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잘레스는 레지스트 탄광촌에서 받기로 한 30대 분량의 무기를 비롯해서 야만족과의 첫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물류 창고로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다가 마차 창밖으로 우연히 안면이 있는 자를 발견했다.
‘누구지?’
기억력이 좋은 곤잘레스는 한 번이라도 소개를 받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기억했다. 곤잘레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창밖에서 본 자가 누군지 곧 알 수 있었다.
“멈춰. 마차를 세워라. 당장.”
마차가 멈춰 서자 곤잘레스는 즉시 마차에서 내렸다.
“그자는 분명히 제너럴 상단의 한스가 틀림없다.”
곤잘레스는 호위무사들과 함께 한스의 뒤를 쫓았다. 한스는 고급 음식점으로 들어가더니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지났을까? 한스가 만나기로 한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저자는 황궁 대내궁장관 허크스 백작이 아닌가?”
대내궁장관이란 황궁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관장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황제의 최측근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대내궁장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황궁의 자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허크스 백작과 한스는 서로 악수한 후, 음식점에서도 비밀스런 장소로 이동했다. 그 앞은 황궁수비대가 지켰다. 때문에 곤잘레스도 더 이상 그들을 쫓아갈 수 없었다.
잠시 후, 허크스 백작과 한스가 다시 나타났다. 허크스 백작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럼 오늘 밤에 가져가게.”
“고맙습니다. 백작님.”
둘은 서로 대화가 잘된 듯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곤잘레스가 자신의 호위무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지금 즉시 허크스 백작의 따라가라. 그의 뒤를 쫓되 어디에 묵는지만 알아 돌아와라. 그리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간다.”
곤잘레스는 호위무사들과 함께 계속 한스를 뒤쫓았다. 하지만 한스는 곧장 제너럴 상단의 숙소로 가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허크스 백작의 뒤를 쫓았던 호위무사가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나?”
“말씀하신 대로 그 위치를 알아 두었습니다.”
“알았다. 너희 둘은 여기 남아서 한스가 움직이면 한 사람은 한스의 뒤를 쫓고 나머지는 나에게 보고토록 해라.”
명령을 내린 후 곤잘레스는 호위무사를 앞장세우고 허크스 백작이 묵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저기입니다.”
호위무사가 가리킨 곳은 하란 마을의 한 귀족 저택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던 곤잘레스는 혼자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누구냐?”
저택 입구를 지키고 있던 황궁수비대 병사들이 곤잘레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루키아 상단의 상단주, 곤잘레스요. 백작님을 뵈러 왔소.”
루키아 상단주란 말에 병사들도 흠칫 놀란 반응을 보였다. 루키아 상단이라면 현 트렌시아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상단이었다. 그런 상단의 상단주라면 영향력이 대단할 것은 불 보듯 자명했다.
그래서 병사들 역시 곤잘레스를 막 대하지 못하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에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잠시 후 허크스 백작의 총관, 에버튼 남작이 입구에 나타났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곤잘레스 님이 아니시오?”
“반갑습니다. 에버튼 남작님.”
곤잘레스는 허크스 백작의 총관 에버튼 남작과 잘 아는 사이였다. 황궁에 물건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매번 부딪쳤던 적이 있었던 에버튼 남작이었다.
싸우다 보니 정이 들었는지 두 사람은 최근에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한 사이로 발전해 있었다.
“하하하. 여기서 또 뵙는군요. 중개무역 때문에 온 겁니까?”
“네, 그런데 허크스 백작님께서는 여기 어쩐 일로?”
“이번 거래가 워낙 크다 보니 백작님께서 직접 나서신 것이지요.”
“거래라면 전매품을 말입니까?”
“그렇소. 어차피 내일 다 밝혀질 일인데 까짓 곤잘레스 님께는 먼저 알려 드리도록 하지요. 중개무역 마지막 날 야만족 대족장을 비롯한, 족장들이 보낸 자들과 거래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 거래를 잘 성사시켜서 필요한 커피와 후추를 구입하는 게 우리의 역할입니다.”
