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도중, 에반스는 칼에게 여러 가지 보고를 받았다.
특히 조직의 2인자인 레널드가 이번 무기 거래를 꼴레오네 모르게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에반스는 레널드가 자신과의 무기 거래로 막대한 중간 차익을 노리고 있음을 알아채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으음, 레널드 그자가 주제도 모르고 욕심을 과하게 부리고 있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심스런 칼의 물음에 에반스가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가서 그자를 만나야지.”
“지금 말입니까?”
“그래, 날이 밝으면 그자도 이곳 아지트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않겠나? 그자가 잔머리를 굴리기 전에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겠지. 그자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에반스의 명령에 칼이 레널드가 묵고 있는 하란 마을 번화가 최고급 여관으로 안내했다.
이때 레널드는 앞으로 벌어들일 거금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겨우 잠이 든 상태였다.
원래는 그가 묵은 여관 주위로 꼴레오네파 조직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칼의 부름을 받고 전원 아지트로 철수한 상태였다. 그래서 현재 여관에는 레널드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호위무사 두 명만이 그 방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수고가 많네.”
여관의 점원도 칼과 안면이 많은 듯 에반스와 칼이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칼은 여관으로 들어가면서 점원에게 금화 하나를 슬쩍 건네며 말했다.
“조금 시끄러울 거네.”
금화를 본 점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예,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점원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자동으로 허리를 굽실거렸다.
칼은 에반스와 함께 레널드가 기거하고 있는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 칼이 먼저 복도에 발을 내딛자 레널드의 방을 지키던 두 호위무사가 재빨리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챙! 챙!
“누구냐?”
“웬 놈이냐?”
안에 있는 레널드가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칼을 따라 위층 복도로 올라선 에반스는 검을 뽑아 들고 자신들을 쏘아보고 있는 호위무사들이 제법 실력 있는 자들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하지만 그건 호위무사의 실력이 그렇다는 것이고 에반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칼이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보인 채 다소 경직된 얼굴로 말했다.
“나 모르겠소? 급히 레널드 님을 뵈러 왔소.”
호위무사들도 칼과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 경계를 늦추며 말했다.
“이 시간에 말인가?”
“그렇소. 아주 급한 일이요.”
어쩔 수 없이 두 호위무사 중 하나가 레널드가 있는 방으로 다가가서 가볍게 노크했다.
똑똑!
안에서 레널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인가?”
“오늘 보셨던 그 칼이란 자가 찾아왔습니다.”
“칼이? 무슨 일이라고 하던가?”
“무슨 일인지 말은 하지 않고 아주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아주 급한 일? 혼자인가?”
“아닙니다. 웬 놈을 한 명 달고 왔습니다.”
“그자가 누군지 신분부터 확인하게.”
“알겠습니다. 헉!”
막 방문에서 떨어져서 몸을 돌리던 호위무사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바로 앞에 칼과 같이 온 그 정체불명의 남자가 떡하니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는 검을 든 채 복도에 꼬꾸라져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는 동료가 보였다.
에반스는 칼과 한 걸음 떨어져서 칼과 함께 두 명의 호위무사에게 접근했다. 그러곤 칼이 멈춰 서서 호위무사들과 대화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호위무사 하나가 레널드와 대화를 나눌 때, 움직였다.
스르르르!
칼의 뒤에 있던 에반스가 사라졌다가 앞을 막고 있던 호위무사 옆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까지 호위무사의 시선은 여전히 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히려 칼이 놀랍다는 눈으로 호위무사 옆에 서 있는 에반스를 쳐다보았을 때, 그제야 호위무사도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에반스를 발견하고 놀라 몸을 피하며 뭐라 말하려 할 때, 에반스의 손이 그 호위무사의 목을 잡아챘다.
단숨에 호위무사를 허공으로 들어 올린 에반스의 손에 힘이 가해졌다. 소리 없이 목이 꺾여 버린 호위무사는 맥없이 축 늘어졌다. 에반스는 그 시신을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엔 방문 앞에서 레널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호위무사 뒤로 다가섰다.
