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63화 (163/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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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4,320골드.

엄청난 금액이다.

보통의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10골드다. 무려 천팔백 명에 가까운 사람이 한 달을 살 수 있는 돈이라는 소리다.

“생각보다 비싸군요.”

이니안의 말에 안내대에 앉은 그녀는 얼굴이 붉어질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일은 이곳에서 적절한 요금을 받고 고객을 이동 마법진으로 안내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늑대 한 마리에 사람 한 명이 이동하는데 4,320골드라는 거금이 든다는 것은 그녀로서도 조금은 납득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지만 규정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여기 있습니다. 이 정도면 4,500골드는 나올 겁니다.”

이니안은 품에서 주먹만 한 보석을 꺼내 내밀었다. 물론 칼의 레어에서 가지고 나온 보석이었다.

“저리로 가면 되나요?”

“네, 네.”

보석에 넋을 잃은 그녀는 이니안이 알아서 이동 마법진을 향해 가는 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참. 손님. 거스름돈은…….”

“필요 없습니다.”

채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니안이 대답했다. 이미 그와 늑대의 모습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니안은 케이로스와 함께 이동 마법진을 통해 미오나인 근처의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다.

보통 왕도나 제도에서 밖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것은 허락이 되었지만 안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것은 엄격한 제한이 걸려 있다. 무척 복잡한 절차를 거쳐 허가를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일부 예외도 존재했지만 그것은 왕족이나 황족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이다.

“확실히 빠르군.”

공간 이동을 해서 도착한 탑 밖으로 나온 이니안이 담담히 중얼거렸다. 그 먼 거리를 움직여서 미오나인에서 뉴레이안 산맥 너머까지 도착했었는데 마법을 사용하니 순식간이었다.

물론 엄청난 거금이 들었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황자 저하를 만나러 가보실까?”

이니안은 케이로스를 데리고 제도 미오나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암흑이다.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휩싸여 있다.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넓은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전체를 뒤덮고 있는 어둠.

그 속에 세 개의 빛이 있었다.

작은 빛 하나와 조금 큰 빛 둘.

그 셋은 서로를 둘러보며 작은 원을 만들고 있다.

똑같이 생긴 여인 둘과 앙증맞은 외모의 귀여운 어린 소녀 한 명. 셋은 서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로가 가진 기억들에 대한 대화.

셋 모두 하나로 같은 존재이되 또한 서로 다른 존재.

포르시아는 이 어둠 속에서 로즈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또한 포르시아 라온 메이지아라는 꼬마 숙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 또한 자신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포르시아는 혼란스러웠다.

왜 자기가 셋으로 나뉘어 있는지, 왜 이런 어둠 속에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두려웠다. 무서웠다. 그리고 단 하나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항상 웃음 띤 얼굴로 자신을 바라봐 주던 인물.

“이니안…….”

포르시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다.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공간. 이곳에서는 이니안의 이름을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세이버 경이 아닌 이니안이다.

“설마 사이몬 가의 인물이었을 줄은…….”

로즈에게서 그가 사이몬 가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로즈가 그를 오빠라 불렀다는 사실도 들었다.

“당신은 저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로즈를 찾아온 것인가요?”

조금은 서글펐다.

자신이 그에게 느낀 무수한 감정들이 왠지 초라해 보였다. 그는 자신을 보되 자신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가 포르시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로즈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왜 그렇게 서글픈 걸까?

이곳은 그녀에게 익숙했다.

언젠가 갑자기 들어왔다가 로즈가 나타나면서 떠나게 된 공간.

사실은 잊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을 떠날 때 남은 둘을 반드시 기억해 내겠다고 한 것도 생각이 났다. 우스웠다. 그런데 자신은 다시 이곳에 들어올 때까지 완전히 이들의 존재를 잊고 있지 않았던가.

“포르시아, 괜찮아. 우리는 반드시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왜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로즈가 포르시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포르시아가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본다. 웃고 있었다.

믿음직스러웠다.

같은 자신인데 자신과는 어쩜 이다지도 다를까. 로즈가 부러웠다. 자신이 자신에게 부러움을 느끼다니 우스운 일이다.

로즈가 그런 포르시아의 감정을 느낀 것일까? 다시 한 번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도 너에게 부러운 것들이 많아. 후훗. 우습지? 우리는 같은 사람인데 서로에게 부러움을 느끼다니. 너도, 나도, 자신 안에 있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잠재성을 가진 거야. 그것이 인격이 나뉘면서 드러난 거고.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면 모두 하나가 될 거야. 내가 너를 부러워하는 것이나 네가 나를 부러워하는 것이나 말이지.”

“나도.”

로즈가 그렇게 말하자 꼬마 포르시아가 두 사람의 품에 안겨든다.

“그래, 포르도 분명 우리와 하나가 되는 거야.”

꼬마 포르시아를 두 사람은 포르시아와 구분하기 위해 포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됐을까? 내가 이곳에 들어온 지.”

“글쎄, 이곳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곳이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무척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 전에는 우리 셋이 만났을 때 아주 잠깐 같이 있었을 뿐이잖아.”

포르시아의 말에 로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시선은 동시에 포르를 향했다.

사실 이곳에 가장 오래 있었던 것은 포르였다. 포르로부터 포르시아가 갈라져 나왔고 다시 그녀로부터 로즈가 갈라져 나왔다.

따지고 보면 포르시아가 이곳에 있었던 시간은 반 년 남짓이었다. 로즈 역시 반 년 남짓 이곳에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 리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일 년이라는 시간을 지금은 셋이서 함께 보내고 있다. 셋은 그 시간의 흐름을 모른 채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것은 곧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이해였다.

