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07화 (107/175)

=======================================

[107]

‘대체… 누가…….’

살짝 떨려오는 팔.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그런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갈라히벤의 사람들은 조금 전 포르시아가 보여준 그 당당한 모습에 대한 감동에 젖어 그저 걸음을 옮기는 것이 지금의 상태였다.

단 한 사람.

이니안만은 그녀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로 기감이 예민했기에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조금 전의 습격 때문에 기감을 최대한으로 확장해 놓은 상태였다.

“네가 약하기 때문이다. 아직 너의 검은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을 정도가 아닌 모양이구나.”

“지키기 위한 대상을 지킬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뿌드득.

이니안은 이를 악 물었다.

또다시 머릿속에 계속해서 울리는 아버지의 말.

그렇게도 반발했던 그 말.

그 말이 계속해서 이니안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나는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그 사실이 분했다. 지켜주겠다 하고서는 지켜주지 못했다, 그때 못지않게 강해졌는데. 그래서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지키지 못했다.

“하하하. 이 녀석. 한 사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 나라면 차라리 전쟁터에서 싸우는 쪽을 택하겠어.”

갑자기 떠오르는 농담 같았던 형의 말.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시답지 않게 웃으며 했기에 농담으로 여겼지만 그 시답지 않은 웃음 속에 진심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다짐하지만… 강해지겠다. 누구보다도 더 강해지겠다.’

이니안의 눈이 분노로 타올랐다.

[이봐, 이니안. 그건 그 누구라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어. 너무 자책 하지마.]

이니안의 심정이 어떤지 아는 듯 칼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아버지나 적어도 형이었다면 그전에 막았을 거야.”

인정하기 싫지만 한 사람을 지키는데 있어서 형과 아버지는 이 대륙에서 최강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적어도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는 데 있어 자신은 아직 애송이였다.

[처음이군.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칼은 이니안의 아버지와 형이라는 존재에 흥미를 보였다. 이니안 하나로도 충분히 경악스러운 괴물인데 자신은 아버지와 형보다 못하다고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별로. 생각하기 싫었으니까.”

가족의 이야기에 이니안의 목소리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이니안.”

케라우가 말을 몰아 케이로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응?”

“이것.”

케라우가 검게 물든 단검을 내밀었다. 모두 두 자루였다. 주변에 떨어져 있던 모든 단검을 회수했는데 겨우 두 자루가 전부였다.

“크리스!”

그 단검은 검신이 검게 물들어 있었지만 분명 크리스였다.

“그래.”

“그럼 그때 살아서 도망간 그 녀석이?”

이니안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다크 크리스 놈들. 뿌드득.”

이니안은 분노했다. 그 대상은 다크 크리스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였다. 어새신은 한 번 노린 목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다크 크리스 정도 되는 길드라면, 길드가 붕괴하는 한이 있어도 악착같이 목표물을 노린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그랬기에 방심했고, 주의를 소홀히 한 채 제단에 기도를 하러 올라갔던 것이다. 결국 포르시아가 위험에 빠진 것은 자신의 탓이었다.

다크 크리스가 포르시아를, 아니, 로즈를 노렸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자신과 케라우 단둘이었다. 그런 만큼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뭐. 그때 한 명만 살아서 도망갔었지? 그런데 제대로 작심을 하고 덤비는 것 같아.”

케라우의 말에 자신에 대한 분노 속에 빠져들던 이니안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것. 이 크리스 말이야.”

케라우는 두 자루의 크리스 중 하나를 가리켰다.

“아까 분명 나와 저 아가씨랑 아홉 자루를 쳐냈거든. 마지막에 떨어진 것까지 하면 모두 열 자루라고. 그런데 그곳에는 딸랑 이것 두 자루만 있었다는 거지. 이상하지? 그게 다 이 녀석 때문이라고.”

케라우는 오른손으로 가리키고 있던 크리스를 집어 들었다.

옆에 있는 크리스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크리스의 검신에 갖가지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환마의 크리스라는 녀석이야. 고대 시대의 아티팩트지.”

“환마의 크리스?”

“그래. 효과는 아까 봤던 것과 같아. 목표로 정한 곳으로 날아가면 모두 여덟 자루의 환영을 만들어. 그리고 그 환영은 실체와 똑같은 위력을 가진 것이 문제지. 특히나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의외의 방향에서 나타나는 여덟 번째 환영의 검. 그게 상당히 골치 아프지. 이게 환마의 크리스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그렇게 애먹지 않았어.”

