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45화 (14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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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으음. 그러면 힌트를 조금 줄까?”

“응?”

나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얘는, 그렇게 보지마. 부담스럽잖아. 나는 검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검법만 익히려고 하지마.”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검법 이외에도 검법을 보조해 주고 검법의 위력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다른 무공도 찾아서 익히라고. 왜 우리 가문 무공도 이십사수매화검만 있는 게 아니잖아? 오행매화보는 검법이 아닌 보법이라고. 이 서고에 이십사수매화검보다 뛰어난 검법이 있듯이 오행매화보보다 뛰어난 보법도 있겠지.”

누나의 말에 내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검으로 형을 꺾는 것에만 너무 집착하다가 작은 나무만을 보고 있었다. 대결이라는 큰 숲은 보지 못한 채 검법이라는 작은 나무에만 얽혀 있었던 것이다.

“아! 알았어, 누나. 고마워.”

“그럼, 어서 연무장으로 가서 수련이나 열심히 해. 난 책 읽어야 하니까 방해하지 말고.”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 주고는 지하 서고를 나왔다. 그런 나의 한 손에는 가검이 들려 있었다. 이곳에 내려오면서 미리 챙겨온 것이다.

지하 연무장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넓은 지하 광장이다. 서고 옆에 딸린 조그만 방에는 보존 마법이 걸린 벽곡단이라는 것이 있다.

곡식으로 만든 작은 구슬같이 생긴 음식인데 하루에 세 개 정도면 끼니를 대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하수를 연결한 작은 샘도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서 일 년 정도 지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서고의 책과 그 방의 물과 벽곡단이 지하 연무장의 모든 것이다. 즉, 병기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내려오면서 가검을 챙긴 것이다.

연무장 한가운데로 온 나는 검을 들어 천천히 청룡검의 세 초식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나의 땀이 검끝에 맺혔다. 하지만 난 그런 사실도 잊고 열심히 검을 움직였다. 이제 시작이기에 더욱더 노력해야 했다.

“이니안.”

그때 귀로 나의 이름을 부르는 막내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만 가자. 벌써 저녁때야. 점심도 건너뛰었다고.”

응?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나는 검을 움직이는 걸 멈추고는 몸을 돌려 연무장의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막내누나가 먼저 와 있었다.

“에휴, 이 땀 좀 봐. 정말 열심히 했나 보네.”

나의 얼굴을 본 누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흠뻑 적신 땀을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언제 기관을 작동시켰는지 문이 서서히 열렸다. 저택의 1층에 올라왔을 때,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역시, 메이린 고모는 대단해.”

아이덴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런데 그 사신검이라는 거, 아빠가 익히고 있었어?”

“아니, 아빠가 익힌 검법이랑 달라.”

네이라의 물음에 아이덴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네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658년 11월 1일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느라 모두들 수고 많았다. 이번 주도 벌써 끝났는데 다들 알고 있듯이 2주 후면 중간고사다. 알아서들 철저히 대비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럼 오늘 종례는 여기까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을 남기시고 담임 선생님은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그 한마디에 나는 침울의 끝이 어디인지를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나의 어깨를 옆에 앉은 마일론이 툭툭 쳤다.

“형, 어떻게 할 거예요?”

“응? 뭘?”

갑작스러운 물음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묻자 마일론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뭐긴요. 중.간.고.사. 말이죠. 1학기 첫 시험인데 잘 봐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음… 또 형은 우리보다 두 살이나 많잖아요.”

마일론의 말에 나의 걱정은 도를 더하고 있었다. 이 녀석의 말대로 잘 봐야 할 텐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한숨 섞인 나의 말에 마일론은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낙관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왕립학교의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래?”

그래 봤자 편입 시험 정도이겠거니라는 생각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 그래 봤자 편입 시험 정도겠지, 라고 생각했죠? 방금?”

가끔 느끼는 건데 이 녀석은 정말 무섭다. 어쩜 그렇게 내 생각을 정확하게 짚어내는지…….

찔끔한 나의 얼굴을 보며 마일론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하지만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편입 시험은 어디까지나 최저한의 학력을 알아보는 시험이라고요. 게다가 귀족들의 체면을 고려해서 상당히 쉽게 나오죠. 본 시험은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요.”

팔짱을 턱 하니 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마일론의 모습에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편입 시험보다 어렵다고? 나에겐 편입 시험도 충분히 어려웠다. 물론 답을 밀려 써서 6학년이 되긴 했지만 말이지.

“어떻게 하지, 그러면? 너도 알다시피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자신이 없네.”

“특히 수학 말이죠?”

마일론은 나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의 말에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있죠.”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살며시 말하는 마일론을 향해 나의 고개가 급격히 들어 올려졌다. 녀석의 말은 나에게는 어둠 속의 한줄기 광명이나 다름없었다.

“뭔데? 뭐야?”

