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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정말 괜찮은 겁니까? 위험한 것 아닌가요?”
다프네가 다시 한 번 물어온다.
“절대로 안전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위험한 것이 있을 것 같다면 파이어 경이 공녀님의 곁을 지키고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이니안의 대답에 다프네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진다. 이니안의 말이 마치 자신의 무능력을 비꼬는 듯했기 때문이다.
“멈춰라!”
동굴에서 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다다랐을 때 위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일행은 반사적으로 멈춰 섰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너희들은 대체 누구냐?”
다시 한 번 들려온 목소리에 일행들은 목소리가 들린 곳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병사들 중 당황해하는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니안이 오른쪽 경사면의 한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저 이니안입니다.”
이니안의 말에 경사진 벽의 한 곳에 공간이 나타났다. 사람 한 명이 목을 빼 밖을 볼 수 있을 창문 정도의 크기였다. 그 공간이 나타난 후 그곳으로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인물의 머리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니안? 그 막내 녀석? 정말이냐?”
밖으로 머리를 내민 인물은 이니안 일행을 유심히 살폈다. 이니안을 찾기 위함이다. 그는 금세 이니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검은 머리칼을 가진 이는 이니안 단 하나였으니까.
“오오. 그렇군. 막내 녀석이군. 오랜만이구나. 슬슬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오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이쪽으로 오느냐? 난 네가 카일로니아 쪽에서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에 이니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곧 올 때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는 말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몬타 아저씨는 여전하시네요.”
“하하. 우리야 뭐 늘 그렇지. 그런데 어쩐 일이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말이다.”
“사정이 있어서요. 버티컬 산맥을 가로질러서 카일로니아로 갈 일이 있습니다.”
“그래?”
몬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 지금 사정이 있어서 모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의 사정상 조금 빨리 카일로니아로 가야 해서요.”
“마법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
“몸의 상태로 인해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
몬타는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대체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의 상태라니? 그의 지식수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의 시선이 이니안 뒤로 향했다. 아마 이니안이 말한 인물을 찾으려는 것이리라.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포르시아가 케이로스가 한 발 앞으로 가게하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미오나인 제국의 공작 카르시노마 오마 칸세르 공작의 딸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라고 합니다.”
“허어. 예쁜 아가씨로군. 과연 저 녀석이 모실 만해.”
몬타는 정녕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무례하다!”
그때 몬타의 말에 다프네가 화를 내며 앞으로 나섰다.
“응? 보아하니 딱딱하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기사라는 족속 같구만. 뭐, 자네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하네만 그렇다고 나에게 인간의 예법을 강요하지 말게나. 이곳은 우리의 땅이지, 인간의 땅이 아니야.”
몬타의 말에 포르시아의 눈에 의혹이 서린다. 인간의 예법을 강요하지 말라니, 그렇다면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인가? 하지만 창밖으로 드러난 얼굴은 분명 인간의 그것이었다.
“녀석, 가출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 크크크.”
몬타의 말에 이니안의 얼굴에 낭패한 표정이 어렸다. 아마 가족 중 누가 이곳을 다녀가면서 자신의 소식을 전한 것 같았다.
이니안은 자신을 향한 의혹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포르시아, 다프네, 캐서린, 그리고 기사들과 병사들. 그들 모두 의혹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그것보다 우리가 지나갈 수 있을까요?”
이니안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으음, 글쎄다… 이런 인원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일단 내가 족장님께 물어보마. 시간이 걸릴 듯하니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그리곤 몬타의 얼굴이 창 안으로 사라진 후 창이 닫혔다.
“세이버 경, 가출했나요?”
몬타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물어오는 포르시아. 그녀의 물음에 이니안의 얼굴에 난감함이 어렸다.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요.”
이니안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려고 하였다.
“그리고 혹 세이버 경 카일로니아 출신인가요? 아까 그분께서는 경이 카일로니아 쪽에서 올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던데요.”
