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47화 (14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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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이제 숲이 보이네요?”

그때 마차의 창이 열리며 포르시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네, 결계를 빠져나왔습니다.”

“정말로 나올 때는 들어갈 때랑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네요.”

“원래 무단으로 침입하는 자를 막기 위한 결계니까 굳이 빠져나가는 이들을 방해할 필요는 없죠.”

이니안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가야 하죠?”

“조금만 내려가면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하루 정도 거리지요. 그리고 이 숲은 한 나절 정도면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노숙을 한 번은 해야겠군요.”

“네. 숲을 빠져나가는 대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겁니다.”

과연 이니안의 말대로 숲을 벗어나는 데는 딱 한 나절이 걸렸다. 그리고 숲을 벗어나자 서서히 하늘이 어둠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자주 다녀본 곳인 듯 이니안은 익숙하게 노숙할 곳을 정하고 병사들을 쉬게 했다. 포르시아는 마차에서 나와 잠시 바람을 쐬며 찌뿌드드해진 몸을 움직인 후 다시 마차로 들어갔다.

드워프들이 만들어준 마차는 훨씬 편리하고 안락해져서 여간해서는 나오기 싫을 정도였다.

조금 전에도 몸을 너무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는 다프네의 채근에 잠시 주변을 걷기 위해 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조용히 평화로이 흘러갔다.

불침번을 맡은 병사들이 작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고 사위는 어둠에 잠겼다. 이니안은 넙죽 엎드려 있는 케이로스의 옆구리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었고 케라우는 이미 완전히 모포를 뒤집어쓰고 잠에 빠진 지 오래다.

고요한 밤이다.

“나무꾼이나 약초꾼이 아니었나 보군.”

하늘에 총총히 걸린 별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이니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케라우.”

“미안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무리야.”

케라우도 잠이 든 와중에 같은 것을 느낀 것인지 이니안의 부름에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쳇.”

이니안은 충분히 그의 목소리에서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 걸리적거리지 않게 적당히 피해 있어.”

“알았어.”

이니안의 말에 케라우는 모포를 온몸에 감은 채 일어나서는 마치 좀비와 같은 걸음으로 마차가 있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움직이는 케라우였지만 어느새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동했다.

“응? 케라우님이 왜 저러시지?”

그 모습에 불침번을 서던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모두 깨워라.”

그때 소리없이 다가온 이니안이 나직이 말하고 몸을 돌렸다.

“네, 넷!”

기척도 없이 다가온 이니안의 말에 깜짝 놀란 병사가 대답을 하고는 서둘러 여기저기 모포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깨웠다. 이니안이 지시한 것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똑똑.

마차의 창문을 살짝 두드리자 곧 창문이 열리며 다프네의 얼굴이 나타났다.

“무슨 일입니까, 세이버 경?”

“아무래도 습격이 있을 듯하군요.”

그 말에 다프네의 표정이 단번에 바뀌며 날카롭게 변한 눈매로 주변을 살폈다.

“분명, 이곳저곳에서 기척이 느껴지는군요.”

다프네가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하이 나이트의 실력은 그저 얻은 것이 아닌지 아직 병사들이나 심지어 다른 기사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기척을 그녀는 쉬이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 정도로 깨울 일은 아닌 듯합니다만. 경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터인데…….”

분한 일이긴 하지만 그녀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이 느낀 정도의 기척이라면 눈앞에 서 있는 이니안의 실력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계속 모여들고 있습니다. 아마 그 수효가 몇 백은 될 듯하군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심각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다프네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느낀 기척은 기껏해야 열 명 안팎이었던 것이다.

‘대체 소드 마스터라는 존재는 인간의 한계를 어디까지 넘은 거야?’

자신이 느끼지 못했다면 적어도 반경 이 킬로미터 안에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 범위 밖에 있는 적들의 존재를 알아차리다니 정말이지 질려도 끝이 없는 실력이다.

“알겠습니다. 주의하고 있겠습니다.”

“네. 그리고 혹시 모르니 공녀님을 깨워두십시오.”

이니안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고 다프네는 마차의 창을 닫았다.

“무슨 일입니까?”

기사들 중 대표를 맡고 있는 허그가 이니안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곧 습격이 있을 것이다. 수는 대략 육, 칠백. 어새신들이다. 정신 차리고 마차를 지켜라.”

그 말에 병사들이 술렁였다. 자신들의 숫자는 기껏해야 오십 명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몇 백 명이 넘는 어새신들이 공격해 올 것이라고 하니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이상했다.

“조용! 마차를 원형으로 둘러싸 보호한다!”

마나를 담은 목소리로 소리치자 술렁임이 조금 줄어들었으나 병사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 제법 힘들지도.’

병사들의 얼굴에서 그런 불길함을 느꼈다. 차라리 자신 혼자서 마차를 지키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지만 말이다.

