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27화 (12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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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감옥인가?”

바실러스는 눈을 찡그렸다. 분명 암흑 마나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을 찾아왔다. 그런데 나타난 것이 감옥이라니.

바실러스는 감옥 안을 살피기 위해 라이트 볼을 감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으음. 클레비클, 네놈이냐?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

감옥에서 증오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하지만 전 클레비클이 아닙니다.”

바실러스의 대답에 감옥 안에서 눈을 찡그린 괴인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갑작스러운 빛에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 바실러스는 라이트 볼을 소멸시켰다.

“클레비클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냐?”

감옥 안의 괴인이 창살 근처로 다가오면서 묻는다. 괴인의 움직임에 따라 철그렁거리는 소리가 감옥에 울렸다.

“바실러스 자작이라 합니다.”

“흥. 그래 봤자 어차피 칸세르 공작 놈의 끄나풀일 테지.”

괴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증오로 가득했다. 괴인은 한쪽 귀가 잘린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양팔에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고 두 개의 구속구는 기다란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것이 암흑 마나의 정체였군.’

바실러스는 대번에 그 구속구가 흑마법을 금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흑마법의 아티팩트임을 알아보았다.

‘후후후. 그나저나 재미있는 사람을 찾았어.’

바실러스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전 칸세르 공작의 부하가 아닙니다.”

“뭐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지? 가만. 그래, 전에 클레비클 녀석이 그랬었지. 칸세르 공작은 내가 죽은 줄 안다고. 그렇다면 그의 부하가 올 리가 없고. 그러면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놈은 클레비클 녀석밖에 없는데… 그럼 네놈 클레비클의 제자냐?”

괴인은 바실러스를 향해 사나운 기세를 쏟아냈다.

“아닙니다. 저는 1황자 저하의 명을 받고 공녀님을 모시기 위해 이곳에 온 마법사입니다. 단지 기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문으로 들어왔다가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이곳은 칸세르 영지의 영주성 지하다. 칸세르 공작의 부하가 아니고서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니 1황자의 부하밖에 없었다.

그는 포르시아 공녀의 약혼자였으니 충분히 이곳에 그의 사람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바실러스는 일단 자신의 신분을 그렇게 둘러댔다.

눈앞의 괴인은 칸세르 공작과 클레비클을 향해 지독한 증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괴인에게서 무언가를 캐내려면 그 두 사람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야 했다.

“뭐, 뭐야? 황자 저하께서 보내신 마법사?”

바실러스의 대답에 괴인의 얼굴에는 놀란 빛이 역력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바실러스를 살피던 괴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눈에서 증오의 기운은 일단 사라졌다.

34장. 그분은 분명 공녀님이시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바실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눈앞의 괴인을 바라보았다. 괴인 역시 바실러스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마법사라고 했나?”

“네.”

“몇 서클인가?”

“7서클 마스터입니다.”

바실러스는 상대의 짧은 물음에 착실히 대답했다. 바실러스가 자신의 서클을 말하는 순간 상대의 두 눈에 불신의 빛이 강하게 떠올랐다.

“클레비클이라면 분명 8서클의 잠금 마법을 입구에 걸어놓았을 터, 7서클 마스터로서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네놈은 누구냐?”

“저는 그저 평범한 7서클 마스터가 아닙니다.”

다시 사나워진 괴인의 기세에 바실러스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저는 흑마법과 백마법, 모두 7서클을 마스터한 마법사입니다.”

느릿느릿 이어진 바실러스의 대답에 괴인은 잠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실러스를 바라보았다. 괴인도 마법사였다. 그런 만큼 괴인은 자신의 눈앞의 사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퓨즈 디스펠.”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나았다. 바실러스는 괴인의 양팔에 있는 구속구를 향해 흑마법과 백마법을 혼합한 마법 무효화 주문을 사용했다. 구속구는 잠시 빛을 발하더니 이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정말이군.”

괴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바실러스의 마법은 실패했다. 하지만 괴인을 납득시킬 수는 있었다. 사실 바실러스가 마법을 사용한 것은 괴인이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지, 괴인을 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법의 성패 여부는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실패할 것이 뻔한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아무리 흑마법과 백마법을 혼합한 마법이라도 무턱대고 윗 서클의 마법을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 문에 걸린 잠금 마법을 해제할 때처럼 흑마법과 백마법을 교대로 사용하여 마나의 틈을 만들어 그 틈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도 가능하다니 참으로 신기하군. 뭐, 이제는 부질없는 것이지만.”

