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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칼.”
[왜 그러지?]
“나 지금 웃고 있어?”
차가운 모습은 버렸지만 마음껏 웃은 적은 별로 없었다. 간간이 미소를 짓긴 했지만 그건 자연스레 몸이 반응한 것이다. 자신이 웃어야지 하고 웃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웃어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 거울이 없는 지금 이니안은 자신이 정말로 웃고 있는지 그 웃음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웃고 있어.]
“어때?”
[잘 어울리는군.]
“그래?”
칼의 대답에 이니안의 얼굴에 맺힌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럼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웃으면서 지내볼까?”
이니안은 곁에 있는 케이로스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이봐, 설마 이러려고 케이로스를 데리고 나온 거야?]
“물론. 제법 괜찮겠다 싶었거든. 아니, 사실은 어릴 때부터 한 번 이래보고 싶었어. 우연히 읽은 영웅 소설에 나오는 은빛 늑대를 보고는 말이지. 그런 늑대를 타고 달리는 게 어린 시절 내 꿈 중 하나였지. 설마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후우. 어리군, 너도.]
“마음대로 생각해.”
이니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럼, 이제 약속을 지키러 가볼까? 가자, 케이로스. 방향은 미오나인이야. 이곳에서 남서쪽!”
이니안의 지시에 케이로스는 훌쩍 몸을 날렸다.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로 지나간다. 이 순간 케이로스는 은빛 바람이 되어 대지를 휘달리고 있었다.
***
제국의 수도는 제국의 수도다웠다.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그 웅장함이란… 당당히 대륙에 군림하고 있는 제국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도착했군.”
이니안은 미오나인의 성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너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을까?”
이니안은 케이로스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맹수인 늑대. 그것도 보통 늑대보다 서너 배는 덩치가 큰 늑대를 데리고 성내로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일단 부딪쳐 봐야지.”
이니안은 결정을 내렸다. 이니안의 결정을 내리자 케이로스는 성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케이로스를 탄 이니안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성문은 혼란에 휩싸였다.
거대한 늑대가 성문을 향해 곧장 다가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사, 사람이다. 사람이 타고 있다.”
경비병들은 늑대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겨 지척에 이르러서야 등에 타고 있는 이니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어, 수고하십니다.”
이니안은 케이로스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인사를 했다.
“무, 무슨 일이시오?”
케이로스의 모습에 압도당했음인가? 경비병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 칸세르 공작 각하께서 새로이 기사를 모집하고 계신다고 들어서요. 이제 용병짓 해먹기도 힘들어서 혹시라도 넓으신 아량으로 받아주신다면 기사라도 해볼까 해서요.”
이니안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뭐야? 이 녀석은?’
그런 이니안의 태도에 그를 상대하고 있는 경비병은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과 같은 말단 병사에게 있어서 기사란 그야말로 하늘 위의 존재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용병 녀석이 저렇게 건방지게 웃으며 기사 따위 우습다는 듯 말하고 있으니.
“신분증은?”
“여기 있습니다.”
경비병은 이니안이 건넨 용병패를 들여다보았다.
B급 용병 이니안.
용병패에 기록된 용병의 신분이었다. 우스웠다. 조금 전 가슴을 들끓게 했던 분노가 씻은 듯 사라졌다. 대신 눈앞의 용병에 대한 조소가 자리했다.
적어도 A급 용병은 되어야 남작이나 자작의 기사가 될까 말까였다. AA급, 통칭 더블A급 용병이라면 자작의 기사 정도는 무리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트리플A급이라면 백작의 기사를 넘볼 수도 있다. 하나 공작의 기사라면 대륙 최고의 용병이라는 S급의 용병이라도 힘들다. 그런데 고작 B급 용병 주제에 공작의 기사가 되겠다니. 가소로웠다.
당장 그의 마음은 표정으로 연결되었다. 이니안의 용병패를 보는 순간 그의 얼굴 가득 비웃음이 자리한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니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니, 신분에는 문제가 없어. 하지만 고작 이런 실력으로 공작 각하의 기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거야 해봐야 아는 일이죠.”
“훗. 뭐 세상물정 모르는 촌놈이니.”
명백한 모욕이다. 하지만 이니안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 않고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럼 들어가도 되나요?”
‘배알도 없는 놈 같으니.’
경비병은 이니안이 자신의 놀림에 덤비기를 바랐다. 그러면 당장에 체포해 감옥에 처박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니안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의 계획은 무산된 것이다.
“그래. 통과.”
“들어가자, 케이로스.”
경비병의 말에 이니안은 자연스레 케이로스와 함께 성문을 지나려 했다.
“잠깐! 멈춰!”
“네? 왜 그러시죠?”
이니안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설마 제국의 수도에 그런 엄청난 맹수를 데리고 들어가려는 것이냐?”
“제 친구입니다만. 그리고 케이로스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요.”