대화를 끝낸 호위무사가 돌아섰을 때, 에반스와 바로 눈빛이 마주쳤다. 놀라 소리를 지르는 호위무사의 얼굴에 에반스가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퍽!
별로 강하게 휘두른 것 같지 않았는데 그 주먹에 맞은 호위무사의 몸은 그대로 뒤쪽 방문 쪽으로 휭 하니 날아갔다.
콰쾅!
호위무사와 함께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쿵! 털썩!
“헉!”
방 안의 레널드는 코가 사라지고 안면 뼈 전체가 으스러져 뇌수를 흘리며 죽은 호위무사를 보고 바르르 몸을 떨었다.
저벅저벅.
그때 그의 방 안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누, 누구냐?”
레널드가 재빨리 품속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양아치 출신인 레널드는 특히 단검을 잘 다뤘다. 그의 단검에 비명횡사한 자만도 수십 명이 넘었다. 그가 꼴레오네파의 2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레널드의 손에 20센티 정도 되어 보이는 두 자루 단검이 쥐어졌다. 두 자루 모두 투척용으로 날은 서 있지 않은 채 그 끝만 뾰족했다.
레널드는 언제든 단검을 던질 수 있게 검을 뒤집어 잡고 있었다. 그러나 팔은 던질 의향이 없다는 듯 아래로 내린 상태였다.
그런 레널드 앞에 에반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너는…….”
당연히 레지스터 탄광촌에 있어야 할 홀렌스가 떡하니 서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에반스의 뒤로 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네가 어떻게 저자와 같이 있는 것이냐?”
칼이 차갑게 말했다.
“그건 알 것 없고 당신은 그저 이분이 물으시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레널드는 칼이 홀렌스와 무슨 관계가 있음을 눈치챘다.
“뭐, 뭐라고…… 네놈이 조직을 배신하고도 무사할 거라 여겼더냐?”
칼이 피식 웃었다.
“조직? 그렇게 조직 운운하는 분이 조직 돈을 빼돌리지 못해 안달이 나셨나?”
빈정대는 칼의 말에 레널드의 얼굴이 더욱더 경직되었다. 그러나 잔머리가 뛰어난 레널드는 재빨리 에반스에게 말했다.
“홀렌스, 저자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거래에는 문제도 없다.”
레널드는 이번 거래만은 틀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반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나야 거래 당일 주기로 한 물품 대금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상관없지요.”
그 말에 레널드가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약속대로 주기로 한 3만 골드는 물건을 받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지급할 테니 말이다.”
레널드는 곤잘레스에게 받기로 한 선금 3만 골드로 한 번에 무기 대금을 지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칼에게 들으니 부르터를 제거하라고 했다더군요. 부르터는 꼴레오네파 이곳 하란 마을의 두목이 아닙니까? 그런 자를 당장 제거해야 할 정도라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에반스가 능청스런 얼굴로 레널드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많이 당혹스런 얼굴로 레널드가 말했다.
“그, 그것은 우리 조직 내부의 일이네. 그러니 자네가 관여할 일은 아니란 말이지.”
“맞습니다. 그건 꼴레오네파 내부의 문제겠지요. 하지만 그 일에 내 수하가 관련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듣자하니 칼에게 이곳 조직을 장악하라고 했다면서요?”
레널드가 깜짝 놀라며 칼을 쳐다보고 물었다.
“칼, 네가 정말 조직을 버리고 저자를 선택한 것이 사실이란 말이냐?”
칼이 여유 있게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소.”
“어떻게 그럴 수가…… 총두목께서 너를 살려 준 것을 잊었느냐?”
“그에 대한 보답은 이미 충분히 한 것으로 알고 있소. 더는 양아치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양, 양아치! 이런 배은망덕한 놈.”
발끈하며 얼굴을 붉히는 레널드에게 에반스가 입을 열었다.
