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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타라 족장의 안내로 사람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신기한 것이 분명 드워프의 마을인데 모든 길과 건물들의 크기는 마치 인간들의 체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아니, 그랬다. 단지 드워프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하지도 않게끔 안배가 되어 있다 뿐이지 크기는 인간 마을의 그것과 같았다.
“하하하. 집과 길의 크기가 신기한가 보군요. 드워프의 마을이라면 응당 작아야 할 텐데 모든 것들이 인간들의 크기에 맞게 큼직큼직 하니 말이오. 사실 우리는 이 정도로는 별로 불편하지 않다오. 충분히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 크기에 맞춰서 마을을 작게 만든다면 가끔 오는 인간 손님들이 불편할 것 아니오. 그들을 배려해야 하지요.”
일행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가장 처음 창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던 몬타라는 드워프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포르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읽은 책에 나와 있는 드워프의 성격과는 많이 다른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책으로부터 얻은 드워프에 대한 지식에 의하면 드워프는 한마디로 독불장군이었다.
그런 포르시아의 심정을 눈치 챈 이니안이 웃으며 말했다.
“빛의 일족은 조금 특별한 드워프입니다.”
지금 포르시아가 느끼는 곤혹스러움은 이니안 자신도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느꼈었기에 이니안은 그 심정을 잘 안다는 듯 이야기했다.
빛의 일족.
엘프에게 한 차원 높은 고위 종족으로서 하이 엘프가 있다면 드워프에게는 빛의 일족이 있었다. 일반적인 드워프와는 상당히 다른 드워프.
드워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음은 물론 성격은 조금 더 유순하면서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또한 마법에도 능했다.
단, 드워프 특유의 작품에 대한 고집 역시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선과 독단, 고집은 대단했다.
빛의 일족이라고 하더라도 드워프는 드워프다. 드워프의 가장 큰 특징인 장인 정신은 그들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 손님들의 숙소도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지요. 다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것은 처음이라 방이 충분할지 모르겠군요. 막내, 너는 우리 집으로 가자.”
길을 따라 걸으며 타라 족장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는 공녀님의 호위기사라서요. 공녀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니안의 대답에 타라 족장의 눈이 가늘어진다.
“호위기사라고?”
“네.”
“그러면 저 아가씨를 네가 지킨다는 말이지?”
“네.”
타라 족장의 말에 이니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타라 족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흐음. 거 신통한 녀석일세. 죽어도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말이야. 쯧쯧. 역시 애들은 철이 없어.”
“족장님!”
타라 족장이 말하는 바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아는 이니안이었기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포르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유를 물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저도 족장님의 댁에 신세를 지면 안 될까요?”
포르시아가 타라 족장에게 웃으며 물었다.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아가씨, 귀족이라고 하시더니 머리가 참 좋습니다그려. 허허허!”
포르시아의 말에 타라 족장이 기껍게 웃었다.
“그렇게 되면 가야 할 사람이 모두 다섯이에요.”
이미 이니안은 케라우를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무리에 항상 끼워 넣고 있었다. 다섯이라는 숫자에서 그 사실을 깨달은 케라우가 웃으면서 이니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카하하하. 네가 친구를 대할 줄을 아는구나, 이니안. 카하하하!”
그의 웃음에 타라 족장이 케라우를 힐끔 쳐다본다.
“원… 막내야, 별 신기한 녀석을 다 친구로 삼았구나.”
타라 족장은 단번에 케라우의 정체를 파악했다. 빛의 일족으로서 상대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벌건 대낮에 돌아다니다니 참으로 신기한 놈일세.”
타라 족장이 중얼거린다.
“헹. 남이야 어떻든 영감이 말이 많네.”
“새파랗게 어린놈이!”
케라우의 대꾸에 타라 족장의 눈에 시뻘겋게 불이 붙었다.
“새파랗다니! 나도 살만큼 살았다 이거요!”
케라우와 드잡이질에 포르시아는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손님으로서 이곳에 방문한 것이라면 상대의 족장에게 저렇게 막대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이니안은 웃으며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세이버 경, 말려야 하지 않나요?”
이니안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포르시아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타라 족장님은 케라우가 마음에 든 듯하군요.”
그렇다. 마음에 든 사람에게 저런 타박을 보내는 것이 타라 족장 특유의 성격이었다. 이니안도 처음 왔을 때 그의 저런 타박을 얼마나 받았던가.
“그래요?”
“네. 저분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아예 없는 것처럼 무시를 해버립니다.”
