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25화 (12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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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무슨 일이야? 한참 재미있는 이야기 중이었는데.”

칼은 작게 투덜거렸다.

자신은 이니안과 계약으로 영혼의 안식처를 얻은 바, 이니안의 부름에 응할 의무가 있었다. 부름의 조건은 칼의 풀네임.

이니안은 그 조건에 따라 풀네임으로 그를 불렀다. 그리고 칼은 이니안의 부름에 따라 이리아와 메이린과 함께 한창 열띤 진법에 관한 토론 중 이렇게 갑작스럽게 불려온 것이다.

“주위를 보면 대강 알 것 같지 않아?”

이니안의 말에 칼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혼자라 이거냐?”

“그래.”

“보아하니, 반란이로군.”

“눈치는.”

“내가 보내온 세월이 얼만데.”

“하긴.”

“내가 할 일은?”

“공녀님을 지켜 드려. 그것 하나만 하면 돼.”

“쳇. 생각보다 시시하군.”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알았어.”

“원하는 만큼 힘을 사용해도 좋아, 이곳에서 공녀님을 지키는 동안은.”

“그거 고마운 소리군.”

짧고 간결하면서 빠른 대화.

주변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흑발의 괴인과 이니안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스르릉.

이니안이 검을 뽑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지요.”

이니안이 싱긋 웃었다.

“훗. 결국은 이것이 결론입니까? 저기 저분은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라코스가 왼손을 치켜들었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무도회장을 둘러싸고 있던 근위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우리도…….”

기사들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다시 이니안에게 시선을 돌린 라코스는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왜냐면 그가 말을 해야 할 상대가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니안이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정체불명의 흑발의 귀공자뿐이었다.

“으악!”

“아악!”

“으윽!”

그때 라코스의 귀에 들려오는 비명 소리. 라코스의 목이 재빨리 돌아간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

이니안이 종횡무진 무도회장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편으로 돌아선 근위기사들을 베고 있었다. 애초에 그는 라코스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반역은 라코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우선 그의 손발을 먼저 베기로 한 것이다.

이니안이 라코스를 상대하는 동안 라코스 휘하의 근위기사들에게 이 자리의 귀족들이 해를 입을 수 있었다. 이니안은 우선 그러한 사태를 막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익!”

이니안의 행동에 라코스의 두 눈에 불이 붙었다.

“그렇게 나왔단 말이지.”

라코스의 검에 맺힌 오러가 활활 타올랐다.

“이얏!”

라코스는 포르시아를 향해 쇄도했다. 이니안이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성녀. 그녀를 베면 이니안의 행동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의 존재는 흑발의 괴인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단번에 같이 베리라.

라코스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모든 것을 그 한 번에 베어버리겠다는 의지의 참격.

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라코스는 자신의 손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전면을 주시했다.

반투명한 막이 흑발 괴인과 성녀를 감싸고 있었다.

“마, 마법사였나? 젠장.”

분명 방어 마법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라코스는 당황했다.

“으악!”

“아악!”

그사이에도 이니안은 착실히 근위기사의 수를 줄여 나가고 있었다. 이니안이 검을 한 번 휘두르면 꼭 한 번의 비명이 터지면서 한 명의 기사가 행동 불능의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니안의 검은 간결하고 깔끔했으며 정확했다.

“제, 젠장.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라코스는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온몸의 마나를 몽땅 검으로 밀어 넣었다. 검에 맺힌 보랏빛 오러는 이제 보랏빛 불꽃이라도 된 듯 더욱 거세게 활활 타올랐다.

챙! 챙! 챙!

라코스가 마법의 방어막을 향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라코스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니안이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제압하기 전에 먼저 성녀의 신병을 확보해야 했다. 그래야 저 거침없는 용자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챙! 챙! 챙!

다시금 라코스의 검이 휘둘러졌다.

이니안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세 개의 검을 마령보의 방위를 밟으며 간단하게 피했다. 몸을 핑그르르 돌리며 내뻗는 그의 검에 가장 앞서 달려오던 기사의 양 발목에서 피가 솟구쳐 오른다.

