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82화 (82/175)

=======================================

[82]

공작의 반응에 스테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의 결정이 옳았던 것이다. 공작이 가진 비밀의 대부분을 알고 있는 스테판이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응접실에 있습니다.”

“만나보도록 하지.”

“네.”

공작의 대답에 스테판은 먼저 공작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곧 공작이 찾아올 것이라는 전갈을 손님에게 전해야 했다.

“후후후. 이니안이라… B급 용병 이니안이라. 분명 카르세온이 말했던 그자이겠지? 사이몬 가의 용병. 그래 분명 있었어, 그때 사이몬 가를 뛰쳐나온 망나니가. 일이 재미있게 되어가는군.”

공작은 자신이 검토하던 서류를 빠르게 읽은 후 사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찾아온 이니안을 만나기 위해.

처음에 받은 찻잔을 모두 비우고 두 번째 찻잔의 차가 식을 무렵 집사가 다시 이니안에게 나타났다.

“공작 각하께서 곧 내려오실 겁니다.”

집사가 그 말을 전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칸세르 공작이 나타났다. 이니안으로서는 처음 만나는 인물이다.

‘과연 제국의 공작이군.’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데도 이니안은 충분히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위압감은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타고난 신분과 그 신분에 맞는 생활을 하며 사람 위에서 사람을 부릴 때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다.

“칸세르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이니안은 정중히 예법에 맞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반갑네. 내가 칸세르 공작일세. 일단 앉지.”

공작의 권유에 이니안이 자리에 앉았다.

“차가 식었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느새 시녀가 새로이 차를 내왔다.

“그래, 내 기사단에 들어오고 싶다고?”

“네.”

“내가 새로이 기사를 뽑고는 있네만 칸세르 기사단의 기사를 뽑는 것은 아니야. 칸세르 기사단에 아무 기사나 들일 수는 없지.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명망 있는 귀족가의 자제들에게만 그 자격이 있어. 결코 이런 식으로 기사를 충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지.”

칸세르 공작은 이니안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며 천천히 자신이 모으고 있는 기사에 관한 설명을 했다.

“그런데 최근 피치 못할 일로 기사단에 결원이 생겼지. 물론 일시적이야. 길어야 2년이 안 걸릴 거라 생각하네. 하지만 그사이 인원이 필요해서 기사를 모집하고 있지. 즉, 2년간 한시적으로 기사의 대우를 해줄 이들을 모으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신분에 상관없이 모은다고 알린 것이네. 그래도 할 마음이 생기는가?”

“물론입니다.”

말이 기사지 완전히 용병이었다. 하지만 공작가의 이름으로 부리는 것이기에 체면상 기사를 모은다고 한 것이다.

“이번에 새로 뽑은 이들의 일은 내 영지에 있는 딸아이의 여행 호위일세.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이니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실상은 공작을 처음 봤을 때부터 웃고 있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집사와 하게. 나는 이만.”

“감사합니다.”

칸세르 공작은 간단한 이야기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듣던 것과는 다르군. 얼음처럼 차가운 자라 하더니…….’

카르세온에게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른 이니안의 모습에 칸세르 공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과연 사이몬의 인물. 제국의 공작인 나를 앞에 두고 한 치도 흔들림이 없다니. 재미있군, 재미있어. 과연 포르시아와 함께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다시 찾았을까? 뭐, 카르세온을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지금 저자라면 안심하고 포르시아를 맡길 수 있겠지. 일단 카르세온에게 거의 이길 뻔했다고 하니. 후후후.’

그런 공작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니안은 담담히 스테판에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칸세르 공작이라… 과연이라고 해야 하나? 분명 카르세온 그 자식에게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한 점 흔들림이 없었어.’

“그럼, 이니안님, 이곳에 서명하시죠.”

“네. 이거면 되나요?”

“됐습니다.”

스테판은 만족스러운 듯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성 문제인데요.”

“네.”

“공작가의 기사가 성이 없다면 말이 안 되니 임의로 2년간 사용할 성을 드리겠습니다. 어디… 음. ‘세이버’ 어떻습니까?”

