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8 소매치기, 어새신, 마법사, 양아치Ⅲ (9/90)

 Chapter 8   소매치기, 어새신, 마법사, 양아치Ⅲ

라일라와 루크는 에반스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킬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잔혹한 철혈영주라면 둘을 병신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사이에 에반스가 먼저 라일라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라일라가 급히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뭔가?”

에반스는 들고 있던 검을 내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라일라는 잔뜩 원망 어린 눈으로 루크를 쏘아보고는 에반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어요. 영주님 밑에서 삼 년 동안 일하겠습니다.”

에반스가 기뻐하며 말했다.

“잘 생각했다. 사람들은 흔히 신념과 지조를 지킨다며 죽기를 자처하는데, 세상에 자기 목숨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에반스는 고개를 루크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루크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휴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단 삼 년뿐입니다.”

루크까지 수락하자 에반스는 검을 거두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오늘은 유쾌한 날이로군. 좋은 인재들을 만나 그들을 내 곁에 거두게 되었으니 말이야.”

에반스는 즉시 치료사를 부르게 하고 라일라와 루크가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방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에반스의 방을 나서며 라일라가 루크를 표독스럽게 쏘아보며 물었다.

“정말 나를 죽이려 했어?”

루크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지금 살아 있지 않느냐?”

“이 빚은 삼 년 뒤에 반드시 갚도록 하지.”

라일라가 냉기를 풀풀 날리며 먼저 앞서 갔다.

그런 라일라의 뒷모습을 보며 루크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때 에반스는 라일라와 루크를 어디에 쓸지 고심했다. 라일라와 같은 어새신은 역시 비밀스러운 일을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루크의 경우는 마법사를 양성하는 일을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카라스 영지의 마법사 수는 다른 영지에 비해 적었다. 특히 3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에반스의 전속 마법사 라보스만이 유일한 4서클 마스터였다.

그래서 5서클의 마법사 루크가 탐났던 에반스였다.

3년 동안 에반스는 루크에게 마법사 양성을 맡길 생각이었다.

마법사들의 실력이 늘게 되면 카라스 영지에 큰 보탬이 될 터였다.

이어 에반스는 라일라 역시 그 같은 용도로 쓰는 것이 어떨지 생각했다.

“가만.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정보조직을 만들면 되겠군.”

에반스는 이미 야만족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정보조직을 만들고 책임자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계획을 지금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만들어질 에반스의 정보조직은 말 그대로 주위를 감시하고 정적들을 염탐하며 만일의 경우 암살까지 가능한, 그런 전천후 조직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라일라 정도의 특급 어새신이라면 3년 동안 유능한 정보요원들을 충분히 양성해 낼 터였다.

“좋아. 삼 년 동안 확실하게 부려 먹어 주지.”

에반스는 내일부터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며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에반스의 조치에 일단 야만족의 장사꾼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불만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에반스는 앞으로 야만족들을 위한 여관과 숙소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과연 그 여관과 숙소를 누가 운영할지 그것이 문제였다. 제국 사람들은 야만족이 천하다며 그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운영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그 해답도 있기 마련이었다.

오전부터 에반스가 야만족의 일로 고심하고 있을 때, 그를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다. 바로 소매치기 루미나와 그 동생들이었다. 루미나가 약속대로 에반스를 찾아온 것이었다.

에반스는 그 말을 듣고 곧장 루미나와 그 동생들을 만나러 나섰다.

“어서 와라.”

루미나는 여전히 경계 어린 눈으로 에반스를 보고 머리를 숙였다.

“어? 어제 식당에서 봤던 그 형이네.”

오히려 루미나의 동생들이 에반스를 반겼다.

루미나와 동생들은 아직 에반스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루미나는 에반스가 영지 관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아이들을 위해서 눈 꼭 감고 견디는 거야.’