“으윽.”

짧은 신음과 함께 쓰러진 그는 일어서려고 용을 썼지만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서지를 못했다. 발에 힘을 전달하는 힘줄을 잘랐기에 그는 더 이상 제대로 뛰지 못할 것이다. 제대로 치료를 하고 노력한다면 보통 사람처럼 걸을 수 있게는 되겠지만 그것이 한계다.

쓰러진 기사를 뒤로하고 다시 번쩍이는 검날에 그 뒤의 두 기사도 무릎을 꿇었다. 이니안은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정신없이 몰아쳐야 했다. 그래야 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한다. 혹시라도 귀족이나 왕족, 또는 국왕을 공격하는 일이 생기면 낭패다. 이니안은 라코스 왕자 쪽에 붙은 근위기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빠른 속도로 그들을 베면서 지나갔다.

그사이 라코스가 포르시아를 공격하는 소리를 들었으나 무시했다. 일만 년의 세월을 살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영혼으로 남은 태고룡 칼그레이언이 지키고 있다. 그가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뚫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라코스는 자충수를 두었다. 포르시아를 잡으려 하기보다는 이니안을 막았어야 했다. 물론 그가 막는다고 그를 상대할 이니안이 아니었다. 이니안은 어떻게든 라코스를 피해 근위기사들을 제압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코스가 끼어들면 지금처럼 무서운 속도로 근위기사들을 제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근위기사들이 지금처럼 우왕좌왕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국왕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라코스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현재 그는 어떻게든 성녀를 사로잡아 이니안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쯧쯧. 그런다고 이 실드가 깨질 것 같은가? 앱솔루트 실드라는 9서클의 방어 마법일세.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혼자서 이 실드를 깨는 것은 불가능하지.”

칼은 사력을 다해 실드에 부딪혀 오는 라코스의 모습에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혈화만천!”

그때 터져나온 이니안의 우렁찬 목소리.

이니안의 검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검끝에 점점이 맺히는 핏빛 꽃. 그 끝은 근위기사들을 향했다.

“우아아아악!”

그걸로 끝이었다.

그 한 번의 공격에 무도회장을 포위하고 있던 근위기사들이 모두 쓰러졌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 모습에 라코스는 검을 늘어뜨렸다. 검은 여전히 오러가 타오르고 있었지만 처음에 비해 많이 사그라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저런 피어스 브레이크라니……!”

“오오, 용자시여!”

상반되는 말소리.

한 번의 공격으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는 라코스 왕자가 혼자였다.

“정녕 용자는 존재한다는 것인가…….”

정신이 들었다. 이제껏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우습게도 혼자가 되니 제정신이 돌아왔다. 라코스는 자신이 마지막에 둔 자충수를 떠올렸다.

“빌어먹을. 일이 너무 쉽게 풀렸어.”

“세상일은 쉽지 않은 법이지요.”

근위기사들을 모두 정리한 이니안이 라코스에게 다가오며 웃었다.

라코스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서 있는 칼이 만들어낸 마법 실드를 힐끗 보았다.

“퓨리 오브 헬 파이어!”

커다란 외침과 함께 휘둘러진 검.

검끝에서 보랏빛 오러가 성난 파도와 같은 불꽃으로 변해 뿜어져 나갔다.

차르르르.

오러와 부딪친 실드에서 울리는 소리.

칼은 당황한 얼굴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무수히 두드리기만 하던 실드를 단번에 깨버렸다.

칼은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실드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두 겹이었다.

“크크크크.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뭐에 홀려 그렇게 바보 같은 행동을 했지?”

단 한 번 펼친 라코스의 피어스 브레이크에 칼이 만들어낸 실드가 순간이지만 깨졌다. 그는 한 겹의 실드를 깰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스스로 패배하는 길로 들어서 버린 것이다.

“정말 놀랍군요. 그 정도까지의 힘이라니.”

이니안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피어스 브레이크만의 위력이라면 카르세온을 압도했다.

