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99화 (9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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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성녀님은 안에 계시오?”

포르시아의 침실 문 앞에 서 있던 이니안은 갑작스레 찾아온 노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아닌 교단의 교황님이십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공녀님을 모시고 있는 기사 이니안 세이버라고 합니다.”

교황이라는 말에 이니안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분이 바로 용자이십니다.”

무마타는 교황에게 이니안을 소개했다.

“오오. 용자셨군요. 이 늙은이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보아닌께 몸을 의탁한 작은 중생 라고스라 하오.”

이니안이 용자라는 말에 라고스는 자신을 정중히 소개했다. 그리고 잠시 이니안을 현현(玄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허어. 과연 보아닌께서 내린 용자로고. 어둠 속에 홀로 오롯이 빛나는 빛이 있으메 그 힘을 끌어다 쓰는 이라니. 과연이로고.”

알 수 없는 라고스의 중얼거림에 이니안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가급적이면 라고스와의 대화를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린 시절 신학을 얼마나 싫어했던가. 신전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이 이니안이다.

“성녀님께서는 안에 계십니까?”

이니안이 용자라는 것을 알자 라고스는 경어를 사용했다. 신의 사자나 다름없는 용자이니 신께 몸을 의탁한 신관인 그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네. 안에 계시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들어가시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만.”

이니안의 말에 로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곳에서 기다리기로 하지요.”

그리고는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입은 연신 작은 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마도 보아닌의 경전의 내용일 것이라 추측했다.

[저 신관 대단하군. 교황이라 해도 보통의 교황과는 달라. 정말 깊은 신앙을 가진 듯해.]

“그래?”

칼의 말에도 이니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본디 신에 대한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니안이기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그런 이니안이 보아닌의 용자라니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을걸. 그는 단번에 너의 힘을 꿰뚫어 봤어. 네가 사용하는 힘이 마이너스 마나라는 것을. 어둠 속의 빛이라는 말이 아마 마이너스 마나를 의미하는 것일 거야.]

칼의 이어진 말에 이니안은 유심히 라고스를 살폈다. 칼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분명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과연 유심히 살피니 정말 무언가 신비스러운 힘이 느껴졌다.

‘이게 신성력이라고 하는 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는 신비로운 힘이 라고스의 몸 깊숙한 곳에서 쉼 없이 잔잔히 솟아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 끝나셨나 보군.”

이니안은 방 안에서 포르시아가 목욕을 마치고 소파에 앉는 기척을 느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될 듯합니다.”

이니안의 말에 라고스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런가요?”

“네.”

이니안은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아닌 교단의 교황께서 오셨습니다.”

“이런, 어서 안으로 모시세요.”

이니안의 말에 포르시아는 앉아 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들어오십시오.”

라고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방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녀시여. 부족한 몸으로 보아닌께 몸을 의탁한 작은 중생들을 이끌고 있는 라고스라고 합니다. 마라.”

“처음 뵙겠습니다. 미오나인 제국 칸세르 공작가의 여식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라 합니다.”

포르시아는 교황의 정중한 인사에 맞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막 목욕을 끝낸 그녀의 머리칼은 물기를 잔뜩 머금어 촉촉이 젖어 있었고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다. 그 곁에는 역시 물기를 머금은 은빛 털이 빛나는 늑대가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라고스는 이니안이 왜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리로 앉으시죠.”

라고스가 소파에 앉자 포르시아도 마주 앉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담소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니안은 포르시아의 뒤에 서 있었다. 그 곁에는 케라우와 다프네가 서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라고스가 간간이 케라우를 힐끗거렸으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짧지 않은 시간의 담소를 마치고 라고스는 인사를 한 후 별궁을 나섰다.

***

“흐음. 신기하군. 신수이긴 하나 다른 신수와는 달라. 무언가 다른 강대한 힘이 깃들어 있으니… 게다가 어찌 성녀님의 곁에 어둠의 존재가 있을 수 있는지…….”

라고스는 처음 케라우를 보자마자 그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둠의 자식이 어찌 성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지.

“흐음. 보아닌의 성녀는 다른 교단의 성녀와는 다르니…….”

그렇다.

보아닌의 성녀는 다른 교단과는 상당히 달랐다.

일단 성녀라 칭송받는 이에게 신성력이 없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른 교단의 성녀는 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여아였다. 그랬기에 교단의 누구보다도 강대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보아닌 교단의 성녀는 달랐다.

단지 신수가 인정한 여인.

그것이 성녀가 되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성녀가 되기도 했다.

다른 교단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교단의 사람들은 보아닌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것뿐이다.

내 축복을 내려 은색 늑대를 세상에 내려보낼 터이니,

그가 곧 나의 뜻을 대신하리라.

그가 따르는 이는 곧 나의 가호를 받은 이니 아들딸아.

그 이에게 나의 가호가 함께할지어다.

