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26화 (12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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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후후후. 왜? 내가 두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가진 것이 신기한가?”

이니안의 당황한 심정을 그대로 투영해 낸 물음이다.

그렇다.

한 사람은 오직 하나의 피어스 브레이크만을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대륙을 지배하는 상식이었다. 이 상식에 허용되는 예외는 오직 사이몬 가만이 유일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라코스가 그 상식을 깼다.

사이몬 가의 사람이 아닌 자가 두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사용했다.

“여러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것은 사이몬 가만의 전유물이 아니지. 전설의 용자 테무이 역시 여러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헬 파이어’라는 검법, 그것은 고대의 검법이었어. 그리고 여러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지.”

‘고대의 검법서라…….’

이니안은 자신의 가문의 검법 이외에 여러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사용할 수 있는 검법이 또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얼마 전 메이린에게 듣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 자신의 가문의 검법은 라칼트의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것. 그랬기에 여러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검법이었다. 그런데 고대에도 그런 검법이 존재했다니.

“크크크. 그럼 이것도 한 번 받아 보도록. 웨이브 오브 헬 파이어!”

커다란 외침에 이어져 라코스의 검에서 뻗어 나오는 지옥불의 파도.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겠다는 듯 엄청난 기세였다.

“만혼금쇄!”

이니안은 거기에 대항해 마령천참검의 수법을 펼쳤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검의 그림자. 그리고 검의 그림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라코스의 검이 만들어낸 파도를 한 곳으로 몰아 감싸 안았다.

쾅!

피어스 브레이크와 피어스 브레이크의 충돌은 요란한 폭음을 만들었다.

“어, 어떻게!”

눈앞에 드러난 결과에 라코스는 황당하다는 얼굴이다. 상대도 역시 복수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검법서가 하나만 남았을 리 없지 않습니까?”

일단 이니안은 자신이 사이몬 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기 싫었기에 지금 막 알게 된 고대의 검법서를 입에 담았다.

“큭큭. 그런 거란 말인가? 고대의 검법을 익힌 이가 용자로 나타나다니. 어쩌면 보아닌의 뜻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군.”

자조적인 웃음이다.

“그렇다면 어디 이것도 막아봐. 마지막 피어스 브레이크다.”

라코스는 천천히 검을 중단으로 곧추세웠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두 눈. 이니안을 노려보고 있다.

“디스트로이 오브 헬 파이어!”

커다란 외침과 함께 전력으로 쇄도하는 라코스의 온몸이 보랏빛 오러에 감싸였다.

“창천광휘!”

라코스의 피어스 브레이크에 대항하는 이니안의 피어스 브레이크. 아니, 정확히는 마령천참검의 제육초의 검법.

이니안의 몸은 푸른빛으로 완전히 감싸였다. 푸르게 빛나는 이니안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 그 검에서 뻗어나가는 청광의 오러.

보랏빛 불꽃으로 화해 온몸을 던져 오는 라코스와 이니안의 손에서 뻗어나간 푸른빛이 부딪쳤다.

콰앙!

요란하지만 짧은 폭음.

그걸로 끝이었다.

언제 날아가 처박힌 것일까? 이니안이 서 있는 곳의 반대편 벽은 사람의 모양으로 함몰되어 있고 거기에 정확히 끼어 있는 라코스는 연신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니안은 담담한 얼굴로 이미 오러가 사라진 검을 검집에 꽂았다.

“우와와와와와! 용자님 만세!”

그 모습에 무도회장은 이니안을 칭송하는 만세 소리로 가득 찼다.

“세이버 경.”

담담히 라코스 왕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니안은 등 뒤에서 들린 포르시아의 목소리에 당황했다. 목소리만이 들린 것이 아니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감촉. 그리고 허리를 둘러 배로 나온 가녀린 팔.

포르시아는 이니안을 등 뒤에서 껴안고 있었다.

“고, 공녀님.”

이니안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냥 잠시 이렇게 있어요. 정말 수고했어요. 그리고 다행이에요.”

포르시아의 목소리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쳇. 이건 사기야. 9서클의 절대 방어 마법이라니. 그걸 어떻게 뚫으라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회만을 노리며 포르시아를 주시하던 미르는 질린 듯한 한마디를 남기고 무도회장을 빠져나갔다.

미르가 바라던 소란은 끝났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나타난 사내의 두 번째 방해로 이번에는 암살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이제 끝난 거야?”

이니안과 포르시아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칼이 이니안의 곁에 서며 물었다. 칼의 등장에 포르시아는 이니안에게서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보다도 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

한가로웠다.

