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74화 (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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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뭐, 이제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네 것이다. 내가 마지막 유희를 즐길 수 있게 해준 데에 대한 대가라고 할까? 그냥 보답의 선물 정도로 생각해.”

“휘유∼ 이거 내 몸이 엄청 비싸군. 몸에 영혼 하나 넣어준 대가로 드래곤의 레어를 하나 통째로 가지다니.”

“쿡쿡. 과연 세상에서 가장 비싼 몸인 듯하군.”

이니안은 예전에는 하지 않던 농담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책밖에 없다고 했던 통로 옆의 방이었다.

이니안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내면의 세계에서 만천자를 만난 이후 확실히 변해 있었다. 그의 그 인자한 웃음이 이니안의 심경에 어떤 변화를 준 것일까? 그의 충고가 이니안의 결심에 어떤 변화를 준 것일까?

포르시아의 부탁에 조금씩 깨어져 가던 이니안의 얼음 가면은 완전히 녹아서 사라졌다. 그 사건이 있기 전 어린 시절의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골랐어. 그 방이 무기가 있는 방이지.”

칼의 말에 이니안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통로 끝에 나타난 방 안에는 갖가지 무기들이 들어차 있었다. 공작가의 아들인 이니안이 보기에도 과연이라는 감탄이 터져 나올 만한 무기들만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음대로 얼마든지 골라. 이게 다 네 것이니까.”

하지만 칼의 말에도 이니안은 크게 기쁜 얼굴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훌륭한 무기들에 대한 감탄만을 할 뿐이다.

“고맙긴 한데… 이 방에는 당분간 임시로 쓸 검밖에 못 구할 것 같군.”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이 방에는 세상에 나가면 당장 명검이나 보검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의 검밖에 없는데.”

칼은 기분이 상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인간을 뛰어넘은 고등한 지적 생명체 드래곤. 그런 그들에게도 욕망이란 것은 존재했다. 지상에서 가장 고등한 생명체이기는 했지만 그들도 결국은 신의 피조물.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유일한 욕망이 바로 수집이었다. 보물의 수집. 갖가지 보물들을 수집하여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드래곤들의 유일하게 공통된, 본능적 욕망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랑스러운 수집품들이 임시로 쓸 검밖에 되지 않는다니 드래곤인 칼로서는 기분이 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뭐, 그렇게 기분 상한 얼굴 하지 말라고. 어디까지나 나라는 놈에 한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그리고 잘 찾아보면 내가 쓸 검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랬다저랬다 하는 이니안의 말에 칼은 더욱 기분이 상한 듯했다.

“너 정말 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니안의 말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 따위 몰라도 드래곤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다. 검으로 찔러 오기 전에 마법으로 날려 버리면 되는 것을 드래곤이 검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검이란 몸의 일부야. 그저 단단하고 잘 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몸의 일부가 되어야 해. 처음 잡아도 몸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검. 그런 검이 진정한 명검이지.”

칼은 이니안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훗. 뭐, 진정한 실력자라면 산길에 나뒹구는 나뭇가지도 명검같이 사용하겠지만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게다가 경험이 있거든.”

“경험?”

“그래. 경험. 검병을 잡는 순간 마치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던 부분을 되찾은 듯한 느낌을 경험했었지.”

“호오. 대단한 검이군.”

이니안의 설명에 그가 경험했다는 검이 얼마나 대단한 명검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명검을 어떻게 하고 지금은 빈손인 거지?”

“버렸어.”

이니안은 짧게 대답했다. 너무 짧은 대답에 칼은 다시 한 번 물어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니안의 두 눈 깊이 자리한 아픔을 보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그럼 어디 나에게 맞는 검이 있는지 찾아볼까?”

이니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빙긋 웃으며 잔뜩 진열된 무기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 중 검이 진열된 곳으로 간 이니안은 주변을 훑어보더니 몇 개의 검을 집어 들었다가 놓았다. 그리고는 곧 한 자루의 검을 들고 다시 동굴로 나왔다.

“고마워. 이 정도면 그럭저럭 새로운 검을 만들 때까지 쓸 수 있겠어.”

이니안의 말에 칼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검을 보고 그럭저럭 쓸 만하다니.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인지…….’

지상 최강의 금속,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는 오리하르콘. 그 오리하르콘을 드워프들이 제련해서 만든 검이 지금 이니안이 들고 있다.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는 이니안의 모습에 칼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니안은 칼이 자신의 행동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상관없다는 듯 휘적휘적 걸어서 동굴의 중앙에 섰다. 이제는 그곳에 눈물이 없었지만 익숙한 곳에 습관처럼 섰다.

호흡을 고르게 하고 눈을 감았다.

검집을 허리에 있는 검대에 매고 서서히 검을 뽑아 양손으로 쥐었다. 동굴 천장의 마법 등의 빛이 검에 부딪쳐 날카롭게 반사되어 빛난다.

숨을 들이쉰다. 내쉰다. 그리고 숨을 멈추는 순간 이니안은 두 눈을 번쩍 떴다.

파아아아!

그 순간 엄청난 기세가 동굴에 휘몰아쳤다. 드래곤이 누워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넓은 동굴을 어마어마한 바람이 가득 채웠다.

‘우웃. 엄청나군. 자신이 약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의 힘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정리하며 칼은 질린 눈으로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좋은 검이야. 나의 기세를 오히려 증폭해서 사방으로 뿌리다니.”

이니안은 만족한 듯 검을 한 번 쳐다본 후 천천히 마령천참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과연.”

칼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의 검을 쥐고 수련을 할 때와는 달랐다. 이니안이 움직이는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기운에 온몸이 찌릿찌릿 했다.

