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32화 (13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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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만혼검쇄!”

순식간에 이니안의 검에서 청광의 오러가 타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펼쳐진 마령천참검의 만혼금쇄의 수법.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이니안의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파괴의 스틸레토의 힘에 뒤로 밀린 것이다. 만혼금쇄와 스틸레토의 충돌의 여파로 미르의 몸은 뒤로 형편없이 나동그라지며 날아갔다.

“으윽. 쿨럭.”

지근거리에서 폭발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일까? 그녀는 엎드린 자세로 피를 토했다.

“제, 젠장… 실패인가?”

이니안을 바라보는 미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니안이 천천히 미르를 향해 걸어갔다.

“쳇. 괴… 물 같은 녀… 석.”

“너의 마지막 한 수는 정말 위험했다.”

과연 이니안이 입고 있는 가죽 갑옷 이곳저곳이 찢어져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칼의 레어를 나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쿨럭.”

미르는 다시 한 번 피를 게워냈다. 이미 조금 전의 충격으로 그녀의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마지막 생명의 끈으로 의식을 차리고 있을 뿐, 이제 그 끈도 곧 끊어질 것이다. 이니안은 한눈에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잘 가라.”

“쳇… 어… 어떻… 어떻게… 그 녀… 석들을… 보… 보…….”

투욱.

미르의 얼굴이 힘없이 땅에 닿았다. 그녀는 마지막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렇게 생명의 불을 꺼뜨렸다.

이니안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자마자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포르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세이버 경, 괜찮은 가요?”

여기저기 찢어진 가죽 갑옷을 보는 포르시아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네. 괜찮습니다.”

이니안은 포르시아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싱긋 웃었다.

“다행이에요.”

이니안의 웃음을 본 후에야 포르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것. 정말로 고마워요. 정말 귀한 물건이네요.”

포르시아는 육망성 모양의 펜던트를 두 손으로 꼭 쥐며 말했다. 정말로 그랬다. 그 펜던트가 그녀를 살린 셈이었으니.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용병 시절에 우연히 손에 넣은 물건이지요. 공녀님께 잘 어울릴 것 같아 드렸을 뿐인데… 그런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니안은 모르쇠로 나갔다. 누가 보면 이니안 역시 자신이 준 목걸이의 위력에 정말로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그럼, 역시 돌려 드려야겠네요. 경도 이렇게 대단한 물건인지 모르고 저에게 주었으니까요.”

포르시아가 목걸이를 풀기 위해 손을 뒷목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에 이니안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녀님. 그 목걸이 덕에 제가 제 임무를 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계속 가지고 계십시오. 그 목걸이는 공녀님의 목에 걸려 있는 지금이 가장 빛나는군요.”

스스로 말하고도 머쓱했음인가, 이니안은 그렇게 말한 후 살짝 붉어진 얼굴로 포르시아를 지나쳤다.

멀리서 또 다른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 고마워요. 소중히 간직할게요.”

포르시아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니안.”

마지막 한마디는 그야말로 입 안에서만 웅얼거리는 듯했다.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오직 포르시아 혼자만 들은 소리. 그녀는 그렇게 나직하게 이니안의 성이 아닌 이름을 불렀다.

육망성의 펜던트를 움켜쥔 그녀의 두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이니안의 얼굴에 살짝 어린 홍조를 말이다.

그것이 왜 그렇게 포르시아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을까? 그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제법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네 녀석이 설마 그런 말도 할 줄 알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시끄러.”

칼의 놀림에 이니안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 얼굴 빨개진 건 아냐?]

칼의 놀림이 계속됐다.

“내 알 바 아냐.”

[짜식, 부끄러워 하긴. 크크.]

이니안은 머리의 한쪽이 지끈거렸다. 흡사 케라우에게 놀림을 당하는 듯한 느낌. 당최 드래곤의 영혼이라는 녀석이 하찮은 뱀파이어의 성향을 닮아버리다니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나저나 그 여자 제법 위험한 것을 가지고 있었어.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주는 건데 말이야.]

“응? 뭐야? 알고 있었어?”