의외의 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니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칸세르 공작가에 계약으로 들어온 기사이며, 그 실력이 소드 마스터에 이른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포르시아는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이니안을 바라보고 있다. 그 반짝이는 눈빛을 이겨내기란 이니안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 그것이… 집안에서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조국을 떠나서 용병 생활을 했었고요.”
이니안은 거기까지만 겨우 이야기하고 입을 닫았다. 더 이상은 정말로 곤란했다.
“그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집에 소식이라도 전하도록 하세요. 가족 분들이 걱정이 많으실 거예요.”
포르시아는 정말로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안타깝게 말했다.
“네, 얼마 전에 전했습니다.”
이니안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정말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다.
“잘하셨어요.”
이니안의 대답에 금세 포르시아의 표정이 바뀌어 방긋 웃고 있다.
“아! 잘 됐네요. 마침 카일로니아로 가는 길이니 그때 세이버 경의 집에 들르는 것은 어떨까요? 일단 우리 기사단과 2년의 기간 동안 계약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여행 경로를 조정하면 그것은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공녀님의 배려에는 감사드립니다만 아직은 집에 들어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니안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요? 경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포르시아가 아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때 다시 바위 위의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창밖으로 드러난 얼굴은 좀 전의 인물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오랜만이로구나, 막내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타라 족장님. 그리고 전 이니안입니다.”
“그래, 막내지.”
돌아온 타라의 대답에 이니안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족장은 항상 그랬다. 이니안을 처음 봤을 때부터 항상 그를 막내라 불렀다. 그만큼 이니안을 귀여워했기에 그리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니안은 막내라는 말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 카일로니아로 가겠다고?”
“네.”
“집에 가려는 거냐?”
“아닙니다.”
이니안의 대답에 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야기는 몬타에게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오지 않았느냐?”
타라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결과가 뭐예요?”
이니안의 얼굴에 살짝 짜증이 어렸다.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자꾸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타라의 행동에 심사가 조금 꼬인 것이다.
“내가 왜 나왔겠느냐? 확답을 해주기 위해서지. 이곳까지 이 많은 사람들을 끌고 온 막내 네 체면도 있는데 말이다. 원래는 장로 회의를 거쳐야 할 사정이지만 막내 너희 집과의 안면도 있고, 또 나와 너의 관계도 있으니… 나의 직권으로 허락해주마. 다른 사람들은 오고 싶어 한다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니 말이다.”
타라 족장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제일 먼저 하란 말이에요.”
투정부리는 듯한 말이다.
그런 이니안의 모습을 처음 본 포르시아는 놀랍다는 얼굴로 잠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니안은 그런 포르시아의 눈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무 쉽게 대답해 주면 재미없지 않느냐. 자, 동굴로 들어오너라.”
“네.”
대답을 한 이니안이 말에서 내렸다. 말을 타고 들어가도 충분한 공간이지만 그렇게 되면 동굴 안이 너무 복잡해진다.
이니안이 말에서 내리자 다프네가 말에서 내려 포르시아가 케이로스의 등에서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말에서 내렸다.
이니안이 포르시아의 곁에서 가장 선두로 나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동굴은 조금 들어가자 그 길이 막혀 있었다.
“막혔잖아.”
케라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막힌 동굴에 들어오기 위해 그러고 밖에서 있었단 말인가.
“성격 급하긴. 조금만 기다려 봐.”
이니안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르릉 소리가 울리면서 앞에 막혀 있던 동굴의 벽이 올라갔다.
“헉!”
“저럴 수가!”
“아니!”
동굴의 벽이 올라가고 드러난 안쪽의 풍경에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정확히는 풍경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 앞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다들 놀라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으니 사람들이라 부를 수 없었다.
얼굴은 인간과 똑같았다. 다만 하나같이 수염이 얼굴의 반을 뒤덮은 땅딸막한 난쟁이들. 바로 드워프들이었다.
동굴의 벽이 올라가고 드러난 공간에 일렬로 서 있는 드워프들의 모습에 일행은 딱딱하게 굳은 채 그저 그들을 보고만 있었다.