‘기다려라. 반드시 엮이고 꼬인 사건의 매듭을 풀어내고 말 테니까.’

검을 움직이는 이니안의 두 눈은 자신에 대한 결심으로 빛났다.

21장. 확실히 기억이 돌아올까요?

밝은 햇빛이 내리쬔다. 이제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어 사방에 초록 잎들이 피어나고 있다. 따뜻하게 몸을 감싸오는 봄볕을 맞으며 테라스에서 나와 앉아 있는 기분은 정말이지 포근하고도 상쾌하다.

포르시아는 자신 앞에 놓인 티 테이블 위의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칸세르 영지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제법 긴 여행이 지루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은 했다. 그보다도 더한 강행군도 한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두 달이 지나자 이제 포르시아는 영지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아직 자신이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 공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그 생활에는 익숙해졌다.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이 맞는 듯했다.

“하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포르시아는 한숨과 함께 작게 중얼거렸다. 기억을 찾기 위해 요양차 온 영지. 처음 떠날 때 아버지라는 칸세르 공작이 말한 시일은 이미 지나 버렸다. 그럼에도 자신의 기억을 되찾게 도와줄 사람이라는 클레비클은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여유로운 곳에서 한가로운 생활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기억을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토록 좋은 환경에서 뛰어난 차를 마시면서 한숨을 쉬는 것이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공녀님?”

포르시아의 한숨에 즉각 옆에서 반응이 왔다. 캐서린이었다. 수도의 저택을 떠날 때 포르시아의 전속 시녀로서 따라온 그녀는 포르시아의 뒤에 조용히 서 있다가 그녀의 한숨에 반응한 것이다.

“아, 아니야, 캐서린. 신경 쓸 거 없어.”

포르시아는 이제 자연스럽게 시녀에게 하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수도를 떠났을 때 시녀와 하인들에게 하대를 하기 어려워 경어를 쓰곤 했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적응한 것이다.

“네.”

포르시아의 대답에 캐서린은 다시 그림자가 된 것처럼 그녀의 뒤에 가만히 서 있었다. 포르시아는 티 테이블 위의 찻잔을 조심스레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쩝. 지루하군. 벌써 몇 달이 지난 거야?’

테라스 아래의 아름드리나무의 굵은 가지 위에 편안한 자세로 누운 케라우가 힐끗거리며 포르시아를 쳐다보았다.

‘분명 로즈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드래곤의 눈물에 기억을 조작당한 피해자일 뿐인 것 같군. 역시 클레비클이라는 그 흑마법사 영감이 수상하단 말이야.’

케라우는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털며 그 생각을 버렸다. 확실히 무언가를 깊게 생각한다는 것은 케라우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

어두운 지하의 복도를 느릿느릿 걷는 걸음이 있다. 복도의 양쪽 벽에 드문드문 걸린 초들이 어둠을 겨우 밝힐 뿐이었다. 촛불에 비친 로브를 입은 사내의 그림자가 복도 뒤로 길게 이어졌다.

“휴우… 이제야 겨우 준비가 끝났군. 그 빌어먹을 녀석 때문에 준비하는 데 두 달 이상 시간을 잡아먹다니.”

안도의 한숨 뒤에 이어진 분노에 찬 중얼거림. 하지만 이내 그는 입을 다물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좁은 지하 복도는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지고 또 곳곳에 다른 곳으로 이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사내는 촛불 빛에 의지해 한참을 걸었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인지 그가 향하는 길 곳곳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드문드문 걸려 있던 초의 수가 점점 줄어 깊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어둠 속에서 사물을 식별해 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밝기일 뿐이다.

사내가 걸음을 멈춘 곳.

그곳에는 굵은 쇠창살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지하 감옥이었다.

“클클클. 기분이 어떤가, 호크?”

사내는 쇠창살 안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철그렁.

굵은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린다. 그러더니 감옥 안에서 무언가가 쇠창살 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왔다. 사내가 호크라고 부른 인물이다.

“후우. 또 자네인가, 클레비클?”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어쩐 일인가? 지겹군, 그래. 그만 날 죽여.”

호크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넌 죽었어.”

“그게 무슨 말이지?”

호크는 알 수 없다는 듯 클레비클에게 물었다.

“공작님은 네가 죽은 걸로 알고 계시지. 그렇게 보고했으니까. 하지만 난 결코 네놈을 편하게 죽일 수 없다. 나의 필생의 노력이 담긴 마법의 발현을 네놈이 망쳤으니까.”

그 말을 하는 순간 클레비클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후우. 그렇군. 그래서 나의 귀를 잘라서 가지고 갔군. 하지만 말이야, 설마 그 대상이 그분인 줄 알았다면 나는 너의 연구에 협조하지 않았을 거야.”

호크는 후회가 가득한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크크크. 주인 없이 떠돌아다닌 흑마법사를 거두어주었더니 감히 배신을 해? 네놈도 드래곤의 눈물이 얼마나 귀중한 재료인 줄 알 텐데 감히 그것을 날려 버려? 세 번에 걸쳐 쓸 수 있도록 준비한 것 중 하나가 날아갔다. 덕분에 앞으로의 시술 예정을 변경해야 했지.”

“후우… 나는 몰랐어. 그분이 대상이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너의 요청에 응하지도 않았을 거야. 홀로 세상을 떠도는 쪽이 훨씬 나았지. 내가 미쳤었어. 욕심에 눈이 멀었지.”

호크의 말에는 절절한 후회와 한이 스며 있었다.

“흥. 아무튼 네놈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보람은 있게 되었어.”

“그게 무슨 말이지?”

“네놈은 칸세르 공작가의 힘을 너무 우습게 보았어. 그분은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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