“그렇군요. 여기까지 왔는데 허크스 백작님을 좀 뵙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곤잘레스의 요청에 에버튼 남작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크스 백작님께서는 지금 피곤하시다며 쉬고 계신 터라…… 내일 다시 한 번 찾아오시면 그때는 뵐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곤잘레스는 저택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뭔가 있어. 허크스 백작이 제너럴 상단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게 분명해.’
“가자.”
곤잘레스는 기다리고 있던 호위무사들과 같이 상단의 물류 창고로 움직였다.
곤잘레스가 물류 창고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에반스와 칼을 비롯한 야만족들까지 모두 사라진 뒤였다. 차일드의 보고를 받으며 곤잘레스는 직접 야만족 장사꾼들을 만나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레지스터 탄광촌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잘 확인했겠지?”
“물론입니다. 정확히 확인해서 창고에 두었습니다.”
“좋아. 그리고 야만족과의 미팅은 어땠어?”
“네, 가지고 온 물량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오천 마리는 족히 될 듯 보였습니다.”
“오천 마리!”
곤잘레스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만족들도 저희 무기가 가득 실린 수레를 보고 모두들 지금 상단주님처럼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그렇다면 내일 거래는 원만히 이뤄질 것 같군.”
곤잘레스가 만족스러워 하고 있을 때 한스를 감시하고 있던 두 호위무사 중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헉헉. 수상쩍은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뭐?”
“모두들 무장을 갖추고 있으며 그 기세로 봐서 제법 실력 있는 자들로 보였습니다.”
“그 수가 얼마나 되던가?”
“어림잡아도 백 명은 족히 넘는 것 같았습니다.”
“으음. 여기에 분명 무슨 음모가 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군. 가서 계속 놈들의 뒤를 쫓아라.”
“네.”
호위무사가 다시 한스가 있는 제너럴 상단 쪽으로 사라지고 나자 곤잘레스는 은밀히 누군가를 찾았다. 잠시 후 왜소한 체구의 평범해 보이는 한 남자가 곤잘레스 앞에 나타났다.
“찾으셨습니까?”
“어어. 페레스, 어서 오게. 내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서 불렀네.”
페레스는 현재 루키아 상단의 상인이다. 하지만 한때는 도둑 길드에서 활약했던 전직 도둑이었다. 그는 특히 위장과 잠입에 능했는데 곤잘레스는 그에게 상대 상단의 비밀을 몰래 빼내 오는 일을 주로 시켰다.
“하명하십시오.”
곤잘레스는 페레스가 일을 성사시킬 때마다 큰 포상을 내렸다. 때문에 페레스는 상인으로서 돈을 버는 것보다 곤잘레스가 자신을 부르길 더 손꼽아 기다렸다.
“누굴 좀 감시해 줘야겠어. 그자가 누구를 만나고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반드시 알아내게.”
“알겠습니다.”
곤잘레스는 페레스로 하여금 허크스 백작이 사용하고 있는 귀족 저택에 잠입하게 했다.
다음 날 아침, 페레스가 곤잘레스 앞에 나타났다.
“알아냈습니다.”
“그래, 뭔가?”
“한스란 자가 몰래 밀거래를 추진 중이었습니다.”
“뭐라고? 밀거래?”
밀거래란 법을 어겨 가며 몰래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말했다.
“네, 허크스 백작의 묵인 하에 황금, 활, 화살을 빼돌려 몰래 고란족에게 넘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한스, 그자가 미쳤구나. 감히 황제 폐하의 허락 없이 전매품을 몰래 밀거래할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가만, 이건 어쩌면…….”
음모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는 곤잘레스의 머리가 역시 나쁜 쪽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흐흐흐. 그러면 되겠군. 이번 일로 제너럴 상단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곤잘레스는 즉시 차일드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은밀하게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중개무역 시장이 선다. 준비는 다 됐겠지?”
“네, 오전부터 야만족과 본격적인 거래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린 랄트족 장사꾼들이 가져온 오천 마리의 말을 모두 차지해야 한다.”
