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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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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지?”
포르시아와 로즈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둠만 있으리라 생각되는 공간. 생각만 할 뿐 느끼지도 못하던 그런 공간이 느껴졌다. 분명 존재가 느껴졌다.
포르시아와 로즈가 서로를 마주 본다.
“느꼈어?”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던진 물음.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둘 모두 바깥의 존재를 느꼈다.
포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무슨 일이야, 언니들?”
아무래도 포르는 느끼지 못한 듯했다.
“무언가 익숙한 것이 느껴졌어, 이 어둠 너머 어딘가에서.”
“그래.”
로즈와 포르시아가 번갈아 대답했다.
두 사람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분명… 이니안의…….”
“그래, 이니안 오빠의 기운이야.”
두 사람은 서로가 느낀 것을 확인했다. 어둠 너머에서 느껴진 익숙한 기운, 그것은 이니안의 기운이었다.
카르발 황자와 대치한 가운데 이니안이 뿜어낸 기운이 잠들어 있는 포르시아의 내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카르발 황자를 향한 적대감이 가득한 기운이었지만 이니안의 기운이라는 것만으로 포르시아와 로즈는 익숙하게 느낀 것이다.
그녀들은 상대의 기운을 느낀다거나 하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어둠의 공간 속에서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녀 자신들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느끼는 대로 인지할 뿐이다.
“왠지 길이 보이는 것 같지 않아?”
“맞아.”
포르시아도 로즈도 어둠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 어둠 속의 외딴 곳에서 가야 할 길이 보인 것이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와 같은 두 사람에게 나침반이 떨어진 듯했다.
로즈와 포르시아는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니안이 열어준 그 길로 나가보기로.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가만히 앉아 있던 포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포르를 향해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가자, 포르.”
포르시아의 말에 포르가 묻는다.
“어딜?”
“우리 셋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우리 셋이 하나가 되는 곳으로.”
로즈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고개를 끄덕이며 당찬 대답을 한 포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셋은 한 길로 걸어갔다, 이니안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어디에도 길은 없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향하는 곳이 곧 길이 되었다. 위에서 이니안의 기운이 느껴지면 계단을 올라가듯 발을 올렸다. 그러면 발아래에 길이 생겼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 곳을 향해 꾸준히 걸었다.
숨이 차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온몸에 활력이 돌았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이제 다 온 것 같지?”
“그래.”
이니안의 기운이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졌다. 마치 태양의 바로 곁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포르시아와 로즈는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퉁이가 없는 그저 넓게 펼쳐진 공간이지만 두 사람은 사이에 포르의 손을 꼭 잡고 모퉁이를 돌 듯 걸었다. 두 사람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상의 모퉁이를 돌자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곳은 어둠 따위는 없었다.
태양의 광휘가 온 세상을 지배하듯 빛으로만 가득 찬 공간이다.
“따뜻해.”
포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부드러운 빛이었다. 모든 곳을 가득 채운 빛이었지만 뜨겁다거나 눈이 부시다거나 하지 않았다.
신기했다. 본래 이 정도의 빛이라면 눈을 뜨고 앞을 볼 수도 없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빛에 눈이 아플 정도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치 아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엄마의 품과도 같은 빛이다.
“이곳이야.”
“그래.”
포르시아와 로즈는 서로 마주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빛이 그녀들의 몸을 감싼다. 가만히 두 사람을 올려다본 포르가 뒤늦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기분 좋다.”
포르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이곳이 원래 우리가 있어야 했던 곳이야.”
포르시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이곳이 우리가 있었던 곳이야. 우리가 하나였던 곳.”
로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기분 좋은 곳이야.”
포르는 다른 것은 모르겠다는 듯 단지 기분이 좋다는 말과 함께 웃었다.
“가자.”
세 사람은 망설임 없이 빛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온몸을 감싼 빛이 이제 몸 안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의 꼭 잡은 손이 맞붙는다. 이윽고 팔이, 어깨가, 그리고 몸이 하나가 된다.
셋은 하나가 되어 빛 속으로 사라졌다.
카르발 황자와 이니안이 동시에 문을 닫고 나간 직후, 포르시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서서히 눈이 떠졌다.
일 년의 긴 잠에서 포르시아는 드디어 깨어났다.
“여긴?”
포르시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낯선 공간에 있다는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둠 밖에 없는 공간도 무섭지 않았는데 이런 곳이 단지 낯설다는 이유로 두려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나가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머릿속에 그동안의 일이 빠르게 지나간다.
포르의 기억이 지나간다. 뒤이어 포르시아의 기억이 지나간다. 그리고 로즈의 기억이 짧게 지나간 후 다시 포르시아의 기억이 지나갔다.
포르시아는 드디어 포르시아가 되었다.
“포르, 로즈, 포르시아, 모두 나야. 나는 포르시아 라온 메이지아야.”
