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09화 (10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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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저희 사이몬 가 역시 검에서는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일가라니요.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하십니까? 사이몬 가는 명실상부한 대륙 최고의 검의 가문이지 않습니까? 그 사실은 갈라히벤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이다. 메이린의 말에 마나마는 손을 흔들며 과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의 말은 대다수가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목소리나 몸동작이 너무 과장되었다.

“호호.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보아닌의 용자라면 우리 가문의 검을 어떻게 상대할까 하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태어난 이후로 보아닌의 용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마침 이번에 성녀님과 함께 보아닌의 용자께서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이렇게 달려온 거랍니다.”

메이린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나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들었다. 눈앞에 생글생글 웃고 있는 저 아름다운 아가씨의 말은 결국 자신의 가문의 기사와 보아닌의 용자 중 누가 더 강한지 겨루자는 말이었다.

이건 문제가 컸다. 자신의 권한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권한 밖이되 자신이 대답할 수는 있었다.

갈라히벤에 내려오는 율법.

그것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보아닌의 용자는 그 누구의 도전도 피해서는 안 된다. 모든 도전을 물리치고 보아닌께서 내리신 용맹을 만방에 떨쳐라.”

보아닌의 용자에게 따르는 절대적인 율법이다.

지금까지 그 율법은 지켜졌고 보아닌의 용자는 항상 승리했다. 그랬기에 용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대가 나빴다.

역시나 대륙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이몬 가.

보아닌의 용자의 용맹이 갈라히벤에 국한된 것이라면 사이몬 가는 전 대륙에서 인정하는 최강의 가문이다. 그 가문에서 지금 보아닌의 용자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이긴다면 문제는 없다. 아니, 보아닌의 용자의 명성을 더욱 드높일 수 있다.

그러나 지면 문제가 커진다. 패배를 모른다는 신의 용맹한 전사.

보아닌의 용자가 패했다.

그것은 갈라히벤 사람들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 될 것이다. 아니, 충격적인 일이다. 용자는 패해서는 안 된다. 패하면 더 이상 용자가 아닌 것이다.

곤란했다, 아주 곤란했다.

“저, 왜 그러시죠?”

마나마가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메이린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아, 아닙니다. 이 일은 제 권한을 벗어난 일이라…….”

“보아닌의 용자는 도전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마나마 라온님의 권한과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요?”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마일론이 끼어들었다.

역시 마일론과 메이린은 같은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만나려면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

그것이 설령 검을 맞댄 대결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이쪽에서는 지더라도 손해는 없다. 보아닌의 용자가 이니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차피 사이몬 가 사람끼리의 대련인 것이다.

일개 평민이 자신과 메이린의 대화에 끼어들자 마나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게다가 끼어들어서 한 말의 내용이 자신을 궁지로 모는 것임에야.

권한 밖이라는 핑계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지만 이미 저 둘은 용자는 도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고 와 있는 것이다.

“저… 하지만 용자님께 도전하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만.”

이마에 송골송골 솟아오르는 땀을 훔치며 마나마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 물론 그것도 알고 있지요. 도전할 사람은 여기 이 사람. 제 큰언니인 로레인 케이 사이몬이랍니다.”

메이린이 로레인의 팔을 잡아끌며 활짝 웃었다.

그제야 로레인과 이리아, 파르미안은 호텔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로레인을 향한 야릇한 미소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레이디 분께서 용자님께 도전을 한다고요? 하지만 그 자격 조건이…….”

아주 옛날, 보아닌의 용자가 전설이 되기 전의 시절.

그때는 무수한 도전자들이 있었고 모두 패배했다. 그 대결 과정에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기에 보아닌의 교단에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오러를 형상화할 수 있는 사람만이 보아닌의 용자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다.”

오러를 형상화할 수 있는 자. 즉 소드 마스터나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 무사들만이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도전자를 모두 물리쳤다.

즉, 보아닌의 용자는 소드 마스터 이상의 실력자였다는 소리다.

그런 사실을 보면 보아닌의 용자는 정말로 신이 내린 사람인지도 몰랐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로레인’ 언니가 도전한다는 거죠.”

메이린은 다시 한 번 로레인의 이름을 강조하며 말했다.

“로레인… 설마, 대륙 최고의 여기사이자 소드 마스터인…….”

마나마는 그제야 로레인의 이름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소드 마스터였다. 즉, 도전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도전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후우… 그러면 이곳에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소식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이런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마나마는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메이린이 함께 일어서며 화사한 웃음을 선사했다. 보통 때라면 절로 반할만한 미녀의 웃음이었지만 지금 마나마의 눈에는 그런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칫. 그런 거였어? 날 이니안이랑 붙여보시겠다?”

로레인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

“왜? 언니 이니안이랑 대련하는 거 좋아하잖아?”

“그거야 그 녀석이 멀쩡할 때 이야기지. 지금은 아니잖아. 그런 녀석이랑 대련이라니. 오랜만에 집 나간 귀여운 막내를 만나는 게 살벌하게 칼 들고 서로 싸우는 거라니 내 기분이 좋을 리가 있어?”

로레인은 정말로 기분이 상한 듯했다.

“하지만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아무리 사이몬 공작가라고 해도 결국은 타국의 공작. 보아닌의 용자라 인정받은 사람을 쉬이 만나게 해줄리 없죠. 게다가 들어오면서 보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병사나 기사들이 잔뜩 긴장해 있어요. 몸에는 살기가 감돌고요.”