병사들이 마차를 둥글게 둘러싸며 대형을 만들기 시작하자 자신들의 접근이 발각되었음을 알아차린 어새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티컬 산맥 안에 있을 때면 모르나 이런 평원에서는 솔직히 어새신들이 공격하기에는 상당히 난감한 지형이었다.

어새신 최고의 강점인 암습을 할 수 없는 지형인 것이다.

빛을 반사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검게 칠해진 롱소드를 들고 있는 인영들이 천천히 병사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검을 쥔 병사들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몇몇은 가늘게 몸을 떨기도 했다.

“무슨 일이죠?”

그때 마차의 창문이 살짝 열리며 포르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새신들입니다. 마차 안에서 꼼짝도 하지 말고 계십시오. 파이어 경이 지켜 드릴 겁니다. 밖은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믿음직한 말에 포르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열었던 창문을 닫았다. 그녀는 아직 습격해 온 어새신들의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

“그래, 찾았다고? 그거 다행이로군.”

소파를 돌리고 앉은 사내의 얼굴에 오랜만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

보고를 하는 부하 역시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이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어디에 꼭꼭 숨었길래 이제야 나타난 걸까? 나타난 곳이 어디지?”

“버티컬 산맥 초입부입니다.”

“뭐야?”

그 대답에 사내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렇다면 산맥 속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단 말인가? 대체 그 넓은 산맥 속 어디에서?”

“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마차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산맥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버티컬 산맥의 험준함은 유명했다. 대륙을 동서로 나누어 자연스럽게 국경을 만들어 버릴 정도의 산맥인 것이다. 그 산맥을 넘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으음, 하지만 산맥에 들어간 후 완전히 종적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랬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도 처음 발견한 이의 말을 들어보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듯 나타났답니다. 자신이 잠시 다른 곳을 살피는 사이 아무것도 없던 숲에서 순식간에 병사들과 마차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으음…….”

수하의 보고에 소파에 앉은 사내의 얼굴에 다시 주름이 생겼다. 이건 발견해도 문제였다. 그사이의 행방이 명확하지 않으니 발견하고서도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라… 이동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닐 텐데… 그것 참…….”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발견했으니 괜히 머리 쓸 필요는 없겠지.”

사내는 곧 그사이 그들의 행방을 유추하는 것을 포기했다. 정말로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이다.

“마지막 연락이 그들이 노숙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 곳에 습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여덟 곳 모두 투입되는 건가?”

“네. 지금까지 경험한 것이 있었기에 가진 전력을 모두 한 번에 투입하라고 했습니다.”

“잘했어. 이만 가보도록.”

“네.”

모처럼 칭찬을 들으면서 끝났다. 방을 물러나는 그의 입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훗. 그러면 그들도 그리로 향했겠군.”

소파에 앉은 사내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어린다. 그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지시한 일. 자신이 비장의 한 수로 키워놓은 이들을 움직인 것이다.

“어차피 어새신들로서는 그 괴물 같은 녀석을 어찌할 수 없을 테지. 후후후. 그럼 나도 슬슬 가봐야 할 시간이군.”

그는 나직한 웃음을 어둠에 잠긴 방에 남긴 채 소파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난 통로를 통해 사라졌다.

***

밤하늘의 달빛을 가르며 검이 지나간다.

“으악!”

그와 동시에 요란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어새신의 검에 당한 병사의 입에서 터진 비명이었다.

“젠장.”

마차를 지켜야 하기에 멀리 움직일 수 없는 이니안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새신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았다. 암습이 아닌데도 두 명이면 기사 하나를 너끈히 상대했고 병사들은 일 대 일로도 압도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A급이다. 그런데 이런 수라니. 대체 어떤 녀석이야.”

이미 포르시아가 기억을 잃었을 때부터 그녀를 노리던 어떤 존재가 있음은 알고 있었다. 삼천 명에 이르는 적들과 싸웠던 그 지긋지긋한 기억도 여전했다.

하지만 공녀의 신분을 되찾은 지금도 이런 습격이라니. 이니안의 감각에 잡히는 어새신들의 숫자는 적게 잡아 칠백, 많이 잡으면 팔백 정도였다.

‘이건 그때보다 더하군.’

어새신 같지도 않은 녀석들이 수로 밀어붙이던 그때와는 달랐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어새신 수백은 이니안으로서도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젠장. 꼭 아쉬울 때 써먹질 못한다니까.”

정말로 아쉬웠다. 케라우가 해가 져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케이로스, 최대한 처리해.]

이니안의 명령에 케이로스가 날래게 움직였다. 그나마 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이런 어새신들이 아무리 많아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별다른 실력도 없는 너저분한 녀석들이었지만 그래도 삼천이나 되는 수를 상대했던 이니안조차도 마주 보지 못할 위력을 가지고 있는 케이로스다.

아우우우!

케이로스가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어새신들은 물론 병사와 기사들까지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케이로스를 쳐다봤다. 그 울음에 담긴 위력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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