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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푸훗. 공중에 떠 있는 마법사를 공격하기 위해 검을 던진다라. 그런 진부한 방법으로 나를 잡을 수 있을까? 나는 보통의 그저 그런 마법사가 아니다.”
바실러스의 얼굴에는 이니안에 대한 비웃음이 가득했다. 소드 마스터라는 인간이 공중의 마법사를 공격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고작 검을 던지는 것이라니 우스웠다.
마나가 실린 검이었기에 자신이 쏘아 보낸 마법은 검에 의해 소멸되었지만 아직 케라우의 공격이 남아 있다. 게다가 지금 이니안의 수중에는 검도 없었다. 그야말로 그의 승리가 확실시 되는 순간이다.
케라우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지닌 원족이다. 케라우 나이의 원족의 뱀파이어는 결코 소드 마스터에 비해 약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강했다.
바실러스는 승리자의 미소를 띠었다.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그 순간이다.
쉐에엑!
그의 귀에 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그는 등허리에서 화끈한 감각을 느꼈다.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이 등허리에서 척추를 따라 올라와 머리를 강하게 두드린다.
“어… 어떻게…….”
배를 뚫고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검의 끝. 바실러스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자신이 피했던 검이다. 그래서 멀리 날아가 버렸던 검이다. 그런데 그것이 되돌아와 자신의 등을 꿰뚫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윌 소드(Will Sword)라는 거야. 의지로 검을 움직이는 방법이지. 일 년 전에는 쓸 수 없었지만 이제는 쓸 수 있어.”
이니안의 말과 동시에 검이 뽑혔다. 바실러스의 붉은 피가 묻은 검이 천천히 이니안의 오른손으로 돌아왔다.
“믿… 믿을 수… 어… 어떻게… 검… 검이…….”
그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한 바실러스는 바닥으로 허무하게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는 이미 목숨이 끊긴 뒤였다.
그와 동시에 케라우의 움직임도 멎었다. 이니안과 불과 한 발자국 떨어진 거리였다.
초점이 없던 눈에 천천히 초점이 돌아온다.
“뭐, 뭐야? 이건? 여기 어디지?”
바실러스가 죽자 곧 케라우는 정신을 차렸다.
퍽.
“뭐야!”
정신을 차리자마자 뒷통수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충격. 이니안이 왼손으로 힘껏 그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이걸로 봐준다. 원래는 흠씬 두들겨 패주려고 했지만.”
케라우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니안을 쳐다보았다. 그는 바실러스의 종이 되었던 순간의 일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니안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응? 저건 바실러스 녀석 아니야?”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케라우의 눈에 바실러스의 시체가 들어왔다. 더욱 알 수 없었다. 대체 자신이 있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가자.”
이니안이 앞장서 걸었다. 케라우는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이니안은 케라우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해준 것이다.
“바실러스.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녀석이…….”
케라우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 지하 골방에 갖혀 그런 세월을 보낸 것이 자신을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였다니.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으니 분노할 만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바실러스라는 성을 쓰는 녀석은 피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가는 다시 종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니안은 진심으로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분노한 케라우의 귀에는 그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 두 사람은 황자궁의 입구에 도착했다. 본디 바실러스가 있던 곳이 가까운 곳이었기에 오히려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짝짝짝.
이니안이 황자궁의 입구에 도착하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카르세온이 벽에 기대선 자세로 가볍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이니안의 눈이 빛났다. 자신에게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패배한 기억을 처음으로 만들어준 이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오랜만이군.”
카르세온이 벽에서 몸을 떼어 바로 섰다.
“그래. 꼭 한 번 만나고 싶었어.”
이니안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드디어 지난날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훌륭한 기술이었어. 던진 검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니 말이야. 그나저나 황자 저하도 대단하신 걸. 이 근처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결계를 재조정하다니 말이야.”
황궁 내에서는 아무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바실러스는 너무나 간단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결국 카르발 황자가 손을 써두었다는 말이다.
“상관없어. 그런 것.”
이니안이 짧게 말했다.
“그렇지. 우리같이 검을 들고 사는 이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지. 그나저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니안이 눈짓으로 물으라고 대답했다.
“칸세르 공작은 죽었나?”
“그래.”
그 대답에 카르세온은 역시하는 표정을 지으며 검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카르발 황자 저하가 그러시더군. 네가 오면 제국의 공작 살해 혐의로 즉결 처분하라고 말이야.”
그 말에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칸세르 공작은 그런 카르발 황자의 의도를 짐작하고 자살한 것이다. 자신이 분노에 눈이 멀어 실수를 할 뻔한 그때에 말이다.
칸세르 공작으로서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기에 최후의 순간만이라도 카르발 황자의 의도가 빗나가게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공작 살해 혐의라… 그건 자살하는 사람을 지켜보기만 해도 적용되는 것인가?”