루미나는 앞으로 변태 관리의 집에서 살면서 어떤 모욕도, 또한 어떤 참담한 일도 참으며 살아갈 생각을 했다. 적어도 관리의 집에서 사는 동안 두 동생이 굶주릴 일은 없었다. 루미나는 동생들이 더 성장하면 관리의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때 충분한 휴식을 취한 라일라와 루크가 에반스 앞에 나타났다.

라일라는 독이 완전히 해독된 듯 얼굴에 생기를 띠고 있었고, 루크 역시 치료를 받고 상태가 상당히 호전된 듯 어제보다 확연히 좋아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말끔한 상태로 나타나서 인사했다.

“어서 오게. 안 그래도 그대들과 점심을 같이할 생각이었다.”

에반스가 반갑게 둘을 맞자 어제까지만 해도 에반스를 죽이려 했던 두 사람은 잠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에반스는 라일라와 루크, 그리고 루미나와 그 동생들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선 약속을 지켜 주어 고맙다. 앞으로 너희들은 나와 같이 살게 될 것이다.”

에반스가 먼저 루미나와 그 동생들을 보고 말했다.

“우와! 그 말이 사실이에요? 정말 우리가 이런 좋은 곳에서 살아도 되는 거예요?”

루미나의 동생들이 신 난 목소리로 에반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에반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여기는 내가 임시방편으로 지내는 곳이다. 너희들이 살 곳은 따로 있다.”

루미나의 동생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는 관리의 집이 너무 크고 좋았던 것이다.

“그곳에 가면 너희들을 잘 돌봐 줄 사람들이 있다.”

에반스는 총관인 메디슨 남작과 시녀장인 에이미를 떠올리며 말했다. 특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에이미라면 이들을 잘 보살펴 줄 터였다.

에반스는 고개를 돌려 라일라와 루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 보이는군. 어디 불편한 곳은 없나?”

“저희는 괜찮습니다, 영주님.”

루크가 대답했다. 그때 루미나가 깜짝 놀란 얼굴로 에반스와 루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루크를 향해 물었다.

“지, 지금 저분을 뭐라고 불렀어요?”

루미나의 물음에 루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냐?”

“저분을 영주님이라고 한 것 같은데 맞나요?”

“그렇다.”

루크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서, 설마 당신이 카라스의 영주?”

경악한 얼굴로 루미나가 에반스를 손짓하며 말했다. 그러자 라일라가 호통치며 에반스를 가리키고 있던 루미나의 손가락을 치웠다.

“이놈. 감히 영주님께 이 무슨 무례냐.”

루미나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맙소사! 저자가 철혈영주였다니……!’

루미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카라스의 철혈영주에 대한 갖은 잔인한 소문들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안 돼.’

루미나는 에반스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납작하게 엎드리며 간절히 말했다.

“영주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오나 제 동생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만 처벌해 주십시오.”

에반스의 정체를 알게 된 루미나의 동생들도 벌벌 떨며 루미나 옆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철혈영주는 누군가 죄를 지으면 전부 목을 베어 성문에 내건다는 사실은 아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가 죄를 지었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에반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는 나의 불찰이다. 내가 똑바로 영지를 이끌지 못해 생긴 일이다. 앞으로 누구도 너희 같은 아이들을 이용해 먹는 자들이 없게 만들겠다. 그러니 그만 일어나도록 해라.”

바짝 바닥에 엎드려 있던 루미나와 아이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에반스가 웃는 얼굴로 손짓하며 일어나라고 하자, 루미나와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일어나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에반스는 루미나와 아이들을 안심시킨 후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곤 라일라와 루크에게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얘기했다.

라일라와 루크는 너무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에반스에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맡은 일은 직접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배후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직접적으로 외부에 노출될 일이 적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3년만 버티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라일라와 루크는 별 불만 없이 에반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루미나를 비롯해서 라일라와 루크의 일을 해결하고 나서 에반스는 그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이때 에반스는 바짝 얼어 있던 루미나와 두 동생을 위로하며 자신과 같이 사는 동안 어떤 위해도 입히지 않을 것을 이름을 걸고 약속했다.

그러자 루미나와 두 아이들이 겨우 진정된 듯 식사했다.