“왜 우리 중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걸까?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또 다른 내가 생긴 걸까?”

포르시아가 고개를 숙이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나갈 수 있을 거야. 이번에 나갈 때는 왠지 우리 모두 함께 나갈 것 같아. 난 그런 예감이 들어.”

로즈의 말에 포르시아가 그녀를 쳐다본다. 그리곤 웃었다.

그녀도 이번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43장. 벌써 일 년이야

세상 모든 것을 압도하겠다는 위엄이 풍겨져 나온다. 과연 제도의 중심이자 황제의 거처인 황궁다운 모습이었다.

이니안은 곁에 케이로스를 대동하고 물끄러미 황궁의 정면에 서 있었다. 황궁 앞을 지나는 이들이 수상하다는 얼굴로 이니안을 힐끗거렸다. 목줄이 매어져 있기는 했지만 늑대가 보여주는 그 위압감이란 엄청난 것이다.

사실 칸세르 공작가의 기사라는 것으로 이니안은 케이로스를 쉽게 제도에 데리고 들어올 수 있었다. 지난번에 한 번 데리고 온 전력 덕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목줄을 매야 했다.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고 황궁으로 향하는 것이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니안은 황궁의 앞에 이르러서야 주머니에 넣었던 가문의 문장을 꺼내 왼쪽 가슴에 달았다. 미오나인에 들어올 때의 신분은 이니안 세이버였지만 지금부터는 이니안 케이 사이몬이다.

천천히 황궁 정문의 경비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경계의 표정이 어렸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거대한 늑대를 맨 줄을 잡고 황궁의 정문으로 다가온다면 어느 누가 경계하지 않겠는가.

“이니안 케이 사이몬 자작이라 합니다. 일황자 저하를 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만…….”

경비병은 눈앞의 인물이 하는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미친놈이었다. 황궁의 정문으로 와서는 대뜸 일황자 저하를 뵙고 싶다니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경비병의 눈이 이니안을 위아래로 찬찬히 살피고 지나간다. 그로서는 이 미친놈의 인상착의를 제대로 기억해 두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번에 또 찾아오면 두말 않고 바로 쫓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그의 눈이 한 부분에 딱 멈췄다.

그리고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미친놈의 왼쪽 가슴에 달린 문장이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붉은 불사조 피닉스의 문장.

그제야 그는 눈앞의 사내가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한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니안 케이 사이몬 자작이라고 했어, 분명. 세상에 그 사이몬 가의… 내가 미쳤지.’

비로소 경비병은 자신이 엄청난 착각에 빠져 어쩌면 자신의 목을 날릴 수도 있는 실수를 할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를 한 번 찬찬히 살핀 자신의 두 눈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에 기별을 넣겠습니다.”

그는 후다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고 오래지 않아 근엄한 얼굴의 노기사가 황궁의 정문으로 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황궁 근위기사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프랑 로디만 백작이라 합니다. 카일로니아의 사이몬 가의 자작께서 오셨다 하여 이렇게 나왔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일로니아의 이니안 케이 사이몬 자작이라 합니다.”

이니안은 품에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문장을 로디만 백작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이 아니라도 상대가 이미 자신이 왼쪽 가슴에 단 문장을 보았지만 그래도 절차라는 것이 있었다.

“분명 사이몬 가의 문장입니다. 검의 길을 걷는 자로서 대륙제일의 검가라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이몬 가의 자작을 만나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는 이니안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과분한 예는 부담스럽습니다.”

이니안은 차분히 대답했다.

“일황자 저하를 뵙고 싶으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어쩐 일로 뵙고 싶으신 겁니까?”

“일황자 저하의 인품은 카일로니아에서도 소문으로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성년이 지나 자작의 작위를 받으니 꼭 명성이 높은 일황자 전하를 뵙고 싶더군요. 저보다 조금 나이가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만나 뵙고 그 인품을 배우고 싶습니다.”

“허허허. 그러십니까?”

로디만 백작은 이니안의 대답에 기껍게 웃었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자 차기 제국의 황제가 될 인물이 전 대륙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가문의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사이몬 공작가의 자작이시라면 황자 저하께서도 기꺼이 맞이하실 겁니다. 자, 따라오시지요.”

“감사합니다.”

이니안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로디만 백작의 뒤를 따라 황궁으로 들어갔다. 케이로스는 황궁의 정문에 남겨두었다. 데리고 가려고 하자 로디만 백작이 작게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곳은 제국의 황궁,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로디만 백작은 이니안을 곧장 일황자궁으로 안내해 주었다. 황궁의 중앙궁을 지나 조금 더 뒤로 들어가자 중앙궁에는 못 미치지만 위엄이 가득한 궁전이 나타났다.

“일황자 저하께서 기거하시는 궁전입니다.”

궁의 모습이 보이자 로디만 백작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과연 제국의 일황자께서 머무르실 만한 궁입니다.”

입에 발린 소리였지만 이니안의 그 말은 로디만 백작의 기분을 한층 더 좋게 만들어주었다.

로디만 백작은 궁의 정문의 경비들에게 손을 한 번 들어주고는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이니안은 그 뒤를 따랐다. 로디만 백작과 함께 가는 그를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화려한 궁내부로 들어선 로디만 백작은 곧장 층계를 올랐다. 3층에 이르자 그는 층계 앞에 쭉 뻗은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이니안은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복도를 조금 걸어 들어가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가 멈춘 곳은 평범한 문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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