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11화 (11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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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잠시 후 무마타가 찾아와 대결 장소는 본궁 옆의 기사단의 실내 연무장이라고 전해줬다.

이니안은 그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버 경.”

“네, 공녀님.”

“절대로 조심하셔야 해요. 지는 건 상관없으니까 절대 다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절대 다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포르시아가 당부하자 이니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웃음이야. 후훗.’

이니안이 걱정되는 한편, 그의 웃음에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포르시아다.

이니안은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크크크. 그래, 지금은 그렇게 여유롭겠지. 하지만 내일 대결 장소에 나가서 상대를 보면 어떨까?’

케라우는 벌써부터 내일의 대결이 기대되는 듯 속으로 웃었다.

“케라우 씨,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속으로만 웃는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일까? 어떻게 알았는지 포르시아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케라우는 대강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를 향한 의심의 시선은 여전했다.

‘저 녀석, 뭔가를 꾸미는 것인가?’

그 의심의 시선 중 하나는 이니안의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날이 밝았다.

이제 오늘 정오면 이니안은 본궁 기사단의 실내 연무장에서 소드 마스터와 대결을 펼쳐야 한다.

그 소식은 또 어떻게 왕궁에 전해진 것인지 정오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연무장의 관람석 자리가 꽉 찼다.

모두들 사이몬 가의 여기사와 보아닌의 용자와의 대결을 보기 위해 일찍부터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잘 보이는 자리에는 이미 고위 귀족들이 앉아 있었다.

앞쪽 잘 보이는 자리 중 비어 있는 곳은 국왕 부부의 자리와 이니안 일행, 그리고 로레인 일행의 자리뿐이었다.

“이제 곧이네. 후후.”

연무장의 한쪽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시계를 힐끗 본 메이린은 즐거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

곧 귀여운 막내를 본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았다. 단지 로레인만이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다.

카르세온에게 들은 바로는 제법 예전 실력을 찾은 것 같지만 그래 봤자였다. 겨우 카르세온 같은 녀석에게 패했다고 하니 그 실력은 뻔할 것이다.

그런 동생과 칼 들고 싸우러 나가는 데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자자, 언니, 얼굴 풀라고. 오랜만에 이니안을 보는데 그런 얼굴로 볼 거야?”

이리아가 메이린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를 달랬다.

하지만 로레인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저… 이제 준비하고 나가실 시간입니다.”

기사 하나가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대기실의 벽에 걸린 시계는 정오까지 5분이 남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자.”

메이린이 가장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싸우는 것은 로레인이지,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연무장으로 향하는 복도를 한 발짝 한 발짝 걸을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로레인은 곧장 연무장으로 나갔고, 나머지 네 사람은 다른 기사의 안내로 관람석에 준비된 자리로 향했다.

연무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럼 우리는 관람석으로 갈게요.”

역시 연무장으로 향하는 반대편의 복도. 포르시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을 뿐.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공녀님께서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니안은 대체 누가 대결을 하러 나가는지 헷갈렸다. 자신은 이리도 침착하고 여유로운데 정작 포르시아가 저리도 안절부절못하니.

“그래도…….”

“자자, 이니안은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관람석으로 가시죠. 저 기사 분이 저렇게 서 계시지 않습니까?”

케라우가 포르시아의 곁에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의 팔이 포르시아의 몸에 닿으려고 하는 순간 다프네의 눈이 찌릿하고 빛났다. 그 기세에 케라우는 포르시아를 향하던 팔을 슬쩍 뒤로 뺐다.

‘아우, 얼굴만 예쁘면 뭐 해? 성질이 저렇게 사나운걸. 쳇!’

케라우는 무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이쪽으로 가시죠.”

기사의 안내에 포르시아가 걸음을 옮겼다. 케라우가 가장 뒤에서 따라갔다.

“어이! 이니안!”

이니안이 연무장을 향해 가려는 순간, 케라우가 불렀다.

“상당히 재미있을 거야. 즐기라고. 크크크크.”

기분 나쁜 웃음.

기분 나쁜 웃음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케라우가 무엇인가를 꾸미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그렇다고 연무장을 향하는 걸음이 늦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걷자 복도의 끝이 보이고 그 너머로 넓은 연무장이 펼쳐져 있었다.

관람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자신과 싸울 상대의 모습도.

<다음 편은 외전입니다.>

<외전> 이니안의 일기

남매는 두근두근 세차게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일기장을 넘겼다.

팔랑.

가벼운 소리와 함께 다음 장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변화를 지켜보시던 아버지께서 노여움이 섞인 목소리로 조용히 말씀하셨다. 무척이나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나에게는 청천벽력보다도 크게 들렸다.

이제야 이 방의 분위기가 왜 이리 된 것인지 이해한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의 이런 모습에 형은 킥킥거리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하여간 저 인간은 형이라는 작자가 이런 분위기 속에 동생의 불행을 보고 웃고 있으니.

나의 운명은 왜 이리 기구한지…….

아니, 형의 모습에 화를 낼 때가 아니다. 나를 향해 쏘아져 오는 이 무서운 살기.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큰누나가 날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나의 시험 결과가 나보다 한발 먼저 집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에 이미 아버지께서 가족들에게 한바탕하신 모양이다, 우리 집안에서 큰누나를 저렇게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했으니까.

일단 이 자리가 끝나면 그 다음은 큰누나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나에게 덮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이니안, 넌 네 시험 점수를 아느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지, 시험 당사자에게는 점수를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까. 물론 가족에게도. 하지만 왕립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는 라이가르 데 퓨이어스 자작은 퓨이어스 공작가의 사람이다. 우리와는 그 친분이 남다르기에 나에게만 살짝 알려주었다.”

