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60화 (16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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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뭐야?”

이니안이 거칠게 검을 뽑았다. 다프네의 손에도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그 순간 땅에서 변화가 일었다. 곳곳의 흙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후후. 이곳은 예전부터 제법 많은 이들이 죽은 땅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 염려해서 말이지요.”

바실러스의 말이 끝나는 순간 들썩이던 땅에서 시체들이 튀어 올랐다. 아니, 시체가 아니라 뼈다귀들이었다. 살은 모두 부패해 사라지고 오직 뼈만이 남아 일어서는 마물들.

“스켈레톤들인가…….”

이니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런,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제법 긴 세월을 보냈군요. 좀비는 하나도 없다니 말이에요. 그건 조금 아쉽군요.”

바실러스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진정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쳇.”

이니안은 짧게 혀를 차며 스켈레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쨌든 이들을 모두 처리해야 했다.

‘잘 될지 모르겠군.’

어쨌든 현재 이니안이 사용하고 있는 마나는 마이너스 마나. 이들을 움직이는 흑마법에 쓰이는 마나와 그 성질이 비슷했기에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다프네 역시 스켈레톤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공격에 느릿느릿 움직이던 스켈레톤이 조각조각 부서져 내렸지만 곧 다시 조립이 되어 흐느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젠장. 역시 스켈레톤이란 말이지?”

그 모습에 다프네는 짜증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관이 아쉽군.”

이니안도 작게 중얼거렸다. 이니안은 신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관을 찾을 일도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상처는 그냥 치료했고 자연 치유만으로는 힘들 경우는 마법사를 찾았었다.

하지만 어둠의 힘에 의한 마물을 앞에 두자 이번만은 신관이란 존재가 미치도록 절실했다. 이들은 신관의 신성 마법 한 번이면 모두 아무것도 아닌 뼈다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니안은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어디 가루가 되어서도 다시 일어서나 보자.”

케라우는 포르시아의 곁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자신은 뱀파이어다. 그가 싸움에 가세한다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고 게다가 공중에 둥둥 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기분 나쁜 바실러스의 행동도 수상했다.

‘흐흐흐. 역시 내 생각대로군. 설마 케라우 저 녀석과 이니안이 함께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말이야.’

칸세르 공작도 카르발 황자도 바실러스에게 현재 포르시아를 호위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준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바실러스는 이니안을 상대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전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케라우가 그러한 오산을 충분히 메워주었다.

그 사실을 이니안도 케라우도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후후후. 이용해 먹기도 전에 탈주해 버려서 아까웠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구나. 그것도 이렇게 결정적인 쓰임으로 말이야.’

케라우를 내려다보는 바실러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럼 슬슬 끝내도록 할까요?”

바실러스의 말에 일순 아래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 순간 바실러스의 두 눈이 검게 빛났다. 무척이나 기분 나쁜 빛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모두 시선을 돌렸지만 오직 케라우만은 그의 두 눈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어둠의 자식이여. 그대를 어둠에서 해방시킨 존엄한 이로서 너에게 명령을 내리니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를 데리고 이곳으로 오라.”

과연 살아 있는 이의 음성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기분 나쁜 목소리로 바실러스가 주문처럼 말했다. 그러자 그의 두 눈을 계속 응시하던 케라우의 몸이 잽싸게 움직였다. 그의 양팔에는 영문을 모르는 포르시아가 안겨 있었고 그는 공중을 유유히 날아 바실러스의 곁으로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이니안은 당황했다. 다프네 역시 어쩔 줄을 모른 채 공중을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현재 두 사람의 능력으로는 공중에 떠 있는 바실러스와 케라우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럼 잠시 잠이 들어주셔야겠습니다. 이곳에서 발버둥이라도 치시면 곤란하거든요. 슬립.”

바실러스의 마법과 함께 포르시아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흐흐흐.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가? 이니안?”

바실러스의 시선이 이니안을 향했다.

“뿌드득.”

이니안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순식간에 당해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케라우가 포르시아를 안아들고 공중으로 향하는 그 순간 스켈레톤들은 평범한 뼈다귀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검을 쥔 다프네의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자신이 지켜야 할 고귀한 이가 지금 적의 손에 넘어가 잠들어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을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왜 이유도 없이 밤낮이 바뀐 뱀파이어에게 귀중한 피까지 먹여가며 살려뒀다고 생각하나?”

그의 말에 다프네와 캐서린의 표정이 급변했다. 지금 바실러스가 말하는 대상이 케라우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 보인 케라우는 너무나 아름다운 인간이었지, 절대 뱀파이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후후후. 매일 조금씩 우리 가문 사람의 피를 먹였다. 바로 이 대법을 위해서 말이야. 정해진 주문에 의해 절대적인 충복이 되는 대법. 그것을 위해 귀중한 피를 매일매일 먹였지. 몇 백 년을 살려두면서 대대로 말이야. 솔직히 네놈이 이 녀석을 빼내줬을 때는 상당히 당황했어. 그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이 무척이나 아까웠거든. 그런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크크크. 고맙네, 고마워. 우하하하하!”

바실러스의 커다란 웃음이 나무 사이를 흔들고 지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니안은 자신의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현재 케라우의 두 눈동자는 완전히 초점을 잃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케라우.”