야만족의 말은 제국의 말에 비해 훨씬 튼튼하고 빨랐다. 때문에 제국에서 좀 산다는 가문의 귀족들은 야만족의 말을 타고 다녔다. 트렌시아 제국에서 야만족의 말은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몸이었다.
보통 랄트족 장사꾼들은 말 한 필에 10골드 정도를 받았다. 그러나 그 야만족의 말이 트렌시아 제국의 수도로 가게 되면 100골드를 주고도 못 살 정도였다.
루키아 상단과 같은 거대 상단의 경우 말은 얼마든지 수도로 가져갈 수 있는 운송망을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말만 구입한다면 무조건 10배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곤잘레스는 가능한 헐값에 5천 마리의 말을 모두 사들일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상술이었다.
야만족과의 협상을 위해 곤잘레스는 루키아 상단에서 가장 입심이 좋은 상인들을 대거 합류시켜 하란 마을에 들어왔다.
그 상인들이 무지한 랄트족 장사꾼들을 상대로 얼마나 돈을 벌게 해 줄지 곤잘레스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루키아 상단의 상인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한 각오로 랄트족 장사꾼들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
오전에 랄트족 장사꾼들이 거래를 위해 중개무역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보란 듯이 가장 먼저 루키아 상단을 찾았다.
“가라. 가서 돈을 벌어 와라.”
곤잘레스의 외침에 루키아 상단의 상인들이 랄트족 장사꾼들과 거래에 들어갔다.
랄트족의 대족장인 우르만은 수십 명도 넘는 자식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우르만이 가장 신임하는 아들은 열둘째인 타무르와 열다섯째인 라사드였다.
타무르와 라사드는 랄트족의 여인이 아닌 트렌시아 제국의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둘은 머리가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제 어미들에게서 트렌시아 제국의 말과 글까지 배웠다.
우르만은 타무르와 라사드를 아예 트렌시아 제국으로 보내 문물을 배워 오게 했다. 그랬더니 타무르는 군대에 들어가서 지휘관 노릇까지 한 후, 랄트족으로 돌아왔고 라사드는 상단에서 일하며 충실하게 상술을 배워서 돌아왔다.
우르만은 타무르에게는 랄트족을 강군으로 훈련시키게 하고 라사드에게는 트렌시아 제국과의 무역을 전적으로 맡겼다.
야만족을 흔히 고란족과 랄트족으로 나누지만 실상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고란족과 랄트족 내에서도 수백여 개의 부족이 존재했다.
고란족과 랄트족은 그들 부족 중에서 가장 강성한 대표적인 부족일 뿐이었다.
그들 야만 부족에게 고란족이나 랄트족의 의미는 그저 사는 곳이 서쪽이면 고란족이고 동쪽이면 랄트족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알고 보면 야만족은 아직까지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부족 연합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야만 부족들 중, 세력이 강한 고란족과 랄트족이 그들을 대표할 뿐이었다.
야만족의 부족들은 각자 필요한 물품을 트렌시아 제국과 거래했다.
하지만 역시 그들 부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거래하는 부족은 단연 고란족과 랄트족이었다. 특히 압실론 후작령의 경우는 랄트족과의 거래가 더 많았다.
중개무역 시장은 오전부터 야만 부족과 제국 상단들의 거래로 시끌벅적했다. 제국 상단의 상인들은 야만 부족 하나라도 더 자신의 상단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때 곤잘레스는 랄트족 장사꾼들 중 그 대표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랄트족 장사꾼의 대표는 바로 라사드였다. 랄트족과 루키아 상단을 이어 준 꼴레오네파는 협상 테이블에서 아예 빠져 있었다.
바로 어제 칼이 랄트족 장사꾼들을 차일드에게 소개할 때, 미리 양해를 구해 둔 터라 랄트족 장사꾼들도 그 점에 대해 뭐라 말하는 자는 없었다.
“제국 상인들이 우리 랄트족의 말에 관심이 많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있소.”
