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91화 (9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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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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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부르셨습니까?”

“앉거라.”

자신의 집무를 보던 칸세르 공작은 자신의 부름에 집무실로 찾아온 아들을 바라보았다.

부리부리한 두 눈에 호남형의 인상. 친아들이지만 자신과는 기질이 너무나도 달랐다. 공작 자신이 전형적인 문관이라면 자신의 아들인 아데노마 오마 칸세르는 전형적인 무관이자 기사였다.

‘후훗. 하지만 저놈 가슴에 숨겨진 야망의 크기를 보자면 내 아들이 분명한지도 모르지.’

자신 못지않은, 아니, 자신의 그것보다 더욱 큰 야망을 가진 아데노마를 보며 칸세르 공작은 가는 웃음을 머금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칸세르 공작이 책상 서랍에서 비단 천에 소중이 싸여 있는 어떤 물건을 꺼내 아데노마의 맞은편에 앉았다.

“네가 잠시 제도를 떠나있던 동안의 일들에 관해서는 들었느냐?”

“네.”

아데노마는 기사 수행을 위해 2년 정도 대륙을 떠돌다가 사흘쯤 전에 다시 제도 미오나인에 돌아왔다.

“설마, 그 아이의 대법이 그런 식으로 문제를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

“뭐, 이제 수습을 했으니 지난 일이야 어쨌든 상관없지 않겠느냐. 앞으로 일을 잘 진행시키면 되니 말이다.”

공작의 말에 아데노마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포르시아. 자신의 동생인 너무나 아름다운 아이. 아버지가 야망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수많은 것들 중 유일하게 자신을 안타깝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그건 이제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제법 성가신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또 그 성가신 녀석들을 막아줄 이도 들어왔으니.”

“사이몬 가의 막내 말씀이신가요?”

“그래. 몇 년 전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사라진 검의 천재 말이다. 내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그때 이미 열다섯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또 그 힘을 모두 폐한 후 사라졌다더구나.”

과연 제국의 공작이었다. 사이몬 가에서는 결코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기에 나름대로 보안에 신경을 쓴 사건이다.

대륙 제일의 검의 가문이라는 사이몬 가에서 신경을 써 소문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이니안에 대한 개략적인 일을 파악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의 힘을 잃고 사라진 이후 포르시아와 함께 나타났더구나. 어이된 연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당시 그의 실력은 소드 익스퍼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카르세온과 호각으로 싸우다가 패했다죠.”

카르세온의 이름을 말하는 아데노마의 두 눈이 활활 타올랐다.

페르마타 카르세온.

제국 내에서 그가 유일하게 라이벌로 인정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아데노마는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그랬기에 누구도 그 자신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를 포함해 다섯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카르세온은 달랐다. 그는 당당히 자신의 실력을 내보였고 또 제국인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다.

제국의 자랑이자 명예인 기사. 그것이 카르세온이다.

양지에서 찬란한 빛을 받고 있는 카르세온과 그런 카르세온을 음지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자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카르세온을 향해 투지를 불태우는지도 몰랐다.

“그래, 역시 사이몬 가더구나. 그러면 그 이후의 일도 들었느냐?”

“네. 쉬쉬하고 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문이죠. 사이몬 가의 여기사 로레인 케이 사이몬 경에게 카르세온이 패했고, 지금 모든 직무를 중단한 채 수련을 시작했다는 것도요.”

“그렇지.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모를 게다.”

공작의 말에 아데노마의 눈이 빛났다. 아버지가 자신을 부른 것은 필경 그 때문일 것이다.

“1황자가 현재 황궁에서 발굴 중인 고대 던전의 유물을 하나 슬쩍했지.”

고대 던전의 유물 따위 아데노마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그리고 황궁에서 발굴 중인 던전이라면 어차피 이변이 없는 한 황태자가 되고 황제가 될 1황자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물건을 하나 슬쩍했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물론 제국법으로 따지자면 명백한 범법 행위지만.

“1황자가 유물 하나를 슬쩍한 거야 별로 대수로울 것도 없지만… 그가 그걸 그리 쉽게 할 수 있었을까요? 황궁에서 발굴하는 던전이라면 그만큼 관리도 철저할 텐데요.”

“그렇지. 그래서 내가 빼내줬지. 덕분에 나도 모르던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 눈을 빛냈던 것과는 달리 던전 이야기가 나오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아데노마의 자세가 달라졌다. 귀중한 정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의 분위기가 달라졌던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어지간한 일로는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을 통제하고 숨기는데 능숙한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었다.

“1황자가 나에게 부탁을 해서 빼낸 물건은 고대의 검법서다.”

“네에?!”

공작의 말에 아데노마는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토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성적인 기사이자 검사인 그는 고대의 검법서라는 이야기에 그만큼 경악한 것이다.

전설로만 전해 내려올 뿐, 그 실존의 여부는 불확실했던 고대의 검법. 그 검법서가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황실에서 발굴을…….”

그제야 아데노마는 고작 던전의 발굴을 황실에서 직접 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처음 한 권이 발견됐을 때 황실이 개입했다 하더구나. 그 정보를 철저히 통제했음은 물론이고. 1황자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가 나에게 그것을 알려준 것은 검법서를 중간에 빼돌리기 위해서였겠지만. 어쨌든 모두 다섯 권이 발견됐다. 그중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1황자가 가지고 갔지. 황제 폐하께는 세 권이라 보고가 올라갔고 말이다.”

공작의 설명에 아데노마의 시선은 소파 사이의 테이블에 있는 비단천에 싸인 물건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비단천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고대의 검법서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한 권은 카르세온의 손에 들어갔겠군요.”