식사 중 에반스는 다방면에 걸쳐서 라일라과 루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에반스가 야만족과의 상거래에 대해 거론하면서 오늘 취한 조치에 대해 말하자 루크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 말씀대로 교역 상대인 야만족을 제대로 인간 취급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관행 같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묵을 숙박 시설을 짓는 것인데 정작 이를 운영할 자들이 없네.”

“하긴 야만족을 짐승처럼 여기는 제국민들 중 그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겠다는 자들이 있을 리 없지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는 에반스에게 루미나가 불쑥 말했다.

“그럼 야만족에게 숙박업을 시키면 되잖아요.”

라일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만족은 제국 영토에서 살 수 없어.”

루미나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평소 하란 마을에서 본 야만족만도 수백 명도 넘는걸요.”

“그들은 불법 거주자야. 법적으로 야만족은 제국의 영토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어째든 살잖아요. 그리고 그들과 제국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많다고요.”

“가만…… 야만족과 제국민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다고?”

“네, 제가 아는 포목점 집 주인도 어머니가 야만족이라고 했어요.”

제국법상 야만족과 제국민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제국민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에반스는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정확히 조사된바는 없었지만 카라스 영지에는 제국민과 야만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아마도 그들이라면 야만족에 대한 거부감도 없을 터였다.

에반스는 즉시 자경대장을 불러서 하란 마을에 사는 제국민과 야만족 사이에 태어난 자들을 찾아 데려오게 했다.

“야만족과의 중개무역은 내일부터 시작해서 닷새 동안 계속 진행될 것이다. 그동안 너희들은 시장도 구경하면서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도록 해라.”

이번엔 루미나와 두 동생에게 이르고 에반스는 점심 식사를 끝냈다.

몇 시간이 흐르자 하란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혼혈인들이 몰려들었다.

에반스는 그들과 면담의 자리를 마련했다.

요는 직접 야만족을 상대로 숙박업을 해 보는 것이 어떤지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대부분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이번 거래가 끝나면 야만족과의 거래가 있는 마을은 의무적으로 야만족이 묵을 수 있는 여관을 짓도록 할 것이다. 그때 너희들 중 여관을 운영하기에 적합하다 여겨지는 자들에게 우선권을 주도록 하겠다.”

에반스의 말에 혼혈인들 모두 기뻐하며 그 조치에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에반스는 잠시 더 야만족에 대한 몇 가지 후속 조치를 더 취하고 나서, 오후 약속 시간에 맞춰 꼴레오네파의 비밀 아지트로 움직였다.

꼴레오네파의 두목인 부르터는 정오 무렵, 에반스란 자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삼십여 곳의 대장간과 철광이 매장된 광산의 주인이 정말로 에반스란 자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원래는 비밀로 쉬쉬하던 것을 그곳 관리에게 뇌물을 먹여서 겨우 알아냈습니다.”

부르터는 어제 만난 홀렌스란 자의 말이 모두 사실로 확인된 이상, 그와 거래할 생각이었다.

죽은 수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워낙 거래의 규모가 큰 터라 놓칠 수 없었다. 이번 거래야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조직 내에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것이다.

“좋아. 그럼 거래량을 더 늘릴 필요가 있겠군.”

부르터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조직의 아지트를 빠져나와 곧장 하란 마을 번화가로 나가서 가장 큰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가장 비싼 특실로 향했다.

그 방 앞에는 꼴레오네파의 조직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두목!”

부르터를 발견한 조직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수고 많다. 레널드 님은 안에 계시느냐?”

“네, 알릴까요?”

“그래.”

조직원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와서 부르터에게 말했다.

“들어오시랍니다.”

부르터는 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특실답게 방 안은 다른 방보다 훨씬 화려했다. 그 방 안의 한가운데 기다란 소파에 50대의 중후한 인상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어서 오게. 부르터.”

“레널드 님!”

