 또한 피시술자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공간을 뛰어넘어 시술자에게 전해지게 되지요.”
“오오. 그런 마법도 있었나?”
“5서클의 꽤 고위 마법입니다. 이 마법은 위험 부담 없이 주변이나 멀리 떨어진 상황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고위 마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마법입니다.”
“정말 기막힌 마법이군. 그럼 그 피시술자는 뭘 사용하나?”
“보통 밤에는 박쥐나 쥐를, 낮에는 참새나 나비, 간혹 파리도 사용합니다.”
“완전히 살아 움직이는 도청 장비로군.”
“네?”
“아니야. 그럼 그 종속마법을 사용해서 허크스 백작을 감시해 줘.”
“알겠습니다.”
루크는 박쥐 한 마리와 참새 한 마리를 잡아 와서 각각 종속마법을 걸었다. 그렇게 낮에는 참새를 통해, 밤에는 박쥐를 통해 허크스 백작을 감시했다.
그러다가 허크스 백작이 한스를 이용하려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즉시 그 사실을 에반스에게 알렸다.
루크는 국경수비대에서 온 주베르 준남작과 병사들이 어디 있는지까지 전부 보고했다.
에반스는 즉시 다이안을 불러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다이안은 허크스 백작이 국경수비대까지 동원했다는 말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완전히 제 오라버니를 최악의 역적으로 만들 속셈이었군요.”
황제의 물건을 강탈하고 그것을 야만족에게 팔려고 했으니 한스는 황제 모독죄에 반역죄까지 옴팡지게 덮어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죄는 가족들에게도 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너럴 상단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다이안은 분노하며 전에 말했던 자신의 계획 일부를 변경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소곤거리며 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대부분의 중요 대화를 마쳤는지 에반스가 마지막 말을 했다.
“한스는?”
“오라버니는 상단 인부들을 데리고 물건을 받으러 갔어요.”
“그럼 일이 시작된 거로군요.”
“그래요.”
“그럼 변경된 계획은 내가 알아서 조치를 취해 두겠소.”
“고마워요.”
“그 말은 일이 잘 해결되고 나서 들어도 되오.”
에반스는 다이안의 변경된 계획을 재적용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한스는 여동생 다이안이 시키는 대로 약속된 시간에 허크스 백작을 찾아갔다.
“허허허. 어서 오게.”
허크스 백작은 사람 좋은 얼굴로 한스를 맞았다.
‘그래, 다이안이 오해한 거다. 이렇게 좋은 분이 어찌…….’
“자네가 가져갈 물건들이네.”
허크스 백작은 망설임 없이 전매품의 일부를 한스에게 내주었다.
한스는 상단의 인부들로 하여금 준비해 간 수레에 짐을 싣게 했다.
“어서 움직이게. 혹시 보는 눈이 있으면 곤란하니.”
“백작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네. 그만 가게. 거래 잘하고 무엇보다 건강 꼭 챙기고.”
친자식처럼 자신을 챙겨 주는 허크스 백작의 모습에 한스는 하마터면 여동생 다이안의 일을 말할 뻔했다. 그는 이 일이 해결되고 나면 다이안을 데리고 허크스 백작을 찾아가서 정중히 사죄시킬 생각이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수레에 짐을 다 실었다는 보고를 받고 한스는 바로 움직였다.
한스가 떠나자 허크스 백작은 총관 에버튼 남작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바로 에버튼 남작을 통해 마을 외곽에 주둔 중인 국경수비대에게 그 사실이 알려졌다.
주베르 준남작은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한스와 그 일당을 추격했다.
또한 한스가 허크스 백작에게서 물건을 넘겨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곤잘레스 역시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낭인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뒀겠지?”
곤잘레스의 물음에 차일드가 즉각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내보내.”
“네.”
백여 명이 넘는 낭인들이 무기를 들고 일제히 한스와 짐수레를 끄는 상단 인부들을 찾아 나섰다. 낭인들의 할 일은 간단했다. 짐수레를 뺏어서 목표 지점으로 끌고 가면 끝이었다.
물론 그 중간에 일을 방해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야 했다. 흉흉하게 눈빛을 빛내며 낭인들이 일제히 뛰었다.
“저기다.”
곤잘레스는 낭인들을 허크스 백작이 묵고 있는 저택 가까운 곳 창고에 대기시켜 두었다. 그런 이유로 한스와 짐수레가 허크스 백작의 저택을 빠져나온 후,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서 낭인들에게 발각되었다.
“뺏어.”
“와아아아!”
낭인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짐수레를 끌던 상단 인부들이 짐수레를 버리고 도망쳤다. 낭인들은 목표물인 짐수레를 탈취했기 때문에 굳이 도망치는 인부들의 뒤를 쫓지는 않았다.
그렇게 짐수레를 옮기던 낭인들은 얼마 가지 못해서 국경수비대의 급습을 받았다.
“모조리 잡아라.”
“와아아아!”
“뭐, 뭐야. 쳐라.”
챙! 챙! 챙!
국경수비대와 낭인들 간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두 쪽 다 저항하는 자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터라 인정사정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푹! 퍼퍽!
“크아아악!”
그러다 보니 당연히 피해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병력이 훨씬 많았던 국경수비대가 결국 낭인들을 제압하고 짐수레를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