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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짐마차 위에 전혀 다른 존재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편히 누워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포르시아 일행은 북쪽으로 쉬지 않고 이동했다.
칸세르 공작의 영지는 대륙의 북쪽에 위치했다. 제국을 동서로 나누며 대륙의 북쪽으로 거대하게 뻗어나가는 미오나인 강. 이 강의 하류 서쪽의 비옥하고도 광대한 평원이 칸세르 공작의 영지였다.
대륙의 북부이지만 신기하게도 미오나인 강의 서쪽은 겨울이 그다지 혹독하지 않았다. 가장 살기 좋은 기후를 가졌다고 하는 대륙의 중부 해안가와 비슷하게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겨울은 추웠지만 제국의 동북부에 비하면 그렇게 추운 것도 아니었다.
일부 학자들은 미오나인 강을 중심으로 제국의 동북부와 서북부의 시후의 차이를 바운더리 산맥에서 찾았다.
대륙의 동북부 끝을 장벽처럼 둘러친 바운더리 산맥이 바닷물의 온기가 대륙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에 서부에 비해 동부가 춥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미오나인 제국의 이름과 수도의 이름인 미오나인 모두 제국을 반으로 가르는 강 미오나인에서 따온 것이다.
미오나인 강은 제국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커다란 강이었다. 대륙에서 다섯 번째로 큰 강으로 고대로부터 이곳의 사람들의 젖줄이었다.
칸세르 공작의 영지는 그 미오나인 강에서도 가장 비옥하다는 하류의 서쪽 평원이었다. 수도는 미오나인 강의 중류 동쪽에 위치하니 배를 타고 이동하면 무척이나 손쉬운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포르시아는 육로로 이동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공작의 명이었다.
“휘유∼! 저게 바로 미오나인 강이로군!”
마차 지붕 위에 누워 있던 케라우가 몸을 일으켰다. 마차의 왼편으로 넓고도 도도히 흘러가는 푸른 물의 거대한 줄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주로 바운더리 산맥 근처에서 활동을 했던 그로서는 처음 보는 엄청난 광경이었다.
그것은 포르시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차의 창가에서 감탄한 듯 미오나인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강을 바라보며 맑게 빛나고 있었다.
포르시아의 녹색 눈동자에 비친 푸른 강물 빛이 묘하게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미오나인 강을 옆으로 끼고 마차는 계속해서 북으로 북으로 나아갔다.
***
한 달의 시간이 더 흘렀다. 이니안이 칼의 레어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두 달하고도 며칠의 시간이 더 흐른 것이다.
“우읏.”
이니안은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쥔 이니안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으음. 아직도 무리인가 보군.]
칼은 그런 이니안을 보며 침중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미 이니안은 소드 마스터 중급의 경지에 들었다. 소드 마스터의 실력을 되찾고 불과 한 달만의 성과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성취였다.
“왜 이럴까? 칼, 네 말로는 지금의 나 정도면 가능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칼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이니안에게 대답했다. 한 달의 시간은 두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놓았다. 이니안은 더 이상 칼에게 경어를 쓰지 않았고 칼 역시 세상을 달관한 노인네 같은 말투로 이니안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니안 너는 분명히 마이너스 마나를 사용할 수 있어. 네가 몸에 흡수하는 것이 마이너스 마나이니까. 그런데 왜 눈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걸까?]
칼은 이미 이니안에게 자신이 영혼의 마나라고 부르는 존재를 이니안은 마이너스 마나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 이후 그도 마이너스 마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글쎄… 그건 연구해 봐야겠어.”
그렇게 말한 이니안은 자리에 주저앉고 명상에 들어갔다. 운공을 겸한 명상이다. 이니안은 마나 스피어에서 마나를 끌어올리며 마령천참심법의 구결대로 마나를 움직였다.
그러는 중에 마령천참심법의 구결을 다시 한 번 깊게 음미하며 하나하나 되뇌었다.
[으음… 또 저 자세로군. 저렇게 명상에 들어가면 기이할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를 몸으로 흡수한단 말이야.]
칼은 이미 여러 번 본 광경이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듯 신기하다는 얼굴로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칼의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지 이니안은 점차 명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니안은 마령천참공이라는 제목의 무공서의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다시 음미해 갔다. 문장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되뇌이고 단어를 다시 한 번 살피고 글자를 또 한 번 살피고 그 글자를 쪼개어 보기도 하면서 완벽하게 마령천참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이니안은 시간의 흐름도 잊고 명상에 몰입했다.
[으음… 저 상태라면 또 며칠은 지나야 눈을 뜨겠군.]
칼은 홀로 중얼거렸다. 칼은 신기한 물건을 관찰하듯 이니안을 관찰했다. 오랜 시간 같은 모습으로 가만히 있다가 언제 변화를 일으킬지 몰랐다.
언제 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있을 이니안의 성장. 칼은 그것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인 채 이니안을 주시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빠지고 다른 영혼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그 사람을 지켜보며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깔끔하던 이니안의 입 언저리와 턱 주변에 수염이 거뭇거뭇해지고 있었다.