마일론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게다가 왕궁의 정문에서부터 느낀 이상한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래, 나도 느꼈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메이린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니안 형에게 도전…….’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상관없이 파르미안은 무릎 위에 올려진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로레인이 이니안과 대련을 한다는 이야기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가능하다면 자신이 도전하고 싶었다. 자신의 검술 스승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지금 기사의 작위를 얻을 수 있었다.

도전의 자격.

그것이라면 그도 조건은 된다.

누구도 모르는 사실. 마일론조차도 모르는 사실. 파르미안, 그도 소드 마스터였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이 이니안이었기에 아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니안 형…….’

파르미안은 4년 전,

이니안이 사라지기 전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그로서는 그날이 이니안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날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

톡톡.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파르미안은 두 눈을 떴다. 진정한 기사는 잘 때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법이라며 이니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에 그 정도 소리에도 잠을 깰 수 있었다.

이니안의 말이 자신에게는 진리였기에 자면서도 민감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누구?”

파르미안은 소리가 난 창 쪽으로 다가갔다. 거리에는 여전히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깊은 밤이었다.

창밖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니안 형.”

파르미안은 서둘러 창문을 열었다. 자신의 방은 이층인데도 불구하고 이니안은 그다지 힘든 기색 없이 창가에서 한 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파르미안이 창문을 열어주자 이니안이 빙긋 웃으며 가볍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형, 어쩐 일로?”

“짜식, 내가 무슨 일이 있어야 널 찾아오냐? 그래, 좀 어때? 이제 5일쯤 지났는데?”

이니안의 눈이 파르미안의 왼팔에 감긴 붕대에 향했다. 그날 입은 상처였다.

“뭐, 이런 상처야 대단할 것도 없죠.”

파르미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대단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조금만 상처가 더 깊었어도 왼팔을 못 쓸 뻔했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그날 일을 생각한다면 운이 좋았다고 기뻐할 수만도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파르미안은 알고 있었다, 5일 전의 그 사건으로 가장 힘든 사람은 이니안이라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날 이니안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니까.

“그래. 그날 보니까, 너 너무 약하더라. 내가 나름대로 단련을 시켰는데도 그런 상처나 입고 말이야.”

이니안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파르미안은 약하지 않았다. 강했다. 그날도 어지간한 기사들보다도 나은 활약을 펼쳤다. 이니안이 괴물 같았을 뿐이지.

“그래서 찾아온 거야. 너는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네?”

갑작스러운 말에 파르미안은 깜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 강하게 만들어준다는데.”

이니안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파르미안은 그 웃음 속에서 짙은 슬픔을 느꼈다.

“자자, 어서 정신 차리고 침대에 올라가서 정좌를 하고 앉아. 시간 별로 없어. 내 맘 바뀌기 전에 어서 올라가. 너도 약하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그날 겪었잖아.”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자신이 조금 더 강했더라면 그랬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랬을까? 그건 모른다. 다만 그럴 수 있는 확률이 조금 더 올라간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알겠습니다.”

파르미안의 얼굴이 바뀌었다.

파르미안은 이니안이 시키는 대로 침대에 올라가 정좌를 하고 앉았다. 그 뒤에 이니안이 역시 정좌를 하고 앉았다.

“윗옷을 벗어라.”

이니안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의 장난스러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파르미안은 그 장난스러움이 깊은 슬픔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파르미안이 이니안이 시키는 대로 윗옷을 벗자 이니안의 손바닥이 파르미안의 등에 닿았다.

“움직이지 마라. 정신 똑바로 차려라. 입 벌리지 마라. 그리고 몸 안에서 어떤 변화가 느껴지더라도 결코 놀라지 말고 동요하지 말아라.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이니안은 짤막하게 필요한 말만 했다.

그리고 곧이어 등으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

그것은 마나였다.

파르미안도 이제 어느 정도 실력이 쌓였기에 마나를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의 몸에 마나가 쌓이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마나가 등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몸 곳곳에 잠들어 있던 마나가 서서히 깨어나며 그 뜨거운 마나의 흐름으로 다가갔다.

이니안의 손에서부터 전해진 거대한 힘에 자신의 마나들이 흡수되었다. 그리고 마나가 파르미안의 온몸을 돌기 시작했다. 아니, 온몸을 도는 것은 아니었다. 정해진 길을 돌았다. 온몸의 구석구석 순서대로 규칙적으로 몸을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마나가 지나가는 길을 기억해.”

그 말에 파르미안은 마나의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했다. 규칙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 길을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지 스스로 그렇게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이다.

“외웠으면 머리를 살짝 움직여라.”

다시 들려온 이니안의 말에 파르미안은 머리를 살짝 움직였다.

“그러면 너의 의지로 이 힘을 움직여 봐라. 강하게 원하면 의지의 힘으로 마나는 움직인다.”

파르미안은 이니안이 시키는 대로 했다. 처음에는 이니안이 도와주는 듯 조금 쉬웠다. 하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 마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이니안은 등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자 마나를 움직이는 것이 몇 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마나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몸을 돌면 돌수록 기분이 상쾌해졌다. 온몸에 힘이 넘쳤다. 파르미안은 점점 더 마나를 움직이는데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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