그렇다. 그래서 로레인이 이 마을을 별로 안 좋아했다. 반드시 와야 하는 마을이지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항상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는 타라 족장 때문이었다.
“특이하시네요.”
“많이 특이하죠.”
포르시아의 말에 이니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빛의 일족 중에서도 정말 특이한 성격이었다. 드워프 답지 않은 온유함을 가진 빛의 일족에 저렇게 꼬인 심사를 가진 드워프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은 빛의 일족 드워프보다는 일반 드워프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이놈아. 나이를 좀 먹었다고 하려면 적어도 500년은 살아야지. 그리고 나처럼 887년 정도 살면 이제 삶이라는 것을 좀 안다고 하는 거다.”
그때 들린 타라 족장의 한마디.
“쳇!”
나이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케라우였기에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다.
“홋.”
그 모습이 포르시아로부터 웃음을 자아냈다.
드워프의 수명이 길다는 것은 드워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에서도 일반 상식이다. 그런데 인간이 나이를 가지고 드워프와 대거리를 했다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다.
하지만 케라우는 포르시아의 생각과는 달리 뱀파이어다. 그는 그가 살아온 300년이 넘는 세월에 나름대로 자신을 가지고 그런 것인데 500년은 되어야 한다니. 그야말로 애처로이 고개를 숙일 뿐이다.
“자, 이곳입니다. 다른 분들은 이곳에서 쉬십시오.”
타라 족장이 안내해준 곳은 멋들어진 8층 건물이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듯했다. 정말로 아름답게 꾸며진 건물은 만든 이의 정성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하네요.”
정말 제국의 특급 호텔 못지않은 건물이었다. 물론 규모에서는 그런 호텔에 비해서 제법 작기는 했지만 크기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것은 오히려 특급 호텔 그 이상이었다.
건물을 본 병사들의 얼굴에도 희색이 가득했다. 일개 병사인 그들이 언제 이런 고급스러운 곳에서 묵어본 적이 있었던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즐거울 수밖에.
“그럼 막내야, 너는 저분들이랑 같이 가자.”
“알았어요.”
타라 족장과 함께 온 몇몇 드워프들이 기사들과 병사들의 휴식을 돕기 위해 남아서 그들을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드워프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얼굴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병사들의 숙소에서 오래 걷지 않아 곧 타라 족장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깝네요.”
포르시아의 말에 타라 족장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요. 아무래도 손님의 대접은 마을의 대표인 족장이 할 일이니까요.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야지요. 자, 그럼 들어갑시다.”
타라 족장이 앞장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멋스럽게 잘 꾸며져 있었다. 모든 것을 드워프가 만든 집답게 어느 것 하나 예술품이 아닌 것이 없었고, 어느 것 하나 감탄을 자아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제 들어오세요?”
“허허. 막내 녀석이 와서 말이오. 그것도 손님들을 잔뜩 끌고 왔구려.”
“호호. 이미 보고 있답니다. 어서 오너라, 이니안.”
타라 족장의 부인, 호에가 웃으며 이니안을 반겼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아줌마.”
이니안도 반가이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정말 인간은 인간이구나. 잠깐 안 본 사이에 이렇게 훌쩍 커버리다니.”
이니안은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것이지만 드워프의 시간으로는 잠깐 동안일 뿐이었다.
“뒤에 있는 손님 분들도 반가워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대륙의 인간들의 제국…….”
“괜찮아요. 밖에서는 누구시든 이곳에서는 모두 손님인걸요. 그렇게 어려워하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인간 세계의 예의나 신분은 이곳에서는 의미 없는 것들이지요. 그냥 이름만 말씀해주세요.”
다시 한 번 포르시아의 긴 인사가 시작되려는 찰나 호에가 손을 흔들며 말을 잘랐다. 하지만 그 얼굴의 웃음이 너무나 인자해 중간에 인사가 잘렸다는 불쾌함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네,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입니다.”
포르시아는 호에의 말대로 웃으며 성을 포함한 자기의 이름만을 간단하게 말했다.
“반가워요. 호에라고 해요. 우리 드워프들은 따로 성이 없답니다. 단지 뒤에 일족 명을 붙일 뿐이죠. 호에 라이트. 그게 제 풀 네임이에요.”
“케라우 드로 라토시스라고 합니다.”
“다프네 파이어라고 합니다.”
“캐서린이에요.”
뒤이어 나머지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모두들 저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아직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모두들 올라가서 쉬세요. 이 사람이 쓸데없이 집을 크게 짓는 바람에 방이 많이 있으니 충분할 거예요.”