“내 수하를 욕하는 건 그만두면 좋겠군요.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
레널드가 에반스와 칼을 동시에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 칼로 하여금 부르터를 제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칼이 이미 조직도 장악했고 말입니다.”
레널드가 그것이 사실이냐고 칼에게 눈짓을 보냈다. 칼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사실이요. 내 손으로 부르터를 제거했고 이곳 꼴레오네파도 내가 모두 장악했소.”
레널드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잘했군. 하지만 네가 조직을 배신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칼이 비웃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이번엔 에반스가 레널드에게 불쑥 말했다.
“그런데 이 거래에 당신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소.”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칼에게 들어 보니 랄트족 장사꾼은 여기 칼이 부르터 대신 맡기로 했다더군요. 그렇다면 당신의 역할은 꼴랑 수도에서 온 루키아 상단에게 랄트족 장사꾼을 소개시키는 것뿐인데, 그 정도 역할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서 말이요. 막말로 수도에서 온 상단이 루키아 상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다른 상단과 접촉해도 될 것 같은데.”
에반스의 말에 레널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동시에 다급하게 외쳤다.
“그, 그건 절대 안 된다.”
에반스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호오. 그냥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절대로 안 된다라? 이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
에반스가 가볍게 웃으며 칼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칼이 레널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루키아 상단과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으음, 음모라? 그게 뭔지 궁금하군요?”
에반스가 레널드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레널드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그건 말이지.”
그때 레널드가 들고 있던 두 개의 단검이 움직였다.
휙! 휙!
가만히 선 채 팔을 내린 상태에서 들고 있었던 검을 내던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손에 들린 두 개의 단검이 정확히 칼의 얼굴과 복부 쪽으로 날아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레널드는 단지 팔목 스냅만으로 단검을 던졌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단검은 사력을 다해 힘껏 던진 단검만큼이나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이것이 레널드를 조직의 2인자로 만들어 준 그만의 필살기였다.
레널드의 이 필살기를 보고 살아남은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이런 필살기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보통은 적 하나에 단검 하나를 사용하지만 칼은 실력이 워낙 뛰어난 암살자였기 때문에 레널드는 단검 두 개를 절묘하게 시간차 간격을 두고 던졌다.
그동안 레널드보다 실력이 더 뛰어났던 자들도 이 공격에는 속수무책 당했다. 칼이 제아무리 민첩하다 하더라도 얼굴로 날아간 단검을 피하면 반드시 복부에 단검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큭!”
레널드의 예상대로 칼은 얼굴로 날아온 단검은 피했지만 복부의 단검은 피하지 못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칼을 보고 레널드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품속에서 두 자루 단검을 더 꺼냈다.
이번에는 투척용 단검과 달리 날이 잘 벼려진 날카로운 단검이었다.
“흥, 아직도 그 이유가 궁금한가?”
레널드는 단검 중 하나를 들어 혀로 핥으며 음침한 얼굴로 에반스를 쳐다보고 말했다.
에반스는 레널드가 팔을 쓰지 않고 손목 힘만으로 단검을 투척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정도는 소드 마스터인 에반스에게는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목의 힘 대신, 마나의 힘을 이용해 그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검을 던질 수 있었다.
시간차를 두고 날아간 레널드의 단검은 칼의 얼굴과 복부를 노렸고, 그중 하나가 칼의 복부에 박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에반스의 눈에는 칼이 그 단검을 손으로 잡아채서 마치 단검을 맞은 듯 보이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에 속은 듯 레널드가 단검 두 자루를 꺼내서 제법 위협적인 눈빛과 행동으로 에반스를 겁박했다.
에반스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궁금하다.”
레널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너도 저 꼴이 되어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로군.”
레널드가 손짓으로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때 칼은 정말 복부에 단검을 맞은 것처럼 고통스런 표정으로 힘겹게 서 있었다.
“먼저 저놈부터 처리하고 나서 얘기하도록 하지. 칼,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내가 똑똑히 알려 주마.”
