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73화 (173/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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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그 순간 카르발 황자가 허리를 뒤틀어 이니안의 검을 피하면서 검의 궤도를 바꿨다. 어깨를 쓸어가던 검이 다리를 노리고 움직인 것이다. 그때 이니안은 앞으로 움직이며 카르발 황자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카르발 황자의 검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 닿으려는 순간 이니안은 자신의 검을 밑에서 위로 올려 치며 카르발 황자의 상체를 노렸다.

카르발 황자는 재빨리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이니안의 검을 피했다. 제법 멀리 뛰어 피했기에 두 사람 사이에 삼 미터 정도의 거리가 생겼다.

방 안에서의 싸움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공간을 활용하는 치열한 싸움이었다.

카르발 황자의 검은 분노에 이성을 잃은 사람답지 않게 차갑고도 날카로웠다.

“퓨리 오브 헬!”

그때 카르발 황자의 입에서 우렁찬 음성이 터져 나오면서 검에서 강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와 이니안을 쓸어갔다.

“마령현신!”

이니안 역시 검에 모든 기운을 쏟아서 휘둘렀다. 검끝에서 마령이 나타나 카르발 황자를 덮쳤다.

두 기운이 부딪쳤다.

그럼에도 폭음은 없었다. 힘겨루기를 하다가 소멸되었을 뿐이다. 두 사람 모두 옆방에 있는 포르시아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어즈 오브 헤븐!”

두 번째 검이 공중을 가로로 베며 이니안을 향해 부드러우나 노도와 같은 기운을 뿜어낸다.

“마령노후!”

마령의 분노한 외침이 천국의 눈물에 부딪쳤다.

두 기운은 다시 동시에 소멸했다. 어느 하나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다른 기운 보다 더 컸다면 단숨에 상대를 집어삼켰을 테지만 두 힘의 크기가 동등했기에 그냥 소멸해 사라진 것이다.

“갓 핸즈!”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카르발 황자의 공격.

분노에 몸을 맡긴 그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검을 구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공격을 해댔다. 마치 자신의 몸을 분노의 불꽃에 불사르려고 하는 것처럼.

“마령천참멸!”

이니안은 가진 바 힘을 끌어내 마령천참검법의 마지막 수법으로 검을 휘둘렀다. 여기까지 오자 그도 힘에 부침을 느꼈다.

카르발 황자가 숨기고 있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굉장할 줄은 몰랐다. 만약 다음 공격이 또 다시 더 강해져서 덮친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지만 아직 그것의 위력은 장담할 수 없었다.

마령의 검과 신의 손이 부딪쳤다. 이번에도 둘은 동시에 소멸했다. 또 다시 힘의 크기가 같았던 것이다.

“헉헉헉. 네 녀석. 이렇게 대단한 놈이었나? 지금 나의 힘이면 설사 사이몬 공작이라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카르발 황자의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온몸의 모든 힘을 끌어올려 검끝에서 폭발시키는 공격에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헉헉헉. 글쎄. 일 년 전이라면 당했을지도.”

진실로 그랬다. 포르시아가 사라진 후 일 년 동안 수련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니안은 백 번 싸워 백 번을 졌을 것이다.

카르발 황자는 그 정도로 강했다.

“대체 고대의 검법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강한 것이지? 아데노마도 그렇고 카르세온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말이야.”

이니안은 순수하게 지금까지 싸운 세 명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오직 자신의 가문에만 내려오는 비전을 고대의 검법을 통해 그들은 조금 다르지만 유사한 방법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큭큭큭. 세상은 넓다는 것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대단한 듯 이름붙인 그 피어스 브레이크라는 알량한 기술이라니 말이야. 게다가 사이몬 가는 그것을 몇 개나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가문이라… 후후. 웃기는 말이야.”

“그 말에는 동감해 주지.”

이니안이 검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대답했다. 이니안도 슬슬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이제 한 번의 공격을 할 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이다. 나도 슬슬 한계가 찾아오는군.”

이 순간 카르발 황자의 눈에서 분노의 기운이 사라진 채 차갑게 가라앉았다. 필생의 일격을 내지르기 전의 차분한 모습이다. 갑자기 변한 카르발 황자의 기운에 이니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그의 공격으로 보아 이번의 공격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마령천참검법의 마지막 일격인 마령천참멸도 막힌 지금 그가 믿을 것은 하나 밖에 없었다.

‘천령… 마령천참검이 진 천명의 끝…….’

이니안은 자신이 수련을 하는 동안 발견한 그것이 그 천명이 맞는지는 몰랐다.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 있어서 검으로 펼쳤던 그것이.

메이린이 건네준 운용편의 책에도 천령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그저 실마리가 아주 조금 있었을 뿐이고 이니안은 수련 중에 그 실마리로부터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그것이 천령이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믿을 것은 그것밖에는 없었다.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사이몬 가의 신화 따위 내가 부숴주마. 크크. 보아라, 신의 기적을! 미라클 오브 갓!”

카르발 황자의 검에거 광휘가 쏟아져 나왔다. 일견 성스러워도 보이는 황홀한 빛이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감히 마주할 수조차 없는 엄정한 기운.

이니안은 절로 그 기운에 고개가 숙여지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익. 가라 천령개벽!”

맞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얻은 깨달음대로 검을 휘둘렀다.

이니안의 검이 손을 떠났다. 스스로의 의지를 지닌 듯 사방으로 내뿜어지는 광휘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이윽고 검이 스스로 움직인다. 새하얀 빛을 뿌리며 검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검이 지나간 자리는 새로운 푸르름이 자리한다.

