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15화 (115/175)

=======================================

[115]

이런 나의 절규와는 상관없이 교실의 문이 힘찬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멋진 콧수염을 기른 멋쟁이 신사가 한 분 들어오셨다.

“수학 선생님이세요. 카일로니아 왕국에서 최고의 수학자로 유명하신 분이에요, 피타라 선생님은요.”

후우. 학교에 들어왔으니 열심히 공부는 해야겠지. 그렇게 나는 열심히 수업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물론 알아듣는 것은 전무했다. 편입 시험을 위해 내가 공부했던 범위를 벗어난 부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으음. 다들 잘 알겠죠? 그럼 교과서에 있는 연습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죠. 어디, 오늘 이 반에 새로 편입한 학생이 있다고 했죠?”

피타라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오, 반가워요. 이름이 뭐죠?”

“이니안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이니안 학생. 그럼 왕립학교에 편입한 것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이 문제는 이니안 학생이 풀어보도록 하죠. 앞으로 나오세요.”

젠장. 똥 밟았다. 어떻게 첫날, 첫 수업에서 이렇게 딱 걸려 앞으로 나갈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가장 자신 없는 수학에서, 공부한 적 없는 범위의 부분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수 분 후.

“후우∼ 됐어요. 이니안 학생, 수고했으니 자리에 들어가세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만.”

한숨 섞인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지금도 계속해서 귀로 들려오는 반 아이들의 속삭임 때문이었다.

“어머, 얘. 어떻게 저 문제를 못 풀 수가 있지?”

“기집애, 넌 풀 수 있어?”

“아니.”

“그런데?”

“얘는,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지만 저 편입생은 사이몬이라는 성을 쓴다고. 그렇다면 저 정도 문제는 우습게 풀어야 하는 거 아냐?”

가장 처음 들린 대화였다.

“어라? 진짜 사이몬 공작가 사람 맞을까? 저 쉬운 문제도 못 풀고?”

“혹시 공작가 사칭 아닐까?”

따위의 말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젠장.

옆에 앉은 마일론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다. 후아. 처음부터 꼬이는구나, 꼬여.

“으음… 그럼, 쉐이나 양이 한 번 풀어볼까요?”

선생님의 지명에 한 여자 아이가 일어나서 앞으로 나갔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푸른 바다빛의 머리칼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도무지 감도 잡지 못한 문제를 푸는데 걸린 시간이 내가 검 몇 번 휘두르는데 걸린 시간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훌륭해요! 역시 쉐이나 양이군요. 정답입니다. 수고했어요.”

선생님의 말에 그 아이는 자리에 돌아가기 위해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열세 살의 여자 아이일 뿐인데 난 그 아이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예쁘다’나 ‘귀엽다’가 아닌 ‘아름답다’라니!

난 눈이 무척이나 높다. 함께 사는 누나들의 미모가 있다 보니 나의 눈이 무척이나 높은 게 당연했다. 왜냐면 나에게 있어 여자들의 외모 표준은 누나들이었으니까.

나의 세 누나는 카일로니아에서도 손꼽히는 미인들이다. 파티에만 나가면 쇄도하는 춤 신청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들이다. 아, 큰누나는 제외다. 우리 카일로니아의 귀족 청년들은 간이 작아서 그런지 감히 큰누나에게 춤 신청을 하는 이가 없었다.

나야 파티 같은데 나갈 시간 있으면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른다는 주의였기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파티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다 형이 있고 내가 막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나뿐 아니라 누나들도 파티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덕분에 귀족들이 파티장에서 누나들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고 그만큼 인기가 계속 높아졌다. 큰누나는 다시 한 번 제외다.

요즘 파티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께서 큰누나를 강제로 끌고 가신다. 기필코 어떤 불쌍한 남자랑 엮어서 시집보내시려는 생각이라는 걸 우리 집 사람이면 누구나 알았다.

아무튼 그런 내가 겨우 열세 살짜리 아이를 보고 아름답다는 감탄을 한 것이다. 정말. 학교에 처음 온 날부터 연이어 터지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예쁘죠?”

나의 기색을 알아차린 것인가? 마일론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니.”

나는 당연히 부정했다. 내가 쉐이나라는 아이를 보고 느낀 것은 예쁨이 아닌 아름다움이었기에 나의 표정은 당당했다.

“어라? 의외네요. 형 얼굴 보고 그런 줄 알았는데. 쉐이나는 우리 학교의 이대미녀 중 한 명이라고요.”

“이대미녀?”

마일론의 말에 나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는 물었다.