이니안은 작은 소리로 지금 정신을 잃고서는, 잠이 든 포르시아를 품에 안고 있는 자신의 친구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이런 대법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갇혀 있었던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설마 그런 수작을 부려놓았을 줄이야.

자신의 불찰이었다.

“후후후.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자네도 그만 집으로 돌아가게나.”

바실러스는 품에서 한 장의 카드를 찢었다.

“이동.”

그리고 작은 주문을 남기고는 케라우와 포르시아와 함께 사라졌다. 바실러스로서도 자신의 마법만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스크롤 카드를 사용한 것이다.

이니안은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아, 아가씨!”

캐서린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외치는 소리에 이니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바실러스 자작.”

이니안은 한 자, 한 자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공녀님.”

다프네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42장. 너, 나 믿을 수 있지?

“하아…….”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어느덧 다시 찾아온 초여름의 날씨에 눈앞의 정원은 푸르게 물들어 있지만 어느새 자신의 입에 습관처럼 붙은 한숨은 다시 한 번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어머. 이렇게 좋은 날씨에 한숨이라니 어울리지 않네요. 아마 하늘에 있는 해가 기분 상해 할 거예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캐서린은 고개를 돌렸다. 역시 이 집안의 셋째 딸이라는 메이린이었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캐서린은 웃음 띤 얼굴로 인사했다. 하지만 그 웃음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어두운 기운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메이린은 캐서린의 웃음에 생긋 웃어주고는 그녀를 지나쳐 테라스의 난간에 팔을 기댄 채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벌써 일 년이네요.”

메이린의 말에 캐서린은 흠칫했다.

그렇다.

벌써 일 년이 지난 것이다. 포르시아 공녀가 자신의 눈앞에서 납치되고 또 이니안을 따라 그의 집으로 들어온 지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솔직히 무척이나 놀랐다.

이니안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내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대륙제일의 검의 가문이라는 사이몬 공작가의 아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군요.”

캐서린이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메이린이 빙글 몸을 돌리며 밝게 웃었다.

“자자, 얼굴 펴고 활기찬 목소리를 내요. 좀 전에도 말했지만 이렇게 화창한 날 그러고 있으면 이 좋은 날씨에 대한 실례예요.”

손가락까지 까딱거리면서 말하는 메이린의 모습에 캐서린은 억지웃음이라도 지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 일 년 내내 그랬다. 웃음 짓는 다는 것이 어쩜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에휴. 오늘도 실패인가?”

메이린이 한숨을 쉰다.

그녀는 캐서린이 이 저택에 들어온 이후 매일같이 찾아와 캐서린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녀의 노력으로 웃음을 찾아주기에는 캐서린의 가슴에 남은 상처가 너무 큰 탓이다.

“저, 파이어 경은 오늘도 그곳에 가셨나요?”

“그래요. 자신이 약해서 공녀님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오늘도 우리 가문의 기사들이랑 열심히 대련 중이에요.”

다프네도 이니안을 따라 이 저택으로 왔다. 그리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일 년 내내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수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혹사에 가까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눈앞에서 포르시아가 납치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자신의 무력함을 말이다.

“휴우.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직 아무 소식이 없잖아요. 이럴 때는 무소식이 희소식인 법이에요.”

그렇다.

일 년 전 그날 이후 포르시아에 관해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분명 일황자가 데리고 갔는데 결혼을 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마차에서 듣기로 포르시아는 제국으로 돌아가면 곧 일황자와 결혼할 예정이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게 이상했다. 그래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결혼할 예정인 일황자가 데려갔는데 결혼했다는 말이 없으니. 그리고 칸세르 공작가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것은 예상한 일이다.

칸세르 공작가에서는 포르시아의 행적을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포르시아와 연락을 취할 수단만 있는데 그녀가 연락이 없으니 가만히 있는 듯했다.

일황자 측에서 결혼을 하자는 의사를 타진하면 가문에서 호출이 있을 것이라 들었는데 가만히 있는 걸로 보아 아직 일황자는 결혼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식으로 데려간 것일까?’

메이린은 생각에 잠긴 캐서린을 보며 이니안이 돌아온 일 년 전의 그날을 떠올렸다.

그날 이니안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숴 버릴 듯한 기세를 풍기며 가문으로 돌아왔다.

이니안을 맞이한 것은 아버지였다.

사이몬 공작은 이니안이 저택의 정문에 이르기도 전에 먼저 문 앞으로 나가 있었다. 무언가 다가오는 기세를 느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 기세의 주인공이 이니안이었다.

그리고 이니안은 아버지의 서재로 가서 긴 시간을 있었다. 서재에서 나온 직후 그는 저택의 지하 서고와 함께 있는 연무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까지 소식이 없었다.

서재에서 이니안과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메이린은 몰랐다. 하지만 이니안이 왜 그렇게 화가 나서 들어왔는지 이제는 알았다.

이니안이 데려온 두 손님을 통해 대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니안과 함께 온 손님이었기에 대우는 극진했다. 원래 시녀였던 캐서린으로서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지만 이니안이 자신의 손님이라 한 이상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했다.

‘그 덩치 큰 녀석도 말이지.’

케이로스는 사이몬 가의 정원 어딘가에 한가로이 엎드려 있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 들어온 이후 하는 일은 정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나 아니면 엎드려 자는 것이 전부였다.

잠시 동안 더 캐서린의 모습을 지켜보던 메이린은 테라스를 벗어나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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