레널드는 아예 에반스는 무시하고 칼에게 다가갔다. 에반스는 계속 팔짱을 끼고 서로를 속고 속이는 레널드와 칼의 다음 행동을 구경했다.
칼의 실력을 잘 아는 레널드는 그가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쉽게 공격하지 못했다. 레널드는 한동안 칼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기회를 노렸다.
칼은 한 손에 검을, 다른 한 손은 복부에 박힌 단검을 쥐고 있었다. 정말 복부에 단검이 박힌 듯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러니 레널드도 칼이 자신의 단검에 맞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레널드가 칼에게 접근하자 칼이 비틀거리면서도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레널드가 바로 공격하지 않고 뜸을 들이자 칼은 고통스러워 하며 잠시 검을 아래로 내렸다.
‘기회다.’
바로 그때 먹잇감을 포착한 레널드가 빠르게 칼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쉭!
레널드의 두 단검이 그대로 칼의 가슴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칼이 뒤로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헉!”
예상치 못한 칼의 반응에 레널드는 즉시 두 단검을 회수했다. 그렇지 않으면 칼의 검에 그의 두 팔이 잘려 나갈지 몰랐다.
휙!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칼의 다른 한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이 레널드에게 날아왔다. 칼이 검을 휘두르면서 복부에 박혀 있던 것으로 위장한 단검을 레널드에게 던진 것이다.
동시에 이뤄진 공격인지라 레널드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단검이 들린 두 팔이 잘리지 않게 거둬들이는 것뿐이었다.
푹!
단검은 그대로 레널드의 어깨를 파고 들어갔다. 섬뜩한 느낌과 함께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이 레널드에게 엄습했다.
“크윽!”
레널드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비틀거리며 그가 대여섯 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 복부에 단검을 맞았던 칼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상반신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곤 레널드를 보며 비웃듯 말했다.
“왜? 배신자의 말로를 알려 주겠다며?”
텅! 으드득!
레널드는 들고 있던 단검 하나를 발아래에 떨어트리고는 이를 갈며 어깨 깊숙이 박힌 단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칼의 속임수에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들고 있던 단검을 칼에게 던졌다.
휙!
“어림없다.”
칼이 간단히 고개를 젖혀 단검을 피하자 한 자루의 단검이 빠르게 에반스를 향해 날아갔다.
휘릭!
레널드가 이번에는 발아래 단검을 떨어트리는 척하다가 발로 단검을 차서 에반스를 공격한 것이다. 놀랄 만한 공격이었다. 그는 손목 힘에 이어 이번에는 발을 이용해서 단검을 날리는 기막힌 변칙 공격을 선보였다.
레널드는 칼과의 싸움이 확연히 불리해지자 바로 에반스를 공격했다. 에반스가 다친다면 그의 수하인 칼은 분명 에반스를 구하기 위해 나설 것이고, 그때 레널드는 칼의 이목을 따돌리고 방 안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널드의 생각은 에반스의 다음 행동에 간단히 수포로 돌아갔다.
레널드가 걷어찬 단검은 빠르고 정확히 에반스의 어깨로 날아갔다.
에반스는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레널드는 자신의 단검이 에반스의 어깨에 박힐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척!
그런데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에반스가 너무도 간단히 두 손가락으로 단검을 받아 낸 것이다. 그제야 레널드의 뇌리에 부르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저놈 혼자서 비밀 아지트를 뒤집어 놓았다는 말이 이제 생각나다니!’
정작 칼에게만 신경을 쓰느라 에반스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레널드는 자신의 경솔함을 탓했다.
그때였다.
“컥!”
무릎에서 끔찍한 아픔이 고스란히 레널드의 뇌리로 전달되었다. 레널드가 고개를 숙이자 그의 왼쪽 무릎에 단검 한 자루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레널드 정면의 칼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레널드의 시선이 그 옆의 에반스를 향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있던 에반스가 싱긋 웃었다.
“나도 한번 해 봤어. 단검을 발로 차는 것도 꽤 쓸 만하군.”
범인은 에반스였다.