“아! 맞다! 다른 이대미녀 중 한 명이랑 같이 사니까 예쁘다는 걸 별로 못 느낄 수도 있겠네요. 우리 카일로니아 왕립학교의 이대미녀는 바로 10학년에 있는 메이린 케이 사이몬 선배와 저기 있는 쉐이나 미에른이라고요.”

호오∼ 막내 누나가 왕립학교 이대미녀 중 한 명이라… 전혀 몰랐네. 하긴 그 정도 미모면 당연하지.

“거기다 그 두 사람 모두가 이대천재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일론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왕립학교 사상 최고 성적 기록자는 이미 졸업한 이슈데인 선배였어요. 모든 학년 모든 과목에서 최고였죠.”

마일론의 말에 나의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튼 형 이야기만 나오면 기분이 나빠지니…….

“그런데 그 기록을 깬 최초의 사람이 이리아 선배에요. 6학년부터 고급과목을 배우는데 검술 기초, 마법 기초, 전략전술 기초, 행정 기초. 이 네 과목이죠. 그중 마법 관련 과목은 이리아 선배가 모두 최고점을 기록했어요. 그 점수들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어요. 그리고 검술과 마법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과목에서 이슈데인 선배의 기록을 깬 사람이 둘 있어요. 그게 바로 메이린 선배와 쉐이나죠.”

마일론의 설명에 나는 흥미가 동했다. 막내 누나가 그랬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쉐이나라는 저 아이가 형이 세운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니 갑자기 기특하게 보였다.

“일단 쉐이나가 이번에 6학년이 되었으니까 5학년까지의 성적만 비교할 수 있는데요. 검술과 마법을 제외하면 1등이 메이린 선배, 2등이 쉐이나, 3등이 이슈데인 선배예요. 뭐, 아직 고급과목은 시험을 치지 않아서 쉐이나 점수는 없지만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메이린 선배와 쉐이나의 점수 차가 줄어들고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대단하군, 저 쉐이나란 아이. 거의 막내 누나 수준이라면 보통 아이는 아닌 것 같다.

“크음.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니안 학생, 마일론 학생. 다음부터는 수업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세요. 그렇게 둘이서만 즐겁게 대화하지 말고요.”

피타라 선생님의 지적에 나와 마일론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1교시가 마치고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왕립학교는 60분 수업에 쉬는 시간이 20분이다. 수업시간의 1/3에 해당하는 시간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께서 교실에서 나가시고 나서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껏 기지개를 켰다. 한 시간 동안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나에게 죽으라는 소리였다. 얼마나 지루한지… 물론 호흡법을 할 때는 제외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듣기로는 편입생이 처음 들어가면 호기심이 가득한 동급생들이 주위를 둘러싸서 쉴 틈이 없다고 들었는데 내 주위는 너무 조용하다.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걸까? 왜 이러지? 나는 어색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는 아이들은 다들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아마도 형이 수학 시간에 보여준 모습 때문일걸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옆에서 들린 마일론의 말에 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형, 왕립학교에서 사이몬이라는 성은 신화이자 전설이고 모든 학생의 우상이라고요. 그런데 수학 시간에 그런 처참한 모습을 보였으니… 사실 그 문제 그렇게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고요. 그러니 아이들이 안 다가오는 거죠. 형이 과연 정말 사이몬 가의 사람인지 확신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끄응∼ 이 녀석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내가 한 생각을 알고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1교시의 그 망신스러운 일이 문제라니 어떻게 하지? 정말 고민이네.

“그런데 형, 수학 상당히 싫어하나 봐요?”

“응.”

“그럼 안 되죠. 수학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하고 재미있는 학문인데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앞으로 같이 공부해요. 명색이 사이몬이라는 성을 쓴다면 기본 수준은 돼야죠.”

“됐어.”

미친 녀석, 수학이 위대하고 훌륭하고 재미있다니. 왠지 상종 못할 녀석이라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저 싸늘한 시선을 어떻게 하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시선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런 망신에 저런 시선이라면 나의 학교생활은 꼬여도 정말 제대로 꼬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참. 형, 이번 쉬는 시간은 쉴 시간 없어요. 빨리 준비해서 나가야 해요.”

“왜?”

“2교시는 검술 기초예요. 연무장까지 가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요.”

호오∼! 이번 시간이 검술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보여줘야겠군, 사이몬이라는 성이 가지는 힘을.

“이니안 형, 이리로 오세요.”

내가 검술 수업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마일론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응? 왜?”

“그럼 형은 그 옷을 입고 검술 수업을 들으실 거예요?

그러고 보니 이 옷을 입고 검을 휘두르기는 좀 그럴 것 같다. 땀도 제법 흐를 테고 움직이기도 불편할 테니. 그럼 어떻게 하지? 검술 수련 때 입는 연무복은 챙겨오지 않았는데.

