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67화 (16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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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44장. 저는 포르시아 라온 메이지아입니다

“황자궁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저하께서 포르시아를 데리고 계신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나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던 거지?”

이니안은 칸세르 공작에게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 열기는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 소파의 팔걸이에 올라간 그의 주먹이 작게 떨린다.

“저는 지난 일 년간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왜지?”

“포르시아 공녀님은 황자 저하의 부름에 그곳으로 가신 것이 아닙니다. 황자 저하께서 보낸 바실러스 자작이라는 자에게 납치당하다시피 가셨습니다. 저는 제 실력부족이란 생각 때문에 실력을 쌓기 위해 모처로 갔었지요.”

이니안의 말에 칸세르 공작의 몸은 더욱 격렬히 떨렸다.

“바, 바실러스라고?”

“네.”

“뿌드득. 바실러스 그놈이…….”

칸세르 공작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했다.

무언가 이상하긴 했다. 영지에 내려 보냈는데 그 이후 소식이 없었다. 포르시아의 행방불명으로 영지 쪽에 아무 신경을 못 썼는데 설마 그가 황자쪽에 붙었을 줄이야.

그가 영지의 저택에서 무언가 발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배신을 하고 황자 측에 붙는단 말인가?

‘클레비클, 그자가 설마 저택에 무언가를 남겨놓은 것인가?’

본디 흑마법사라는 인종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공작의 수하로 있기에 그의 말은 충실히 듣는 것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칸세르 공작은 분명 클레비클이 자신의 지시를 지키지 않고 저택에 무언가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 추측했다. 바실러스가 배신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추측은 거의 사실에 근접해 있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포르시아가 황자궁에 있다고 확신하는가? 포르시아는 어디까지나 바실러스 그 녀석에게 납치된 것 아닌가?”

‘바실러스, 칸세르 공작과 무언가 있었구나.’

이니안은 바실러스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살기가 치솟는 공작의 모습에서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직접 일황자궁에 가서 공녀님의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으음…….”

이니안의 대답에 칸세르 공작이 신음을 흘렸다.

이니안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룰 때라 생각했다. 지금 바실러스의 이야기로 인해 칸세르 공작의 심리가 상당히 어지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카르발 황자 저하께서 저보고 공작 각하에게 가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한 대답을 해줄 것이라면서요. 그리고 또한 돌아올 때는 공작 각하의 목을 들고 와주면 고마울 거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니안의 그 말에 칸세르 공작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니안이 한 말의 의미는 컸다. 특히나 자신의 목을 가져오라는 말, 그 말은 황자가 자신을 쳐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었다.

‘설마? 그가 그 사실을 안 것일까?’

칸세르 공작은 등줄기가 축축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어렸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일황자였다. 그랬기에 그를 처음 본 순간 제국의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칸세르 공작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가.

“허허허. 저하께서도 농이 심하시군. 제국의 공작인 이 나의 목을 가져오라고 하시다니 말이야.”

칸세르 공작은 태연한 얼굴로 웃었지만 이니안은 속지 않았다. 이미 그의 흐트러진 기운을 느낀 것이다.

“드래곤의 눈물이라는 것 때문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 말에 칸세르 공작의 얼굴에 명확한 변화가 생겼다. 두 눈을 부릅떴으며 온몸을 벌벌 떨었다. 황자가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이미 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봐도 무관했다.

그렇다.

칸세르 공작은 카르발 황자가 자신의 계획 대부분을 알아차렸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음…….”

헛기침이 짧게 터져 나왔다. 어느새 그의 몸의 떨림은 멎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낭패의 기색이 역력했다.

아데노마의 얼굴에도 당황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으로 보아 그도 포르시아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스테판 역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대체 이들이 무엇을 꾸민 것이란 말인가?’

이니안은 몇 가지 추측은 할 수 있었지만 도통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떠올린 몇 가지의 추측은 모두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할까란 생각에 애써 이곳에 오는 동안 자신이 떠올린 가정들을 떨쳐 버렸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포르시아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대책에 골몰하던 칸세르 공작의 시선이 이니안을 향했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기세가 갑자기 변했기 때문이다. 말속에도 힘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칸세르 공작은 이니안에게 눈을 맞췄다. 그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혹시?’

