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54화 (15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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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니안이 눈을 뜨자 그때까지 이니안을 지켜보고 있던 케라우가 물었다.

지난 삼 일간 일행들의 분위기 때문에 묻지 못했던 것을 물은 것이다.

밤이 되어 자고 온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일행을 짓누르고 있었다. 케라우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새신들의 습격이 있었어.”

“그리고?”

그 정도로 이 정도로 호위 인원들이 풍비박산이 날 리는 없었다.

“뱀파이어들이 습격했다.”

“뭐?”

이니안의 대답에 케라우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그도 뱀파이어였으니 말이다.

“몇이었지?”

“여섯.”

“강했어?”

“내가 전력을 다 한다면 둘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수준.”

이니안의 대답에 케라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았냐?”

“비장의 한 수는 늘 지니고 다니는 법이거든.”

“흐음.”

케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그 끝을 알 수 없는 녀석이 자신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결코 웃으면서 할 말이 아닌데도 말이다.

“원족(元族) 녀석들이었겠군.”

케라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원족?”

이니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묻는다.

“그래, 원족. 뱀파이어에는 두 종류가 있어. 원래 어둠의 힘을 받고 날 때부터 뱀파이어였던 일족, 이들을 원족이라 불러. 그리고 뱀파이어에게 물려서 뱀파이어가 된 인간들, 그들을 지족(枝族)이라 부르지. 보통 인간 세상에 알려진 뱀파이어들은 지족이 대부분이야. 원족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

“흐음.”

“원족은 강하다. 지족 따위는 손 하나로 쓸어버릴 만큼. 네가 그렇게 고생을 했다면 원족 녀석들이었던 게 분명해. 그런데 이상하군. 원족이라면 흡혈을 할 목적이 아니면 인간들을 습격하지 않는데.”

이니안에게 설명을 하던 케라우가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넌?”

“응? 뭐?”

“넌 어느 쪽이냐고.”

“훗. 당연히 원족이지. 나의 이 고귀한 모습을 보면 그런 것은 대번에 떠올라야 하는 것 아니야? 크크크.”

케라우의 반응에 이니안이 피식 웃었다.

***

포르시아를 비롯한 다른 두 사람이 눈을 뜬 것은 다음날 오후 늦게였다. 떠나기에는 애매한 때였기에 마을에서 하루 더 머문 후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일행이 마을 밖으로 나오자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던 케이로스가 나타났다.

마을에서 산 식료품이 담긴 배낭은 케이로스의 등에 단단히 매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산 단출한 옷 위에 로브를 두른 포르시아가 케이로스의 등에 올랐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젯밤에 말한 대로예요.”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묻는 이니안의 말에 포르시아는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을에서 쉬면서 마음을 정리한 것일까? 포르시아의 눈이 다시 반짝 빛나고 있었다.

“공녀님…….”

다프네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포르시아를 불렀다. 말려야 하는 것은 알지만 전날 밤 보인 포르시아의 모습이 너무 애틋했다. 그래서 포르시아를 부르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파이어 경, 받아들일 수 없다면 돌아가도 좋아요.”

“알겠습니다.”

다프네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세이버 경,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후우. 알겠습니다.”

이니안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동쪽으로 움직였다.

전날 밤. 여관에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논의를 했었다. 물론 다들 그만 미오나인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포르시아는 꿋꿋이 자신의 고집을 지켰다.

여기서 그냥 돌아간다면 자신의 뜻에 따라 이곳까지 따라왔다가 목숨을 잃은 수많은 병사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그녀의 말에서 오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 오기 밑에 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았기에 차마 강경하게 반대하지 못한 것이다.

이곳으로 향한 것을 누구보다 후회하는 것은 포르시아였다. 그랬기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가 애초의 뜻을 굽히고 제도로 돌아간다면 그녀 때문에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은 그야말로 헛된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것이 포르시아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포르시아는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병사들과 기사들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카일로니아로 가야만 했다.

