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30화 (13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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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물론입니다. 대륙 동부의 왕국, 카일로니아는 검술이 무척이나 발달한 곳이니까요. 기사라면 누구나 수행으로 한 번쯤 가는 곳입니다.”

카일로니아 왕궁의 기사들의 검술 수준은 전반적으로 대륙의 다른 왕국들에 비해 뛰어났다. 사이몬 공작가라는 걸출한 검가 덕분에 덩달아 다른 기사들의 실력도 향상된 것이다. 그런 저력을 바탕으로 카일로니아 왕국은 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음에도 항상 당당했다.

“그럼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포르시아가 웃으며 말한다.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 것인지 또다시 다프네에게 이야기를 졸랐다. 조를 때마다 다프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져서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프네야 항상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지만 포르시아는 같은 것을 물어도 다른 대답이 돌아오니 전혀 질리지 않고 다프네를 조르는 것이다. 할 수 없다는 얼굴로 다프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포르시아의 곁에 앉아 있는 캐서린의 눈도 덩달아 반짝였다.

“여기서 진로를 좀 바꾼다. 북동 방향으로!”

이니안의 지시에 따라 기사와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조정하며 방향을 틀었다. 마차에 타고 있는 포르시아와 다프네, 캐서린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방향 전환이었다.

“이봐,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야?”

케라우 역시 알 수 없다는 눈으로 이니안을 바라보고 있다. 그 역시 지난번 이니안와 포르시아의 대화를 들어 지금 이니안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몇백 년을 살아온 그로서도 알 수 없는 말을 했기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소리 없는 웃음뿐이었다.

[으음. 이곳으로 가면 그곳일 텐데… 대단하군, 인간이 그 길을 알고 있다니.]

칼은 이니안이 무엇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알고 있었군. 역시 드래곤이라는 건가?”

[후후후. 당연하지. 그 길은 우리 드래곤들 때문에 생긴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난 오히려 인간인 네가 그 길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이니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실제로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쳇. 저 자식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은신의 로브를 뒤집어쓰면 설사 이니안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미르는 좀 대담하다 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기사 중 한 명 옆에 은신해서 이동하고 있었으니 이니안이 그 낌새를 느끼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에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고, 그 확신대로 이니안은 전혀 그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 역시 이니안이 앞으로 하려는 일을 알 수 있었다.

‘그건 한마디로 미친 소리지. 어떻게 산맥을 넘지 않고 대륙을 가로질러?’

미르는 절대 알지 못했다. 그런 자신을 유심히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있음을.

눈동자의 주인은 무언가를 찾듯 그녀를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찾으려는 것을 찾을 수 없는지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으음. 이것을 이니안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동자의 주인, 칼에게는 은신의 로브가 소용이 없었다. 그는 영혼이었기에 일반 살아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티팩트가 전혀 효력이 없었던 것이다.

칼은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리고 그 주위를 맴돌았다. 무언가 수상한 구석을 발견했을 때 이니안에게 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니,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처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숨어서 자신들을 따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상했지만 칼은 그저 좀 더 재미난 것을 기대했다. 영혼이 되어서 즐기는 유희였기에 그는 지난 만 년 동안 겪었던 유희와는 또 다른 경험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방향을 바꾼 후 이곳저곳으로 수차례 더 방향을 바꿔가며 달리기를 이틀. 이제 마차는 완전히 버티컬 산맥에 접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이곳의 지형은 조금 특이했다. 울창한 숲이 가득한 버티컬 산맥 중에서 나무가 거의 없는 바위산 부근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부터가 조금 힘들지.]

칼의 말에 이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법의 결계를 쳐놓고 사는 드워프라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야.”

이니안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니안은 마차 옆으로 다가가 마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죠?”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포르시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네, 공녀님. 지금부터는 잠시 동안 조금 위험한 길입니다.”

“으음. 이곳은 산적들이 나타날 것 같지 않은데요, 사방에 나무는 없고 바위만 있는 곳이니.”

포르시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 위험 요소로 보일 만한 것은 없었던 것이다. 단지 마차가 달리기에 길이 좀 험할 것 같을 뿐이었다. 포르시아의 말에 이니안이 웃음 지었다.