그의 눈에 어린 분노를 읽은 칸세르 공작은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이니안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일로니아 왕국의 미에른 후작가의 별장에서 벌어진 참사에 관해서 알고 계신 것이 없습니까? 제가 알기로 그곳에 드래곤의 눈물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이니안은 칸세르 공작을 직시했다. 감히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끔 그는 온몸의 기운을 방출하여 칸세르 공작을 옭아맸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마어마한 압력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칸세르 공작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과연 거물다웠다.

“후후.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떤가? 자네는 지금 내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당장에 찌그러뜨려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인가?”

칸세르 공작은 오히려 침착했다.

카르발 황자가 자신이 꾸민 일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대한 당황스러움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이니안의 물음이 오히려 그를 침착하게 만들어준 자극제가 된 것일까?

아무튼 칸세르 공작은 과연 당대의 효웅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알고 계신다고 알아듣겠습니다.”

“자네 편한 대로 하게. 하지만 이제 좀 편하게 해주면 좋겠구만.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는 있네만 사실 숨 쉬기도 힘들군.”

칸세르 공작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괜한 너스레가 아닌 사실이다. 태연을 가장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해서 그렇지, 사실 그가 얼마만큼 고통을 받고 있는지는 기운을 방출하고 있는 이니안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말씀해 주시지요.”

이니안은 칸세르 공작을 감싸고 있던 기운을 풀었다.

“후우. 이제 좀 편하군.”

소파에 앉은 채로 칸세르 공작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흐음. 자네가 원하는 대답들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네. 자네도 대강 짐작하는 것 같지만 말이야. 안 그런가? 이니안 케이 사이몬 자작?”

칸세르 공작은 이미 이니안이 자작의 작위를 받은 것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니안은 놀라지 않았다. 처음 이 저택을 찾았을 대부터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을 것이라 이미 짐작하지 않았던가.

“그런가요? 그렇다면 천천히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그렇다면 우선 좀 앉겠나? 서 있는 자네를 계속 올려다보려니 목이 아프군.”

칸세르 공작의 말에 이니안은 그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눈빛으로 이야기를 재촉했다.

“허허. 성격도 참 급하군, 그래.”

아데노마와 스테판은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그들이 둘 사이에 끼어들 때가 아니었다.

“카르발 칼 폰트 미오나인 황자. 그래, 그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지. 나는 그가 어릴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네. 그때 나는 제국 정계의 일인자의 자리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 그때 그를 보고 나는 직감했네. 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성군의 자질을 타고난 이라고 말이지. 그런데 그건 나에게는 곤란한 일이었어. 이제 겨우 정계의 숙적들을 물리치고 내 세상을 만들 찰나에 아직 어린아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재질을 가진 이가 나타났다는 것이 말일세. 자고로 성군이 나타나면 신하들의 힘은 작아지는 법이거든. 난 그것을 원치 않았지. 신은 공평하다고 할까? 그에게 황제로서의 모든 재능을 물려주었기 때문인지 그의 동생에게는 황자라는 신분 외에는 아무런 재능도 주지 않았더군. 이황자인 티게르 칼 폰트 미오나인이 가진 것이라고는 황가의 혈통뿐이었지.”

거기까지 말한 칸세르 공작은 테이블 위의 차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마셨다. 눈짓으로 이니안에게도 권했지만 이니안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두 사람의 서열이 뒤바뀌었다면 제국은 참으로 재미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신은 혼란을 원하지 않는 것 같더군.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지. 신이 그런 평화를 원한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노력해 얻은 힘을 잃기 싫었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지, 이황자를 황제로 만드는 것.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제국은 장자 계승의 원칙이 아주 확고히 지켜지고 있는 나라지. 그러니 방법은 하나야. 일황자를 제거하는 것.”

