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66화 (16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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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이곳은 여전하네요.”

무언가 많은 의미가 담긴 말 같았다.

“그렇소. 여전하오.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오.”

카르발 황자의 말에도 포르시아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계속 창밖을 볼뿐이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일 년이나 잠에 빠져 있었다면 아버님도 걱정하실 것 같고요.”

포르시아는 카르발 황자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말했다. 그녀의 말에 카르발 황자는 내심 당혹스러웠다. 일어나자마자 집에 가겠다는 말을 꺼내다니.

그것은 곤란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곧 혼담이 추진될 것이다. 무척이나 곤란한 일이다.

일 년 동안이나 자신이 포르시아를 숨겨놓고 있었다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이미 내가 칸세르 공작께 말을 전해놓았소.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계시니 조금 더 쉬다 가도록 하오. 오랜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나 몸도 좋지 않을 테니 말이오. 사실 일 년 내내 잠만 자느라 많이 야위었을 것이오. 내가 영양 공급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음식을 먹는 것에 비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오.”

카르발 황자의 말 대로였다.

포르시아는 자신의 팔로 시선을 돌렸다. 앙상했다. 확실히 일 년 전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피곤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어서 이곳을 벗어나 이니안을 찾고 싶었다. 그것이 솔직한 그녀의 심정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다만 어서 이곳을 나가 찾고 싶은 사람이 있을 뿐이에요.”

“누구를 말이오? 말만 한다면 내 신하들을 시켜 이곳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겠소. 그러니 이만 방으로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카르발 황자의 말에 포르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직접 찾아야 했다. 그리고 직접 할 말이 있었다.

“아니요. 제가 직접 찾겠어요.”

포르시아의 단호한 말에 카르발 황자는 정말로 곤혹스러웠다.

“대체 누구기에 그러는 것이오?”

“이니안 세이버, 아니, 이니안 케이 사이몬이에요.”

쿠쿵.

포르시아의 그 말이 카르발 황자의 머릿속에 울렸다. 그리고 귀에서 계속 그 대답이 맴돈다.

이가 갈렸다. 그가 태어나서 이토록 강하게 이를 갈아본 적이 있었던가?

질투. 그것은 질투였다.

“왜, 왜 그를 찾으려는 것이오?”

카르발 황자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예요.”

포르시아는 담담한 눈으로 카르발 황자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맞췄다.

“그것이 무엇이오?”

카르발 황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억누르고 힘겹게 물었다. 물론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다.

“그건……에요.”

포르시아가 작게 대답했다.

그 순간 카르발 황자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몸을 획 돌렸다. 포르시아를 등지는 순간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허락할 수 없소. 이곳에서 쉬고 계시오. 그리고 무언가 잊은 것 같은데 그대의 약혼자는 나요.”

그 말을 끝으로 카르발은 방을 나가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카르발이 방을 벗어나자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네 사람이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그녀가 저 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해라.”

“네.”

카르발 황자의 명령에 대한 대답은 사방의 벽과 천장에서 들렸다. 그는 분노한 얼굴을 가진 그대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어딘가에서 이 화를 풀지 않는다면 미칠 것만 같았다.

***

이니안이 황궁의 정문을 나오자 그곳에는 여전히 케이로스가 앉은 자세 그대로 있었다. 경비병들이 불안한 듯 계속 케이로스를 힐끔거렸었지만 케이로스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자.”

이니안의 그 말에 케이로스는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고 당당히 네 발로 섰다. 이니안이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따랐다. 목에 매인 목줄은 장식에 불과하다는 듯 이니안은 그것을 잡지 않고 그냥 걸었다.

뒤의 황궁 경비병들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칸세르 공작가라…….”

이니안은 천천히 예전에 갔던 길을 더듬어 걸음을 옮겼다. 제도의 고위 귀족가는 사우론과 같이 북서쪽 구획에 몰려 있었다.

“북서지구 가장 안쪽이었지? 그렇다면 다시 이니안 세이버인가?”

이니안은 걸음을 옮기며 왼쪽 가슴의 문장을 떼서 품에 넣었다.

황궁에서 칸세르 공작가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을 소비하자 이니안은 칸세르 공작가의 정문 앞에 설 수 있었다.

정문의 경비는 이 년 전 그대로였다.

그는 멀리서 케이로스가 보이는 때부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니안 세이버입니다.”

이니안은 경비병에게 품에서 칸세르 공작가에서 받은 신분 증명패를 꺼내 보여줬다.

“드, 들어가십시오. 공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그는 어서 이니안이 들어가 케이로스가 사라져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케이로스가 멀리서 보일 때 이미 안에 기별을 넣어둔 상태였다.

이니안은 경비병을 뒤로하고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커다란 정원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저택의 건물을 향해 갔다.