부르터가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부르터가 지금 만나고 있는 레널드는 꼴레오네파에서 총두목 다음으로 영향력을 가진 조직의 2인자였다. 그는 총두목인 꼴레오네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직을 계승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레널드이니 부르터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레널드가 이처럼 조직 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조직 내 자금줄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널드는 자신의 뛰어난 상재를 이용해서 꼴레오네파가 지금의 방대한 조직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는 철저히 능력주의자로 아무리 신뢰하던 자도 실수하면 과감히 내치는 냉철한 인물이었다.

최근 꼴레오네파는 여럿 신흥 조직의 등장과 압실론 후작의 주류 판매 금지 조치로 인해 자금난에 허덕였다. 그런 상황에서 부르터가 야만족과의 중개무역에서 상당한 이윤을 취하자 레널드는 이를 더 확대시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직접 하란 마을을 찾아왔다.

레널드는 제국의 최고 상단 중 하나인 루키아 상단과 전격적으로 손잡고 야만족과의 무기 거래를 추진시켰다. 그 중심에는 바로 부르터가 있었다.

부르터는 밀거래로 알게 된 야만족 중 랄트족의 장사꾼들에게 많은 량의 무기를 팔기로 사전 약속을 해 둔 상태였다.

야만족은 그 양이 얼마가 되었든 제국의 무기라면 모두 사겠다는 뜻을 밝혔다. 때문에 구할 수 있는 만큼 무기를 구하면 모두 팔 수 있다는 것이 부르터의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자네를 부를 생각이었네. 오늘 점심 때 중요한 손님을 만날 테니 자네도 참석하게.”

“중요한 손님이라면 혹시?”

“맞네. 루키아 상단의 상단주인 곤잘레스와 만나기로 했네.”

“영광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찾은 건가?”

“실은 전에 말씀드린 일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물건을 더 구할 경우, 이윤의 절반을 제가 갖기로 한 것 말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레널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번외 거래 건 말이로군. 물론 기억하네. 하지만 무기는 당장 구한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잖나?”

“그렇지요. 그런데 바로 어제 무기를 상당 수량 보유하고 있는 자와 연결되었습니다.”

레널드가 얼굴에 희색을 띄며 말했다.

“그래? 그자가 누군가?”

“에반스란 자로 얼마 전 철혈영주로부터 레지스트 철광촌 삼십여 곳의 대장간과 철광산을 사들인 자입니다.”

“뭐? 압실론 후작령에 그런 자가 있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압실론 후작령의 토박이는 아닌 것 같고 수도에서 온 유력한 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도에서 온?”

“네, 그 정도 인물이 아니고서 어떻게 삼십여 곳의 대장간과 철광산을 한꺼번에 사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더욱이 그자가 보낸 자는 혼자서 저희 비밀 아지트를 들쑤셔 놓았습니다. 수하들 수십 명이 그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 실력으로 봐서 분명 수도에서 영향력 있는 자의 수하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으음. 하지만 나도 수도에 여러 차례 갔고 그곳에서 내로라하는 실세들은 다 알지만 에반스란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네.”

“은밀히 대장간과 철광산을 사들인 것으로 봐서는 본명이 아닐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얘기가 달라지지. 그래, 그자는 언제 만나기로 했나?”

“오늘 오후에 저희 아지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내가 만나 봐도 되겠나?”

레널드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 정도 영향력이 있는 자라면 알아 둬서 나쁠 것이 없었다.

부르터는 잠시 망설이다가 레널드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레널드 역시 부르터를 위해 점심 때, 루키아 상단의 상단주를 만나게 해 준다고 하는데 자신도 그 정도는 해 줘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우선 루키아 상단의 상단주인 곤잘레스부터 만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레널드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얼마 후 깔끔하게 최고급 정장으로 갈아입은 레널드가 부르터를 데리고 여관을 빠져나왔다. 그러곤 루키아 상단이 통째로 빌려 사용하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루키아 상단은 전날 상단주 곤잘레스의 부친, 산체스가 암습을 받은 일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산체스는 상처 부위에 붕대를 칭칭 감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런 부친을 보면서 곤잘레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게 왜 호위무사는 해고하셨습니까?”