이니안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물론. 난 영혼인걸. 그 여자 은신의 로브라는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었어. 고대 시대의 유물인데 어떤 방법으로 마법을 심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드래곤들도 그 기척을 느낄 수 없게끔 숨겨주는 물건이지. 뭐, 영혼에게는 소용이 없는지 내 눈에는 뻔히 보였지만.]

“그렇다면 진작 말했어야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이니안이 살짝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난들 그렇게 위험한 줄 알았으려고. 게다가 내가 만들어준 목걸이가 있잖아. 한 번 사용 후 다시 마나를 충천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거의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인간의 기준으로는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물이야.]

칼의 말이 맞긴 맞았다. 그 덕에 시간을 벌지 않았던가.

[하지만 조금 위험할 뻔했어. 설마 파괴의 스틸레토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

“파괴의 스틸레토?”

이니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네가 마지막에 부딪쳤던 그 단검. 그거라면 목걸이의 방어 마법도 뚫을 수 있거든. 그 여자가 처음의 공격을 열화의 대거로 한 것이 운이 좋았지.]

“칼.”

칼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는 이니안의 목소리에는 분노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마터면 정말로 포르시아가 위험할 뻔한 것이다. 칼의 말대로 단검의 사용 순서가 바뀌어 포르시아가 공격당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다 왔다.]

이니안의 분노를 피하기 위함인지 칼은 주변을 환기했다. 어느새 이니안이 새로이 나타난 몬스터 근처에 당도한 것이다.

[저놈들이 마지막 같은데? 힘내라고.]

거기에 더해 응원까지 한다. 그도 내심 미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던 것이다. 칼 자신이 보았을 때도 이니안과 파괴의 스틸레토가 부딪쳤을 때 얼마나 간담이 서늘했던가.

“후우. 그래. 이놈들이 마지막이지.”

트윈 헤드 오우거와 트윈 하트 트롤은 진즉에 케라우와 케이로스가 처리한 후였다. 트윈 헤드 오우거는 토막나 있었고 트윈 하트 트롤은 목이 덜렁거릴 정도로 떨어진 채 양쪽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두 개가 뚫려 있었다.

이니안은 세 마리의 몬스터를 마주하고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대체 여긴 어떻게 되먹은 공간이야?”

어느새 곁에 다가온 케라우가 물었다.

“여기? 결계 안이지, 빌어먹을 정도로 귀찮은.”

이니안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그리고 곧장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의 검은 가운데 서 있는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향하고 있었다.

“쳇. 어쨌든 마지막이라니까 힘내야지.”

케라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우우우우!

커다란 울음을 터뜨리며 케이로스가 왼쪽의 바포메트의 목을 물어갔다.

세 마리의 몬스터가 정리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셋 모두 인간계에는 없는 마족들의 세상인 마계의 몬스터로 알려져 있지만 상대하는 한 인간과 한 뱀파이어, 한 늑대가 너무 강했다.

“끝났습니다.”

이니안이 포르시아를 향해 돌아가서 말했다.

“이제 더 이상의 몬스터는 없는 건가요?”

포르시아의 물음에 이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곳의 몬스터는 저것들이 전부입니다.”

“다행이네요.”

이니안의 대답에 포르시아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어이, 이니안, 이 여자는 뭐냐?”

“어새신.”

“설마?”

“그래.”

미르의 시신을 뒤적이던 케라우는 놀랍다는 눈으로 다시 한 번 그녀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나르센 산에서의 그 끔찍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흐음. 상당히 진귀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걸. 그래서 그렇게 상대하기 까다로웠나? 은신의 로브에 카르니아의 부츠, 그리고 이건… 세상에! 파괴의 스틸레토로군.”

“그리고 이것도 있다.”

이니안은 부서진 마차 근처에 떨어져 있던 붉은 검신의 단검을 집어서 케라우에게 던졌다.

“우와! 이건 열화의 대거네! 대체 저 어새신은 어떻게 되먹은 녀석이야? 하나만 나타나도 귀족들이 영지 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물건을 네 개나 지니고 있다니. 아, 전의 환마의 크리스까지 하면 다섯인가?”

케라우가 질린다는 듯 말했다.

“자.”