“하하하. 어서 오너라, 막내야. 그리고 여러분들, 우리 빛의 일족의 마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아까 벽에 얼굴을 드러냈던 족장이라는 드워프가 한 발 앞으로 나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타라 족장의 인사에 이니안이 포르시아에게 눈짓을 했다. 멍하니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드워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포르시아는 이니안의 눈짓에 정신을 차렸다.
“아, 반갑습니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대륙에 인간들이 만든 제국 미오나인의 공작 카르시노마 오마 칸세르의 딸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라고 합니다. 빛의 일족의 환영에 진심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포르시아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로브 아래로 드러난 치맛자락을 우아하게 펼치며 귀족의 예법대로 허리와 고개를 숙여 품위 있는 인사를 했다. 타라 족장과 드워프들은 그런 포르시아의 모습을 즐거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에요.”
포르시아가 인사를 마치자 그제야 이니안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드워프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니안의 익숙한 모습에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세상 깊은 곳에 숨어 그 모습을 찾기 어렵다는 드워프들이다.
간혹 트레져 헌터들이 드워프의 마을을 발견하고 드워프제 장신구 및 무기들을 가지고 오면 그 값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친숙하게 드워프들과 교류를 나누고 있는 인간이 있었다니. 정말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우리 마을로 갑시다.”
타라 주장이 웃으며 앞장섰다.
“이곳이 마을이 아닌가요?”
포르시아가 이니안의 곁에 다가서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닙니다. 이곳은 드워프들이 암석을 채굴하고 남은 갱도입니다. 단지 드워프의 마을에서 외부로 나가려면 갱도를 통해야 할 뿐이죠. 드워프 마을도 잘 정돈된 모습이 제법 멋지답니다. 엘프 마을의 신비로운 모습과는 또 다른 멋이지요.”
이니안이 웃으며 포르시아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엘프 마을에도 가본 적이 있나요?”
이니안이 말이 가리키는 사실 하나를 깨달은 포르시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간의 수에 밀려 이제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종족, 드워프와 엘프. 그 두 종족 중 하나를 만나는 것도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동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니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둘을 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운이 좋았습니다.”
이니안은 작게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지라 갱도에는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렸다.
말들은 한 기사가 가장 후미에서 한꺼번에 이끌고 있었다. 케이로스가 가장 뒤에서 말들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드래곤의 가디언인 케이로스는 능히 그런 일을 알아서 했다. 단지 스스로 알아서 인간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정도로 그는 어느새 애완동물의 입장에 익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케이로스의 뒤를 마부가 마차를 몰며 천천히 따르고 있었다. 마차는 양옆으로 두 사람이 겨우 설 정도의 공간만을 남기며 동굴을 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에서 빛이 보였다. 사실 드워프의 걸음에 맞추어 걸었기에 제법 많이 걸은 것 같았지만 인간의 걸음으로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우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으로 나가자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반듯반듯하게 정리된 길과 그 사이사이 구획에 갖가지 모양으로 지어진 집들. 어느 집이든 같은 모양이 없었음에도 묘하게 마을 전체가 질서있고 균형 잡힌 모습이었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심미안이 떨어진다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눈에도 이럴진대 정말로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아는 이가 이 마을에 온다면 분명 감격에 겨워 기절하리라.
이미 포르시아가 그런 비슷한 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다프네와 캐서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무가라고는 하지만 명색이 전통 있는 귀족가의 여식이다. 그런 다프네의 심미안이 보통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캐서린 역시 제국 제일의 공작가의 시녀로 어지간한 하급 귀족 이상의 교양을 쌓았다.
그 세 사람의 눈에 비친 이곳은 마을 자체가 세상에 다시없을 최고의 예술품인 것이다.
포르시아의 모습에 걱정이 된 이니안은 살짝 한 걸음 더 그녀의 곁에 다가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니안이 대비한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조금 아쉽군.’
이니안은 입맛을 다셨다. 단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아쉬워하는지 깨닫지 못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