깐깐한 성격의 곤잘레스는 잔소리를 했다.

산체스는 그런 곤잘레스의 타박이 싫지만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왜, 이 애비가 죽으면 내 재산이 모두 네 것이 되었을 것인데 아쉬운 게 아니고?”

곤잘레스가 발끈하며 말했다.

“그게 자식에게 할 소립니까? 세상에 피붙이라고는 아버지와 저뿐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신경 써 주는 척하기는…… 나 빼고 세상에 네놈이 믿을 사람이 없으니 그런 거지. 네놈의 그 음흉한 속내를 내가 모를까 보냐?”

곤잘레스는 악덕 사채업자인 산체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인정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자신보다 힘 있는 자에게는 철저히 머리를 숙이고 자신보다 못한 자는 철저히 짓밟아 버리는 상계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곤잘레스였다.

사실 산체스는 그런 곤잘레스가 걱정스러웠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었다.

산체스 역시 사람을 믿지 않았지만 결국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50여 년 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산체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곤잘레스는 독불장군 격으로 혼자서 모든 사업을 진행시켰다. 그런 곤잘레스의 주위에는 믿을 만한 자가 없었다. 누구도 곤잘레스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지 않았다.

“잘 아시는 분이 내 말은 그렇게 안 듣는 겁니까? 아버지께서 없으면 제가 누굴 믿고 사업을 추진하겠습니까?”

곤잘레스는 처자식도 믿을 수 없다며 아예 결혼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놈아. 애비를 믿는다면서 왜 결혼해서 네 자식을 낳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냐?”

“끄응. 그건 고려 중입니다.”

그나마 산체스가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해 대니 곤잘레스도 최근에 마음에 변화가 생겼는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네 말대로 믿을 수 있는 건 피붙이뿐이다. 그러니 어서 결혼해서 네 새끼들을 낳으란 말이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할 테니 아버지도 호위무사를 곁에 두십시오. 일단 이곳에 계실 동안 제 호위무사 중 두 명을 아버지께 붙이겠습니다.”

산체스는 항상 십여 명의 호위무사를 곁에 두었다. 상계에서 원성이 자자한 만큼 그를 살해하려는 자들도 많았던 것이다.

“오오. 그래 잘 생각했다. 며느리 감은 내가 고르마.”

산체스가 흥분하여 말하자 곤잘레스는 쑥스러웠던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루키아 상단의 직원 하나가 곤잘레스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상단주님, 꼴레오네파의 레널드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아, 그래. 알았다. 일단 접객실로 안내하고 차를 대접해라.”

곤잘레스는 오늘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번 야만족과의 중개무역에서 가장 큰 건수는 역시 무기 거래였다. 꼴레오네파의 레널드가 야만족 중 랄트족과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곤잘레스는 루키아 상단 거래 품목의 절반을 무기로 채웠다.

그 대가로 꼴레오네파는 무기 거래 수입의 1퍼센트를 가지기로 했다. 일종의 중개 수수료인 셈이었다.

루키아 상단이 거래할 무기의 양은 수레로 100대 분량이었다.

현 제국의 시세로 따진다면 대략 십만 골드였다.

하지만 야만족에게 팔 때는 그 10배는 받아 내야 한다는 게 곤잘레스의 생각이었다. 곤잘레스는 현금이 아닌, 야만족의 현물로 시세 차익을 그만큼 만들어 낼 생각이었다.

즉, 야만족의 주거래 물품인 말과 유제품, 가죽류를 10만 골드어치는 뜯어낼 계획이었던 것이다.

“미개한 그런 놈들을 우려내는 것쯤이야 손쉬운 일이지.”

곤잘레스는 레널드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을 끝내고 나서 느긋하게 접객실로 움직였다.

찾아온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갈 때까지 곤잘레스가 오지 않자 초조해진 부르터가 레널드에게 물었다.

“어째서 루키아 상단주가 오지 않는 것입니까?”

걱정스런 표정의 부르터와 달리 레널드는 차 맛을 음미하며 비교적 차분하게 말했다.

