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83화 (83/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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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두 사람이 하인의 뒤를 따라 응접실을 나간 잠시 후.

“아가씨.”

“무슨 일이죠?”

오랜 세월 공작가의 영지를 관리해 온 집사가 포르시아가 쉬고 있는 응접실에 들어왔다.

“네. 수도에서 기사분이 오셨습니다.”

집사는 공손히 기사의 신분증을 포르시아에게 건넸다.

“이니안 세이버라… 사흘 전에 출발했다는 소식을 조금 전에 들었는데 벌써 도착하다니, 빨리 왔군요.”

포르시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만나봐야겠지요? 계약직으로 이름만 기사라고 해도 어쨌든 기사.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줘야지요.”

포르시아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세이버 경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포르시아의 물음에 집사, 에드워드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저, 그것이…….”

에드워드의 당황한 모습에 포르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항상 조용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그가 이렇듯 당황하는 것이 의외였다.

“지금 저택 입구에 계십니다.”

“저택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나요?”

포르시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자신에게 신분증이 건네졌기에 포르시아는 이니안이 저택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이 데리고 온 동물 때문에 저택에 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난처한 얼굴로 말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포르시아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일단 나가봐요. 나 때문에 수도에서 이곳까지 온 분인데 저택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밖에 세워두다니 예의가 아니지요.”

포르시아는 저택의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 아가씨, 가시지 않는 편이…….”

포르시아의 행동에 당황한 에드워드가 급히 말렸지만 포르시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캐서린은 에드워드의 눈치를 잠시 살핀 후 종종걸음으로 포르시아의 뒤를 따랐다.

“응? 무슨 일이지?”

저택의 현관을 나온 포르시아는 저택의 정문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에 눈에 이채를 띄었다. 평소에는 네 명의 경비병이 절도 있는 모습으로 정문을 지키고 있다. 저렇게 소란스러울 이유가 없는 곳이다.

“어서 가보도록 하자.”

“네.”

포르시아의 말에 캐서린이 급히 하인 한 명을 불렀다. 캐서린의 지시에 하인이 즉시 작은 마차를 몰고 왔다. 공작가의 저택은 넓다. 여인의 몸으로 저택의 현관에서 정문까지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만약 걸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이다.

마차에 몸을 실은 포르시아는 곧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병사들뿐이라 여겼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기사들도 두세 명 있었다.

“무슨 일이죠?”

정문 밖을 응시하며 웅성거리던 병사와 기사들이 뒤를 돌아보다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공녀님을 뵙습니다.”

우렁찬 병사들의 소리에 미처 뒤를 돌아보지 않던 자들도 황급히 몸을 돌려 허리를 숙였다.

“네, 모두 수고하시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병사들의 인사를 웃으며 받은 포르시아가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졌다.

“그것이…….”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직접 보십시오, 공녀님.”

며칠 전 도착한 계약 기사 한 명이 옆으로 비켜서며 공손히 말했다. 그의 행동에 포르시아 앞으로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져 길이 만들어졌다.

포르시아는 병사들이 만들어준 길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

자신보다 덩치가 큰 병사들이 잔뜩 앞으로 막고 있어서 미처 보지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했다. 은빛털이 찬란히 빛나는 늑대의 모습은 거대했지만 멋있었다. 그 늑대는 가만히 앉아서 저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늑대 곁에 등을 기댄 채 한가로이 앉아 있는 흑발의 사내.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이니안 세이버… 경, 인가요?”

포르시아의 부름에 이니안은 힐끗 곁눈질로 그녀를 보았다. 병사들의 우렁찬 인사에 그는 이미 그녀가 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 모른 척 가만히 앉아 있었다.

흘끗 본 포르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로즈가 분명하군. 하지만 로즈가 아니야, 케라우에게 들은 대로.’

녹색의 눈동자는 여전히 예뻤다. 하지만 녹색 속에 깊이 잠겨 있는 빛은 예전과 달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로즈와는 전혀 다른 사람, 이 사람이 포르시아였다.

다시 한 번 가슴 한곳이 아려왔다.

‘알 수 없군. 대체 이 감정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아픔이다.

이니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택의 커다란 철제문을 사이에 두고 포르시아와 마주 섰다.

“이니안 세이버라고 합니다. 공녀님을 뵙습니다.”

이니안은 정중하게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주군에게 인사를 하는 기사의 예를 취했다.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예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포르시아는 생긋 웃으며 문의 철창 사이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니안은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세이버 경의 늑대인가요?”

이니안이 인사를 마치고 몸을 일으키자 포르시아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케이로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귀엽네요.”

생긋 웃는 포르시아.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당황한 것은 뒤에 서 있는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맹수를 앞에 두고 귀엽다고 하다니.

그녀의 말에 이니안은 미소를 지었다. 첫 만남에서 보인 공작가의 아가씨의 행동이 마음에 든 것이다.

“네, 귀여운 녀석이죠. 착하고 순하기도 하고요.”

“그래요? 저는 늑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맹수라고 들었는데 모두 이런가요?”

포르시아의 두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받은 아이의 눈. 그것이 지금 그녀의 얼굴에 있었다.

“아닙니다. 이 녀석만 좀 특별하죠.”

이니안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런데 어째서 들어오지 않고 그곳에 계신 거지요?”

