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64화 (16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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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똑똑.

백작의 노크 소리가 울렸다.

“로디만 백작인가?”

방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일황자의 목소리일 것이라 이니안은 생각했다.

“네, 저하. 사이몬 자작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오시라 하여라.”

일황자의 대답에 로디만 백작은 문을 열며 한쪽 옆으로 물러섰다.

“들어가시지요. 제가 자작을 모시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니안은 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문의 맞은편 벽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유리창이다. 그리고 유리창 앞에 놓인 티 테이블과 그 앞의 의자에 앉은 젊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니안은 한눈에 그가 미오나인 제국의 일황자 카르발 칼 폰트 미오나인임을 알아보았다.

어차피 이 방에는 그 혼자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자 저하. 저는 카일로니아 왕궁의 사이몬 공작가의 차남인 이니안 케이 사이몬이라 합니다.”

이니안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본디 기사는 주군의 앞에서만 무릎을 꿇는다. 예외는 레이디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 정도일까?

하지만 제국의 황제나 황자라면 충분히 그 예외에 속할 만했다. 이니안이 아무리 공작가의 자제라 할지라도 공작은 아니었고 왕국의 일개 자작일 뿐이다. 아무리 사이몬이라는 성을 쓴다 할지라도 말이다.

“반갑습니다. 카르발이라 합니다.”

카르발 황자는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를 마쳤다.

“그만 편히 일어나도록 하십시오. 대륙제일이라는 검의 가문의 자작을 무릎 꿇리고 있으려니 이거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납니다. 하하.”

카르발 황자가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의 말에 이니안이 몸을 일으켰다.

“이리 앉으시지요. 마침 티타임을 즐기던 차였습니다. 오늘은 차 맛이 한층 좋군요.”

카르발 황자가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권하며 손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황공합니다.”

이니안의 말에 카르발 황자는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후후. 사이몬 가의 분이 황공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군요.”

“저도 일개 왕국의 신하일 뿐입니다.”

어쩌면 비꼬는 것일 수 있는 말을 이니안은 담담히 받아넘겼다.

“하하하. 카일로니아의 국왕 전하가 정말로 부럽군요. 사이몬 가의 인물들이 그저 신하일 뿐이라 하니 말이오. 어째 우리 제국에는 귀가와 같은 신하가 없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카르발 황자의 눈에는 진실로 안타까운 빛이 역력했다.

“그래,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로디만 백작에게 한 말씀은 전해 들었습니다만 자작의 눈이 실은 그런 용건이 아니라 말해주고 있군요.”

카르발 황자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이니안이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똑똑히 살피고 있었다. 이니안이 이 방의 곳곳을 살피고 있음을 그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과연 대단한 인물이로군.’

이니안은 이미 처음 카르발 황자를 보는 순간부터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도 정확히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지닌 인물, 그것이 자신과 마주 앉아 한가로운 얼굴로 차를 즐기고 있는 카르발 황자였다.

‘이럴 때는 정공법으로 가는 것이 낫겠지.’

카르발 황자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자 이니안은 바로 부딪치기로 결정을 내렸다.

“실은 한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이니안의 말에 카르발 황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자신이 찌르기는 했지만 설마 바로 본론을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허어. 어떤 사람이기에 본인을 찾아오셨습니다. 이 궁에는 저와 저의 신하들밖에는 없습니다만.”

카르발 황자는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능청을 떨었다.

“그렇습니까? 저는 왠지 다른 한 사람이 더 있을 듯하군요. 칸세르 공작가의 공녀 말이지요.”

이니안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카르발 황자가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 정도로 직접적으로 치고 나올 줄은 정말로 몰랐다. 조금 전의 말도 예상 밖이었지만 이건 도를 넘어섰다.

“허어. 칸세르 공작가의 공녀 말입니까? 포르시아라면 제 약혼녀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녀가 사라져서 몹시도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한데 자작께서는 어인 일로 그녀를 이곳에서 찾으시는지요? 아니, 그녀를 알고 있기는 한 겁니까?”

그 말을 하는 카르발 황자의 두 눈은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제가 잠시 방황하던 때가 있었지요.”

이니안 역시 두 눈을 사납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칸세르 공작가의 계약 기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계약은 아직도 유효한 상태입니다. 그때 이 년의 기한으로 계약을 했으니 아직 한 달 정도 시일이 남았지요. 그때 전 한 인물을 호위했었습니다. 바로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 공녀를요. 그리고 바실러스 자작이라는 자에게 눈앞에서 납치를 당했지요. 그는 황자 저하가 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니안이 말을 맺었다. 카르발 황자는 가만히 이니안을 바라본다. 그의 뺨이 실룩거린다.

“푸하하하하하. 설마, 두 이니안이 한 사람일 줄이야. 하하하. 그래 이상하다 여겼었지. 하지만 그렇게 드문 이름은 아니기에 그냥 넘어갔었는데 설마 같은 인물일 줄이야. 큭큭큭.”

카르발 황자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이니안은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카르발 황자는 이미 카르세온에게서 이니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이몬 가의 막내와 싸워 겨우 이겼다는 이야기를 할 때 카르세온의 눈이 호승심에 불타고 있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칸세르 공작에게서 받았던 포르시아의 여행 호위들의 명단에서 이니안 세이버라는 이름도 확인했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포르시아를 납치해 온 바실러스가 이니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을 웃던 카르발 황자는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지.”