이동 속도는 빨랐다. 포르시아의 허락하에 캐서린까지 케이로스의 등에 태우고 빠른 속도로 달린 것이다. 다프네 역시 상급의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강자다. 그녀가 낼 수 있는 속도에 맞춰 일행은 꾸준히 동쪽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마차로 이동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소호 왕국과 카일로니아 왕국의 국경까지 오 일이 걸렸다. 이니안의 안내에 따라 경계가 허술한 국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다.

현재 포르시아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품에 지니고 있던 칸세르 공작가의 문장 하나가 유일했다. 하지만 현재의 몰골로 칸세르 공작가의 문장을 내민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국경을 넘기로 했다.

그랬기에 이니안이 그렇게 쉽게 허술한 국경을 찾아내자 다들 은근히 놀랬다.

‘이곳은 여전하군. 하긴…….’

이니안이 일행을 안내한 국경. 그곳은 항상 허술하게 관리된다. 하지만 아는 사람만이 아는 위치다. 아주 교묘한 위치였기에 모르는 사람이 그 지점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곳은 빛의 일족을 찾아갈 때 사이몬 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길이었다. 빛의 일족과 사이몬 가의 친분이 세상에 알려져 좋을 것이 없기에 항상 은밀히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사이몬 공작가의 힘으로 일부러 은밀한 위치에 국경을 허술히 만들어놓은 것이다.

대신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목 몇 곳을 사이몬 가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다음 모퉁이만 돌면 병사들의 초소가 있을 텐데…….’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아무런 검문 없이 국경은 넘을 수 있어도 다음번 모퉁이를 돌면 사이몬 가의 병사들이 은밀히 지키는 곳이 나온다.

‘별 수 없지.’

이니안은 결정을 내렸다.

“조용히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이니안의 말에 포르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한 이니안은 은밀히 몸을 날렸다.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면 눈을 감고도 병사들의 배치 위치를 찾아갈 수 있었다.

마령은신의 보법을 사용하자 이니안은 그야말로 주변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역시.’

이니안이 기억하는 그곳에 병사들이 눈을 빛내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일 년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다섯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렇게 집중하여 지키고 있는 모습이 과연 사이몬 가의 병사다웠다.

‘하지만 잠시만 잠들어줘야겠어.’

이니안은 그들에게 은밀히 다가가 간단히 기절시켰다. 혼혈을 점하는 것으로 간단히 일을 해결한 그는 다시 포르시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됐습니다. 가시죠.”

이니안이 앞장서 걸었다.

길을 가면서도 다른 일행들은 별다른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단지 케라우가 조금 전 이니안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쓰러지는 기척을 느꼈을 뿐이다.

‘은밀히 은신하고 있는 병사들이 있는 모양이군. 이렇게 살펴서는 사람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주변의 지형을 둘러본 케라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니안의 뒤를 따랐다.

“지금부터 빠른 속도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니안이 기절시킨 병사들은 길어야 세 시간 정도 후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집 안에 보고가 들어갈 것이고 몇몇 기사들이 조사를 위해 나올 것이다. 그들에게 흔적을 밟히면 골치 아파지는 것은 뻔한 일. 이니안은 이동 속도를 높였다.

[칼.]

[왜?]

[우리 흔적을 지우고 싶은데.]

[으음. 조금 전의 그 병사들과 관련이 있나?]

[그래.]

[어떻게 해줄까?]

[일단 우리가 조금 전 지나온 곳의 이동 흔적을 지워줘.]

[쉽군. 그럼 다녀오지.]

칼은 잠시 뒤쳐져 병사들이 쓰러진 곳에 실체화했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해 정말 감쪽같이 마치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었던 것과 같이 길을 정리했다.

[됐다.]

[고마워. 그리고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있어?]

[물론 있지. 상당한 고위 마법이라 아무나 사용할 수 없지만.]