괴인은 자신의 양팔에 채워진 구속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잠시지만 구속구의 마법이 무효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 마법이 다시 발동했지만 이 정도 실력이라면 충분히 이곳까지 올만 하다.

괴인도 알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가 자신을 풀어줄 수 있음에도 풀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괴인 역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가 이곳에서 비참한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남은 한 가닥 미련. 그 때문에 여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곧 그 결실이 맺힐 것이다.

“큭큭큭. 클레비클, 너도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단 이곳에 묻어둔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괴인은 웃음을 흘리며 기뻐했다. 몰골은 처참했으나 그는 지금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황자 저하께서 보내셨다고 했나?”

“네.”

“그렇다면 내 말을 잘 듣게.”

괴인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내 이름은 호크 말라온. 8서클을 마스터한 나름대로 명성을 얻은 흑마법사라네.”

호크의 설명에 바실러스의 두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그도 호크 말라온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는 흑마법도 익혔기에 유명한 흑마법사들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자가, 몇 년 전에 행방불명됐다는 그…….’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게 진행된다는 생각에 바실러스는 작게 웃었다.

“자네도 흑마법을 익혔고 이곳까지 왔으면 그 방을 보았겠군.”

제단이 있는 방을 말하는 것이리라.

“보았습니다.”

“그 방은 나와 클레비클의 합작품이지.”

회한에 잠긴 목소리로 호크는 느릿느릿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느 날 그가 날 찾아와 드래곤의 눈물을 보여주었네.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마법 재료를 말이야. 난 한 사람의 흑마법사로 그 재료를 이용한 대법을 펼쳐 보고 싶었네.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욕심이었지.”

바실러스는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게다가 클레비클이 나에게 말하기를 평범한 대법이 아니라고 했네. 이미 대법을 한 번 받은 사람에게 다시 한 번 더 그 대법을 덧씌우는 거라 하더군. 완벽한 기억의 조작. 리크리에이트 메모리를 두 번이나 거푸 사용하는 것이었어. 뿐만 아니라 그 후 한 번 더 사용할 것이라 했지. 그도 한 번은 모르나 두 번, 세 번 사용하는 것은 혼자 힘으로는 힘들다고 했네. 당연한 일이지.”

바실러스는 호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같은 대법을 중복적으로 효과가 나게끔 덧씌운다면 마법진의 수식이 훨씬 복잡해진다. 아무리 클레비클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무리였을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그의 제안에 완전히 매료되었네.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대법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로 펼치는 거지. 그때 나의 머리에는 그것밖에 없었네. 클레비클이 대법을 펼쳐 무엇을 하려 하는지는 관심 밖이었어.”

호크의 목소리가 깊은 회한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클레비클과 함께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네. 그리고 두 개의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었지. 난 그때 마법사로서 희열을 느꼈다네. 그 누구도 이룬 적이 없는 마법진을 창조해 냈으니 그때의 그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마법의 조종이라는 드래곤조차도 알지 못할 마법진. 그것을 난 이 두 손으로 만들어냈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깊은 회한에 빠져 있던 그의 말속에서 일말의 희열이 엿보였다.

바실러스는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마법사였기에 마법사에게 있어 새로운 마법진의 창조가 가지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어. 대법의 대상이 된 사람을 처음 보는 순간, 난 나 스스로를 저주했네.”

“포르시아 공녀였군요.”

바실러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그녀의 몸에 대법이 펼쳐졌다는 것을 칸세르 공작에게 직접 들은 터였다.

“그래, 그분이었어. 난 설마 그분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 난 그 순간 이후 지금까지 줄곧 나라는 존재를 저주하고 있네. 공녀님은 절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분이야. 그런데 이런 곳에 나타나셨으니…….”

바실러스는 그의 절규와도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은 칸세르 공작 영지의 영주성이다. 즉, 칸세르 공작가의 공녀인 포르시아의 집인 것이다. 그런데 이곳이 그녀가 있을 곳이 아니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포르시아 공녀님은 칸세르 공작가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응당 그분의 집인 이곳에 있으셔야지요.”

“큭큭큭. 킥킥킥. 큭큭킥킥.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큭큭큭. 하지만 다들 속고 있는 거야. 포르시아 공녀님부터 시작해서 황자 저하는 물론 황제 폐하까지 모두 간악한 칸세르 공작 놈에게 속고 있어.”