포르시아는 힘없는, 그러나 의지로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포르시아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쪽 발이 침대를 벗어나 바닥을 디뎠다. 작고 앙증맞은 예쁜 발이다. 다른 한 발도 땅을 디뎠다. 포르시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꼿꼿이 섰다.
기품이 넘치는 잠옷이 걸쳐져 있었다. 최고급 실크의 부드러운 재질이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이곳은 어딜까?”
포르시아는 방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낯선 방이다. 하지만 친근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꼭 언젠가 한 번은 본 듯한 방이다.
방 안을 둘러보는 그녀의 눈에 문이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는 문인가?”
문으로 다가간 포르시아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나타나는 또 다른 방. 더욱 익숙한 분위기의 방이다.
“언젠가 한 번은 와본 거 같은 방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응?”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던 카르발 황자는 방 안에 낯선 기운이 나타난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니안이 나간 이후 자신의 방에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가만.”
카르발 황자는 가만히 기운이 느껴진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설마!”
카르발 황자는 황급히 문을 열고 옆의 방으로 뛰어갔다. 분명 포르시아가 자고 있던 방으로부터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포르시아가 깨어난 것이리라.
세차게 문을 연 카르발 황자는 그대로 굳었다.
눈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에 매력적인 눈이다. 녹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왔다. 감격에 몸이 떨려온다.
“포, 포르시아.”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할 수가 없다.
“황자 저하? 그렇다면 이곳은 황자궁인가요?”
갑자기 나타난 카르발 황자의 모습에도 포르시아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의 오랜 시간이 그녀의 정신세계를 한층 성숙시켜 놓은 것이다.
“그, 그렇소. 그런데 어떻게 깨어난 것이오? 그대는 무려 일 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었소.”
“일 년이요?”
포르시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녀 자신이 일 년이나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어둠 속에서 일 년이란 시간을 보낸 것이니 말이다.
포르시아는 자신이 잠에 빠져들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 바실러스 자작이라는 자가 일황자가 자신을 데려오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케라우가 자신을 제압했었다. 이어 바실러스 자작이 자신에게 슬립 마법을 사용했었다. 그녀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그렇다면 그 후 일 년이나?’
시간의 흐름은 정말 빨랐다. 어둠 속에서 얼마인지 모를 시간을 있었을 뿐인데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다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놀라는 정도로 끝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성장해 있었다.
“저는 바실러스 자작이 사용한 마법에 의해 잠이 들었어요. 그것이 제가 가진 잠들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에요. 그런데 그전에 그가 그러더군요. 저하께서 절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고요. 제가 거부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말이지요.”
카르발 황자를 바라보는 포르시아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카르발 황자는 그 눈에서 그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 말의 뜻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뿐이었다.
‘바실러스 녀석, 쓸데없는 말을…….’
이 순간만은 조금 더 융통성있게 말하지 못한 바실러스의 처사가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바실러스가 무사히 포르시아를 데리고 왔을 때의 그 기쁨은 이미 멀리 사라졌다.
“으음. 분명 내가 그렇게 시켰소.”
카르발 황자는 이미 포르시아가 자신이 시켰다는 것을 믿고 있는 이상 순순히 인정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그러셨죠?”
“너무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오.”
“전 전혀 위험하지 않았어요. 소드 마스터가 함께 있으면서 지켜주고 있었는걸요. 게다가 파이어 경도 함께 있었어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소수의 사람만이 남아 호위를 한다면 나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오. 아무리 곁에 소드 마스터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오. 그리고 나는 그대가 소드 마스터와 함께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소. 그러니 더욱 걱정이 되지 않겠소?”
카르발 황자의 두 눈에는 그러한 그의 진정이 담겨 있었다. 사실 절반쯤은 진정이었으니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아니, 그가 포르시아를 데려오라고 한 것은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그의 눈을 통해 포르시아에게 전해졌다.
포르시아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 석연치 않게 여기는 부분은 남아 있었다.
“하아. 알겠어요, 저하.”
포르시아의 그 말에 카르발 황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늘 그랬다. 포르시아와 만날 때면 그는 포르시아의 표정 하나에 웃고, 인상을 썼으며, 또 울었다.
지금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제가 일 년이나 잠이 든 것이죠?”
세 사람의 기억이 합쳐진 지금 포르시아도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다. 그 기억 속에서도 자신이 기억을 잃고 또 기억이 바뀌는 과정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소. 어떤 마법적 이유인 것 같아서 그대를 데리고 온 바실러스 백작이 백방으로 조사 중이었소만…….”
“백작이요? 일 년 사이에 백작으로 승작하였나요?”
“그는 마법사로서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오. 단지 그동안 그 재능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소.”
바실러스는 일 년 전 포르시아를 데리고 온 공으로 백작이 되었다. 카르발 황자는 확실히 약속을 지켰다.
“그렇군요.”
포르시아는 짧게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예전에 가끔 들렀을 때 본 그때의 풍경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