그는 레널드가 칼을 공격했을 때, 칼의 머리를 노렸던 단검이 뒤쪽 벽에 맞고 튕겨 떨어져 있던 것을 발로 차서 단검을 날린 것이다.
레널드가 보인 변칙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르고 강한 일격이었다.
레널드는 물론, 칼도 언제 단검이 레널드의 무릎으로 날아갔는지 알지 못했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으니 이제 달아나는 것도 불가능해진 레널드는 빠르게 잔머리를 굴렸다.
에반스가 귀찮다는 얼굴로 레널드에게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순순히 루키아 상단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순순히 들을 레널드가 아니었다.
“절반을 주겠다. 내가 얻을 이윤의 딱 절반을 떼어 주지.”
레널드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머리를 굴린 게 바로 이런 식의 협상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에반스는 레널드와 협상 따윌 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니 레널드의 제의는 에반스에게 그저 개 짖는 소리나 다를 것 없었다.
“쯧쯧. 어차피 말할 것을…….”
에반스는 혀를 차며 레널드에게 성큼 다가갔다. 레널드는 그런 에반스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크윽!”
하지만 한쪽 무릎이 박살 난 레널드는 끔찍한 고통에 휘청거리다가 균형이 무너져 그만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쿵!
저벅저벅
“허억!”
그 가운데 에반스가 계속 다가오는 것을 보고 레널드는 본능적으로 뒤로 기었다. 그러나 곧 뒤쪽 탁자에 부딪쳤다. 레널드는 손으로 탁자를 짚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그때까지 한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마구 휘둘렀다.
정면에서 레널드에게 접근해 오던 에반스가 살짝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레널드도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그쪽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삼분의 이를 주겠다.”
아래층의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레널드가 악을 썼다. 하지만 에반스는 무덤덤한 얼굴로 레널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 되겠어. 좀 맞고 나서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
스르르르!
에반스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가 레널드 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히익!”
놀란 레널드가 들고 있던 단검을 휘두르려 할 때, 그보다 먼저 레널드의 발이 에반스의 가슴의 걷어찼다.
퍽!
“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레널드는 맞은편 벽에 강하게 부딪쳤다.
쿠웅!
전신의 뼈가 어긋나는 고통에 레널드는 차마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에반스가 탁자를 발로 걷어차서 넘어트리더니 대뜸 탁자 다리 하나를 뜯어냈다.
“적당하군.”
탁자 다리는 어른 팔뚝만 한 크기에 그 끝에는 못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에반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것으로 레널드를 사정없이 패기 시작했다.
빡! 퍼퍼퍽!
“아아악.”
에반스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계속해서 몽둥이질을 해 댔다. 탁자에 박혀 있던 못 때문에 살점이 찢겨 떨어져 나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모습에 강심장인 칼도 눈을 돌릴 정도였다.
‘저것이 진짜 철혈영주의 모습인가?’
칼은 무심한 얼굴로 레널드를 때리고 있는 에반스가 두렵게 느껴졌다. 그와 적이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레널드가 소리쳤다.
“말하겠다. 뭐든지 다 말하마. 그러니 제발 그만 때려라.”
피투성이가 된 레널드는 에반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며 처절하게 빌었다.
에반스가 매질을 멈추고 말했다.
“루키아 상단과 무슨 일이 있었지?”
레널드는 루키아 상단의 곤잘레스에게 거래할 무기, 수레 30대 분을 10만 골드를 받고 넘기기로 한 사실을 모두 밝혔다.
“그렇다면 분명 계약서가 있을 겁니다.”
칼의 말에 에반스가 레널드에게 물었다.
“계약서 어디 있나?”
레널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그것을 밝히면 나를 죽일 것이 아니냐? 나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가 다오. 그럼 그 계약서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마.”
에반스는 아무 대꾸 없이 발을 들어 레널드의 허벅지 바깥쪽을 찼다.
퍽!
“아악!”