주인이 없는 집을 지키는 일은 정말이지 심심하고도 지루한 일이다. 지금 바실러스 자작은 그 지루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다.

칸세르 영지의 영주성.

칸세르 공작의 그늘에 들어간 후 현재 그가 진행 중인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파견된 곳이다. 원래는 클레비클이 와야 하는 곳이었으나 마침 바실러스 자작이 휘하에 들어왔기에 그를 보낸 것이다.

“흥,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와인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 있던 바실러스는 낮게 중얼거렸다. 칸세르 공작과 시메티딘, 그리고 클레비클이 그에게 해준 설명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과거 경험했던 충격적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드래곤의 눈물을 사용했다가 부작용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겨우 그 정도의 일이라면 자신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칸세르 공작은 아직 바실러스를 믿지 않았다.

“그건 당연하지. 나라도 그럴 테니까.”

바실러스는 와인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도 이제 막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수하에게 자신이 비밀리에 진행 중인 일에 대해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우선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관찰하고 시험하는 것이 먼저였다.

“뭐, 벌여놓은 일이 보통 큰일이 아닌 것 같으니. 그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앞으로 내가 있을 곳을 좀 둘러보기로 할까?”

바실러스는 이곳에 전날 도착해 이제 아침 식사 후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늦은 저녁에 도착하였기에 침실로 직행한 후 아침을 식당에서 먹고 응접실에서 여유있는 와인 한 잔, 그것이 지금까지 바실러스가 한 일이다.

그의 일은 포르시아가 이곳으로 돌아와야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포르시아에게 펼쳐진 대법의 이상 감시. 그것이 바실러스의 일이다. 결국 주인 없는 집에서 그는 할 일이 없었다.

결국 바실러스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저택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과연 공작의 영주성답게 저택은 넓었다. 하지만 바실러스 역시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천천히 저택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하인과 시녀가 따라다니는 것은 귀찮았기에 홀로 천천히 거닐었다.

“응?”

일층의 복도를 걷던 바실러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눈앞의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흑마법의 기운이군.”

희미하게 느껴지는 암흑 마나의 기운. 분명 흑마법의 자취가 남아 있는 방일 것이다. 바실러스 역시 흑마법을 익힌 마법사. 호기심에 문을 열었다.

끼이익.

공작가의 저택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나무문이 오랜만의 방문객을 요란한 소리로 환영한다.

“응?”

방일 것이라 예상하고 문을 연 바실러스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길게 이어진 복도였다.

“그래서 암흑 마나가 옅게 느껴진 건가?”

바실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는 길게 이어졌다. 군데군데 갈림길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바실러스는 암흑 마나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을 향해 걸었다.

“이곳이군.”

복도를 따라 걷던 바실러스가 걸음을 멈췄다. 그 앞에는 낡디 낡은 나무문이 허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바실러스는 망설임 없이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분명한 방이었다. 단,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제단으로 보이는 네모반듯한 모양의 바위가 방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바실러스는 그 바위로 된 제단을 잠시 바라보더니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무언가를 찾는 듯 천장을 꼼꼼히 살폈다.

“과연.”

바실러스의 시선은 제단의 한가운데와 대응하는 천장의 한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그곳에 무엇인가 박혀 있었는지 움푹 파여 있었다.

“이곳에서 대법을 시행했군.”

바실러스는 이곳에 남은 암흑 마나의 흔적과 제단 그리고 천장의 흔적으로 이 방이 포르시아에게 드래곤의 눈물을 사용한 대법을 시행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곳에 눈물을 박고 이 제단에 대응 마법진을 그렸겠지.”

제단에 다가간 바실러스는 그사이 쌓인 먼지를 손으로 가볍게 쓸었다. 과연 먼지가 쓸려 나간 자리 아래에는 희미하게 마법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호오, 아직 지우지 않았군. 원래 이런 것은 대법을 마친 후 지우는 것이 보통인데. 하긴 이곳에 올 사람이 클레비클을 제외하면 없었겠지. 설마 내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또 내가 이곳에 오리라고는 더 더욱 생각지 못했겠지.”

바실러스는 싱긋 웃었다.

“윈드(Wind).”

간단한 초급의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이다. 간단한 마법이지만 제단에 쌓인 먼지를 모두 날려 버리는 데는 충분했다. 제단에 쌓인 먼지를 모두 날려 보내자 희미하지만 대법에 사용된 마법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드러났다.

“어디 한 번 볼까?”

바실러스는 제단의 마법진을 찬찬히 살폈다. 마법진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은 빛나고 있었다.