라사드의 말에 곤잘레스가 어깨를 으슥해 보이며 말했다.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지요. 아실지 모르지만 저희 제국에도 꽤 많은 말을 사육하고 있습니다. 물론 랄트족의 말이 저희 제국의 말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논밭을 갈거나 짐수레와 마차를 끄는 데 랄트족의 말과 같이 뛰어난 말이 필요한 건 아니지요.”
곤잘레스는 소문을 핑계로 말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소문 따윈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못을 박았다.
“알겠소. 어차피 우리가 책정한 말 가격은 십이 골드이니 그 가격만 받는다면 이번 거래는 무리 없이 성사될 것이요.”
라사드 역시 정찰 가격을 제시하며 못박았다. 곤잘레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십이 골드는 너무 비쌉니다. 아시겠지만 랄트족의 말은 수요가 정해져 있습니다. 대도시의 부호들이나 귀족들이 그 주요 고객들이지요. 그들에게 말을 팔려면 그들이 사는 곳으로 말을 운반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운송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 이 골드 깎아서 십 골드에 계약하는 것이…….”
라사드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벌떡 협상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내가 제시한 말 가격은 절대 변하지 않소. 루키아 상단이 싫다면 다른 상단을 찾을 수밖에.”
라사드가 일어나자 나머지 랄트족 장사꾼들도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곤잘레스도 적잖게 당황했다. 하지만 돈이 되는 일이라면 상대의 발바닥도 핥을 준비가 되어 있는 곤잘레스였다.
“자자. 아직 제 얘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끝까지 제 얘기를 듣고 나서 결정하시지요.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곤잘레스가 허리를 숙이며 말하니 라사드도 일단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최근 제국에서 철 가격이 많이 상승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올해 철광산 몇 곳이 매몰되면서 생산량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그에 동반해서 무기의 가격 역시 소폭 상승했습니다. 해서 그쪽에서 말 가격을 작년과 동일하게 십 골드에 판다면 저희 역시 작년에 팔았던 그 가격에 팔겠다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말 한 필당 십이 골드를 받으시겠다면 그렇게 셈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 측 역시 무기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군요.”
랄트족이 이번에 준비한 말의 수량은 5천 마리였다. 한 필당 12골드로 계산하면 모두 6만 골드였다. 작년의 경우 랄트족은 3천 마리의 말을 10골드에 팔아서 3만 골드로 무기를 20대 분량 구입했다. 무기를 실은 수레 한 대당 1,500골드에 구입한 셈이다.
라사드는 이번에는 말을 판 6만 골드로 40대 분량의 무기를 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교활한 제국 상인이 슬그머니 무기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그래서 무기 한 대당 얼마를 더 인상하겠다는 거요?”
곤잘레스가 바로 대답했다.
“수레 한 대당 이천 골드는 받아야겠습니다.”
라사드는 곤잘레스의 얄팍한 상술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라사드의 말에 곤잘레스가 두 팔을 벌리며 여유 있는 얼굴로 말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라사드는 일단 협상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측근 장사꾼에게 말했다.
“다른 상단에 사람을 보내서 무기 가격이 얼마에 거래되고 있는지 알아봐라.”
10여 분 후 근처 제국 상단에서 무기 가격을 알아보고 온 측근 장사꾼이 라사드에게 보고했다.
“실제 무기 가격이 오른 것 같습니다. 아직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한 대당 대략 이천 골드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루키아 상단에서 제시한 가격이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쳇, 별수 없군.”
라사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렇게 되면 6만 골드로 사들일 수 있는 무기는 30대였다. 처음 곤잘레스의 말을 들었다면 말 한 필당 10골드를 받고 대신 무기 수레를 한 대당 1,500골드에 살 수 있었다. 즉, 5만 골드로 45대의 무기를 살 수 있었다.
괜히 잔머리를 굴렸다가 15대 분량의 무기를 손해 본 것이다.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간 라사드가 비굴한 얼굴로 곤잘레스에게 말했다.