허벅지의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 레널드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도 분노로 가득한 눈으로 칼을 쏘아보았다. 이게 다 칼이 배신한 까닭에 생겨난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때 에반스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리고 망설일 것도 없이 그대로 레널드의 허벅지에 꽂아 넣었다.
푹!
“크아아아악!”
검은 레널드의 허벅지를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고통에 겨워 레널드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반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뽑았다.
“으으으으악!”
검이 뽑히자 레널드가 진저리를 치며 몸을 비틀어 댔다. 에반스는 피투성이가 된 허벅지를 피해 반대쪽 허벅지에 다시 검을 찔러 넣었다.
레널드는 두 눈을 까뒤집으며 손으로 방바닥을 긁어 댔다.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 고통은 허벅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반스가 다시 검을 뽑았을 때, 레널드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저기, 저기 침대 밑 방바닥에 숨겨 두었다.”
그 즉시 칼이 움직였다. 칼은 침대를 뒤집고 나무로 된 바닥을 뜯어냈다. 그러자 그 안에 작은 상자가 나왔다. 상자 안에는 금화와 보석, 그리고 레널드가 루키아 상단의 곤잘레스와 체결한 계약서도 있었다.
칼은 그 상자를 에반스에게 건네며 말했다.
“처리할까요?”
그 말에 레널드의 등골이 써늘해졌다.
“아니. 계약서에 보니 내일 선금으로 3만 골드를 받기로 되어 있군. 그 돈은 받고 나서 없애도 돼.”
에반스의 살벌한 말에도 레널드는 적어도 내일까지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군. 지혈시켜서 데리고 나간다.”
에반스의 명령에 칼이 즉시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서 레널드의 상처에 하얀 가루를 뿌렸다. 그러자 레널드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멎었다. 하지만 그 후 칼은 어떤 치료도 해 주지 않았다.
대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큰 자루를 하나 챙겨서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밧줄로 꽁꽁 묶어 그를 자루 안에 넣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 칼은 여관 점원에게 짐수레를 여관 앞에 대기시켜 달라고 했다.
“이 시간에 말입니까?”
여관 점원이 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칼은 에반스가 건넨 금화 하나를 여관 점원에게 찔러 넣어 주었다. 그러자 10분도 안 돼서 여관 앞에 짐수레가 준비되었다.
칼은 두 호위무사의 시신과 레널드를 넣은 자루를 짐수레에 실었다.
***
에반스는 모든 일을 끝내고 칼과 함께 하란 마을에 임시로 마련된 그의 거처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제 그의 제자가 된 루미나와 어새신 라일라, 마법사 루크에게만큼은 칼을 소개시켰다.
특히 라일라와 인사할 때, 같은 어새신 출신인 라일라와 칼의 기싸움이 대단했다.
인사 후 나머지는 내보내고 에반스는 라일라와 칼을 집무실에 남게 했다.
“내가 너희 둘을 남게 한 것은 특별히 시킬 일이 있어서다. 나는 카라스 영지에 정보조직을 하나 만들 생각이다. 그 정보조직을 너희 둘이 이끌어 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물론 라일라는 삼 년 후 내 곁을 떠날 테지만 그 전까지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네, 영주님.”
“우선 빨리 해 줘야 할 일은 압실론 후작령을 감시할 조직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일은 비단 라일라뿐 아니라 칼, 너 역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라일라는 내일 당장 카라스 영주성으로 가서 총관인 메디슨 남작을 만나도록 해라. 이것을 전하면 총관이 모든 지원을 해 줄 것이다.”
에반스는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서신을 꺼내 라일라에게 건넸다. 라일라가 그 서신을 받자 에반스는 계속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압실론 후작령에 국한되지만 정보 조직망은 계속 더 키워 나갈 것이다. 칼의 경우는 누구보다 야만족에 대해 잘 아니 차후 야만족을 감시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칼은 이곳에서 몇 가지 일을 하고 나서 며칠 후, 카라스의 영주성으로 돌아갈 것이니 그렇게 알도록 하라. 라일라는 영주성에 도착하면 정보 조직망을 갖추는 일을 가능한 빨리 진행시키도록 해라.”