바실러스의 말에 호크는 연신 기괴한 웃음을 미친 듯이 흘려댔다. 바실러스는 그 웃음 속에 자신의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들어 있음을 느꼈다.

칸세르 공작의 휘하에 들어간 지금도 여전한 의문. 그 의문 때문에 바실러스는 지금 이곳까지 와 있는 것이다. 대체 칸세르 공작은 왜 흑마법의 대법을 자신의 딸에게 사용한 것일까.

그 첫 단추를 꿰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란 존재는 모두 같다. 자식을 위하는 그 마음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 그런 부모라면 절대 제 자식에게는 흑마법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야망이 크다 하더라도 말이다. 혹시라도 미쳤다면 모를까.

‘설마?’

그때 바실러스의 머리를 번득이고 스친 가정. 포르시아 공녀님도 속고 있다는 호크의 말이 그로 하여금 그런 가정을 하게 만들었다.

“포르시아 공녀님은 사실 공녀가 아닌 것입니까?”

바실러스는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즉각 물었다. 그만큼 그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기에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분은 분명 공녀님이시다.”

바실러스의 물음에 호크는 서릿발 같은 기세를 뿜으며 바실러스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감히 천한 것이 그런 불경한 말을 내뱉느냐, 호크의 두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호크의 기세에 바실러스는 점점 더 미궁 속을 헤맸다. 친딸이 아니라면 흑마법의 대법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물었던 말인데 호크가 저리 반응하니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마 자신의 친딸에게 흑마법의 대법을 사용한 겁니까?”

“내가 언제 공녀님이 그 간악한 칸세르 공작의 친딸이라고 했었나?”

즉각 돌아오는 호크의 대답에 바실러스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공녀는 맞다. 하지만 칸세르 공작의 친딸은 아니다. 대체 그 무슨 말인가. 공녀는 공작의 딸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데 포르시아는 칸세르 공작의 딸이 아니면서도 공녀라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인 것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그때 바실러스는 기억 한구석에 묻어뒀던 십수 년 전의 한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중앙 정계에 별로 상관을 하지 않고 그 가진 바 권력도 크지 않았기에 언제부터인가 제도에서 완전히 철수한 한 가문이 있다. 권력은 크기 않았지만 신분은 높았다.

분명 공작가였다.

제도 미오나인의 북서지구 가장 안쪽에 위치한 오대공작가의 저택들, 이제는 비어버린 그중 한 곳의 주인이었던 가문.

그 가문이 영지에만 웅크리게 된 데에는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제법 시끄러웠지만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바실러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이지아 공작가.

분명 그럴 것이다.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권력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공작가다. 그랬기에 또한 그 지위에 걸맞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비운의 공작가이기도 했다.

십수 년 전 일어났던 그 사건은 실종 사건이었다. 메이지아 공작의 손녀가 실종됐었다. 백방으로 공작가의 모든 힘을 동원해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때 메이지아 공작은 자신이 권력을 멀리해 자신에게 힘이 없어 손녀를 찾지 못했다 자책하면서 영지로 은거했다.

단 하나밖에 없던 딸을 잃은 공작의 아들 부부 역시 치유될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영지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북서지구의 공작 저택 중 한 곳이 주인 없이 비어버린 채 방치되었다.

왜 그때 그 사건이 떠올랐는지 바실러스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호크의 말에 그 사건이 떠올랐다.

“설마… 포르시아 공녀님께서 다른 공작가의……?”

바실러스는 자신이 하는 말이 뜻하는 바를 잘 알았기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바로 그거네. 그분은 칸세르 공작 따위의 천박한 놈의 딸이 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신 분이야. 그런데 지금 그분께서 칸세르라는 성을 쓰고 계시다니…….”

호크의 긍정에 바실러스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다른 공작가의 자손을 데려다가 자신의 딸로 삼다니…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엄청난 일이다.

귀족가 사이에 합의를 한 후 양자로 보내지는 경우는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칸세르 공작의 경우는 일방적인 납치였을 것이다.

“설마 그때 제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메이지아 공녀님이십니까?”

“그렇네. 포르시아 라온 메이지아. 이것이 그분의 진정한 이름일세.”

호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포르시아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바실러스는 머리를 뒤흔드는 둔중한 충격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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