미르의 아티팩트를 모두 수거해 온 케라우가 그것을 이니안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이니안은 곧 포르시아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으며 그것들을 그녀를 향해 들어올렸다.

“세이버 경, 이건?”

“보관해 주십시오. 공녀님께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겁니다.”

포르시아는 물끄러미 이니안이 올려든 것을 내려다보았다.

“알았어요.”

평소라면 거절했을 포르시아였지만 이번에는 순순히 승낙했다. 자신이 거절하면 이니안이 몇 번이나 권하면서 지금의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니안이 무릎을 꿇고 자신을 향해 물건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보기 싫었다. 그래서 서둘러 대답을 한 것이다.

36장. 너는 내가 그 말을 믿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거대한 저택이 있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번화한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이다. 카일로니아의 수도인 사우론에서 이렇게 넓은 땅을 차지한 저택에 과연 누가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이 절로 들 규모였다.

그 저택의 정문 앞에 세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셋 모두 윤기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길게 내려와 찰랑거린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얼굴, 세 여인은 바로 이니안의 누나들이었다.

“다 왔어. 집이야!”

로레인이 감격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래. 생각보다 빨리 왔어. 일 년의 시간을 얻어서 나갔는데 벌써 돌아오다니.”

“그거야 이니안을 빨리 찾았으니까.”

이리아의 중얼거림에 로레인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리고 변변찮은 남자도 없었지. 갈라히벤의 무투회라고 기대를 좀 했었는데 영 아니올시다야. 그래서야 대륙을 더 뒤져 봤자지.”

로레인의 말에 메이린이 아쉽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이 세 사람은 이니안이 떠난 후에도 갈라히벤에 남아 무투회를 모두 지켜보고 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감상은 ‘시시해’였다.

이들의 여행 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전투는 로레인과 이니안의 대련이었다. 그 정도 수준의 대련을 봐버렸으니 다른 무투회는 당연히 시시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카르세온이라는 사람은 좀 낫지 않았어?”

이리아가 메이린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사이 로레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그 녀석은 나에게 졌어.”

“모르지, 앞으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이린의 말에 로레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만 메이린이 무얼 말하려는지 대강 짐작한 이리아가 살짝 웃을 뿐이었다.

저택의 경비병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얼른 문을 열어줬다. 세 사람은 경비병에게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천천히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정문에서 저택의 현관까지 가는 길이 무척이나 멀어 보통은 마차를 이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산책하는 걸음으로 여유 있게 움직였다.

어차피 바쁜 일도 없거니와 오랜만에 돌아온 집 안의 분위기를 정원에서부터 느끼고 싶다는 까닭도 있었다.

“왔으면 빨리빨리 들어올 것이지, 뭘 정원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어?”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소식을 듣고 내려온 이슈데인이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바쁜 일도 없는데, 뭐 하러 서둘러? 마부도, 말도 쉬어야지. 그나저나 오늘은 비번인 모양이네?”

“응. 마침.”

메이린의 말에 이슈데인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상당히 빨리 돌아왔는데.”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동생들을 보며 이슈데인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일단 집을 떠난 이후 세 사람은 집에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우린 이제 막 도착했어.”

로레인이 피곤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넌 들어가서 쉬어도 돼.”

이슈데인이 로레인을 보며 별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말했다.

“오빠!”

이슈데인의 말에 로레인이 앙칼지게 외친다.

“뭐, 이리아나 메이린이 너보다 훨씬 더 설명을 잘하니까, 피곤하신 분은 쉬시라고요.”

이슈데인의 말에 얼굴을 찡그린 로레인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곧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는 눈알을 데구룩 굴린다.

“알았어요. 말 잘 못하는 여동생은 이만 피로를 풀기 위해 쉬도록 하지요. 그동안 슈마인은 많이 컸으려나?”

그러면서 몸을 핑그르르 돌리는 로레인.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이슈데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겨우 세 살배기인 이슈데인의 아들 슈마인은 지금이 한창 귀여울 때이면서 동시에 서서히 말썽을 피우기 시작할 나이였다. 현재 사이몬 공작가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슈마인.

로레인도 물론 자신의 하나뿐인 조카를 끔찍이 귀여워했다. 단지 그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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