“연무복은 안 챙겨왔는데 어떻게 하지?”

“걱정 마세요. 학교에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일단 형은 오늘 처음이니까 몸 치수를 재야죠. 제가 안내할게요.”

그렇게 마일론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곳에서 줄자로 내 몸의 치수를 재고 적당한 연무복을 지급받았다.

“흐음… 좋네. 이런 것도 다 준비되어 있고.”

“당연하죠. 초대 퓨이어스 공작님과 초대 사이몬 공작님이 주장해서 만든 학교인걸요.”

“응? 뭐라고?”

검술 수업이 있는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길 때 마일론이 이야기한 의외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퓨이어스 공작가가 왕립학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 집안이? 의외의 사실을 들었다.

“모르셨어요? 우리 카일로니아가 건국된 후 건국왕 전하께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죠. 모르세요? 편입 시험에 역사가 있었을 텐데요.”

듣고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분명히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그 부분은 대강 보고 넘어갔었다. 봐야 할 범위가 얼마였는데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다 외운단 말인가!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부분이 있었지. 그런데 워낙 범위가 많아서 그 부분은 대강 보고 넘어갔었거든.”

“그래요?”

마일론 녀석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녀석이 점점 날 무시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건국왕 전하께서 우리 카일로니아를 건국하시고 건국공신인 사대공작들을 모아놓고 물으셨죠. ‘나라는 세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인데 어떻게 해야 우리 카일로니아가 계속하여 발전하겠소?’ 이렇게요.”

“그래? 그래서?”

“그때 초대 퓨이어스 공작께서 말씀하셨대요. ‘폐하, 자고로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에 힘을 쓰셔야 합니다. 훌륭한 인재들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기둥을 세우는 일인 법. 왕립학교를 세워 귀족과 평민들의 차이를 두지 말고 널리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이죠.”

“그랬었군. 그래서 왕립학교가 설립된 거야?”

“아니요. 다른 두 공작의 반대가 무척이나 심했다고 해요. 특히나 귀족과 평민의 차별 없이 가르치자는 말에 크게 반대하셨다고 하더군요.”

“호오∼ 그런데 어떻게 왕립학교가 만들어진 거지?”

“제가 앞서 말씀드렸잖아요. 사이몬 공작님의 힘이 컸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궁금한 것은 그거란 말이지. 왜 이렇게 서론이 긴 거야? 빨랑 말 좀 해주지.

“후우. 도대체 어떻게 된 건데?”

“‘폐하, 자고로 교육은 국가의 백년을 좌우하는 커다란 계획이라 하였습니다. 인재를 가리는데 신분은 큰 허물이 아닙니다. 퓨이어스 공작의 청대로 하십시오’. 사이몬 공작님께서 그러셨대요. 건국공신가가 사대공작가지만 그중 초대 사이몬 공작께서는 건국왕 전하의 호위기사로 그분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한 일이 있었죠. 그런 분께서 힘을 더하신 결과 왕립학교가 세워진 거예요. 학교를 세우는데 필요한 자금 중 많은 부분을 사이몬 공작께서 지원하셨고요.”

그런 일이 있었나? 그런데 내가 왜 그 부분을 빠뜨렸지? 우리 가문의 초대 가주께서 하신 일이면 내가 유심히 봤을 텐데…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내가 공부한 책에는 없었나?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데 다시 한 번 마일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여기예요.”

“응? 벌써 다 왔어?”

“예.”

마일론은 우리 눈앞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널따란 실내 연무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야! 멋진데! 이러면 비 올 때도 검술 수련을 할 수 있겠어!”

“역시 사이몬 가 사람이네요, 형은. 연무장을 보고 이리도 좋아하니 말이에요.”

당연하지. 난 밥 먹는 거랑 잠자는 거보다도 검술 수련이 더 좋은데.

“훗. 그렇게 보여?”

마일론의 말에 되묻는 나의 목소리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아니, 벌써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목검은 여기에 있어요. 형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돼요.”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검대를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하나하나 손에 쥐어보며 가장 느낌이 좋은 녀석을 찾는데 영 신통한 녀석이 없었다.

역시 우리 집에 있는 목검만 한 것이 없다.

그나마 가장 나은 녀석을 골라잡고 연무장 가운데로 갔다. 이미 그곳에는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처음 인사를 할 때 대강 아이들의 얼굴을 익혔기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건 싫어하지만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잊지 않는다. 왜냐면 난 천재니까.

내가 고른 목검을 가지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아이들이 슬금슬금 피했다. 이런 아무래도 1교시 때의 내 모습이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땡. 땡. 땡.

그때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2교시 수업 시작 종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