이니안의 말에 카르세온은 가만히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칸세르 공작 각하는 자살하셨는가?”
“그래.”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그의 아들이 함께 있었어. 그리고 집사도.”
카르세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카르발 황자가 말한 핑계로 그를 죽일 수 없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묘하게 그를 안심시켰다.
“카르발 황자의 뜻대로 되게 할 수 없다면서 내가 검을 뽑기도 전에 스스로 독으로 자살을 하더군. 그의 몸에는 검에 입은 상처는 하나도 없어.”
칸세르 공작, 과연 간웅다운 최후를 맞이했다고 카르세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너와 싸울 이유가 없어진 셈이로군. 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칸세르 공작 각하가 자살을 하고 네가 이곳에 찾아오고 바실러스 자작, 아니 백작은 너와 싸우다가 죽고…….”
“바실러스가 백작이었나?”
“그렇게 됐다고 하더군.”
“그래?”
이니안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았다.
“무슨 뜻이지?”
카르세온은 그런 이니안을 보며 의문에 찬 눈으로 물었다.
“난 너에게 갚아줄 빚이 있거든. 그리고 난 네 눈앞에서 제국의 백작을 죽인 귀족 살해범이고 말이야.”
카르세온의 입에도 미소가 걸렸다.
“좋아. 받아 주지. 그리고 바실러스 백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먼 검에 찔려 죽은 거야.”
카르세온도 검을 뽑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많이 늘었군.”
이니안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저번에 패한 쪽은 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패자가 승자에게 많이 늘었다니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이었다.
“훗. 패자도 승자의 실력 정도는 평가할 권리가 있지. 마나가 움직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그 비밀을 풀었나 보군.”
메이린에게서 들었었다. 그녀가 로레인과 카르세온이 싸운 이후 카르세온에게 그런 힌트를 주었었다고.
“그래.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었는데 카르발 황자 저하께서 주신 고대의 검법서에서 힌트를 풀 실마리를 얻었지.”
카르세온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일 검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태세였다.
일검승부.
카르세온도 이나안도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위력의 수법을 사용할 것이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마나의 떨림이, 공기의 파동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카르세온의 검끝이 살짝 떨리는가 싶더니 검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광풍이 몰아친다. 이니안은 집중해서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니안의 검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톰 오브 소드!”
“마령노후!”
두 사람의 검이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면서 강한 기운이 몰아쳤다. 카르세온은 그의 몸이 태풍의 눈이라도 되는 듯 그의 몸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폭풍이 몰아치며 검끝으로 뻗어 나왔다.
이니안의 검에서 나타난 마령은 우렁찬 외침을 토하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폭풍에 온몸을 던졌다.
콰콰콰쾅!
황자궁은 때 아닌 폭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하지만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대결을 예상한 카르발 황자가 주변의 사람들을 물리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쿨럭.”
폭발의 먼지가 걷히자 카르세온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피를 토했다. 그의 검은 반쯤 부러져 있었다.
“강했어.”
이니안은 짤막하게 말했다.
“후후. 그때와는 정반대로군.”
부러진 검과 옷을 적신 피.
바운더리 산맥의 어느 곳에서 대결을 했을 때 이니안과 그와의 상황이 정반대로 펼쳐져 있었다.
“원래 나는 강했어. 그날은 네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야.”
“후후. 인정하지. 나는 네가 의지로 움직이는 검도 사용하게 하지 못했으니까.”
카르세온은 이니안이 바실러스를 죽일 때 사용한 그 검법이 이니안이 가진 최강의 검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니안은 자신과의 대결에서 그 검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이니안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자신을 가볍게 이겼다는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난 들어간다. 그 잘나신 황자 저하를 만나러.”
이니안은 카르세온을 지나쳐 갔다. 황자궁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걸음을 멈춘 이니안이 잠시 뒤를 돌아본다.
“몸이 회복 되거든 우리 집에 한 번 들려. 그 정도면 누나를 이길지도 모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이니안은 궁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누나를 이길지도 모른다고…….”
이니안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카르세온은 이니안의 말을 가만히 중얼거렸다.
“후훗. 그렇지. 그러고 보니 나도 빚이 하나 있었지.”
카르세온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떨쳐내던 붉은 오러 블레이드의 그 아름다운 움직임을 말이다. 불현 듯 빚을 갚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몸이 회복되는 대로 카일로니아에 가보도록 할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황자궁을 벗어나며 카르세온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이 반대 방향으로 사라진 자리에 케라우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를 따라가려는 케라우를 이니안이 전음으로 말렸다. 자신이 나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일 년간 바실러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그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 있는 것을 이니안이 알아본 것이다.
“쳇. 빨리 나와라. 얼음탱이.”
황자궁의 벽에 털썩 기대앉으며 케라우는 정말로 오랜만에 이니안의 옛 별명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