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01화 (10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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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우리가 사우론을 떠나기 전에 잠깐 알아봤는데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더라고. 저 녀석이 뒤에서 장난 좀 쳤겠지. 그 정도 능력은 있으니까.”

메이린의 말에 마일론은 더욱 짙은 웃음을 머금었다.

“잠깐, 그런 일이 가능한 거야? 하루에 사우론에서 소모되는 물건들의 종류랑 양이 얼만데!”

로레인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물론 ‘보통 사람’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저 녀석은 보통 사람이 아닌걸. 언니를 그렇게 가지고 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메이린의 말에 로렌인은 기가 질린 얼굴을 했다.

“아우. 아무튼 머리 좋은 인간들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투덜거림.

“그래서 마일론, 하고 싶은 일이 갈라히벤 여행만은 아니지?”

메이린이 테이블에 턱을 괴며 물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시치미 떼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하하하. 역시 메이린 누나네요. 갈라히벤 무투회는 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거라서요. 뭐 돌아가는 길에는 천천히 가려고요. 올 때는 급하게 대륙 이동 마법진을 이용했지만 말이에요.”

“돌아가는 길에는 미에른 후작령을 지날 모양이네?”

메이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죠, 뭐.”

“그래. 난 네가 언제쯤에나 움직일지 궁금했는데 그게 지금이구나.”

“뭐, 파르미안이 기사 작위를 얻는 것도 기다려야 했고 또 자금도 모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 첫 시작이 갈라히벤이야?”

“말했잖아요. 하고 싶은 걸 해두고 싶었다고요.”

메이린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다. 그만큼 앞으로 마일론이 해야 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란 뜻이다. 그전에 심신을 재충전하기 위해 잠시 이곳에 들른 것이리라.

“대체 무슨 이야기야?”

파르미안은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마일론에게 물었다. 그로서는 마일론에게 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쩝. 무투회가 끝난 다음에 말하려고 했는데. 메이린 누나 때문에 벌써 알아버렸네. 뭐,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나중에 호텔에서 말해줄게.”

마일론의 말에 파르미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친구를 믿었고 친구는 지금까지 자신의 믿음에 한 번도 배반하지 않았다.

“자, 식사도 대강 마무리된 것 같으니까 이만 마일론과 파르미안이 묵고 있다는 호텔로 가볼까?”

이리아가 포크와 나이프를 놓으며 말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내가 살게.”

메이린이 계산서를 들고 내려가면서 눈을 찡긋했다.

다행히 마일론이 말한 대로 호텔에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이 특실이라 상당히 비쌌다는 것만 빼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비싸다고는 해도 일국의 공작가의 사람인 그녀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저기, 그런데 아까 마일론이랑 나눈 이야기는 뭐야? 대강 짐작은 가지만.”

로레인이 샤워를 마치고 머리의 물기를 말리며 메이린에게 물었다.

“뭐긴, 언니가 예상하는 그거지.”

“그때 그 사건 말이구나.”

이리아가 와인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끼어들었다.

“그래.”

“하지만 오빠가 조사했는데도 아무것도 없었잖아, 그 미에른 후작가의 별장에서의 사건.”

로레인은 괜한 짓이 아니냐는 투로 말하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건 모르지. 뭐 내가 생각해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았으니까. 오빠가 철저히 조사하기는 했겠지만 뭐, 마일론은 오빠가 아니니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

“어머, 그건 무슨 뜻이야?”

로레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메이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지, 다른 뜻은 없어. 오빠가 놓친 것을 마일론이라면 알아볼지도 모른다 그런 말이야. 오빠랑 마일론은 다르니까. 게다가 그 아이는 사건 당시 그곳에 있었잖아. 오빠가 모르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그 아이라면 다시 한 번 꼭 알아보고 싶었을 걸? 친구니까.”

메이린의 ‘친구니까’라는 말에 이리아와 로레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니안이 집을 나가기까지 했으니까.

“뭐, 그래도 지금까지는 조사를 할 수 없었을 거야. 마일론은 평민이니까. 하지만 파르미안이 기사의 작위를 받았으니까 이제 폐쇄된 그 별장에 들어갈 수 있잖아. 때를 기다린 거겠지.”

“흐응. 그렇단 말이지?”

로레인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언니의 그러한 모습에 메이린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니,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대강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리…….”

“그만!”

로레인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메이린이 손을 들어 로렌인의 말을 막았다.

“어머, 왜 그러니? 난 말을 시작도 안 했는데.”

메이린의 행동에 로레인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했다.

“말 안 해도 알아. 지금의 언니가 뭐라고 할지 정도는.”

“뭐, 보나마나 마일론과 파르미안을 따라 가자는 거겠지.”

이리아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녀도 자신의 언니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훤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같이 자라온 자매였으니까 로레인의 행동 패턴에 익숙한 것이다.

“싫어?”

로레인은 자신의 두 동생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당연하지!”

“썩 내키지 않는데.”

메이린은 단호했고 이리아는 부드럽게 돌려 말했지만 그녀의 평소 행동을 보면 그것은 확고한 거절이나 다름없었다.

“왜?”