여전히 잘 정비된 정원이었다.

이니안이 저택의 현관에 도착하자 이미 집사가 나와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세이버 경. 이 년 만이로군요.”

칸세르 공작가의 집사인 스테판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 년 전과 바뀐 것이라고는 이니안을 보는 눈빛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니안을 향한 강한 적대감이 어려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계약이 다 끝나갈 때가 되어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가씨도 행방불명이 된 이때에 말입니다. 대체 지난 일 년간 어디서 무엇을 한 겁니까?”

포르시아가 행방불명이 된 가운데 나타난 이니안, 역시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약간의 일이 있었습니다. 공녀님의 행방은 알고 있습니다.”

이니안의 대답에 스테판의 얼굴이 급변했다. 얼굴 가득 안도감이 자리한 것이다.

“그렇습니까? 정말로 아가씨의 행방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기사입니다. 거짓말은 안 합니다.”

이니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스테판은 급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빨리 공작에게 데려가야 그토록 간절히 찾던 포르시아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 급한 마음에 이니안에게 따라오라는 소리도 하지 않은 채 바삐 걸었다. 이니안은 그의 그런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고, 공작 각하, 세이버 경이 오셨습니다. 아가씨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급했던 것일까? 스테판은 노크도 없이 칸세르 공작이 있는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살짝 찡그려진 공작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기쁜 나머지…….”

스테판은 차마 말을 끝맺지를 못했다.

“됐네.”

칸세르 공작은 그 한마디로 그의 실수를 덮어주었다.

이니안이 그 뒤를 따라 서재로 들어왔다. 전에 왔던 응접실과는 달리 착 가라앉은 분위기의 방이었다. 스테판의 너머로 칸세르 공작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낯선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칸세르 공작의 아들인 아데노마였으나 이니안이 그를 알 리 없었다.

“오랜만이로군.”

칸세르 공작은 스테판 너머에 서 있는 이니안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니안은 스테판 앞으로 걸어나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래, 포르시아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네.”

“그동안 무얼 했기에 이제 온 건가?”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의심이 가득 들어찬 눈빛을 보내는 칸세르 공작의 물음에 이니안은 짧게 답했다. 그 와중에 이니안의 시선은 아데노마를 향했다.

“아, 내 아들일세. 포르시아의 오빠지.”

“처음 뵙겠습니다. 이니안 세이버라고 합니다.”

이니안의 소개에 아데노마의 눈이 빛났다. 그는 이미 이니안의 정체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자가 그 사이몬 가의 인물이란 말이지. 수많은 어새신들을 상대한 후에도 카르세온을 궁지에까지 몰아붙인 실력자.’

그의 눈이 승부욕으로 불타올랐다.

“아데노마 오마 칸세르라고 하네.”

아데노마는 소파에 앉은 자세 그대로 짧게 자신의 소개를 마쳤다. 상대가 아무리 사이몬 가의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자신은 제국의 공작가의 자제이자 자작의 작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제법 강한 자다.’

이니안은 거만한 모습의 아데노마가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카르발 황자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군.’

카르발 황자가 가진 힘은 정확히 느낄 수 없었지만 아데노마의 힘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두 사람 사이의 힘의 우위는 분명한 것이다.

“그래, 포르시아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니안과 아데노마가 마주 보고 있는 가운데 옆에서 칸세르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니안의 시선이 다시 칸세르 공작을 향했다.

이니안은 지그시 칸세르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전에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니안은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칸세르 공작은 이니안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무엇인가?”

칸세르 공작이 느릿느릿한 어조로 대답했다.

“정녕 지난 일 년간 공녀님의 행적을 전혀 모르고 계셨던 것입니까?”

이니안이 보기에 칸세르 공작은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다. 분명 포르시아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렇게 포르시아가 여행을 하도록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테판은 포르시아가 그동안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이니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후. 원래라면 알아야 하겠지. 하지만 모르네.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포르시아의 행방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준비해 둔 것들이 하나같이 소용이 없더군.”

그의 대답에 이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카르발 황자가 사전에 추적을 차단한 것이리라. 그가 본 카르발 황자 정도의 인물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었다.

단지 이니안은 카르발 황자가 한 말의 진실이 궁금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칸세르 공작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칸세르 공작의 반응은 그가 정말로 포르시아의 행방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확신하게 해주었다.

“포르시아 공녀님은…….”

그 사실을 확인한 이니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테판의 시선이 이니안의 입에 고정되었다.

반면 칸세르 공작과 아데노마는 자신의 딸이자 동생인 포르시아의 행방을 듣는 데도 한 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일황자궁에 있습니다.”

짤막한 대답.

그 대답에 칸세르 공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데노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스테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이니안의 한마디에 다양한 표정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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