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52화 (15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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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콰앙! 콰콰콰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사방을 뒤덮은 엄청난 폭풍.

주변에 흩어져 있던 마차의 잔해가 휘날려 감은 물론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던 시신들이 갈가리 찢겨 날아갔다. 주변에 드문드문 있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날아가거나 아예 박살이 나 스러지기도 했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사이로 밝은 빛을 발하는 구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을 뒤덮은 흙먼지도 그 구체를 피해 흩날렸다.

칼이 만들어낸 방어 마법, 샤이닝 실드와 앱솔루트 실드를 동시에 펼친 마법의 구체는 바깥의 샤이닝 실드는 깨지고 안쪽의 앱솔루트 실드만이 겨우겨우 폭발의 여파를 막아냈다.

“이게 대체…….”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포르시아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앱솔루트 실드의 바깥을 바라보았다.

“세이버 경,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캐서린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인간이 맞단 말인가…….”

다프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검은 머리의 사내가 방어 마법을 사용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저 폭발에 휩쓸려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그런 폭발을 만들어낸 이니안이 과연 인간일까라는 의구심이 세 사람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헉헉헉.”

이니안이 검을 움켜쥐고 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번의 일격에 가진 힘을 모두 쏟아 부었기에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으윽. 제법이군.”

마령천참멸의 일격에 휩쓸렸던 여섯의 뱀파이어는 낭패스러움이 역력히 드러나는 얼굴로 이니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팔, 다리 중 일부가 처참하게 일그러진 몰골이었다. 하지만 곧 상처 부위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면서 복구되었다.

단지 갈기갈기 찢어진 옷자락이 그 아래에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거 희귀한 망토인데 못 쓰게 됐군.”

“상관없지. 어차피 이 일의 대가로 받은 거니까.”

“그렇긴 해.”

그러나 이니안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자신들을 이렇게 궁지에 몬 것에 대한 분노다. 여섯 중 몇몇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느꼈으니 그 분노의 크기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쳇. 한 놈도 못 잡았군. 헉헉.”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여섯 뱀파이어의 모습에 이니안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힘을 모두 소진해 겨우 서 있는 모습, 뱀파이어들의 입가에 살기가 가득한 섬뜩한 미소가 맴돈다.

“훗, 네놈, 처참하게 죽여주마. 우리를 이렇게 몰아붙인데 대한 상으로 말이다.”

붉은 눈이 광채를 발한다. 그리고 여섯은 손톱을 뽑아내 동시에 이니안을 향해 날아 내렸다.

“꺄악!”

그 모습에 포르시아가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보기에도 이니안은 곧 저들의 손톱에 갈가리 찢길 것만 같았던 것이다.

“으윽.”

마지막 힘을 쥐어짜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체력과 마나가 다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기에 검의 움직임은 거북이처럼 느리기 짝이 없었다.

느린 검 사이를 헤치며 뱀파이어들의 손톱이 이니안의 몸을 할퀴고 지나간다. 그사이로 붉게 흘러나오는 피.

“달군.”

“좋은 맛이야.”

자신들의 손톱에 묻어나온 이니안의 피를 혀로 핥는 뱀파이어들의 눈이 강렬한 욕구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흡혈의 욕구. 바로 그것이 그들의 눈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깨어난 후 아직 단 한 번도 피를 마시지 못했어.”

“그래. 생각이 바뀌었다. 네놈, 피를 모두 빤 후 죽여주마. 흐흐흐.”

흡혈의 욕구에 지배당하기 시작하자 뱀파이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달라졌다. 섬뜩하고 어둡기는 했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던 기세가 광포하게 변했다. 마치 욕망에 지배당해 폭주하는 짐승들과도 같았다.

‘훗. 그때의 케라우 녀석 같군.’

로즈를 앞에 두고 흡혈의 욕구에 잠시 지배되었던 케라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칼, 네 힘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걸. 네 허락 없이 1할을 끌어다 쓸 수 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말이야. 나도 피를 빨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거든.]

[훗. 네가 쓸 수 있는 1할은 이미 조금 전 일격에 모두 썼어.]

[그런가? 어쩐지 힘이 하나도 안 남았다 생각했어. 일격에 끝내겠다는 생각에 쓸 수 있는 힘은 모두 쓰자는 생각으로 검을 내질렀으니까.]

[나의 허락이 있으면 넌 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들을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힘의 양이 2할. 그리고 조금 전 네가 모두 써버린 1할을 빼면 네가 쓸 수 있는 힘은 7할이다.]

칼의 대답에 이니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조금 전의 일격에 칼의 힘이 1할이 담겼다고 한다면 자신의 모든 힘은 칼이 가진 힘의 2할 이하다.

결국 칼의 힘을 얻으면 평소의 세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거면 충분해.]

[그래. 물론 충분하지. 하지만 네 몸이 버틸 수 있을까, 그 정도의 힘을? 단순히 힘을 품고 있는 것과 힘을 사용하는 것은 달라.]

[알아, 그 정도는. 하지만 해봐야지.]

이니안의 눈이 결연히 빛났다.

[아니면 내가 나설 수도 있다.]

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니, 이건 나의 싸움이고 나의 일이다. 너는 힘만 빌려주면 돼.]

이니안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나, 칼그레이언은 영혼의 맹약자 이니안 케이 사이몬이 나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노라.]

칼의 말이 있은 후 이니안은 온몸을 차고 올라오는 어마어마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한 겹의 옷을 껴입고 있는 듯하던 힘이 이제는 녹아서 몸 안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엄청나군.”

“크크크. 그래 엄청나지. 기대해라.”