로레인의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우리는 언니 남편감을 찾으러 나온 거야. 그리고 그 일은 오빠가 조사 중이고. 굳이 우리까지 끼어들 이유는 없잖아.”

“그래도 사랑스러운 우리의 막내가 가출하게 만든 사건인데 누나들 된 입장에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메이린의 말에 로레인은 한발 물러서 부드럽게 말했다. 지금은 강하게 나가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언니, 그것보다는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을 찾는 게 순서 아닐까?”

별 말 없이 로레인과 메이린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핵심적인 부분을 날카롭게 찌르는 한마디를 던지는 이리아였다.

“으음.”

이리아의 말에 로레인은 잠시 이마를 짚으며 고민에 빠졌다.

“그 녀석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이 넓은 대륙을 떠돌아 다녀? 오빠의 마지막 연락 기억 안 나? 이제 용병 길드에서 그 녀석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 거.”

로레인의 반격에 이리아와 메이린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결국 메이린은 비장의 한 수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정 그러겠다면…….”

“그러겠다면?”

로레인은 팔짱을 끼고 도도한 얼굴로 메이린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까지 나왔는데 감히 네가 뭘 어쩌겠냐는 얼굴이었다.

“집에다 연락하지 뭐.”

메이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맥 빠진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로레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너…….”

“뭐, 사실대로 연락하면 되잖아. 언니가 남편감 찾는 거 중단하고 그 사건이 있었던 별장을 조사하러 가려 한다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이린을 가리키는 로레인은 너무 당황한 듯 입을 어버버거릴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자, 그럼,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끝! 난 이만 씻고 좀 쉴래. 너무 피곤해.”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던 이리아가 그렇게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고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그럼, 언니.”

이리아가 몸을 일으켜 사라지자 메이린 역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산책이나 좀 해볼까나?”

홀로 남겨진 로레인만이 벌게진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

“바실러스 자작이라고? 그게 누구지?”

책상에 앉아 오늘 중 처리해야 할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칸세르 공작은 갑작스러운 시메티딘의 보고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공녀님의 흔적을 가장 먼저 알린 지방 귀족입니다.”

“아! 맞아, 그자였군.”

시메티딘의 말에 칸세르 공작은 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분명 우리 측으로 포섭하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지만 그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칸세르 공작은 바실러스 자작에 관한 사항을 기억에서 지웠다. 그 정도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할 것이고 굳이 자신의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마법 통신으로 본 그의 모습에 대한 판단으로는 바실러스 자작은 크게 신경을 쓸 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작 각하의 지시를 이행하려는 순간 그가 사라졌습니다. 영지의 대소사를 모두 집사에게 위임한 채로 말입니다.”

“흐음.”

“그래서 그가 돌아오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집사에게 전언을 남겼습니다만 그가 갑작스레 제도에 나타나 이렇게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시메티딘 역시 상당히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역시 바실러스 자작을 그리 크게 평가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 추적대에 함께 딸려 보냈던 자신의 제자 테리신의 보고 결과 그는 그저 고만고만한 지방 귀족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메티딘의 물음에 칸세르 공작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윽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먼 길을 왔으니 만나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침 그렇게 바쁜 일도 없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일개 자작이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 공작을 만난다는 것은 평민이 아무 약속 없이 자작을 찾아가 만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권력의 핵심에 있다는 칸세르 공작이라면 몇 달 전에 약속을 잡고 기다려도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들 정도니 말이다.

“공작 각하께서 곧 오신답니다.”

응접실의 소파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바실러스 자작은 시종이 전한 말에 상당히 놀랐다.

사실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그도 귀족. 겨우 자작에 불과한 자신이 공작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으음. 그러면 이것은 필요 없는 것인가? 의외로군.’

바실러스는 오른손을 자신의 왼손 가슴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 아래 그의 품속에는 하나의 편지가 있었다.

자신이 로즈, 아니, 정확히는 포르시아 공녀를 보고 느낀 것을 적은 편지. 만약 자신과의 만남을 거절했다면 그것을 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만날 수밖에 없으므로.

그사이 칸세르 공작이 나타났다. 그의 뒤에는 시메티딘과 클레비클이 따르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군, 바실러스 자작.”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 각하.”

바실러스 자작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 와중에 그는 잠시 클레비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래. 그렇게 된 것이로군.’

그제야 바실러스 자작은 자신이 풀지 못했던 의문을 하나 풀 수 있었다, 왜 포르시아에게서 드래곤의 눈물의 기운을 느꼈는지를.

포르시아에게서 드래곤의 눈물의 기운을 확실히 느꼈기에 공작이 그것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대체 어떤 방법으로 드래곤의 눈물을 포르시아에게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드래곤의 눈물을 사용하려면 흑마법을 써야 했기에.

세상 사람들은 공작의 오른팔인 대마법사 시메티딘만을 알고 있었다. 바실러스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공작의 왼팔을 보았다. 보통 사람은 물론 어지간한 백마법사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약하게 흑마법의 기운을 흘리는 흑마법사.

시메티딘과 함께 공작의 뒤에 서 있는 인물은 흑마법사가 분명했다. 바실러스가 익힌 흑마법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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