“저기 처음에 제시했던 조건으로 다시 협상하면 안 되겠소?”
라사드의 말에 시종일관 웃고 있던 곤잘레스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협상의 주도권이 순식간에 곤잘레스의 수중으로 넘어왔다.
“으음. 먼저 말 가격을 십이 골드로 올리며 야박하게 군 것은 그쪽이 아니었습니까?”
“하하하. 그건 내 실수요. 미안하게 생각하오. 그러니 말과 무기 거래는 처음 제시했던 그 조건으로 계약하도록 합시다.”
라사드 역시 곤잘레스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라사드도 곤잘레스처럼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하하하. 고맙소.”
라사드가 연방 고개를 숙이며 곤잘레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정작 고마운 것은 곤잘레스였다.
곤잘레스는 상인 조합을 장악하면서 무기 가격을 담합했다. 안 그래도 야만족들이 말 가격을 인상할 것을 우려했던 상단과 상인들은 담합에 대해 기꺼이 협조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곤잘레스는 무기 가격을 작년 가격에 팔았다. 그가 먼저 배신한 것이다. 때문에 이 소문이 퍼지면 무기 가격은 작년 가격으로 다시 재조정될 터였다.
곤잘레스가 노린 것은 무기 가격 인상이 아니었다. 무기 가격을 깎아 주는 척하면서 곤잘레스는 랄트족의 다른 가죽류와 유제품의 가격을 깎았다.
원래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상품 하나를 싸게 사게 되면 그것에 도취해서 자신의 상품도 덩달아 싸게 팔는 법이다.
곤잘레스는 바로 그 점을 이용했다. 협상의 주도권을 쥔 곤잘레스는 랄트족이 가져온 모든 물품들을 사들이고는 80대의 무기를 랄트족에게 넘겼다.
“어제 보니 무기가 백삼십 대로 보이던데. 나머지 오십 대도 마저 파시오.”
라사드의 제의에 곤잘레스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금으로 구입하려면 한 대당 천오백 골드를 받고 팔 수는 없습니다.”
“좋소. 대당 천칠백 골드를 쳐드리겠소.”
“으음. 원래는 대당 이천 골드를 받아야 하지만 내년에도 우리 상단과 거래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물론이요. 앞으로 우리 랄트족은 루키아 상단하고만 거래할 것이요.”
곤잘레스는 남은 50대의 무기 수레를 대당 1,700골드를 받고 모두 랄트족에 넘겼다. 라사드는 85,000골드에 해당하는 금괴를 곤잘레스에게 지불했다.
“그럼 다음 중개무역 때 봅시다.”
라사드와 랄트족 장사꾼들은 비교적 만족해 하며 협상 테이블을 떠났다.
랄트족과의 거래를 끝낸 곤잘레스는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하, 멍청한 놈들.”
곤잘레스는 무기만 팔아서 5천 마리의 말과 많은 양의 가죽류와 유제품, 그리고 금괴를 수중에 넣었다. 이대로 수도로 가게 되면 말 가격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거기에 질 좋은 가죽과 유제품까지 획득했으니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들인 셈이었다.
더욱이 루키아 상단이 무기 외에 준비한 다른 상품들은 고스란히 남은 상태였다. 그 상품들을 다른 야만족에게 팔면 적어도 1, 2만 골드는 벌 수 있었다.
“차일드. 나머지 물건들은 자네가 알아서 팔아.”
“네, 곤잘레스 님.”
곤잘레스는 나머지 일은 차일드에게 맡기고 부친인 산체스를 찾아갔다. 곤잘레스는 누구보다 산체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런 까닭에 이번 거래에서 거둔 어마어마한 성과를 가장 먼저 산체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덜컹!
곤잘레스가 산체스의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산체스는 막 외출을 준비 중이었다. 그의 부상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 꿰맨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라 움직여서는 안 됐다.
“아버지!”
곤잘레스가 버럭 소리를 쳤다.