나의 조국인 카일로니아 왕국에는 모두 네 개의 공작가가 존재한다. 이 사대공작가는 그야말로 카일로니아를 떠받치는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우리 사이몬 공작가, 카일로니아 왕실의 수호 가문이다. 다음으로 아이렌 공작가, 카일로니아 외교를 책임지고 있다. 수많은 국가들과의 힘 싸움에서 교묘한 외교력으로 우리나라의 힘을 유지하는 아주 능력있는 가문이다.

마히가스 공작가는 카일로니아의 군부를 책임지고 있는 카일로니아의 지붕과도 같은 가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퓨이어스 공작가, 카일로니아의 내정을 책임지는 가문이다.

이 사대공작가 중 한 곳이라도 무너지면 카일로니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때문에 사대공작가에 대한 국왕 폐하의 믿음과 지원은 대단한 수준이며, 또한 공작가들 사이에도 긴밀한 교류를 통한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왕립학교의 역대 교장들은 모두 이 퓨이어스 공작가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사이몬 가의 둘째 아들인 나를 유심히 지켜봤을 것이고 그 결과를 집에 먼저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원칙은 점수 비공개다. 단지 가문간의 친분으로 인해 이런 원칙이 깨지다니, 우리 카일로니아도 망할 때가 되었단 말인가!

“너는 하마터면 5학년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아느냐?”

나의 망상을 찢으며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5학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네 점수는 6학년 자격 점수에서 겨우 1점이 넘어 있었다. 이게 무슨 망신이냔 말이다!”

헉! 그럴 수가! 그렇다면 2점만 낮게 받았어도 난 5학년이란 말인가?

왕립학교의 편입 시험은 점수가 구간별로 학년 등급이 있고 그 등급에 맞는 학년으로 편입된다. 나의 나이라면 8학년이지만 실력은 6학년이라니. 사실 8학년의 나이로 편입 시험을 치른 이는 내가 최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이냐. 우리 사이몬 가문의 아들이 열다섯이 되어서 왕립학교 편입 시험을 치른 것도 못내 부끄러운 일이거늘, 나이에 따른 성취도 얻지 못하고 겨우 6학년이라니. 그것도 턱걸이로 6학년이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어디 있단 말이냐!”

아버지의 호통 소리에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건 분명 나의 잘못이다. 내가 생각해도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공부를 싫어한다지만 열세 살짜리 코흘리개들과 같은 수준이라니. 으으. 자존심이…….

“로레인, 이리아, 메이린.”

“예.”

“너희들은 지난 세 달 동안 저 녀석에게 뭘 가르친 거냐? 응? 너희들이라면 제대로 가르칠 거라 믿었는데 말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뛰어나고 머리가 좋으면 뭐하냔 말이다. 달랑 하나 있는 남동생도 제대로 못 가르치는데! 에잉.”

나를 향하던 아버지의 분노의 브레스가 이번에는 누나들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누나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하긴 이 분위기에서 무슨 말을 꺼낸다는 것은 그냥 내년 오늘을 자신의 첫 기일로 만들겠다는 무모함일 뿐이다.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서재를 나가셨다. 그런 아버지의 오른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쯧쯧. 네 덕에 애꿎은 기사들만 죽어나겠구나.”

아버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형이 혀를 차며 나에게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울컥했겠지만 오늘만은 할 말이 없었다. 가끔 아버지는 노화를 억제할 수 없을 때는 가문의 기사단을 찾아가 수련을 빙자한 구타를 행하신다.

그랜드 마스터와의 대련이면 기사들에게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그 영광의 뒤에 남는 것은 짧게는 1주, 길게는 3주의 침대 생활이다.

으음, 기사단 아저씨들한테 엄청나게 미안하다. 나에게 무척이나 잘해주는 아저씨들인데. 부디 아버지께서 빨리 화를 가라앉히셔서 침대로 들어가는 아저씨들의 숫자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수밖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형 역시 검을 들고는 휘적휘적 서재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아버지께 가는 것이리라. 그나마 형이라면 아버지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일방적으로 형이 당한다. 다만 기사 아저씨들과의 차이는 침대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

어쨌든 형의 희생이면 최소 세 명의 아저씨는 침대에 안 들어가도 될 테니. 평소에는 얄밉기만 형인데 오늘은 좀 고맙게 느껴진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 꺼냈다. 꺼냈다가는 이 서재가 풍비박산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내 검은 언제 찾을 수 있으려나…….

“이니안…….”

검 생각에 한창 골똘히 잠겨 있을 때 내 귀를 울리는 음산한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볼 것도 없었다, 큰누나다. 아버지께서 나가시고 형이 나가고 드디어 큰누나의 차례가 온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무척이나 안쓰럽게 바라보셨지만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지금 큰누나의 주위로는 건드리면 폭발한다는 오라가 무럭무럭 피어올랐기에 어머니께서도 차마 어쩌지 못하고 계신 것이다.

다른 두 누나 역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 때문에 혼이 났는데도 나를 향한 원망이나 분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큰누나 앞의 초라한 내 모습에 대한 순수한 걱정만이 존재할 뿐.

같은 자매인데 어찌 이리 다를까?

“따라와라.”

살기 짙은 한마디를 남기고 큰누나는 서재를 나섰다. 나는 황급히 그 뒤를 따라붙었다. 따라오라는데 따라가야지 안 그러면 진짜 큰일 난다. 내 등 뒤로 어머니와 두 누나의 걱정스런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잔뜩 겁에 질린 채.

뚜벅뚜벅.

저택의 복도에 누나와 나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렸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 시종이나 시녀들이 보일 법도 했건만 이미 아버지께서 지나가신 탓인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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