이니안의 중얼거림을 잘못 이해한 뱀파이어 하나가 괴소를 흘리며 한 발짝 다가섰다.

그 순간 이니안의 눈이 빛났다. 그와 동시에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 뱀파이어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큭. 뭐냐?”

“몸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니, 속전속결이라는 거지.”

잔인한 미소와 함께 움직이는 검, 정확히 뱀파이어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검신에서 푸르게 타오르고 있는 청광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뭐, 뭐냐? 힘이 다한 것 아니었어?”

이니안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다섯의 뱀파이어가 당황한 얼굴로 우왕좌왕했다. 그들의 동료 하나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쳇.”

그중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이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블러드 파이어 블래스트!”

다시 한 번 온몸이 붉게 물들며 엄청난 마법이 이니안을 향해 쏘아졌다.

“창천광휘!”

같은 수법의 검이었지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검에 담긴 힘이 달랐기에 그 위력도 달랐다. 푸른 빛 광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붉은 빛과 부딪쳤다. 아니, 부딪쳤다 싶은 순간 붉은 빛을 깨부수고 뱀파이어를 덮쳤다.

“뭐, 뭐야? 말도 안 돼!”

자신을 집어삼키는 푸른빛을 향한 마지막 절규를 남기고 또 하나의 뱀파이어가 소멸되었다.

“이제 넷인가?”

주변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두 명의 동료를 잃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인간 녀석에게 말이다.

“젠장, 쳐!”

한 뱀파이어가 그렇게 말하며 이니안에게 달려들었다. 섬뜩하게 빛나는 손톱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이니안의 다리를 쓸어갔다.

상대의 공격에 빙그레 웃음 지은 이니안이 살짝 몸을 돌린다. 가벼운 동작만으로 이니안은 상대의 공격을 완벽히 피했다. 검이 들린다. 그리고 자신을 공격해 온 뱀파이어의 허리로 떨어진다.

“블러드 캐논!”

“다크 스피어!”

두 곳에서 이니안을 향해 마법이 날아왔다. 내려가던 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궤도를 바꿨다. 두 방향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향해 단순한 직선을 그리면서 검이 움직였다.

콰쾅!

폭음이 울렸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검은 완벽하게 마법을 무효화시켰다. 그와 동시에 발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한 뱀파이어의 앞에 도달해 있다.

“어림없다! 다크 블리자드!”

펼쳐진 손바닥에서 검은 눈보라가 몰아쳐 나왔다. 손바닥만 하던 눈보라가 곧 이니안의 전신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눈보라를 가르고 날아가는 검.

“청검밀밀.”

아니, 눈보라를 가르는 듯하다가 완벽하게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뭐, 뭐냐?”

날카로운 손톱을 교차시킨 자세로 자신을 덮쳐올 이니안의 검을 대비하던 뱀파이어는 갑작스레 사라진 검에 당황했다. 정확히는 이니안이 자신을 향하던 순간부터 당황해 있었다.

“네가 죽는다는 거지.”

낮은 목소리와 함께 옆구리를 파고드는 화끈한 느낌.

“으윽.”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나는 사이 옆구리를 찔렀던 검이 뽑히는가 싶더니 허리를 쓸고 지나갔다. 그렇게 또 하나의 뱀파이어가 목숨을 잃었다.

다음 뱀파이어를 노리기 위해 곧바로 몸을 돌리는 찰나, 세 명의 뱀파이어가 한데 모여 손을 앞으로 뻗었다.

“헬 파이어 스톰!”

셋은 힘을 한데 모아 9서클의 화염 마법을 이니안을 향해 쏘았다. 한 명씩 상대하다가는 자신들의 수만 줄어들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의 조치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보랏빛 불꽃의 폭풍에 이니안은 긴장했다. 조금 전 상대했던 여섯 개의 붉은 빛 못지않은 위력이었던 것이다.

“마령천참멸!”

다시 한 번 펼쳐진 마령천참멸.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끝장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검을 뻗었다.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힘이 검으로 쏟아져 나갔다. 그리고 이어져 터져 나오는 보랏빛 불꽃과의 충돌.

콰아아아아.

커다란 두 개의 힘이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의 대결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다.

곧 이니안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힘이 보랏빛 불꽃을 압도해 가더니 결국은 세 명의 뱀파이어까지 집어삼키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끝인가? 후우.”

완전히 사라진 뱀파이어의 모습에 이니안은 나직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정말이지 모든 힘을 짜낸 싸움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전력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도 처음이었다. 자신이 이 정도까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하면 되는군.”

이니안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어렸다.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은 싸움이기도 했다.

“세이버 경.”

뱀파이어를 모두 처리하자 칼은 앱솔루트 실드를 거두었고 포르시아가 곧장 이니안을 향해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걱정과 기쁨, 안도가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녀님.”

이니안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포르시아를 맞았다.

“쿨럭.”

포르시아가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온 찰나 이니안은 작은 기침과 함께 검은 피를 토했다.

“세… 이… 버 경?”

갑작스러운 이니안의 모습에 포르시아의 걸음이 멈칫했다.

“헉헉. 조금 무리를 해서 그렇습니다. 잠깐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검으로 땅을 짚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쯧쯧. 몸이 못 버틸 거라고 했지?”

“훗. 확실히 그렇군.”

어느새 곁에 다가온 칼의 말에 이니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리커버리.”

칼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이니안의 몸을 뒤덮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야. 다음은 너 하기 나름이다.”

그 말을 끝으로 칼이 사라졌다. 포르시아를 습격하는 이들을 모두 처리했기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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