“원래 돈과 권력 있는 자들은 이처럼 거만한 법이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레널드는 조직을 대표해서 돈 많은 상인과 권력자들을 주로 상대해 왔다. 그동안 그가 깨우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오만한가 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경험을 겪은 레널드는 느긋함이 풍겨 나올 정도로 안정되어 보였다.

“조급해 할 것 없다. 원래 차를 마실 때는 머릿속을 비워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레널드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며칠 동안 기다려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곤잘레스와 같은 거물을 상대하는 것이 처음인 부르터에게는 전혀 그 말이 먹히지 않았다.

달칵!

그때, 접객실의 문이 열리면서 곤잘레스가 등장했다.

“하하하. 이거 좀 늦었습니다.”

곤잘레스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닙니다. 차 맛이 좋아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레널드가 정중하게 인사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그 옆의 부르터도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이분은?”

곤잘레스가 손짓으로 부르터를 가리키자 레널드가 바로 대답했다.

“실질적으로 이번 거래를 성사시킨 바로 이곳 조직 두목인 부르터입니다.”

“아아, 그랬군요. 반갑습니다. 랄트족과 잘 알고 지낸다는 그분이시로군요.”

곤잘레스가 부르터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부르터는 황송하다는 얼굴로 곤잘레스와 악수를 나눴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악수를 나눈 후, 곤잘레스가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러곤 자신도 그들 맞은편에 앉았다.

“중개무역 시장이 드디어 내일부터 열립니다. 아시겠지만 무기 거래는 시장이 개장된 후, 이틀 뒤부터 열리기로 되어 있지요.”

곤잘레스의 말에 레널드가 말했다.

“오늘 랄트족의 장사꾼들로부터 국경지대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모레면 이곳 하란 마을에 도착할 것입니다.”

“다행이로군요. 저희가 준비한 무기는 약속대로 전량 랄트족에게 판매할 것입니다.”

“원만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저희 꼴레오네파에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셔야지요. 거래가 잘 성사되고 나면 그 자리에서 약속한 판매 대금 천 골드를 지불하도록 하지요.”

곤잘레스의 말에 레널드와 곤잘레스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무기의 실거래 가격은 제국 시가로 십만 골드였다. 하지만 그것을 랄트족에게 팔 때, 곤잘레스는 더 비싸게 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곤잘레스는 랄트족에게 넘기는 최종 판매 대금의 1퍼센트가 아니라 제국의 시가인 십만 골드의 1퍼센트를 주겠다는 말이었다.

부르터가 뭐라고 하려 할 때 레널드가 그런 부르터를 제지했다. 그리고 곤잘레스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리고 계약 때 말씀드린 번외 거래에 대해서 말인데.”

“번외 거래요? 설마 우리 말고 무기를 취급하는 상단을 또 구한 것이요?”

곤잘레스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레널드에게 말했다.

레널드가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루키아 상단이 있는데 어찌 다른 상단과 또 거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번외 거래라니요?”

“실은 카라스 영지에서 저희 꼴레오네파와 잘 아는 자가 삼십여 곳의 대장간과 철광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자가 무기를 내다 팔았으면 하고 저희에게 부탁하기에 이번 기회에 그 무기들을 랄트족에게 팔았으면 해서요.”

번외 거래에서 팔리는 무기는 루키아 상단과 상관없이 전부 꼴레오네파의 몫이라는 조건을 레널드가 달았다.

하지만 그 조건에 대해 곤잘레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양아치 조직 따위가 어디서 무기를 구한단 말인가? 제국에서 무기는 반드시 현금으로 거래했다. 양아치 조직이 그만큼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레널드의 말을 듣고 곤잘레스가 관심 어린 얼굴로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오오. 카라스 영지에 그런 자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때 불쑥 부르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하하. 에반스란 자로 저와 막역한 사이지요.”

“그렇습니까? 랄트족과의 거래에 이어서 그런 자까지…… 역시 부르터 님은 대단하시군요.”