이니안의 소드 블레이드의 빛깔이 맑디맑으며 푸르른 청광.

카르발 황자의 검이 만들어내는 광휘의 빛을 이니안의 검이 지나며 푸른빛으로 지운다. 두 기운이 부딪친다.

콰쾅!

두 사람의 격돌 이후 처음으로 폭음이 터졌다.

우지끈.

문이 부서지는 소리도 함께 들리며 카르발 황자가 내동댕이쳐졌다.

이니안의 승리였다.

이니안이 호흡을 고르며 자신의 손에 돌아온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신이 없었다.

거대한 두 기운의 격돌에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검신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만약 그 검이 아닌 보통의 검이었다면 처참히 나동그라지는 것이 이니안 자신이었을 것이다.

손잡이만 남은 검을 보는 이니안은 자신의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령이라 이름 붙은 그의 심공에 이제는 천령이 자리한 것이다.

깨달은 이후 처음 전력으로 펼친 검. 그것은 천명에 따른 열 번째 검 천령이 맞았던 것이다.

이니안은 검의 손잡이를 검집에 걸쳐 놓고는 천천히 카르발 황자를 향해 다가갔다. 공교롭게도 카르발 황자가 문을 부수고 내동댕이쳐진 곳은 포르시아가 있는 방이었다.

격렬한 부딪침 속에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어 카르발 황자가 포르시아가 있는 방을 등지게 된 상태에서 마지막의 격돌이 있었던 것이다.

“우욱.”

카르발 황자는 신음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비틀거렸다.

“내, 내가 지다니…….”

카르발 황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이니안을 쳐다보았다. 이니안은 담담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카르발 황자의 옷은 곳곳이 찢어져 있었으며 그곳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외상은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내부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적어도 반년은 요양을 해야 회복할 수 있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큭큭큭.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내 여자도 뺏기고 힘에서 지고… 이럴 수는 없어.”

카르발 황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제국의 일황자인 그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이겨졌다.

이럴 수는 없었다.

자신의 손 안에 있던 것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제국의 일황자인 카르발 칼 폰트 미오나인이다!”

절규와 같은 외침.

“큭큭.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은 없어. 아니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다.”

카르발 황자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그 광기를 본 순간 이니안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카르발 황자를 향해 다가가는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아난 것일까? 카르발 황자가 순식간에 포르시아의 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보기 흉하게 이가 빠진 검을 치켜들었다.

“크하하하. 죽어! 넌 나의 것이어야만 해!”

광소와 함께 검을 휘두르려는 카르발 황자. 그는 이미 광기에 완벽하게 물든 광인이었다.

“멈춰랏!”

이니안은 재빨리 품 안에 있던 단검을 던졌다.

“흥!”

미쳤지만 그의 실력은 그대로 발휘 되었다. 처참한 내상을 입었음에도 그의 검은 유려하게 움직이며 이니안이 던진 단검을 쳐냈다.

그 순간 단검의 숫자가 늘어났다.

케라우가 지니고 있으면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환마의 크리스.

급한 마음에 품에서 꺼내 던진 단검이 그것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환영을 카르발 황자는 어렵지 않게 쳐냈다. 그의 몸을 잠식한 광기가 그를 평소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카르발 황자는 그렇게 모두 여덟 개의 단검을 쳐냈다.

“큭큭. 그런 잔재주 따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카르발 황자의 검이 다시 포르시아를 노리며 움직였다. 포르시아는 그런 카르발 황자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두 눈을 뜨고 카르발 황자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카르발 황자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너는… 너는 내 것이란 말이다!”

절규와도 같은 외침과 함께 그의 검이 포르시아의 목으로 떨어진다.

이니안은 천참수의 수법으로 카르발 황자의 검을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그의 손이 미치기 전에 카르발 황자의 검이 포르시아의 목을 자를 것만 같았다. 그래도 포르시아는 당당했다.

그녀는 이미 강해져 있었다.

푸욱.

검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울렸다.

“포르시아!”

이니안이 큰 소리로 외쳤다.

챙강.

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뚝뚝.

바닥에 피가 떨어졌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어떻게… 어떻게…….”

목소리도 부들부들 떨린다.

시선은 바닥에 떨어지는 붉은 피를 향한다.

바닥을 점점이 적시는 붉은 피.

그것은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카르발 황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그의 왼손이 오른쪽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 위로 삐죽이 솟아 있는 물건. 단검의 손잡이 같아 보였다.

환마의 아홉 번째 크리스.

허공에서 불현 듯 나타나 뚝 떨어져 포르시아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었던 그 크리스.

그것이 카르발 황자의 어깨에 박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크윽.”

카르발 황자가 분하다는 듯 외쳤다.

어깨에서 흘러나온 피가 오른손 끝까지 팔을 타고 흐르다가 손가락 끝에서 점점이 떨어져 바닥을 적신다.

“후우.”

이니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포르시아의 앞을 막았다.

포르시아는 넓은 이니안의 등에 기댔다.

“무서웠어요. 오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포르시아가 작게 속삭였다.

카르발 황자가 놓친 검이 처량하게 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환마의 크리스라… 케라우 녀석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이니안은 작게 중얼거리며 카르발 황자를 향해 다가갔다.

“네 녀석에게 실망했다. 설마 사랑한다고 하던 여인을 스스로 죽이려 할 줄이야.”

이니안의 두 눈이 분노로 빛났다.

퍽.

강력한 일격이 카르발 황자의 배에 꽂혔다.

“커억.”

그리고는 카르발 황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충격으로 인해 기절한 것이다. 제국의 황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처량한 몰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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