“그렇지. 카르세온이 비록 그 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문이 가신으로 있다고 하지만 그는 1황자의 친구. 틀림없이 1황자는 그것을 그에게 전했을 거다. 그런 물건은 임자를 제대로 만나야 쓸모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오래된 종잇조각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런 면에서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런 건 외인에게는 함부로 건넸다가는 자칫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물건이니 말이다.”

“그럼 이 책의 존재를 아는 이는?”

“너와 나, 그리고 1황자와 고대어 번역 마법을 걸어준 시메티딘, 이렇게 넷이 전부다.”

낮은 목소리의 아버지의 말에 아데노마는 침음을 삼켰다.

“이제 막 기사 수행에서 돌아와 몸이 피곤할 테지만 너는 즉시 이 책을 가지고 저택의 지하 연무실로 들어가도록 해라. 이미 모든 준비는 해두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버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칸세르 공작이 건네는 비단천에 싸인 고대 검법서를 받아 든 아데노마는 허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토록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처음 본 공작은 그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자신도 기뻤던 것이다.

아데노마가 고대의 검법서를 받아 들면서 검법서를 싸고 있던 비단천이 조금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검법서의 표지에 쓰인 문자들이 살짝 보였다.

FIRE SOUL.

그것이 아데노마가 받은 검법서에 기록된 검법의 이름이었다.

***

마차에 매인 여섯 마리의 말이 거칠게 투레질을 하고 있다.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기사들과 병사들이 투레질을 하는 말들이 매인 마차를 둘러싸 호위하고 있다. 마차의 문으로 가는 길 한 곳만 열어둔 채 철저한 대형으로 호위를 하고 있었다.

“그간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마그나 후작님.”

“허허. 뭘, 시골 귀족에 불과한 이 늙은이가 오히려 공녀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긴 여행인데 몸조심하게나.”

인자한 인상의 노귀족인 마그나 후작은 몇 년 전 중앙 정계에서 은퇴한 후 자신의 영지에서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큰아들이 그를 대신해 현재 중앙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마그나 후작의 영주성에서 지난 이틀 동안 포르시아 일행은 정말이지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노후를 보낸다지만 별다른 일 없이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후작에게 있어서 포르시아 일행은 결코 단순한 손님이 아니었다.

자신의 똑같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자극이라고 할까? 그런 고마운 방문이었다. 덕분에 포르시아가 떠나는 것을 배웅키 위해 나온 후작의 얼굴에는 진득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래, 공녀는 여행을 마친 후 바로 제도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영지로 올 것인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긴 여행이라서요. 돌아오는 일정에 대한 것은 일단 목적지에 도착해 봐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지. 혹시라도 영지로 돌아온 후 제도로 돌아간다면 그때도 꼭 이 늙은이의 집에 들러주게.”

“꼭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만 가도록 하게나. 먼 길인데.”

“그럼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포르시아는 공작가의 영애다운 우아한 동작으로 예의를 갖춰 인사를 마친 후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마차로 향했다. 그 뒤를 이니안과 다프네, 케라우, 캐서린이 조용히 따랐다.

포르시아와 다프네, 캐서린이 마차에 오른 후 마차의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던 케이로스의 등에 이니안이 올랐다. 그 옆의 말에 케라우도 올랐다.

“그럼, 출발!”

이니안의 외침에 대열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그나 후작은 그런 포르시아 일행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저택의 현관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늑대를 말 대신 타고 다니는 기사라… 허허, 신기한 일이로세.”

저택을 향해 몸을 돌리면서 마그나 후작은 자신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한 기사에 대한 평을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웅. 다시 지루한 여행인가?”

기지개를 켜며 지나가듯 중얼거린 포르시아의 말에 캐서린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틀간 피로도 풀고 재미있게 지내셨잖아요. 아가씨.”

“그렇긴 하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같은 풍경을 보면서 마차에 있어야 하냐고. 영지에 가만히 있는 게 좋지 않다고 해서 여행을 나왔는데 이건 장소만 영지에서 마차로 바뀌었다 뿐이지 난 여전히 가만히 있는걸.”

출발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포르시아의 입에서 나온 투덜거림에 다프네는 고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다프네도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하긴. 저도 지루하긴 해요.”

“그치, 캐서린?”

지루하다는 캐서린의 말에 포르시아는 반색을 했다.

사실 다프네는 공녀와 그녀의 시녀와 함께 마차를 타고 움직이며 적잖이 놀랐다. 영지에 있을 때는 공작가의 여인으로서의 기품과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마차 안에서는 영락없는 보통의 아가씨였다.

캐서린은 원래 포르시아의 전속 시녀였다. 그랬기에 같이 있는 시간도 많았고 또 나이도 비슷했기에 둘은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물론 그것은 포르시아가 기억을 잃고 사라지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그 후 기억을 잃고 로즈라는 이름으로 그녀가 나타났을 때 캐서린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포르시아가 기억을 되찾았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가. 캐서린은 포르시아를 따라 나서기 전에 공작으로부터 직접 철저한 주의를 들었다.

캐서린이 포르시아의 전속 시녀였다. 포르시아가 기억을 찾은 후 그녀가 없으면 이상하게 여길 것을 우려해 공작은 캐서린을 포르시아의 곁에 두도록 했다.

하지만 포르시아가 알아서는 안 될 일을 알고 있는 캐서린을 곁에 둔다는 것은 모험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곁에 두는 것은 포르시아가 캐서린을 그만큼 아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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