“깜짝이야. 왔으면 왔다고 기척이나 하고 들어올 것이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뭐하긴…… 하도 갑갑해서 바람이라도 쐴 요량이다.”
“바람은 무슨, 중개무역이 시작되는 날이니 몸이 근질근질해진 거겠지요.”
곤잘레스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산체스가 버럭 화를 냈다.
“잘 아는 놈이 묻긴 왜 물어. 비켜. 나갈 테다.”
“안 돼요. 아직 무리해선 안 된다고 치료사가 그랬잖습니까?”
“그건 치료사가 돈 벌려고 부리는 얄팍한 수작이야. 아프지도 않는데 여긴 왜 있어.”
산체스가 끝까지 고집을 피우자 곤잘레스가 말했다.
“그럼 저와 같이 갑시다. 오늘 귀한 손님이 곧 우리 상단을 방문할 예정이거든요.”
“귀한 손님?”
“네, 아버님도 아는 분일 겁니다. 렉터 공작의 다섯 제자 중 한 분이거든요.”
산체스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제국이 자랑하는 소드 마스터 말이냐?”
“네, 그 다섯 제자 중 제국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학장 카베인이 곧 우리 상단을 찾아올 겁니다.”
“오오. 그게 정말이냐?”
“네.”
산체스가 크게 기뻐하며 곤잘레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당장 가 봐야지. 잡아라.”
곤잘레스는 산체스를 부축해서 중개무역 시장 쪽으로 움직였다. 부상을 입은 후, 산체스는 부쩍 여위어 있었다. 곤잘레스는 훨씬 가벼워진 아버지의 무게에 기분이 침울해졌다.
곤잘레스와 산체스가 중개무역 시장에 도착했을 때 정오가 다 되어 있었다.
카베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점심을 먹고 올 모양입니다.”
“뭐, 기다리지. 그런데 장사는 잘돼 가고 있는 거냐?”
곤잘레스는 드디어 자신이 거둔 성과를 아버지에게 자랑할 기회를 포착했다. 그는 오전에 랄트족과의 거래에 대해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들은 산체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허허허. 잘했다. 이제 우리 루키아 상단이 제국 최고의 상단이 될 날도 머지않았구나.”
이번 거래가 무사히 끝나고 수도로 돌아가게 되면, 트렌시아 제국 최고의 상단은 루키아 상단이 될 것이 확실했다.
***
루키아 상단으로부터 7만 골드를 받아 낸 에반스와 칼은 곧장 마차를 끌고 하란 마을 외곽으로 나갔다. 이내 마차가 멈추고 에반스가 마차에서 내리며 칼에게 말했다.
“이대로 곧장 영주성으로 가라. 그곳에서 라일라를 도와 영지 내 정보 조직망을 빠른 시일 내 구축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영주성에서 뵙겠습니다.”
칼이 7만 골드가 실린 마차를 끌고 사라지자 에반스는 느긋하게 다시 하란 마을로 들어섰다. 그가 막 마을 번화가로 들어섰을 때였다.
쿠쿵쿠쿵.
갑자기 에반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건…….’
에반스는 일단 자신의 기척부터 감췄다. 동시에 익숙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꼴레오네파의 레널드가 머물렀던 최고급 여관이었다. 그 여관 입구에서 에반스는 익숙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자를 발견했다.
에반스가 귀를 쫑긋 세우자 그자와 그자 주위의 인물들의 대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누추하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묵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래.”
뭔가를 눈치챈 듯 그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카베인 님, 왜 그러십니까?”
카베인이라 불린 그자는 뭔가를 찾는 듯 계속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 듯, 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아니네. 내 방이 어디라고?”
“이곳 점원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카베인은 곧장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카베인?”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에반스는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후, 카베인을 여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던 자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에반스는 그자의 뒤를 따라갔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후디치 아닌가?”
그때 사내 하나가 그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내는 용병으로 보였는데 제법 덩치가 컸다. 후디치라고 불린 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 바쁘다.”
후디치가 용병 옆을 지나치려 하자 그 용병은 손을 뻗어 가로막았다.