서류 뭉치를 뒤적이던 스테판이 그중 한 장을 보며 말해준 이니안의 새로운 성. 나쁘지 않았다.

“좋군요.”

“그럼 이곳에 서명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이니안님은 이니안 세이버 경입니다.”

모든 절차를 마쳤는지 스테판은 서류를 정리했다.

“보수는 서류에 적혀 있는 대로 한 달에 10골드씩 총 240골드입니다. 보수는 매달 지급될 겁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시면 새로운 신분증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스테판은 총총히 사라졌다.

“후훗. 이름뿐이라지만 그래도 기사라… 내가 다시 기사가 될 줄은 몰랐군.”

그의 앞에는 작은 책자가 놓여 있었다. 기사로서 지켜야 할 기본 소양에 대한 것이 적혀 있는 책이었다. 공작가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그 책자에 있는 것을 모두 익히는 것이 계약의 조건에 들어 있었다.

물론 이니안에게는 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륙의 예법은 전체적으로 거의 비슷했기에 카일로니아에서 익힌 예법 정도면 충분했다.

오래지 않아 스테판이 돌아왔다, 금박의 테두리로 된 멋진 신분증을 가지고서. 신분증에는 칸세르 공작가의 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럼 오늘은 방을 준비해드릴 테니 내일 일찍 영지로 떠나십시오.”

“아니요, 지금 바로 떠나도록 하지요.”

이니안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 피곤하실 텐데요.”

스테판의 말에 이니안은 얼굴에 어린 미소를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제가 이곳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이곳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 녀석 때문에요.”

스테판은 곧 이니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자신도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던가? 집채만 한 늑대가 사나운 눈을 치켜뜨고 떡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태연할 정도의 강심장을 그는 가지지 못했다.

“그러시다면 편할 대로 하십시오.”

스테판은 굳이 이니안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그럼 폐를 끼쳤습니다.”

“먼 길 조심해서 가십시오, 세이버 경.”

이니안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저택을 나섰다.

“케이로스!”

이니안의 부름에 케이로스는 거대한 몸체를 날려 순식간에 그 앞에 나타났다.

“이만 가자.”

질풍같이 케이로스는 칸세르 공작의 저택을 벗어났다. 집무실의 창에서 칸세르 공작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허허허. 저렇게 커다란 늑대를 부린다라…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

칸세르 공작의 눈이 심유하게 빛났다.

케이로스는 복잡한 시가에서 잘도 사람들을 건들이지 않고 빠르게 치달렸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언가 거대한 것이 자신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니안은 미오나인의 성문을 지난 지 꼭 세 시간 만에 다시 성문을 찾았다.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나?”

이니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경비병이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보나마나 거절당하고 쫓겨났을 거라 여긴 것이다.

“여기.”

이니안은 싱긋 웃으며 스테판에게서 받은 신분증을 보여주고는 금세 성문을 빠져나갔다. 케이로스는 은빛 바람으로 화해 서쪽으로 달렸다.

“대체…….”

경비병은 이니안이 사라진 곳을 넋이 나간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그는 자신의 눈에 보였던 금빛 테두리의 기사의 신분증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23장. 웃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미오나인 제국의 젖줄이자 제국의 이름의 기원이기도 한 미오나인 강.

미오나인 강의 하류에 펼쳐진 광대한 평야가 바로 칸세르 공작의 영지다. 제국 제일의 옥토로 이 땅에서 나는 곡식의 양은 능히 제국민의 오분지 일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다.

게다가 대륙의 북쪽 끝이지만 제이난 왕국에서부터 흐르는 따뜻한 해류가 영지의 해안까지 도달함으로 기후 역시 온난하고 쾌적하다.

그야말로 사람이 살기에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 그곳이 칸세르 공작 영지다. 자연히 사람들도 모여들어 인구 역시 많은 곳이다.

“광활하군.”

끝이 보이지 않은 푸른 평야. 마치 초록의 바다에 서 있는 듯 지평선이 멀리서 아스라이 보인다.

케이로스의 등에 탄 이니안은 담담한 눈으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농지를 바라보았다. 1년의 수확을 결정하는 파종 시기였기에 농민들은 부지런히 땀을 흘리며 농지에서 손을 놀리고 있다.