양어깨를 세차게 흔들며 묻자 마일론이 손을 들어 나를 진정시켰다.

“잠깐만요. 진정해요, 형.”

다급한 마일론의 말에 나는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자 그 관성으로 마일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마일론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아, 아야… 너무한 거 아니에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사람에게?”

“아, 미안. 너무 흥분해서. 그래 그 방법이라는 게 뭔데?”

내가 양손을 가운데로 모으며 미안한 감정을 잔뜩 힘주어 얼굴에 들이밀자 녀석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좀 많죠. 그걸 다 잘할 수도 없고요. 게다가 몇몇 과목은 오로지 실기만으로 평가하죠. 일주일 동안 수업 없이 시험만을 치면서 말이죠.”

“그렇다고 들었어.”

“형, 솔직히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런 걸 다 잘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진지한 마일론의 물음에 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형이 있잖아.”

“큭. 형, 지금 그런 재미없는 말을 농담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슈데인 선배가 어디 사람입니까?”

하긴 그렇긴 하다. 마일론은 나에게 사람으로 태어나서라는 조건을 걸고 이야기했는데 내가 그 조건을 무시해 버렸으니….

그런데 형은 사람이 아니면 대체 어떤 존재일까? 단순히 괴물이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형인데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왕립학교의 학생들은 몇몇이 보여서 작은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요. 서로 자신있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모자라는 것을 보완하는 거죠.”

“호오? 그런 방법이 있구나.”

마일론의 말에 나는 중간고사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다.

“하.지.만. 형이 들어갈 스터디 그룹 따위는 없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돌파구를 찾았던 생각에 하늘을 가벼이 노닐던 내 기분은 지하까지 추락해 버렸다. 그만큼 마일론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이미 스터디 그룹은 모두 차버렸거든요. 새로이 끼워줄 여지가 없죠. 게다가 형처럼 잘하는 게 검술뿐인 사람은요.”

듣고 보니 그랬다. 아직 나는 나의 실력을 검술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말이다. 워낙 조용히 지내서 그런 것인가?

“그럼 어떻게 하지?”

“방법이 있죠.”

조금 전에 했던 것과 완전히 꼭 같은 말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마일론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조금 사나워졌다. 나의 눈길을 느낀 것인지 마일론이 이마에 땀이 조금 맺힌 상태로 빠른 속도로 설명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반에 그런 스터디 그룹에 들지 않은 아이가 몇 있어요. 그 아이들을 모아서 새로이 만들면 되죠. 이슈데인 선배도 혼자였는걸요. 그리고 또 이슈데인 선배보다는 못한 감이 있지만 그에 비견될 만한 천재가 있잖아요.”

마일론의 시선을 따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제 탈의실로 가려는 쉐이나가 있었다.

“쟤도 스터디 그룹 없어?”

“부족한 게 없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나의 물음에 마일론은 빙긋 웃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이제야 마일론이 말한 방법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현재 스터디 그룹이 없는 사람은 저랑 파르미안이에요. 다들 형과 관계가 깊은 사람이죠.”

“어쩌다가?”

“파르미안이야 원래 혼자 놀기 좋아하던 녀석이고요. 저는 전략, 전술을 제외한 과목에는 관심도 없었고 혼자 해도 적당한 성적은 나왔으니까요.”

정말이지 그럴듯한 이유였고 그럴듯한 녀석들만 스터디 그룹이 없었다.

“그러면 난 쉐이나에게 부탁만 하면 되겠네. 그렇지 않아도 내가 검술을 가르쳐 주고 있으니까.”

내가 가만히 중얼거리자 마일론이 나를 보며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말고 아예 형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면 어때요?”

“응? 겨우 두 명으로?”

“왜요, 둘이 더 있잖아요.”

어라? 가만 보니 이 녀석, 지금까지 말한 의도가… 전략, 전술이 좋다고 하더니 벌써부터 이런 쪽으로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구나.

“넌 성적에 관심 없다며?”

내가 자신의 의도를 간파했음을 알아차린 마일론이 멋쩍은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이제 고학년이니까요. 왕립 군사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면 성적 관리에 들어가야죠.”

마일론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목적은 이것이었다.

왕립아카데미에 들어가려면 입학 시험도 중요하지만 왕립학교에서의 성적도 중요했다. 특히나 각 아카데미의 전공이 되는 과목들의 기초 성적이 중요했는데 그 과목들은 6학년부터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과목의 성적을 안 보는 것도 아니었다.

즉, 6학년 성적부터는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수하게 받아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마일론 이 녀석도 슬슬 다른 과목 성적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스터디 그룹인데 아까 자신이 말했다시피 이미 자리가 남은 스터디 그룹은 없었다.