“네 덕이지, 이니안 세이버. 크크크. 이런 식으로 방해를 받다니 말이야.”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저는 절반의 원인밖에 되지 않을 것 같군요. 당신의 능력이라면 제가 이렇게 끼어들었더라도 충분히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하는 당신의 임기응변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젠장. 그게 맞는 말이라는 게 나를 더 아프게 하는군.”

라코스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했다.

눈앞에 용자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사가 있었고 뒤에는 오러 블레이드는 우습게 막아내는 실드를 간단히 만들어내는 마법사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지 못한 근위기사들은 국왕을 둘러싼 채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혼자였다.

반역은 실패했다.

“후우. 운이 나쁘신 분인 줄 알았는데 행운은 가지고 계시는군요, 아바마마. 이 상황에서 전설의 용자가 함께 있었다니요.”

국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한 눈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는 국왕이었다.

“당신의 잘못 중 하나는 제 실력을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로레인 케이 사이몬 경과의 대결, 당신은 그것을 봤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제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테고 제가 있는 곳에서 반역을 일으키는 실수는 하지 않았겠지요.”

이니안의 말에 라코스는 싱긋 웃었다.

“분명 그것도 있겠군. 가장 먼저 성녀를 제압했어야 했어,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라코스의 얼굴에 잠시 잠깐 후회가 스치고 지나갔다.

“뭐, 이미 지난 일. 어쩔 수 없지. 반역은 실패다.”

라코스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니안을 향하는 라코스의 두 눈이 타올랐다.

“당신의 실력은 지금이라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군.”

라코스의 검에 어린 오러가 다시금 활활 타오른다.

“기꺼이.”

이니안은 웃으면서 검을 곧추 세웠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검을 뽑은 후 처음으로 이니안의 검은 푸른빛 청광의 오러를 피워 올렸다.

무도회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모든 시선은 이니안과 라코스의 검끝을 향해 있다.

“이얍!”

“타핫!”

두 개의 기합성과 함께 두 검은 부딪쳤다.

우우웅!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며 내는 요란한 울림.

두 사람이 곧 거리를 두고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맞붙었다. 조금 전과 다른 점이라면 절대 인간의 눈으로는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라코스가 검을 수평으로 휘두르는 순간 이니안이 한 발 뒤로 물러나 검의 간격에서 벗어났다가 활이 튕기듯 앞으로 쭈욱 쇄도해 검을 찌른다.

라코스는 반보 옆으로 움직이며 몸을 유려하게 회전시켜 이니안의 검을 피하면서 자신의 검을 밑에서부터 이니안의 다리를 노리며 올려 친다.

이니안은 자신의 검을 내려치며 라코스의 검을 막는다. 그리고 그때의 반동으로 몸을 솟구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라코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라코스가 주위를 경계하는 사이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오는 검. 라코스는 앞으로 황급히 구르며 이니안의 검을 피한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전력을 다해 세로로 검을 그어 내리는 라코스. 라코스를 쫓아 들어오던 이니안은 검을 들어 라코스의 공격을 막는다.

우우웅!

다시 한 번 울리는 요란한 소리.

하지만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몸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그리고 다시 부딪친다.

이니안이 마령보의 방위를 밟으면서 몸을 어지러이 흔든다. 그러자 여러 명의 이니안이 검을 들고 나타난다.

마령환신(魔靈幻身).

마령보의 수법 중 분신을 만들어내어 적을 현혹시키는 수법이다.

“쳇!”

라코스의 눈에 어느 하나 이니안이 아닌 자가 없었다. 진짜는 가짜 속에 완벽하게 숨어들었다.

“그렇다면 모조리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수많은 이니안.

라코스의 검이 또다시 크게 타올랐다.

“댄스 오브 헬 파이어!”

라코스의 검이 어지러이 움직인다. 라코스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 보랏빛 불꽃이 피어난다.

불꽃이 춤을 춘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보랏빛 불꽃이 춤을 춘다. 불꽃의 춤에 이니안의 환영이 하나하나 사라졌다.

챙!

오직 단 하나의 환영만이 자신을 태우려 달려드는 불꽃을 막았다. 환영이 아닌 것이다. 이니안의 실체였다.

“어떻게…….”

이니안은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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