그의 말에 아데노마와 스테판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입에 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반역인 것이다. 하지만 칸세르 공작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포르시아야. 자네도 짐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친딸이 아니네. 우리 제국의 또 다른 공작가인 메이지아 공작가의 딸이지. 아주 어릴 때 납치했다네. 후후. 미인계로 황자를 암살하려 하는데 내 딸을 이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냉혈한은 아니고 말이야. 더군다나 나에게는 딸이 없었지. 그 아이가 나의 딸로 커서 일황자의 사랑을 얻고 그를 죽이게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최면이 필요했지. 클레비클이 알려주더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건이 드래곤의 눈물이라고 말이야. 더군다나 그것은 최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억을 재창조하는 것이라 하더군. 그때 마침 나에게 드래곤의 눈물의 일부가 있었지. 그것으로 어린 포르시아의 기억을 조작했다네. 한데 문제가 생겼어. 앞으로 기억 조작을 더해야 하는데 드래곤의 눈물이 더 이상 없는 것이야.”

그때 이니안의 눈이 번쩍 빛났다. 필요한 드래곤의 눈물을 얻은 곳, 그곳이 분명 미에른 후작가의 별장일 것이다. 이니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두 눈이 원한에서 나온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래서 백방으로 알아보았어, 드래곤의 눈물이 있는 곳을. 그리고 드디어 찾았지. 한데 그 장소가 조금 꺼림칙했어. 카일로니아 왕국의 후작가였거든. 카일로니아 하면 아무래도 자네의 가문 때문에 조금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 그래도 필요했기에 결행했네. 이중삼중으로 대리인을 내세워 그 누구도 내가 시킨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없게 해서 말이지. 그때 저 스테판이 고생을 좀 했지.”

이니안은 힐끗 스테판을 쳐다본 후 다시 칸세르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미에른 후작가의 별장을 습격했지. 가급적이면 목격자가 없는 것이 좋았기에 모두 죽이라고 했는데 실패를 했다네. 자네 때문이었지. 후후. 자, 이제 궁금증은 모두 풀렸는가?”

칸세르 공작은 담담한 눈으로 이니안을 쳐다보았다. 흡사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과 같은 눈이다.

“그때 죽은 이들 중 미에른 후작가의 딸이 있었던 것을 아십니까?”

“물론이지. 그것 때문에 카일로니아가 발칵 뒤집힌 것도 말이야.”

칸세르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나의 연인이었단 것도 알고 있습니까?”

“그건 몰랐군. 미안하게 됐네.”

너무나도 성의없는 대답이었다. 마치 옆집 유리창을 깨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과하는 거만한 이웃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니안의 눈이 불을 뿜었다.

“칸세르 공작.”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후후. 어차피 난 죽을 목숨이네. 그러니 그렇게 힘 빼서 살기를 피울 필요는 없네.”

그의 말에 아데노마와 스테판이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놀랄 것 없다. 카르발 황자는 치밀한 사람이야. 아마 그는 저 사이몬 자작이 너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나를 죽이게 하기 위해 이곳에 보낸 것이야. 후후. 사이몬 가의 자작이 제국의 공작을 죽인다라… 좋지. 이것을 빌미로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더욱 좋은 일이고 말이야.”

머리의 열기가 싸늘히 식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이니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카르발 황자가 거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모두 말해주지 않고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진정한 이유.

그것은 자신의 손을 빌려 껄끄러운 칸세르 공작을 제거함과 동시에 국경을 마주한 강국 카일로니아 왕국과의 외교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일이 악화가 되어 전쟁이 터져도 상관없었다.

카일로니아가 아무리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제국의 규모에 비하면 조금 큰 나라일 뿐이다. 능히 제국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인 것이다.

아무리 카일로니아에 사이몬 공작가가 있다고 해도 전쟁은 기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카르발 황자는 이미 거기까지 수를 읽고 있었다. 포르시아와 관련해 이니안이 분노할 것을 뻔히 예상하고 말이다. 미에른 후작가의 일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카르발 황자, 내 지금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주도록 하지.’

이니안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놀아날 뻔한 것이 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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