“네. 산적들은 없습니다. 대신 좀 강한 몬스터가 나오지요. 그것 때문에 제가 선두에 설 겁니다. 병사들이 상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혹시라도 놀라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아, 예. 알겠어요. 경의 실력은 이미 잘 알고 있는데요. 경이 앞에 나서준다면 아무 일도 없겠지요.”

포르시아는 믿음이 담긴 눈으로 이니안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럼.”

이니안은 포르시아에게 고개를 숙인 후 케이로스를 몰아 선두로 나섰다. 케라우가 그 옆을 따랐다.

“내가 선두에 선다. 전원 일렬로! 마차의 좌우측 방비를 두텁게 하고 천천히 이동!”

이니안의 지시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대열을 정비했다. 잘 훈련된 모습을 포르시아가 기분 좋게 지켜보고 있었다.

“창문을 닫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전히 밖을 내다보는 포르시아를 향해 다프네가 말했다.

“아니에요. 지켜보고 싶어요.”

“하지만 몬스터의 퇴치는 공녀님께서 보실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몬스터라고 불리는 것들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걸요. 한 번쯤은 보고 싶어요.”

포르시아가 고집스레 말한다. 그 모습에 다프네는 작게 한숨지었다. 가끔 보이는 이 철없는 아가씨와 같은 모습. 그런 모습 때문에 정이 더 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또한 가끔 이렇게 피곤하기도 했다.

“이곳은 대체 뭐야? 버티컬 산맥에 이런 곳이 있었나? 기운의 흐름이 묘한 것이 인위적인 곳인 것 같은데?”

케라우가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바로 봤어. 보통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지.”

“뭐?”

“내가 이곳으로 오면서 왜 그렇게 방향을 자주 바꿨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니안의 물음에 케라우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랬다. 이니안은 마치 가까운 길을 일부러 멀리 돌아가겠다는 듯 이리저리 방향 전환을 많이 했다.

그 모습이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었으나 케라우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설마…….”

하지만 막상 잦은 방향 전환에 대해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 결계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펼쳐진 결계. 마나의 결을 모른다면 결코 이 바위산을 볼 수가 없어. 아주 광범위하게 펼쳐진 결계지. 덕분에 이곳을 아는 사람은 전 대륙을 통틀어도 얼마 없어. 드래곤 정도라면 모를까.”

이니안의 말에 케라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자신은 결계의 경계를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는 낌새를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대체 누가 이런 결계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부터 성가신 녀석들이 나올 거야. 뭐, 나 혼자도 충분하지만 실력 구경 좀 해보자고.”

이니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오우거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이니안이 달려가는 방향에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든 채 서 있었다.

“시작이군.”

이니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 오우거다!”

“몬스터다!”

오우거를 발견한 병사들이 큰 소리를 질렀다. 육상 몬스터 중 가장 강하고 흉포하다는 오우거가 침을 흘리며 사나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병사들의 소동에 포르시아는 마차의 창밖으로 머리를 길게 뺐다.

“공녀님!”

포르시아의 위험천만한 행동에 다프네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 저게 오우거구나.”

포르시아는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공녀님, 어서 마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오우거는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흉포하고 강력한 녀석입니다!”

다프네가 다급히 외쳤다.

‘쳇. 저 녀석, 뭐가 좀 강한 몬스터야? 저 정도면…….’

다프네는 속으로 허황된 말을 남기고 앞으로 나간 이니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오우거가 좀 강한 몬스터라면 대체 정말 강한 몬스터는 어떤 녀석이란 말인가?

다프네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포르시아는 어느새 마부석과 통하는 창 앞에 가서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부는 이미 포르시아의 명으로 한쪽 옆으로 비켜 앉아 말을 진정 시키면서 차분히 몰고 있었다.

“공녀님.”

“걱정 말아요. 틀림없이 마차 안에 있을 테니까요.”

다프네의 부름에 포르시아는 뒤를 돌아보고 살짝 웃음 지어준 후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놈은 네가 처리해.”

“너는?”

“저 위.”

케라우는 이니안의 손가락을 따라 그가 가리키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날개를 펼친 무언가가 마차를 향해 활강해 내려오고 있었다.

“와이번이군.”

“그래.”

“대체 결계 안이라면서 이곳은 어떻게 되먹은 곳이야?”

