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73화 (73/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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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그게 무슨 말이지?]

“더 강해지기 위해서 약해졌다고 해야 하나? 앞으로 더 강해지는데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이 사라진 거야. 물론 그것들 역시 나의 힘을 이루는 것들 중 하나였기에 당장은 약해진 듯 보이는 거야.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강해질 거야.”

이니안은 쥐었다 폈다 하는 오른손을 바라보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에 가득한 자신감을 본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니안, 너의 눈을 보니 이제 곧 눈물을 흡수할 수 있겠군.]

“그래, 이제는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이제 내가 익히고 있는 심공은 반쪽짜리가 아니니까 말이야.”

칼의 말을 이니안은 당당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건 그렇고 상당히 짓궂으시군요.’

숨겨진 나머지 반을 찾아내자 자신을 찾아온 마령천참공의 창시자 만천자. 어떠한 안배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짓궂은 안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령개벽, 열 번째 검이라…….”

만천자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이니안의 두 눈은 새로운 열기로 불타올랐다.

이니안은 천천히 양손을 가운데로 모았다. 여전히 검이 없었기에 가상의 검을 머리에 그리고 그 검을 잡은 것이다. 하나 그것은 가상의 검이 아니다.

이니안이 검을 잡은 모양을 취하자 그곳에 실제로 검이 있는 듯 날카로운 예기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역시. 항상 보아도 대단하군.’

칼의 혼자만의 생각이었기에 이니안은 듣지 못했다.

이니안은 칼의 시선은 느끼지도 못한 채 다시 마령천참검을 펼쳤다. 만천자가 보여주었던 그 동작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천천히 펼쳤다. 달랐다. 같았지만 달랐다.

이전에 이니안이 펼치던 마령천참검에서 빠졌던 것들이 그 자리를 꽉 채운 듯 충만함이 느껴지는 검의 움직임이었다. 이니안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마령천참검의 아홉 초식을 모두 펼쳤다.

정적이고 느린 움직임이었음에도 이니안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령천참검의 이치를 생각하며 펼치느라 심력의 소모가 큰 탓이었다.

“후우∼ 이게 진정한 마령천참검이란 말이지.”

이니안의 얼굴에는 만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칼은 그 모습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가 보기에는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검의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힘만은 달라졌군.’

검을 익히지 않은 드래곤 칼의 한계였다. 그로서는 검에 담긴 지극한 이치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니안의 마령천참검이 담은 그 거대한 힘만은 느낄 수 있었다.

“후아. 지쳤다. 칼,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이니안은 바닥에 벌렁 드러누으며 칼을 향해 물었다.

[얼굴을 만져 봐.]

이니안은 칼의 말을 따랐다. 까칠까칠했다. 수염이 상당히 자란 듯했다.

“쩝. 시간이 흘러도 많이 흐른 것 같군. 수염이 이 정도라니.”

[두 달 정도 지났다. 어떻게 먹지도 마시지도 그리고 배설도 하지 않고 두 달을 지낼 수가 있지?]

칼의 의문에 찬 물음에 이니안은 피식 웃었다.

“난들 알까? 잠시 명상을 하고 정신을 차렸다 싶으면 한두 달이 후딱 지나가 버리는데, 나도 조금은 어이가 없다고.”

이니안은 어느새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동굴에서 홀로 지내다가 칼을 만난 후 이니안에게서 예전의 그 차가운 얼음 가면을 찾을 수 없었다.

포르시아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칼의 영향인지는 몰랐지만 확실히 이니안은 자주 웃었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이니안의 얼굴에는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이 어울렸다.

“이젠 난 좀 쉴래. 두 달 동안 한 자세로 가만히 있었더니 몸이 쉬라고 호소하는군.”

[그렇게 해.]

칼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르르 눈을 감는 이니안의 모습을 지켜보는 칼의 외모가 변해 있었다. 처음 이니안 앞에 나타났던 노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흑발과 흑안의 청년이었다. 이니안과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내면서 외모도 바뀌었다.