“이상하군.”

한참을 마법진을 들여다보던 바실러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고는 다시 처음부터 마법진을 살폈다.

그렇게 두 번을 마법진을 살핀 바실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제단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리크리에이트 메모리의 마법진과는 좀 다른데… 이렇게 하면 부작용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안한 수식인데… 확실히 강력하게 기억 조작을 할 수 있지만 안정성은 떨어지는 마법진을 사용하다니 대체 어떤 생각인 거지? 게다가 이 부분의 마법진은 도무지 어떤 용도인지 알 수가 없어. 이런 방식으로 마나를 운용하면… 어렵군. 이렇게 난해한 마법진이라니, 대체 드래곤의 눈물로 무슨 일을 꾸민 것이지? 클레비클.”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마법진과는 그 구성이 달랐기에 바실러스는 두 번이나 마법진을 살핀 것이다. 클레비클 정도의 흑마법사가 실수로 이런 마법진을 사용했을 리는 없었기에 무언가 또 다른 안배가 있는지를 살폈으나 결과는 전혀 알 수 없다였다.

“알 수 없군.”

나무문을 닫고 다시 복도로 나온 바실러스는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어쩐다…….”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까란 생각으로 들어왔던 곳에서 오히려 의혹만 커졌다. 바실러스는 문 앞에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저쪽으로 가볼까?”

대법이 펼쳐졌던 방에서 가장 강한 암흑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기에 다른 기운은 무시하고 이 방으로 왔었다. 하지만 이 방을 모두 살폈으니 다른 쪽에서 뻗어 나오는 암흑 마나들에 호기심이 동했다. 바실러스는 곧 복도 중 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그 복도는 곧 끝이 났다. 조금 전의 방과는 다르게 두꺼운 나무문이 복도를 막고 있었다.

“잠겼군.”

바실러스는 한눈에 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자물쇠로 잠귄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별것 아니었다. 오히려 흑마법으로 문을 열 수 없도록 잠가 놓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바실러스의 두 눈에 기대가 어렸다.

“일단 마법부터 해제해야겠지.”

바실러스는 문에 걸려 있는 잠금 마법의 마나의 흐름을 살폈다.

“과연. 겨우 잠금 마법을 8서클의 수식으로 걸어 놓았다니. 후후. 무얼 감춰 놓은 걸까? 클레비클 경.”

바실러스는 우선 7서클 수식의 잠금 해제 백마법을 문을 향해 사용했다. 그러자 문에 걸린 잠금 마법이 백마법에 대항하며 자금 해제를 무력화시켰다.

그 순간 바실러스는 연속해서 7서클의 잠금 해제 흑마법을 사용했다. 백마법에 대항하던 잠금 마법은 다시 흑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그 힘을 나누었다.

그사이 드러난 마나의 갈라짐. 바실러스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퓨즈 디스펠.”

마나의 갈라진 틈을 향해 사용된 마법 무효화 주문. 하지만 다른 주문과 주문을 구성하는 시동어가 달랐다. 그것은 마나와 암흑 마나가 뒤섞여 이루어진 주문이었다.

바실러스의 주문이 발현된 순간 문이 번쩍였다.

“후후후. 7서클의 주문으로 8서클의 주문을 무효화시키는 방법, 백마법과 흑마법을 모두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지.”

바실러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물쇠를 매직 미사일로 부쉈다.

“자, 그럼 무얼 숨겨 놓으셨는지 확인해 볼까?”

문을 열고 바실러스는 천천히 타다만 촛불이 벽에 걸려 있는 어두운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가지 않아 갈림길이 나타났다. 잠금 마법이 걸려 있던 문을 지나기 전에 있던 갈림길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로로군.”

바실러스는 갈림길에서 풍기는 미묘한 기운에 그것이 마법이 가미된 복잡함 미로임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얼 숨겨 놓은 것인가?”

8서클의 잠금 마법에 이어서 나타난 것이 미로라니… 대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숨겨 놓았기에 이렇게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는 것일까. 바실러스의 호기심이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

바실러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미로다. 그렇다면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뜻. 흑마법사 클레비클이 숨겨놓은 것인 이상 암흑 마나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찾으면 그곳이 길일 것이다.

잠시 후 바실러스는 눈을 떴다. 그리고 거침없이 미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 구부러진 미로를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더욱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길을 갈수록 어두워졌다.

두둥실 떠 있는 라이트 볼이 바실러스가 갈 길을 밝혀주고 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라이트 볼의 불빛을 반사하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가까이 가서 보니 쇠창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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