일단 집에 들어오자 타라 족장은 말이 없어졌다. 집안의 분위기를 호에가 꽉 잡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리로 가시죠.”
몇 번 이곳에 온 적이 있었던 이니안이 앞장서서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로 향했다.
타라 족장은 어느새 안락의자에 앉아서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집 안에만 들어오면 조용해지는 타라 족장, 몇 번을 봐도 신기한 장면이다.
“저희 다섯이라면 2층이면 충분할 겁니다. 큰 방도 있으니 그곳에 세 분이서 들어가시면 될 거예요.”
마치 이 집의 가족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 이니안의 모습에 포르시아는 다시 웃음 지었다.
포르시아는 이니안을 만난 후 자신이 웃는 일이 부쩍 잦아진 것을 느꼈다.
‘이건 이것대로 좋은 거겠지. 웃음이란 좋은 거니까.’
포르시아는 솔직히 지금의 이 여행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중간중간 상심하는 일도 있었고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주고 또 자신에게 웃음을 선사하기에.
“이 방입니다.”
이니안이 한 쪽 문을 열어주었다.
포르시아는 이니안이 열어준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포르시아가 들어가자 이니안이 그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도 따라 들어왔다.
“…….”
방 안을 둘러본 포르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방 안의 모습에 압도된 것이다.
제국의 공작가의 공녀가 방의 호화스러움과 아름다움에 압도된 것이다.
사실 드워프들의 기준으로는 그렇게 호화스러운 방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즐거이 만든 물건들로 방 안을 장식했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 나오면 그 하나하나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들이기에 인간인 포르시아의 눈에는 호화의 극치로 보이는 것이다.
“어, 엄청나네요.”
다프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그제야 겨우 포르시아의 입이 열렸다. 그 모습에 이니안이 싱긋 웃었다. 언제였던가, 이리아와 메이린이 이 방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 것이다. 그녀들도 이 방을 처음 보고 저런 얼굴을 했었다.
그때 이니안은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저 생각없이 큰 방이구나라고 하며 보고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옷 방은 이쪽이고 욕실은 이쪽입니다.”
이니안이 문을 하나하나 열면서 방의 구조를 설명했다. 그 방 하나하나를 보는 그녀들의 얼굴에는 계속해서 경악이 어렸다. 특히나 욕실의 그 호화로움이란 포르시아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욕실은 좀 특이하니 제가 먼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드워프들은 그 특유의 기술력으로 욕실을 아주 편리하게 바꾸어 놓았다. 게다가 마법까지 사용할 줄 아는 빛의 일족이었기에 그 욕실 사용법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웠다.
“이곳을 만지면 물이 나옵니다.”
이니안은 욕조 위에 올라와 있는 구슬을 한 번 만졌다. 그러자 욕조에 난 다섯 곳의 구멍에서 물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한 번 더 만지면 물이 멈추죠. 오른쪽의 파란 구슬이 차가운 물이고 왼쪽의 빨간 구슬이 뜨거운 물입니다. 그리고 여기 검은 구슬을 한 번 누르면 욕조에서 물이 빠지지 않도록 배수구가 막히고 한 번 더 누르면 배수구가 열립니다. 여기 벽에 있는 이 분홍색 구슬을 만지면 위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와서 몸의 물기를 말려주지요.”
이니안이 설명을 끝내자 세 여인은 신기한 듯 욕실의 구조를 살폈다.
“그럼 저는 이만.”
이니안은 설명을 끝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 공녀님, 옷 가방을 마차에 두고 왔어요.”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포르시아는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미르의 습격 때 찢어진 옷을 입은 그대로라 로브를 벗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차가 부서지는 바람에 옷을 갈아입을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껏 그 복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캐서린의 말에 방을 나가던 이니안이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캐서린, 네게 부탁해도 될까?”
이니안을 서둘러 만류하며 포르시아가 캐서린에게 말했다.
“네, 알겠어요. 공녀님, 그런데 제가 가면 목욕 시중은 누가…….”
“일단 혼자 하고 있지, 뭐. 괜찮으니까 천천히 갔다 와.”
포르시아가 괜찮다는 얼굴로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네. 가까우니까 금방 갔다 올 수 있을 거예요. 빨리 다녀와서 목욕 시중들어 드릴게요.”
이니안이 방을 빠져나올 때 말을 마친 캐서린도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럼 세이버 경, 편히 쉬세요.”
“네. 캐서린 양도 편히 쉬도록 해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캐서린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