“그건 안 되지. 빌린 돈 갚고 가라.”
“웃기고 있네. 도박장에서 빌린 돈을 내가 왜 갚아? 죽고 싶지 않거든 썩 비켜라.”
후디치가 제법 호통을 치며 정말 베기라도 하겠다는 듯, 손을 검 자루에 가져갔다. 그것을 보고 상대 용병은 ‘씨익’ 웃었다. 그러곤 뒤쪽으로 손짓하자 4명의 험상궂게 생긴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새끼야? 네 돈을 안 갚고 있는 간 큰 녀석이.”
“도박장에서 빌린 돈은 안 갚아도 된다는군.”
“뭐? 웃기는 자식이네. 급하게 빌려 갈 때는 언제고 돈을 못 갚겠다니. 그냥 둬선 안 되겠어.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지.”
4명의 용병들이 후디치를 포위했다. 하지만 후디치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네놈들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군. 감히 나를 건드리려 하다니 말이야.”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터라 처음에 나타났던 용병이 막 후디치를 덮치려던 4명의 동료 용병들에게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 저놈과 얘기를 좀 해야겠어.”
“얘기는 무슨…… 저놈은 안 맞으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거라고. 그냥 조져 버리자고.”
“맞아. 시간 끌려는 속셈이 분명해.”
동료 용병들의 말에 처음 용병도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서 있는 후디치를 보자 그는 자신의 감을 믿어 보기로 했다.
“기다려 줘.”
용병이 동료 용병들에게 다시 부탁했다. 그러자 후디치를 포위하고 있던 4명의 용병들도 별수 없이 한 걸음 씩 뒤로 물러났다.
“왜 내가 너를 건드리면 안 되는지 말해 봐.”
용병의 물음에 후디치가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내가 전에 너에게 했던 말인데 기억할지 모르겠군. 내 스승께서 바로 소드 마스터라고 말이야.”
용병들이 일제히 콧방귀를 뀌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요새는 개나 소나 스승이 소드 마스터라지 아마.”
“헛소리야. 그냥 족치자.”
용병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후디치가 그런 용병들을 향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미친놈들. 믿든 안 믿든 그건 너희들 자유고, 지금 나는 내 스승의 심부름으로 잡화점에 가는 중이다. 어디 막아 봐라.”
후디치가 말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자 가로막고 있던 처음 용병이 흠칫 놀라며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다른 용병들이 달려들려고 하다가 처음 용병의 손짓에 모두 물러섰다.
‘소드 마스터라…….’
그제야 에반스는 비로소 카베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렇군. 렉터 공작의 다섯 제자 중 막내인 카베인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헉! 그자다.’
에반스는 카베인의 기운을 느끼고 급히 몸을 빼서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때, 여관 안에 들어갔었던 카베인이 조금 전 에반스가 서 있던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이쯤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카베인은 아무리 주위를 살펴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소드 마스터인 그의 이목을 속이고 감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상대 역시 소드 마스터라면 또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촌구석에 소드 마스터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피곤해서 너무 민감해졌나?”
며칠 동안 야영하면서 계속 사냥해 왔던 카베인은 약간의 피로를 느꼈다.
그때 심부름을 보냈던 후디치가 물건을 들고 잡화점을 막 나서는 것이 카베인의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이 후디치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것들은 또 뭐야?”
카베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쪽을 향해 걸었다.
용병 벤자민은 며칠 전 도박장에서 후디치에게 10골드를 빌려 주었다. 당시 후디치는 이자로 1골드를 주기로 하고 벤자민에게 돈을 빌렸다. 하지만 그 후, 후디치는 돈이 없다며 벤자민을 슬슬 피해 다녔다.
벤자민은 별수 없이 용병들 중에서 질이 나쁜 녀석 4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1골드를 받아 내면 이자인 1골드를 주기로 하고 말이다.
하지만 뭔가 믿는 바가 있는지 후디치는 너무나 당당했다. 그냥 뻗대는 것이라면 달려들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후디치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벤자민은 그 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우리 수고비 일 골드 당장 내놔.”