[여전하군, 이 시기의 인간들은.]

칼은 오랜만에 보는 인간들의 일하는 모습에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하루 정도만 더 가면 칸세르 영지의 성도에 도착하는군.”

케이로스의 빠른 속도 덕에 무척 빠르게 이동했다. 말을 달리면 4, 5일은 걸릴 거리를 단 이틀 만에 주파한 것이다.

“케이로스 하루만 더 수고해라.”

이니안이 케이로스의 목덜미를 만지며 말했다. 그것이 출발 신호라도 되는 듯 케이로스가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

“새로운 기사가 온다구요?”

“네, 공녀님. 사흘 전에 출발했다 하니 앞으로 나흘 정도 후면 도착할 겁니다.”

클레비클의 말에 포르시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기사가 오는 것은 그녀에게는 대수로울 것이 없었다.

잠시 기분 전환을 위해 여행을 하기로 한 이후 며칠 간격으로 기사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칸세르 기사단의 갑작스러운 결원으로 몇몇 기사는 임시로 고용한, 말뿐인 기사들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것은 그녀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저는 이만 수도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네오마인 경도 와 계시고 하니 제가 더 이상 있을 필요도 없고요. 또 공작 각하께서 그만 수도로 오라고 하시는군요. 네오마인 경과 함께 온 제 제자도 있으니 수도와의 마법 통신도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클레비클의 말에 포르시아의 눈에 살짝 이채가 어렸다. 자신의 몸에 대법을 시행한 그가 이렇게 빨리 자신의 곁을 떠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말로 대법이 제대로 성공한 모양이네요. 경께서 이렇게 빨리 떠나시는 걸 보니.”

“물론입니다. 대법에 관한 것이라면 염려를 놓으십시오.”

“알았어요. 언제 떠나시죠?”

“곧 떠날 생각입니다. 이미 준비도 마쳤고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클레비클 경. 차후에 제가 수도로 돌아가면 뵙도록 해요.”

포르시아는 생긋 웃으며 클레비클에게 치하의 말과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네, 공녀님. 즐거운 여행되시기를.”

인사를 마친 클레비클은 몸을 돌려 지하의 연구실로 향했다. 올 때는 시간을 끌기 위해 마차로 왔지만 자신 혼자 수도로 가는데 굳이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수도 근처에 있는 칸세르 공작가의 거점에 대응 마법진이 있었기에 텔레포트로 무리 없이 갈 수 있었다.

“흐음. 다행인걸. 성가신 녀석이 사라져 주다니.”

여전히 정원의 나무에 숨어 저택 안을 감시하던 케라우는 성가신 흑마법사가 알아서 사라져 주자 미소를 베어 물었다.

“게다가 저놈이 제자인 듯한데…… 신기하군. 흑마법사에게 백마법사 제자라니. 뭐, 마법 통신 정도나 할 정도로 서클이 낮은 녀석이고. 앞으로는 안심하고 편안한 저택에서 감시할 수 있겠군. 후훗.”

웃음과 동시에 케라우의 모습이 나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천장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포르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오마인 경께서도 먼 길에 피곤하실 텐데 쉬도록 하세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그리고…….”

“카임이라고 합니다, 공녀님.”

마법사는 눈치 빠르게 포르시아가 자신의 이름을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즉각 대답했다.

“카임 경도 쉬도록 하세요. 수도에서 이곳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에요.”

포르시아가 따뜻한 눈으로 응시하자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리 공녀가 그리 말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은 그 곁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양하지 마세요. 제 곁에 있는 분들이 피곤한 모습이면 오히려 제가 불편하니까요. 그게 오히려 저에게는 폐예요.”

포르시아가 다시 한 번 말하자 네오마인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럼 결례를 무릅쓰고 잠시 쉬도록 하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네오마인의 인사에 곁에 있던 카임도 함께 인사를 했다.

“누가 저 두 분께 방을 안내해 주세요.”

포르시아의 말에 응접실 한 곳에서 대기 중이던 하인이 급히 몸을 움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