이니안은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방 안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열었다. 그곳은 아름답게 치장된 여인의 방 같았다. 방 한가운데에 있는 침대에 그녀가 누워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듯 포르시아가 그곳에 다소곳이 누워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이니안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일 년 만에 보는 얼굴이다. 이제야 이니안은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 년 전 그날, 포르시아가 납치당했을 때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와 함께 가슴 한구석에 자리했던 감정. 그때는 그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지만 그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감정의 정체를 확인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니안이 포르시아를 잃고 그날 느꼈던 감정, 그것은 쉐이나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같은 것이었다. 또한 쉐이나를 잃고 느낀 감정과 같은 것이었다.

오늘 그것을 깨달았다.

이니안은 포르시아가 누워 있는 침대를 향해 한 발짝 움직였다. 그리고 두 번째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카르발 황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르발 황자의 두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도 눈치 챈 것이다. 이니안이 포르시아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말이다.

그의 두 눈에 피어난 불꽃은 이니안에 대한 질투의 그것이다. 포르시아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누군가가 역시 자신과 같은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카르발 황자는 이니안을 노려보았다.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살기가 향하는 방향은 바로 이니안이 서 있는 자리다.

하지만 이니안은 피하지 않았다. 그도 온몸의 기운을 끌어올려 카르발 황자의 기운에 맞부딪쳐 갔다. 이제는 그 누구와 싸우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설사 그 대상이 아버지라 할지라도 말이다.

두 사람의 기운이 포르시아가 누워 있는 방에서 부딪쳤다.

강대한 기운이 부딪쳤으나 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포르시아가 잠든 곳이다. 두 사람은 그것에 신경을 썼기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부딪치는 가운데 고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요함 아래에는 무지한 광포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맹수의 기세 싸움은 그야말로 격렬했다.

당장이라도 이 방에 자리한 고요를 찢어발기려는 순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 사람의 기운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이 이상의 다툼은 포르시아에게 피해가 감을 둘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지.”

카르발 황자의 말에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처음의 그곳으로 돌아왔다.

“후우.”

카르발 황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니안은 여전히 매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일 년이야.”

밑도 끝도 없는 말.

“그녀가 저렇게 잠이 든 지 벌써 일 년이란 말이지.”

이니안의 얼굴이 급변했다. 설마 그날 이후 지금까지 계속 잠에만 빠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느새 두 사람은 모두 서로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둘 모두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나 황자라는 신분을 가진 카르발도.

“그녀의 아버지가 문제였지.”

“칸세르 공작 말인가?”

“그래. 자신의 딸에게 아주 못된 짓을 해놨어.”

“드래곤의 눈물이겠군.”

이니안의 말에 카르발 황자는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설마 그가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알고 있었나?”

“나와는 관계가 깊은 물건이라서.”

이니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아주 짧게 아픔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카르발 황자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찰나의 일이었다.

“그랬군. 그렇다면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 지도 알고 있겠지?”

“물론.”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의 쓰임 때문에 로즈가 사라지고 포르시아가 나타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니안 자신이 로즈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포르시아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다른 것이 아니었으니까.

로즈도 포르시아도 결국은 이니안에게 있어서는 같은 사람이다.

“칸세르 공작은 그 일을 자신의 딸에게 무려 세 번에 걸쳐서 진행시켰지. 아주 못돼먹은 인간이야.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포르시아는 일 년 정도는 마법에 노출이 되면 안 되는 상태였어. 공간 이동 마법이나 체력 회복 마법, 그리고 치유 마법 같은 것들에 말이지. 뭐, 신체 밖에 펼쳐지는 방어 마법이나 공격 마법은 상관이 없는 것 같았지만. 내가 그런 사실을 안 것은 아쉽게도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후였다. 그 멍청한 바실러스 녀석이 공간 이동 마법으로 그녀를 나의 궁에 데리고 온 후지.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음으로 해서 알게 된 거야. 바실러스 녀석이 조사를 해서 말이야. 후우.”

카르발 황자의 얼굴에는 후회와 회한이 가득했다. 결국 자신이 그녀를 억지로 이곳에 데려왔기에 그녀는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왜 그랬지? 어차피 너는 그녀와 결혼을 할 예정이었는데.”

“킥. 그랬지. 결혼을 할 예정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하면 난 죽어. 난 죽기는 싫었거든.”

카르발 황자는 실성한 사람과 같은 웃음을 짧게 터뜨린 후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결혼을 하면 죽는다고?”

이니안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조금 전 자신의 앞을 막았던 카르발 황자의 얼굴은 분명 포르시아에게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궁금한가? 후후. 하지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싶으면 칸세르 공작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아, 혹시 찾아가거든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전해줘. 다시 올 때는 그 친구 목을 가져와도 좋고 말이야. 후후.”

그 말을 끝으로 카르발 황자는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그 방에 연결된 또 다른 방의 문을 열고서는 모습을 감췄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으니 이만 돌아가라는 뜻이다.

이니안은 잠시 카르발 황자가 모습을 감춘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칸세르 공작이란 말이지… 역시 모든 일의 원점은 그인가?”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이니안은 황자궁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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