포르시아는 궁금하다는 듯 이니안과 케이로스를 보며 물었다.

“뒤에 계신 분들이 케이로스가 들어가는 것을 막더군요. 이 녀석은 제 친구이기에 저도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공녀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니안은 포르시아의 뒤에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네?”

이니안의 행동에 포르시아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째서 그런 거죠?”

“공녀님께서 계신 저택에 저렇게 위험한 맹수를 들여놓을 수는 없습니다.”

포르시아에게 길을 열어준 후 계속 포르시아의 곁을 지키며 경계의 눈빛으로 케이로스를 바라보던 기사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걸요. 오히려 귀여워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포르시아의 말에 기사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로서도 설마 포르시아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위험한 늑대를 저택에 들일 수도 없는 일.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포르시아와 케이로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흐음.”

포르시아는 그런 기사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의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케이로스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에 케이로스가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우왓! 공녀님을 지켜라!”

케이로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병사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났다.

“모두 가만히 있으세요.”

순간 포르시아의 입에서 매서운 지시가 내려졌다. 과연 공작의 딸다운 위엄에 잠시 병사들은 주춤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케이로스의 앞발이 들리더니 아래로 내려졌다.

턱.

희고 작은 포르시아의 손. 가녀린 그 손은 너무나 연약해 보였다. 그 손 위에 거대한 늑대의 발이 있었다. 포르시아의 얼굴보다도 큰 늑대의 발. 날카롭게 빛나는 발톱은 살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포르시아는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케이로스를 바라보았다.

“너 정말 영리하구나. 내 손에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그 모습에 병사들은 저마다 입을 벌리고 ‘어버버’거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장면에 차마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케이로스입니다.”

“네?”

그때 포르시아의 귀에 들린 이니안의 목소리.

“이 녀석의 이름입니다.”

“아, 그렇군요. 케이로스. 좋은 이름이네요. 미안, 케이로스. 이름이 있는데 불러주지 않아서.”

포르시아의 말에 케이로스는 거대한 머리를 철문에 가져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포르시아가 있는 곳을 머리로 문질렀다.

그 모습에 병사들은 더 이상 어떠한 말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뿐.

“공녀님, 그럼 저와 케이로스가 이제 저택에 들어가도 될까요?”

이니안의 말에 케이로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포르시아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는 여전히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아, 그만 제가 케이로스에게 정신이 팔려 깜빡했네요. 이런 실례를. 저 때문에 먼 길을 와주셨는데 여태 문밖에 세워 놓다니 정말 죄송해요. 어서 들어오세요.”

포르시아의 말에 정문 경비병 네 사람이 서둘러 문을 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공작가의 위용답게 거대한 문이었기에 네 사람이 여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원래 낮 시간 동안엔 열어두는 문이지만 케이로스의 출현에 급히 닫은 것이다.

“잠시 무례를 범하겠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길.”

느릿느릿 열리는 문을 바라보던 이니안이 포르시아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곧 훌쩍 케이로스의 등에 올라탔다.

이니안이 올라타자 케이로스는 포르시아가 서 있는 곳 반대편으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훌쩍 몸을 날렸다. 정말이지 가볍게 공작가의 정문을 넘은 것이다.

“으악!”

갑작스러운 케이로스의 행동에 놀라 비명과 함께 엉덩방아를 찧는 병사도 있었다. 다만 포르시아는 두 눈을 반짝이며 케이로스를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저택에 가서 나누도록 할까요?”

“알겠습니다.”

포르시아는 서둘러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는 지금 이니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 대부분은 케이로스에 대한 것이다.

포르시아. 그녀는 첫 만남에서 케이로스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내내 그녀의 시선은 케이로스를 향해 있었다. 마차의 뒤를 한가로이 따라오는 케이로스와 그 등에 타고 있는 이니안.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탄 마차를 끄는 말들이 심하게 몸을 떨어 마차를 모는 하인이 상당히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단의 소동이 포르시아에 의해 정리가 되고 포르시아는 응접실에서 이니안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응접실의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케이로스가 엎드려 있었다.

잠시 창밖을 보던 포르시아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그곳에는 에드워드가 엄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셔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아가씨.”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포르시아가 아무리 동정을 구하는 눈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아도 그는 케이로스를 저택 안에 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 저런 상황이 연출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포르시아를 마주하며 차를 마시고 있는 이니안은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니안은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차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가씨,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세이버 경에게 실례입니다.”

에드워드의 충고에 그녀의 시선은 이니안을 향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게 변해 있었다.

“이런 실례를 했네요.”

“괜찮습니다. 공녀님께서 케이로스를 마음에 들어해주시니 오히려 기쁘군요. 솔직히 저 녀석을 어떻게 데리고 들어올지 걱정이었습니다. 생긴 것이 저래서 가는 곳마다 환영받지 못해서요.”

이니안의 말에 포르시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귀여운 애를 왜?’라고 포르시아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저는 무엇을 하면 되지요?”

일단 포르시아의 경호를 하기 위해 기사로 이곳에 왔다. 그렇다면 주군이나 다름없는 포르시아의 지시를 따라야 했기에 이니안은 앞으로의 일을 물었다.

“제 곁에서 있어주세요.”

포르시아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번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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