보아닌의 경전의 한 구절이다.

갈라히벤의 사람들은 그 구절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 이후 포르시아의 일정은 애초에 예상한 대로였다.

이미 왕궁에 성녀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나이안 전체에 퍼졌고 수많은 보아닌의 신자들이 왕궁으로 몰려들었다.

포르시아는 그런 신자들 앞에 나서야 했고 그와 같은 행사는 며칠 동안 계속됐다. 성녀의 출현 소문이 갈라히벤 전체에 퍼지는 것은 금방이었고 곧 전국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성녀의 존재 덕분인지 의외로 용자인 이니안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덕분에 이니안은 한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바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성녀를 지키는 일이 자신의 임무이므로 항상 포르시아의 곁에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

“흐음. 수도가 상당히 복잡하네.”

이리아는 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무투회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일이 있는데 벌써 가는 여관마다 만실이라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벌써 네 번째 들른 여관에서 방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기에 로레인의 목소리에는 상당한 짜증이 어려 있었다.

메이린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말없이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다고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니까 차라리 근처 식당에 가서 요기라도 하자. 여관 잡고 식사하겠다고 점심을 안 먹은 지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어.”

이윽고 메이린이 결정을 내린 듯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이렇게 기이하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현상을 알려면 현지인에게 듣는 것이 가장 빠르다. 지나가는 사람 여럿을 잡고 물어봤었지만 그들은 모두,

“마라.”

라고 하면서 양 손바닥을 한데 모으며 웃을 뿐이었다.

‘아아, 모르겠어. ‘마라’라는 말은 분명 보아닌 교단의 성어(聖語). 그리고 손바닥을 모으는 것은 합장. 그러니까 왜 물어본 사람들마다 성어를 말하면서 합장을 하냐고. 내가 물은 건 그런 것이 아닌데.’

현재 메이린의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현명한 그녀라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성녀와 용자의 출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용자만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것이 벌써 60년도 더 전이고 성녀는 백 년 단위를 넘어갔으니 그것에 관한 일은 간과한 것이다.

“아, 저기 식당이 좋겠다.”

일단 식사를 하자는 말에 로레인과 이리아도 동의했기에 그들은 빨리 주변에서 식당을 찾았다. 시력이 좋은 로레인이 가장 먼저 식당을 찾았다.

다행히 식당에는 자리의 여유가 있었다. 점심때가 제법 지난 시간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로레인이 앞장서서 이층으로 가는 층계를 올랐다.

자리를 잡자 식당의 점원이 메뉴판을 들고 나타났다. 하지만 로레인과 이리아는 갈라히벤의 음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메뉴판을 멀뚱거리면서 보다가 곧 시선을 메이린에게 향했다.

모르는 것이 없는 그녀라면 다른 나라의 음식에 대한 지식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후우, 메뉴판 이리 줘.”

두 언니에게서 메뉴판을 받아 든 메이린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메이린이 능숙하게 주문하자 두 사람은 과연 훌륭한 동생이라는 눈으로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이곳 음식은 향신료가 특이해서 자칫 잘못 주문하면 입에 대지도 못할 수 있으니까.”

그런 시선에 메이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여기요.”

메이린은 주변의 손님이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며 걷고 있는 점원을 불렀다.

“네, 손님.”

점원은 메이린이 부르자마자 재빠른 동작으로 메이린들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뭔가 필요하신 거라도 있나요?”

“아니요, 궁금한 게 있어서요.”

“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점원은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는 카일로니아 왕국에서 왔는데요. 제가 알기에 나이안은 이렇게까지 복잡한 도시가 아닌데 너무 복잡해서요. 곧 무투회가 열린다고는 하지만 아직 기간이 제법 남지 않았나요?”

“마라.”

메이린의 물음에 점원은 예의 다른 사람들처럼 합장을 하면서 성어를 중얼거렸다.

‘또!’

그 모습에 메이린의 눈 사이에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달랐던 것은 점원이 합장을 끝낸 후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일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지금 나이안에 용자님과 성녀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수많은 신자들이 그 두 분의 모습만이라도 보려고 나이안으로 몰려드는 것이죠. 덕분에 나이안은 저희 갈라히벤 역사상 최고로 복잡해진 상태입니다.”

“아, 그렇군요. 고마워요.”

“그럼 즐거운 식사 시간 되시길.”

점원은 정중한 인사와 함께 다시 식당 안을 천천히 움직였다.

“하아, 설마 이때 성녀가 나타날 줄이야… 그것도 용자까지.”

“그게 무슨 말이니?”

점원의 설명에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게 된 이는 메이린뿐이었다. 이리아와 로레인은 갈라히벤의 모든 것이 생소했기에 그저 메이린을 보며 답답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긴 그 정도 일이 아니면 이곳이 이렇게 복잡해질 이유가 없지. 무투회 때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메이린은 스스로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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