케라우는 무언가 분한 듯 환마의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자.”

잠시 환마의 크리스를 노려보던 케라우는 그것을 이니안에게 던졌다.

“왜?”

이니안은 그것을 가볍게 잡아채고는 케라우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 물건 때문에 상당히 열 받았을 거 아니야? 그러면 그 화 값은 받아야지. 그래보여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아티팩트야. 결정적일 때 의외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넣어둬. 그냥 마나를 살짝 주입해서 던지면 발동되니까.”

케라우의 말에 이니안은 물끄러미 환마의 크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뭐. 넣어두지.”

그리곤 품에 적당히 천으로 싸서 챙겼다.

분명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란 생각에.

29장. 상당히 재미있을 거야

왕궁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포르시아가 나르센 산에서 습격 받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포르시아 스스로가 더 이상 일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주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녀가 습격을 받았다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왕궁 기사단에서 비밀리에 습격자 색출에 나섰지만 별다른 단서가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가 다크 크리스 길드의 유일한 생존자라면 왕궁 기사단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니안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이야기한다고 들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누굴까요? 왜 저를 노린 걸까요?”

신경 쓰지 않는다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습격을 받은 것이기에 그 연유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포르시아의 물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캐서린과 다프네는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고 이니안와 케라우는 알고는 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기억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넓은 방 안에는 이렇게 다섯 사람이 전부였다. 포르시아가 조용히 쉬고 싶다며 네 사람 외의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음… 왜 이런 걸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한숨 섞인 포르시아의 혼잣말에 이니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겨우 지겨운 이동이 끝나고 갈라히벤에 들어왔나 싶었더니 성녀라면서 정신없이 여기저기 다녔잖아요. 그리고 나서 이제 겨우 나들이라도 나가나 했더니 어새신의 습격이라니. 뭔가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던 포르시아의 푸념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방 안의 분위기가 더욱 적막해졌다.

“죄송합니다, 공녀님.”

다프네가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니에요, 파이어 경. 여러분들의 노고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러지 말아요. 어서 일어나요.”

자신의 푸념에 대한 다프네의 반응에 당황한 포르시아가 서둘러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날의 일로 방 안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

어두운 분위기가 왕궁 전체에 퍼져 있었다.

상부에서 성녀 습격 사건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차단했지만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없는 것. 어느새 왕궁의 경비에게까지 그 사실이 퍼져 있었다. 다만 이 일의 중대함을 모두들 알았기에 왕궁 밖으로 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웃으며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왕궁의 경비들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딱딱했고 두 눈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성녀님을 습격하고 도주했다는 그자가 언제 왕궁으로 숨어들려 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왕궁의 거대한 정문을 지키는 병사인 타이라는 그래서 오늘 더욱 힘이 들어간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수상한 다섯 사람이 들어왔다.

아니, 보통 때라면 수상하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과연 이 세상의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 흑발의 미녀 셋과 튀는 곳 없이 평범해 보이는 두 남자. 평소라면 그다지 경계하지 않을 모습이다. 아니,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에 오히려 긴장이 풀릴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들이 수상해 보였다.

무엇이 수상하다고 묻는다면 성녀님 못지않게 아름다운 여인이 셋이나 함께 나타난 것이 수상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저런 미인들이 저런 평범한 남자들과 함께 있는 것도 또한 그렇다고 할 것이다.

일단 의심을 하고 바라보면 무엇이든 수상해 보이는 법이었다.

그 다섯 사람은 물론 로레인, 이리아, 메이린, 마일론, 파르미안이었다.

“흐음… 여기가 왕궁이란 말이지? 그리고 그 녀석이 어찌 된 연유인지 이 안에 있고?”

로레인은 거대한 왕궁의 정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문을 보는 그녀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화려하네.”

로레인이 왕궁을 보고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아는 왕궁의 모습을 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정문을 통해 보이는 황금탑. 그리고 돔형의 지붕을 덮고 있는 무수한 황금들. 기둥을 장식하는 갖가지 보석과 유려한 선을 보이는 조각상들.

호화로움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으음. 특히나 황금을 많이 썼네. 갈라히벤의 특산물 중 하나가 금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많기는 많나 봐. 우리 카일로니아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네.”

이리아의 말에 메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왕궁에 대한 감상평을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