“그걸 누가 믿느냐? 저런 엄청난 덩치의 늑대라니. 보이는 것만으로도 성내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예상대로 케이로스와 함께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 밖에 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사냥하겠다고 덤빌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 녀석은 나에게는 말과 같은 이동 수단이자 친구예요. 결코 이런 곳에 홀로 둘 수 없습니다.”
이니안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경비병은 성내에 혼란을 일으킬 만한 어떠한 것도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야?”
“후우. 어쩔 수 없군. 케이로스 미안하다. 잠시만 참아줘.”
이니안은 케이로스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실제로 케이로스는 알아듣는다. 단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경비병을 비롯한 그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럼 입에 재갈을 물리면 어떻겠습니까?”
이니안은 경비병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케이로스가 입을 벌리지 못하게 재갈을 물리고 있었다. 케이로스는 그런 이니안의 행동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곳까지 지나온 마을에서는 케이로스의 위용에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이곳은 제국의 수도다. 분명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지나온 마을에서 재갈을 준비했다.
경비병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입을 벌리지 못하게 재갈을 물리면 거부의 행동으로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맹수인 늑대가 저렇게 순하게 재갈을 받아들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습니까?”
재갈을 완전히 물린 이니안이 경비병을 돌아보며 물었다.
“안심이 안 된다면 제대로 물렸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이니안은 재갈을 세차게 당겼다. 경비병은 감히 이니안과 같은 행동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 어쩔 수 없군. 통과.”
이 이상은 어찌할 수 없었다. 원칙은 절대 통과시키면 안 되지만 이니안의 행동에 경비병은 기가 질린 것이다.
게다가 결과가 어떻든 제국 최고의 권력가라는 칸세르 공작가로 간다고 하니 자신은 공작의 손님인 줄 알고 말리지 못했다고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니안이 시가로 접어들자 과연 시가는 혼란에 휩싸였다. 벌건 대낮에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늑대가 활보하니 혼란이 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이거, 안 되겠네.”
이니안은 주변의 혼란에 입맛을 다셨다. 이 이상 혼란이 커지면 성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병들이 출동할 것이 분명했다.
“계속 못할 짓 하게 해서 미안하다, 케이로스. 엎드려라.”
잠시 케이로스를 쓰다듬으며 사과의 말을 한 이니안은 곧 지시를 내렸다. 케이로스는 이니안의 지시에 따라 즉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케이로스는 케이로스 대로 죽을 맛이다. 아무리 이니안이 자신의 마스터지만 자신은 이래봬도 위대한 드래곤의 가디언이다. 한데 지금 하찮은 인간들 앞에서 재갈을 물고 바닥에 엎드리는 한심한 꼴이라니.
‘내가 어쩌다가…….’
케이로스는 현재 자신의 처지에 회의를 느꼈다.
그때.
“굴러.”
이니안의 지시가 들렸다. 케이로스는 생각할 것도 없이 지시대로 굴렀다.
그 모습에 시가의 혼란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아니, 오히려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거대한 늑대가 마치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처럼 행동하니 신기했던 것이다.
“자, 보셨죠, 여러분? 케이로스는 전혀 위험한 맹수가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이니안의 말에 사람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케이로스는 이니안의 지시에 따라 껑충 뛰어오르기도 하고 심지어 늑대로는 절대 불가능한 물구나무를 서기도 했다.
“와아∼!”
그 모습에 여기저기서 함성 소리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그럼.”
그 모습에 이니안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곧장 칸세르 공작가로 향했다. 케이로스의 자존심을 무참히 깨부수며 제국의 수도에서의 소요는 진정되었다.
***
“공작 각하.”
“무슨 일인가, 스테판?”
칸세르 공작은 처리 중이던 서류에서 눈을 떼고 자신을 찾아온 집사를 바라보았다.
“이런 자가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스테판은 공작에게 나무로 된 용병패를 건넸다. 나무패를 본 공작의 인상이 찌푸러 들었다. A급 용병까지는 용병패의 재질이 나무였다. 더블A급은 동, 트리플A급은 은이다. 그리고 S급은 금패였다.
겨우 A급 용병이 감히 공작가에 기사가 되겠다고 찾아왔으니 기분이 언짢아질만도 했다.
아니, 그가 기분이 언짢은 것은 그런 용병 나부랭이를 당장에 내쫓지 않고 굳이 자신에게까지 보고를 하는 스테판의 행동이었다.
자신이 아는 스테판은 50여 년간 이곳에서 집사의 일을 해온 베테랑답게 알아서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찮은 일고 자신을 귀찮게 한 것이다.
“겨우 이런 하찮은 일로 나를 찾은 것인가?”
스테판은 공작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집사로서의 경험은 이 패를 반드시 공작에게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겨우 B급 용병입니다만 그 이름이 걸립니다. 해서 공작 각하께서도 한 번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하아.”
스테판의 말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A급도 아닌 B급 용병이라니. 하지만 스테판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스테판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이리 줘보게.”
칸세르 공작은 스테판에게서 이니안의 용병패를 받았다.
“이건…….”
용병패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자 그것들 들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