한데, 학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쉐이나 역시 스터디 그룹이 없었으니 쉐이나와 잘 엮기만 하면 마일론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까 말했다시피 쉐이나는 아쉬울 게 없는 아이다. 단 하나, 검술을 제외하고는. 하지만 검술에 실력이 없기는 마일론 역시 쉐이나와 수위를 다투었기에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마일론 이 녀석은 쉐이나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나를 이용한 것이다. 내가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쉐이나에게 말하면 당연히 들어올 것이다.

내가 쉐이나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으니까. 거기에 자신도 들어가면 된다는 계산인 것이다.

참, 생각하면 할수록 녀석다운 술책이었다. 아니, 잔머리라고 해야 하나? 그 잔머리에는 감탄을 했지만 솔직히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결국 나를 이용하려고 한 것 아닌가? 나는 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이용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그렇게 커왔다.

자존심 하나면 왕가를 제외하고는 최고라는 사이몬 가문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그런 내가 누군가가 나를 이용하려 하는 걸 좋아할 리 있겠는가.

“후우… 마일론.”

“예.”

갑자기 나의 기세가 변했다는 걸 느꼈는지 마일론은 조용히 대답했다.

“너는 이 반에서 나랑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다가 내가 편입한 첫날같이 앉게 된 인연이지만 말이다.”

“네.”

“처음이니까 내가 그냥 넘어갈게. 그리고 너에게 말해둔 적도 없으니까.”

내 말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인지 마일론은 아무런 말없이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빛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난, 누군가가 나를 이용하려 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물론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내가 충성을 바쳐야 할 국왕 폐하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얄팍한 수를 가장 싫어해. 아니, 증오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앞으로 나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냥 부탁해라. 친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면 가급적 들어주도록 노력할 테니까 말이야.”

“미안해요, 형.”

마일론은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했기에. 그 한마디만을 한 채 가만히 있었다. 마일론과 나 사이의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무척이나 괘씸했지만 또한 이 반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리고 몰랐을 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래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기로 했다.

“후우… 봐주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옛!”

마일론의 활기찬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변화무쌍한 녀석이다. 언제 그렇게 풀이 죽어 있었냐는 듯 저 기운찬 모습이라니.

“그럼 따라와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오늘 그 스터디 그룹을 만들지, 뭐.”

“헤헤. 고마워요, 형.”

나는 교실을 나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미 연무장의 문은 열려 있었다.

파르미안을 가르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이런 일은 파르미안이 자청했기에 이미 열쇠를 그에게 넘긴 터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연무장을 사용한 첫날 문을 안 잠그고 돌아간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연무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수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먼저 알렉스 아저씨와 대련을 한 시간 했고, 그사이 파르미안과 쉐이나는 각자 연습했다.

그리고 아저씨와의 대련이 끝난 후 둘을 두 시간 정도 가르치는 걸로 검술 강습은 끝을 맺었다. 강습이 끝난 후 나는 파르미안과 쉐이나에게 스터디 그룹 이야기를 꺼냈다.

“좋아요.”

쉐이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이제 쉐이나는 이야기를 할 때 말을 더듬지도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왜 그런 것일까?

“파르미안, 너는?”

“형이 하자고 하는데 저도 해야죠.”

파르미안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리고 이 녀석도 같이 해도 되겠지?”

한쪽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마일론의 목을 잡아 앞으로 끌어당겼다.

“물론이죠.”

둘 모두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 이만 갈까?”

내가 돌아서며 말하자 쉐이나가 주저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저, 저… 저…기…….”

응? 쉐이나는 또 말을 더듬으며 얼굴이 붉어졌다. 최근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그냥 들었다.

“고, 공부할 게 많아요. 그런데 스터디 그룹은 너무 늦게 만들었고요. 괜찮다면… 이번 주말에는 저, 저… 희 집에서 다, 다 같이 공부하는 게 어때요?”

말을 마친 쉐이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숙였다.

저게 뭐 대단한 말이라고 저렇게 힘들게 말하는 걸까?

“난 괜찮아. 너희는?”

“저희도 괜찮아요.”

그 대답으로 내일은 쉐이나의 집에서 다 같이 공부하는 걸로 결정 났다. 그 결정이 내려졌을 때 쉐이나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렸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를 빼고는 말이다.

“으음… 제법인데? 공부를 가장해 자연스럽게 자기 집으로 아빠를 불러들이다니?”

네이라는 어느새 작은 주먹을 꼬옥 쥐고는 눈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자신은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이 일기에 적힌 내용은 모두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의 일인 것이다.

“왜 그래?”

동생의 행동에 아이덴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일기를 읽을수록 동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몰라도 돼. 오빠가 어떻게 여자의 오묘한 심리를 알겠어? 그나저나 이 쉐이나라는 사람, 순진한 척하지만 상당한 여우잖아?”

네이라가 일기장을 넘기기 위해 뻗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아마 자신의 아빠를 노린 엄마 이외의 여자 때문이리라.

네이라는 일곱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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