차가운 눈빛과 날카로운 눈, 그리고 과묵하게 다문 입술. 마치 차가운 가면을 쓰고 있을 때의 이니안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진 듯했다. 하지만 차가운 가운데 깊은 눈빛은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잘 벼려진 명검과도 같은 외모. 칼이 살아 있을 때 유희를 즐기면서 즐겨했던 모습이었다.

빙설의 귀공자. 그때 칼의 별명이었다.

칼의 외모를 너무나 잘 표현한 별명. 그래서 칼도 썩 마음에 들어 하던 호칭이었다. 이왕 이니안과 생을 함께하게 된 것, 이니안에게 맞추기로 결심한 칼은 자신이 가장 즐겨했고 마음에 들어 했던 빙설의 귀공자가 되어 있었다.

***

“흐음. 이제 시작해 볼까?”

이니안이 손을 닦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니안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닭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뼈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손의 기름기를 입고 있던 로브에 대강 닦아낸 이니안은 눈물을 향해 다가갔다.

천천히 눈물을 향해 손을 뻗는 이니안. 이니안의 손끝에서 청량한 기운이 서서히 흘러나와 눈물을 감싸 안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군.’

그날 이후 이니안은 꼬박 이틀을 잤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닭 한 마리를 꿀꺽한 것이 지금이다.

‘그런데 저 손은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칼의 눈이 이니안의 손에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눈물을 향해 뻗은 오른손 곳곳에 여전히 남아서 번들거리는 닭기름에 머물러 있었다.

자신을 이 세상에 있게 해주는 눈물에 저렇게 기름이 묻은 손을 뻗다니 솔직히 기분이 별로였다. 하지만 이니안은 그런 칼의 심정을 전혀 모른다는 듯 점점 눈물을 잡아갔다.

이니안의 손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눈물을 완전히 감쌌을 때, 이니안의 손바닥이 눈물과 닿았다.

‘으윽.’

그때 손바닥의 닭기름이 살짝 눈물에 묻는 모습에 칼이 눈살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니안은 기름 따위에 아랑곳 않고 손바닥을 눈물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마령천참공의 구결에 따라 이니안은 천천히 단전에서 마이너스 마나를 일으켰다. 단전에서 뻗어 나온 마나는 천천히 이니안의 경맥을 따라 흐르며 손바닥 끝으로 흘러나왔다.

이니안이 미리 눈물을 둘러싸게 한 기운을 따라 마이너스 마나는 눈물을 덮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이니안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이너스 마나가 눈물을 완전히 감싸는 순간 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눈물을 둘러싼 마이너스 마나는 쉬지 않고 눈물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눈물의 마이너스 마나와 이니안의 마이너스 마나가 그 성질이 같게 변했다.

이윽고 두 개의 성질이 하나와 같이 완전히 일치하는 순간 눈물이 찬란한 빛을 뿌렸다.

[성공했군. 이니안, 축하한다.]

그 말을 남기고 칼의 몸이 서서히 사라졌다. 찬란한 광채가 사라지자 이니안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눈물이 박혀 있었을 거라 생각되는 푹 파인 자국만이 땅에 남아 있었다.

이니안은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재미있군.”

이니안은 눈물을 흡수하자 온몸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이질적이고 신기한 기운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것인 듯한 이 기운.

“옷을 입는 거란 말이지?”

정말 그랬다.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소유물이지만 몸의 일부는 아닌 옷. 지금 이니안이 느끼는 칼의 힘이 꼭 그랬다.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익숙함과 동시에 몸의 일부가 아니라는 이질감.

“칼.”

[불렀나?]

이니안의 부름에 그의 머리에 칼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어디에 있지?”

이니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눈물을 흡수한 순간 칼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흡수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다시 나타날 것이라 추측했는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부른 것이다.

[너의 영혼 곁에.]

그렇다. 이니안이 칼의 눈물을 흡수함으로써 이니안 자신의 육체를 칼에게 머물 곳으로 빌려주게 된 것이다.

“그럼 이제는 볼 수 없는 거야?”