칼의 대답에 이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앞으로 하루 정도 가면 마을이 나와. 우리가 그 마을에 들어간 후 이틀 정도 제법 많은 양의 비를 내리게 해줄 수 있어?]

[어려운 일은 아니야.]

[좋아.]

[대신 주의할 점이 있다. 비가 내리지 않을 곳에 인위적으로 비를 내리면 비가 내려야 할 곳에 내리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지?]

칼의 말에 이니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거야 당연한 이치지. 비라는 것은 결국 공기 중의 수증기가 모여서 내리는 거야. 마법을 이용해 다른 곳에 있는 수증기를 억지로 끌어와 비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내려야 할 곳에서는 내리지 않게 되는 거지.]

칼의 말에 이니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곤란한 이야기다. 이 땅에서 비는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특히나 근처에 강이나 호수가 없는 곳은 비가 정말 소중한 존재다.

[그렇다면 강이나 호수의 수증기를 끌어와서 만들 수는 없을까?]

[근처에 있다면 가능하지.]

[소호 왕국을 가로지르는 란 강은 좀 먼가?]

[가능은 해. 하지만 조금 힘들어.]

[그러면 그렇게 해줘.]

[그러려면 너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런 마법을 사용하려면 현재 내 힘의 삼 할은 사용해야 해. 강에 있는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 끌어와 비로 만드는 것은 제법 힘들어. 보통 드래곤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마법이고. 사실 드래곤들이 일부러 날씨를 조종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좋아. 강에서 물을 끌어와 비를 내리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좋아.]

자연스럽게 이동 흔적을 지우는데 가장 좋은 수단은 비와 눈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날씨에는 비다. 다른 방법으로 흔적을 지우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오히려 들킬 수 있다. 그랬기에 이니안은 굳이 힘들더라도 비를 내리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니안은 아직 자신이 카일로니아에 들어왔다는 것을 집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세이버 경.”

“무슨 일이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와중에 다프네가 이니안의 곁으로 다가와 그를 불렀다.

“뉴레이안 산맥 말입니다.”

“네.”

“버티컬 산맥에서처럼 쉽게 넘는 방법이 있을까요? 솔직히 공녀님께서 그곳을 넘는다는 것은… 아무리 케이로스의 등에 타고 계시다 해도 말이지요.”

다프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있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는 중입니다.”

이니안의 대답에 다프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다행이네요.”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에 이니안은 그저 웃을 뿐이다.

하루를 달려 마을에 들어갔을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칼이 마법을 사용해 내린 비다. 비는 이틀을 내리 내렸기에 일행들은 여관에서 쉬었다. 빠른 속도의 이동으로 인해 쌓인 피로가 갑작스러운 비 덕에 충분히 풀렸다.

‘그 길로 가야겠지. 역시.’

이니안은 창가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우연히 발견한 길이다. 그리고 운이 좋아 그 길로 다니는 허락을 얻었다. 버티컬 산맥의 드워프의 길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의 길이라면 그 길은 이제는 자신만이 아는 길이다.

예전에는 두 사람이 아는 길이었으나 이제는 이니안 혼자만 알고 있다. 적어도 이니안이 알기에는 그랬다.

“내일이면 비도 그칠 테니까.”

“응? 내일 그쳐? 그렇게 빨리 그칠 비로는 안 보이는데?”

이니안의 혼잣말에 케라우가 끼어들었다. 그의 말대로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쉬이 그칠 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니안이 칼에게 요구한 기한은 이틀. 내일 아침이면 쾌청한 하늘이 자신들을 맞을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알 거야.”

그 말을 남기고 이니안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내상도 이제 거의 완치 단계에 접어들었기에 편안히 침대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이니안이 잠자리에 들자 케라우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방을 밝히는 불을 끄고 침대에 들어갔다. 어쨌든 지금은 해가 진 밤이다. 사실 깨어 있는 것이 가장 힘든 이는 케라우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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