“네, 영주님.”
다음 날 라일라는 조용히 하란 마을을 떠나 로체스 자작성으로 출발했다.
라일라를 보내고 나서 에반스가 조용히 칼을 불렀다.
“이제 슬슬 돈 벌러 가 볼까?”
에반스는 레널드와 곤잘레스 사이에 맺은 계약대로 루키아 상단에 선금 3만 골드를 받으러 갔다. 하지만 루키아 상단 측에서는 레널드가 직접 오지 않으면 선금을 내어 줄 수 없다고 했다.
당연히 에반스는 이미 반병신을 만들어 놓은 레널드를 루키아 상단에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레널드가 몸이 아픈 관계로 루키아 상단 측에서 직접 방문해서 선금을 지불할 것을 요청했다.
루키아 상단 측에서는 불평을 토로했지만 결국 이대로 선금을 주지 않아 계약이 틀어지는 날이면 손해를 보는 쪽은 그들이었다. 그래서 별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어서 레널드를 여관으로 데려 와.”
에반스의 명에 칼이 서둘러 움직였다.
***
짐수레에 실린 채 레널드는 어디론가 이동되고 있었다. 한참 뒤 누군가가 들고 10분쯤을 더 움직였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봐서 어디 지하 창고에 가둬 둘 모양이었다.
퍽!
뭔가 둔탁한 것이 레널드의 머리를 때렸다. 레널드는 곧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풀어라.”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자루가 풀리고 레널드가 자루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그의 앞에 악마 같은 에반스의 모습이 보였다.
“으드드드. 이, 이제 어쩔 것이냐?”
출혈이 많았던 레널드는 몸의 피가 모자라게 되자, 추위를 느끼는지 덜덜 떨면서 말했다. 특히 난자당한 허벅지는 지혈이 제대로 되지 않아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의 얼굴색은 더욱 파랗게 질려 가고 있었다.
“넌 그냥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말이다. 칼, 옷부터 갈아입혀라.”
언제 다시 옮겼는지 레널드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에는 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피가 계속 나면 옷을 갈아입어도 소용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상처를 지혈해 주었다는 점이었다.
몸 밖으로 일단 피가 빠져나가지 않자 레널드도 점차 흐릿해지는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얼마 후 칼은 레널드가 멀쩡하게 보이도록 위장을 시켰다. 그러곤 그를 의자에 앉혔다.
“으흐흑흑! 제, 제발 살려다오. 나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원하는 것은 다 주겠다. 그러니 제발…….”
레널드는 울고불고 살려 달라며 사정했다. 그러나 레널드와 같은 인간쓰레기에게 자비를 베풀 에반스가 아니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라. 그럼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에반스의 말에 레널드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루키아 상단에서 사람들이 도착했다.
“약속대로 선금 3만 골드요.”
에반스와 칼이 그 돈을 챙기자 루키아 상단에서 선금 3만 골드를 받았다는 증명서를 요구했다.
레널드가 증명서를 써 주자 루키아 상단 사람들은 휑하니 돌아가 버렸다.
“돈 벌기 쉽군요.”
칼의 말에 에반스가 웃으며 말했다.
“쉽게 벌면 또 쉽게 쓰게 마련이지. 하지만 쉽게 쓰지 않고 얼마나 유용하게 쓰는가에 따라 사람의 미래가 바뀌기도 한다.”
에반스의 말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칼은 에반스가 적어도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제 약속대로 나를 살려다오.”
레널드가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에반스가 약간 심각한 어조로 대답했다.
“생각해 봤는데 너 같은 놈은 살려 둬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뭐, 뭐라고?”
“그냥 꽉 죽어라. 그리고 다음에 다시 태어날 때는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라.”
무정한 에반스의 대답에 레널드는 황당함 반, 죽음에 대한 공포 반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지 횡설수설하며 머릿속의 말들을 두서없이 떠들어 댔다.