갑자기 곤잘레스의 부르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곤잘레스는 아예 레널드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호의에 한껏 기분이 상승한 부르터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횡설수설했다.

“해서 오늘 그자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잘됐군요. 저도 오후에 시간이 비었는데…… 같이 그자를 만납시다.”

“네?”

그제야 쓸데없는 말까지 다 내뱉은 것을 깨달은 부르터가 옆에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는 레널드를 쳐다보았다.

역시 노련한 레널드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상대가 워낙 낯을 가리는지라…… 오늘 만남은 저희끼리로 끝내고 그자는 다음 기회에 정식으로 상단주님께 소개하도록 하지요.”

곤잘레스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려. 하지만 거래량이 얼마인지는 오늘 중에 알려 주시오. 그 정도는 동업자로서 알 필요가 있으니 말이요.”

“당연하지요. 오늘 그자를 만나 거래량이 얼마나 될지 정확히 파악한 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번외 거래는 계약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어차피 약속은 약속이니까.”

거래량이 얼마인가에 따라서 루키아 상단이 취할 이윤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곤잘레스는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뭐, 그래 봐야 얼마 되지도 않겠지만…….’

곤잘레스는 그 에반스란 자가 많아 봐야 수레 다섯 대 분량 정도의 무기를 거래할 것으로 보았다. 이런 변방의 대장간에서는 철광에 사용하는 곡괭이나 삽과 같은 농기구나 만들지 무기를 생산하지는 않았다.

만든다 하더라도 판매가 어려우니 아마도 재고용으로 창고에 쌓아 두었던 무기들을 이번 기회에 전량 처분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여관을 빠져나오며 레널드와 부르터 사이에는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죄, 죄송합니다. 그자의 말재주에 홀라당 넘어가서 그만 말실수를…….”

레널드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자네 잘못이 아니네. 루키아 상단의 상단주가 어떤 자라는 것을 자네에게 말해 주지 않은 내 실수가 크네.”

“네?”

“루키아 상단주인 곤잘레스, 그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자라면 상대가 거지거나 야만족이더라도 머리를 숙일 자네.”

“거지나 야만족!”

부르터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순식간에 자신이 거지나 야만족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아직 에반스란 자를 만나 보지도 못한데다가 거래량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곤잘레스에게 그자를 노출시킨 것은 명백히 자네 잘못이네.”

레널드의 따끔한 훈계에 부르터가 힘없이 머리를 떨어트렸다.

“죄송합니다.”

“우선 자네가 말한 그 홀렌스란 자부터 만나고 보세.”

레널드는 부르터에 대해 실망이 컸다. 하지만 아직 그를 내치기는 시기상조였다. 야만족과의 거래는 물론, 에반스라는 자와의 거래까지 모두 끝나고 나서 어떤 처분을 내릴지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그들이 꼴레오네파의 비밀 아지트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홀렌스란 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수 없이 최대한 정중하게 안으로 데려와라.”

부르터가 특별히 칼에게 직접 지시했다.

칼이 직접 홀렌스란 자를 마중 나갔다. 그자는 칼을 보고 대뜸 말했다.

“양의 탈을 쓴 사자가 여전히 양 무리에 섞여 있군.”

에반스는 아깝다는 눈빛으로 칼을 쳐다보았다.

칼과 같은 자가 라일라를 돕는다면 에반스가 바라는 정보조직은 더 빠르고 완벽한 조직망을 갖출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본인이 싫다는 것은 에반스도 어쩔 수 없었다.

“따라오시오.”

칼의 안내를 받으며 에반스는 꼴레오네파의 아지트 깊숙이 들어갔다.

곧 두목인 부르터의 방 앞에서 칼이 멈춰 섰다. 그리고 에반스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모시고 있는 분이 대단한 분이라고 들었소.”

그 말을 하면서 칼이 에반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반스는 망설이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악수 후, 칼은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칼과 악수를 나눈 에반스의 손에는 쪽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에반스는 자연스럽게 그 쪽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방문에 노크를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저절로 열렸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십여 명의 꼴레오네파 조직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안쪽에는 부르터와 화려한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인이 같이 서 있었다.