그러자 질 나쁜 용병 4명이 이번에는 벤자민을 둘러쌌다.
“뭐라고?”
그제야 벤자민은 그들을 끌어들인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4명의 용병들은 막무가내였다.
“흐흐, 좋아! 네가 못 받겠다면 우리가 받아 주지. 단 받아 낸 돈의 절반은 우리 몫이다.”
4명의 용병은 마음대로 약속을 정한 후, 벤자민의 뺨을 툭툭 쳤다.
그러곤 몸을 돌며 다시 후디치에게 다가가 그를 둘러쌌다.
후디치는 그들이 다시 앞에 나타나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냐?”
자신감에 넘치는 후디치의 말에 4명의 용병이 비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돈 놈이군.”
“네놈의 스승이 소드 마스터면 내 스승은 용병왕이다.”
그때였다.
“잘됐군. 용병왕을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야.”
용병들의 뒤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카베인이 서 있었다.
“스승님!”
반가운 마음에 후디치가 소리쳤다.
4명의 용병이 뒤를 돌아 카베인을 쳐다보았다.
“뭐야? 네가 저 녀석 스승이야?”
카베인은 키도 크기 않고 덩치도 크지 않았다. 누가 봐도 기사에 어울리는 몸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용병들은 기가 찬다는 듯 카베인과 후디치를 번갈아 쳐다보고 비웃음을 날렸다.
“이것들이 이제 우리한테 사기를 치려 하네.”
“둘 다 조져 버리자고.”
용병들은 각기 둘씩 짝을 지어 카베인과 후디치를 덮쳤다. 그때 카베인의 몸이 움직였다.
스스스슥!
카베인의 움직임은 사신의 그림자처럼 빠르고 은밀했다. 오직 망토와 공기의 마찰 소리만이 미미하게 울려 퍼졌다. 카베인의 빠른 움직임에 두 명의 용병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앞으로 찔렀다.
그러나 그때 이미 카베인은 용병들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저건…….’
이때 군중 속에 기척을 숨긴 채 카베인을 쳐다보고 있던 에반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 카베인이 펼친 검술은 바로 검공 라마스가 남긴 검술 중 하나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카베인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지만 에반스의 눈에는 정확히 보였다.
카베인은 용병들의 검을 간단히 피하고, 그들 옆을 스쳐 지나며 용병들의 목을 훑었다.
휘익, 파팟
“크흑!”
목의 절반 정도에 붉은 선이 생긴 용병들이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카베인의 검이 정확하게 그들의 목 절반을 잘라 버렸던 것이다.
“아악! 살인이다.”
용병들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그것을 본 군중들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후디치는 자신을 덮치는 두 용병에게 잡화점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던지고 뒤로 물러나 검을 뽑았다.
챙!
“덤벼!”
후디치도 호위무사를 할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용병 따윈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후디치가 검을 뽑자 용병들도 무기를 꺼냈다. 바로 그때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선을 돌린 그곳에는 두 명의 용병이 목이 베인 채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표정의 두 용병을 향해 카베인이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휘릭!
검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옆으로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 용병들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컥! 컥!”
동시다발로 비명 소리가 울리며 옆구리에 구멍이 난 두 용병은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스승님, 저자도 같은 패입니다.”
그때 후디치가 용병 벤자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헉!”
놀란 벤자민이 몸을 빼려 했지만 카베인은 너무 빨랐다.
퍽!
“크윽!”
카베인의 발길질에 벤자민은 뒤쪽 벽으로 날아가서 처 박혔다.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벤자민은 살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다시 앞에 나타난 카베인이 벤자민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빠각!
얼굴 정면 부분이 크게 함몰되며 벤자민은 다시 뒤로 튕겨서 벽에 강하게 부딪쳤다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쿵! 털썩!
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카베인의 잔인한 손속에 사람들은 기겁했다. 유일하게 그 광경을 보고 웃고 있는 사람은 벤자민에게 빚이 있었던 후디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