“이, 이럴 수는 없다.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나?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나를 치료해라. 그러면 내가 특별히 네놈들의 죄를 용서해 주겠다.”
에반스가 힐끔 칼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품속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평소 레널드가 사람을 죽일 때, 사용했던 그 단검이었다.
잠시 뒤 에반스와 칼이 각기 돈 자루를 챙겨 들고 여관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 둘을 보고 여관 점원이 희색이 만연해서는 말했다.
“뭐 더 필요하신 것 없으십니까?”
칼이 여관 점원에게 금화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점원의 얼굴이 곧 탐욕으로 물들었다. 칼은 점원의 눈앞에 금화를 내보이며 말했다.
“특실에 묵고 있는 손님 말인데.”
“네.”
여관 점원은 금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조금 전에 자살했더군.”
“네?”
자살이란 말에 여관 점원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자 에반스가 품속에서 금화 하나를 더 꺼냈다.
여관 점원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 그래서 제가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간단해. 우리가 나간 뒤 한 시간 후에 자경대에 달려가서 손님이 죽었다고 해. 그럼 이 돈은 네 차지다.”
“저, 정말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그래.”
에반스는 금화 두 개를 점원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그리고 칼과 같이 여관 밖으로 나갔다.
한 시간 뒤 여관 점원은 자경대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자경대가 특실에 들어갔을 때, 레널드는 자신의 가슴에 단검을 박아 넣은 채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자살이로군.”
자경대는 중개무역으로 인해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에 더 조사 없이 레널드가 자살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때 에반스와 칼은 유유히 3만 골드를 들고 하란 마을 관리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에반스는 3만 골드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죄다 총관인 메디슨 남작에게 보냈다. 그것을 보고 칼이 놀라며 말했다.
“그 돈을 모두 다 보내실 줄 몰랐습니다.”
에반스가 가볍게 웃었다.
“정보망을 구축하려면 많은 돈이 지출될 수밖에 없다. 현재 카라스 영지는 개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 개혁에 들어갈 돈도 모자랄 지경이야. 그것을 뻔히 알면서 무리하게 정보조직을 만들 수는 없지. 해서 이곳에서 돈을 벌어 모자라는 재정을 어느 정도 확보해 놓을 생각이다.”
아직 거래는 끝나지 않았다. 에반스가 가짜 30대 분량의 무기를 루키아 상단에 넘기면 7만 골드를 더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가짜 물건에 대한 책임은 에반스가 아닌 꼴레오네파가 모두 지게 될 터였다.
루키아 상단과 계약한 것은 꼴레오네파의 2인자인 레널드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꼴레오네파는 에반스가 나서지 않아도 루키아 상단에 의해 망할 것이 분명했다.
처음 에반스가 생각했던 대로 에반스는 영지 개혁을 위한 부수입도 얻고, 그에 더해 꼴레오네파란 악질 조직을 없애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번 일만 잘 성사된다면 압실론 후작령 내에 정보망을 갖추는 것은 물론, 트렌시아 제국에 걸쳐서도 빠른 시일 내에 정보망을 갖추게 될 터였다.
어차피 정보망은 사람이 많이 필요했고, 그 많은 사람을 이용하려면 당연히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그러고도 남는 돈은 처음 계획대로 영지 개혁에 쓸 생각이었다.
10만 골드면 이번 중개무역에서 상단들에게 이권을 넘기고 받아 낼 돈과 맞먹는 큰돈이었다. 에반스는 생각보다 쉽게 10만 골드를 벌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원래 이렇게 치밀한 성격이십니까?”
칼이 묻자 에반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치밀하다기보다는 조심스러운 것이지. 보통 조각가가 나무 인형을 깎을 때면 코는 크게, 눈은 작게 시작한다. 왠지 아나? 큰 코는 작게 할 수 있고 작은 눈은 크게 할 수 있지만, 작은 코는 크게 할 수 없으며, 큰 눈은 작게 할 수 없기 때문이야. 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런 이치를 잊지 않고 행하지. 그렇게 하면 실패도 적은 법이니까.”
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