“어서 오시오.”

부르터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전날과 달리 부르터는 에반스에게 존대했다.

에반스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부르터 앞에 멈춰 섰다. 에반스가 옆에 있는 중년인을 힐끗 쳐다보자 부르터가 말했다.

“이분은 우리 조직의 간부이신 레널드 님이시오. 이번 거래에 실질적인 우리 조직의 책임자이시오.”

부르터의 소개에 에반스가 레널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존중한 어조로 말하니 이쪽도 예의를 갖춰 말했다.

“반갑소. 이제야 제대로 대화가 되는 상대를 만난 것 같소.”

에반스의 말에 부르터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대신 레널드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대담하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어제 우리 조직원들을 꽤 많이 죽였다지?”

레널드는 에반스란 자의 하수인에 불과한 홀렌스에게 존대는 하지 않았다.

“그야 일을 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 큰일을 하다 보면 그런 것은 사사로운 일에 불과하지.”

“역시 높으신 분이라 누구와는 배포부터 다르군요.”

“뭐, 뭐라고?”

발끈하는 부르터를 레널드가 손짓으로 말리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자네와의 대화도 즐겁지만 우린 자네의 주인과 만나 이번 거래를 의논하고 싶네.”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야겠지요. 하지만 에반스 님께서는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수도로 가셨습니다. 이번 거래에 대해 모든 권한을 내게 일임하셨으니, 아쉽지만 에반스 님을 만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군요.”

레널드가 정말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거 안타깝군. 부디 안 좋은 일로 수도에 간 것이 아니길 바라네.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니 그럼 본격적으로 거래를 해 보세.”

레널드는 에반스에게 자리를 권했다.

에반스가 앉자 레널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거래할 무기의 양이 얼마나 되나?”

일반적으로 무기는 그 개수에 따라 거래가 된다. 하지만 대규모 거래의 경우는 수레로 따진다. 그것을 아는 에반스가 가볍게 손가락 10개를 모두 펼쳐 보였다.

“헉! 열 대나 된단 말인가?”

레널드도 변방의 대장간에서 보유하고 있는 무기는 많아 봐야 대충 수레로 다섯 대 정도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번외 거래로 레널드가 취할 이윤은 막대했다.

보통 수레 하나에 무기를 가득 채우면 제국 시가로 천 골드 정도 됐다. 10대면 모두 만 골드였다.

레널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현재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꼴레오네파의 자금은 3천 골드였다. 그리고 이번에 야만족과의 거래가 성사되면 루키아 상단으로부터 받기로 한 1천 골드까지 포함하면 모두 4천 골드였다.

또한 그가 개인적으로 숨겨 둔 비자금이 2천 골드 정도 됐다. 예상대로 수레 분량으로 5대 정도였다면 레널드도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10대라니!

그에게는 벅찬 거래였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레널드가 아니었다.

‘우선 선금으로 대금의 절반인 5천 골드를 주고 나머지는 야만족과의 거래 후, 지급한다고 해야겠군.’

보통 야만족과의 거래는 주로 물물교환 식이었다. 교환한 야만족의 물건을 비싼 가격으로 제국민들에게 되팔면서 몇 배, 혹은 열 배씩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상단은 매해 5차례 열리는 야만족과의 중개무역을 중시했다.

랄트족의 주거래 품목은 말이었다. 그리고 말의 가격은 아무리 싸더라도 야만족에게 살 때보다 5배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레널드는 10대 분량의 무기 대금을 모두 말로 지급 받아서 5배의 가격에 가능한 한 빨리 제국의 상단에 팔아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해도 그가 단숨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5만 골드였다. 그중 나머지 잔금 5천 골드를 홀렌스에게 지불하고 조직의 자금 4천 골드를 제외해도 4만 천 골드가 고스란히 남았다.

‘대박이다!’

레널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홀렌스란 자를 뚫어져라 탐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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