케라우는 투덜거리면서 양손에 낀 건틀릿의 팔목 쪽으로 접혀진 칼날을 폈다. 마치 손톱이 길게 자란 것처럼 보이는 건틀릿.

이니안이 케라우를 생각해서 칼의 레어에서 집어 나온 무기로 가장 단단하다는 금속인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무기 값이나 해.”

이니안은 그 말을 남기고 케이로스의 등을 두 발로 딛고 섰다.

이니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병사들의 시선이 이니안의 시선을 따랐다. 그리고 그 끝에 보이는 몬스터는…

“와, 와이번이다!”

누군가가 가장 먼저 외쳤다. 곧 병사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나마 기사들의 노력으로 대열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에는 오우거, 위에는 와이번이라니. 병사들이 동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와 최강의 비행 몬스터가 앞과 위에서 공격해 오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소드 마스터가 함께 있다는 사실까지 잊고 있었다.

와이번이라는 외침에 포르시아는 재빨리 마차의 지붕을 열었다. 봄날 나들이에 따스한 햇볕이 마차 안에 들어오게끔 고안한 지붕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해들이 창이라 불리는 개폐식 창. 그것을 몬스터를 보겠다는 목적으로 연 것이다. 미처 다프네가 말릴 틈도 없었다.

“어머!”

마차를 향해 곧장 떨어져 내리는 와이번의 모습을 본 포르시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도 놀란 것이다. 붉게 번들거리는 사나운 와이번의 눈동자. 그것은 지금껏 몬스터를 본 적이 없는 포르시아가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몬스터라는 것… 무섭네요.”

포르시아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녀님이 더 무섭습니다. 저는.’

하지만 다프네는 솔직히 포르시아가 더 무서웠다. 비록 멀리서 날아 내려오는 와이번의 눈을 본 것이라지만 수련을 쌓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도 겁에 질려 당장에 주저앉을 위압감을 풍긴다.

와이번 아이라고 불리는 와이번의 사냥을 위해 특화된 능력. 드래곤의 아이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 정도 겁에 질리게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한데 포르시아는 작은 탄성과 같은 비명? 글쎄, 그것을 비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런 반응 이후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부였으니 가히 대단하다 할만 했다.

그때 여전히 열린 지붕의 해들이 창으로 한 인영이 휙 지나갔다.

“어?”

갑작스레 나타난 그림자에 포르시아는 눈을 끔벅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공녀님.”

어느새 이니안이 지붕에 두 발을 딛고 올라선 것이다. 와이번은 여전히 마차를 노리고 활강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니안은 천천히 검을 뽑아들고 와이번을 노려보았다.

이제 와이번이 겨우 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그 정도 거리라면 일순간에 마차를 잡아챌 것이다.

“타핫! 창천광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공간을 가르는 이니안의 참격!

쾅! 쿠우우우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마차가 멈춰 섰다.

병사들은 놀라서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차 안의 포르시아와 다프네, 캐서린도 마찬가지다.

와이번이 정확히 반쪽이 나서 대열의 좌우로 나누어 떨어진 후 그 힘에 한참을 뒤로 미끄러져 나가다가 멈춰선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반쪽으로 잘린 와이번의 몸의 절단면에서 자주빛 피가 스물스물 흘러나왔다.

쿵.

그때 앞에서 울리는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

케라우가 섬뜩하게 빛나는 피가 묻은 칼날을 혀로 핥고 있었다. 그 앞에는 정확히 여섯 쪽으로 잘린 오우거의 시체가 있었다. 언제 그렇게 토막을 내버린 것인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우.”

단지 그 엄청난 모습에 놀랄 뿐이다.

“계속 전진한다!”

이니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케이로스의 등에 오르면서 명령했다.

“우아∼ 대단하네요.”

포르시아는 순수하게 감탄해서 말했다. 물론 귀족 숙녀가 볼 만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네. 대단합니다. 공중에서 날아 내려오는 와이번을 두 쪽으로 갈라내는 솜씨나 오우거를 순식간에 토막 치는 솜씨나… 믿을 수가 없군요.”

이니안은 그렇다고 쳐도 든 것 없이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던 케라우가 그런 실력자라는 사실에 다프네는 솔직히 상당히 놀랐다. 그녀 자신이라도 그렇게 단 시간에 오우거를 쓰러뜨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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