칼이 자신의 육체를 빌려 머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다만 칼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무언가 조금 아쉬운 듯했다.

[그건 아니지. 물론 모습을 나타낼 수 있어. 그러자면 힘을 써야 하지. 그리고 힘을 쓰자면 너의 허락이 필요하지.]

칼의 대답에 이니안은 빙그레 웃었다.

“어디까지 실체화할 수 있지?”

[이제 네 허락이 있으면 난 나의 힘을 얼마든지 쓸 수 있어. 너의 몸이 내 힘을 버틸 수 있는 한도까지는 말이야. 그러니 물질화하는 것도 가능하지. 그 정도의 힘은 있으니까.]

칼의 대답에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다면 물질화해서 실제 모습을 가지는 데까지는 언제든지 네 의지로 힘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고맙군.”

대답은 이니안의 앞에서 들렸다.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실체화한 칼이 서 있었다. 물질로서 실체화했기에 머리에 공명하는 듯한 목소리가 아닌 고막을 울리는 실제 소리였다.

“신기하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눈물에 영혼을 의탁할 때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거든. 어쨌든 한도 내에서의 자유로운 힘의 사용에 대한 허락, 고마워.”

칼의 인사에 이니안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아, 귀찮았을 뿐이야, 네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내가 일일이 허락을 해야 한다는 과정이.”

그 말에 칼은 빙그레 웃었다.

“역시. 너는 재미있는 녀석이야. 그런데 언제 나갈 거지?”

“나의 힘을 어느 정도까지 얻은 후에.”

이니안의 대답에 칼은 의외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아직 만족하지 못한 거야? 너의 힘에?”

“당연하지. 나는 불과 이틀 전에 새로운 힘을 얻을 실마리를 얻었어. 적어도 그 힘의 일부라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 다음에 나가야지. 이곳만큼 힘을 기르기 좋은 곳도 없다고.”

이니안의 대답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니안은 드래곤의 강대한 힘의 일부를 얻었음에도 그 힘을 자신의 힘이라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 모습이 더욱 칼의 마음에 들었다.

‘나의 힘은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한 최후의 한 수 정도로 생각하는군.’

육체를 공유하는 영혼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생각까지는 읽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머무는 곳을 공유할 뿐, 서로 독립된 영혼이기에. 하지만 그릇을 공유하기에 서로 원할 때는 영혼과 영혼의 교감은 가능했다.

“그런가? 그럼 선물을 하나 하도록 하지.”

칼의 말에 이니안은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이니안은 자신의 몸을 싼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일부가 덩어리져서 그 기운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정도의 힘을 지금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어?”

힘의 사용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말.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허락의 말을 대신했다. 그 순간 칼의 손이 밝게 빛났다. 덩어리진 기운이 칼에게로 간 것이다.

칼은 손을 휘저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언락(Unlock).”

칼의 주문과 함께 칼이 휘저은 손에서 뻗어나간 기운이 동굴 곳곳으로 퍼져 나가 감쌌다. 그 순간 동굴 전체가 짧은 섬광에 휩싸였다. 아주 잠깐의 섬광이 지나가자 동굴의 풍경이 변했다.

거대한 동공은 그대로였지만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곳곳의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훗. 이게 나의 레어의 진짜 모습이야. 나의 힘으로 봉인했기에 나의 힘으로만 풀 수 있지.”

칼의 웃음에 이니안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드래곤의 마법이란 대단하군.”

“마음만 먹으면 너도 사용할 수 있다. 나의 힘이 곧 너의 힘이니.”

“뭐, 필요하면. 참고할게.”

이니안은 천천히 가장 가까운 곳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통로로 들어갔다.

“그곳은 재미없을 거야.”

이니안이 향하는 통로를 본 칼이 말한다. 그 말에 이니안이 우뚝 멈춰 섰다.

“왜?”

“거기에는 책밖에 없어, 학문과 마법에 대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이니안은 몸을 180도 돌린 상태다.

“푸훗.”

칼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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