며칠에 한 번씩만 면도를 하면 깔끔하게 정리되던 부분들이 거뭇거뭇해질 정도로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니안은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잊은 채 마령천참공과 하나가 되어갔다.
마령천참공은 개새의 무공이다. 아니, 무공이 아닐지도 모른다. 음기를 몸에 쌓는 무공이기에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된다.
바로 혼백(魂魄)을 보게 되는 것이다. 황천을 건너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가야 할 영(靈)들이 황천을 건너지 않고 이 세상에 머무를 힘을 주는 것이 음기이다.
세상 사람들이 귀신이라 부르는 존재가 바로 음기의 힘을 빌려 세상에 존재하는 영인 혼백인 것이다.
혼백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 혼백들의 힘이란 티끌보다 보잘것없을 수도 있고, 태산보다 거대할 수도 있다. 영에 따라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음기가 다르기에 생기는 차이이다. 마령천참공은 그런 혼백의 힘을 빌릴 수 있는 무공이다.
마령천참공을 극성으로 익힌다면 그 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닌 혼백이라도 그 힘을 빌릴 수 있다.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억지로 이 세상에 있으려 하는 것이기에 이 세상에 본디 존재하는 조화로운 존재를 이길 수 없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마령천참공에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나는 그 힘을 이용해 마령천참검법의 후반 3초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마령천참공의 후반 3초식은 자신이 부리는 혼백을 얻지 못하면 완전한 힘을 낼 수 없다.
마령천참검법의 마령이 곧 마령천참공을 사용해 얻은 혼백을 지칭하는 말이다. 마령을 얻지 못하였는데 어찌 마령이 나타나며, 분노의 외침을 토하고 하늘을 가르겠는가?
마령천참공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공일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을 보게 되고 또 그 힘을 이용한다는 것은 세상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
도가의 길을 걷는 나로서는 나의 호기심이 이러한 무공을 만들게 된 것을 후회하였다. 하나 또한 내가 만들어낸 이 결과물을 세상에 남기고픈 보잘것없는 욕망에 결국 마령천참공을 남기나 아무나 그 진실한 실체를 알 수 없게 반쪽짜리 마령천참공 속에 진정한 마령천참공을 숨겼다.
진실한 마령천참공을 얻으려면 반쪽 마령천참공을 궁구하고 또 궁구하여야 하게끔 안배하였다. 나는 마령천참공을 반쪽으로 만들며 도가의 이치를 같이 담았다. 마령천참공을 궁구하다 보면 자연히 도가의 이치도 습득할 것이니.
연자가 결국 이 길에 도달하였다면 도가의 이치 역시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자여,
부디 세상의 조화를 깨뜨리는 나의 부덕한 유산으로 세상의 조화를 지켜주길 바라노라.
―만천자(滿天子).
어느 순간 이니안의 뇌리에 박혀들 듯 무수한 말들이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흰수염을 탐스럽게 기르고 인자한 얼굴을 한 백발의 노인이 이니안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니안은 자신의 내면에 실체화하여 나타난 그 노인을 마주 보았다.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니안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허허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이니안은 그 노인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취하는 동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대륙에 이러한 인사법은 없었다. 양 무릎을 바닥에 꿇고 양팔을 앞으로 내밀며 손으로 땅을 짚고 가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상체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는 동작.
이니안 자신이 알고 있는 대륙의 어떠한 인사법보다 극상의 예를 취하는 듯했다. 자신이 알기로 제국의 황제에게도 이러한 동작은 취하지 않는다. 아니, 신전의 사제들도 이러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세계에 나타난 노인에게 이와 같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머리가 알기 전에 마음이 느끼고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니안은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이렇게 같은 동작을 아홉 번에 걸쳐 반복했다.
“허허허. 반듯한 아이로구나. 깊은 아픔을 가진 듯하다만 그 아픔이 너를 반듯하게 해주었어. 아이야 기억하거라. 그 아픔은 항상 너와 함께하며 너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며 또한 지켜줄 것이다. 기억하기 싫은 아픔일지라도 항시 가슴에 품고 있거라. 그리고 내가 남긴 것을 부디 조화 속에 존재하게끔 해다오.”
이니안의 귀에 생생히 들려오는 목소리.
이니안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엄숙하게 대답했다.
“네.”
솔직히 이니안은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노인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허허허. 그럼 부탁한다. 너라면 아마 마령천참검의 열 번째 검도 찾을 수 있겠구나.”
“열 번째 검이요?”
의외의 말에 이니안이 반문했다.
“그래, 열 번째 검. 마령천참검은 마(魔)의 검이 아니란다. 오히려 천명(天命)을 진 검이지. 마령천참검의 천명은 열 번째 검을 찾았을 때야 비로소 열릴 것이다. 마령천참공의 진정한 모습은 천명의 길이 열릴 때에야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마령의 모습을 벗고 진정한 천령의 모습으로. 찾거라, 열 번째 검 천령개벽(天靈開闢)을.”
그 말이 끝이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인의 모습도 사라졌다. 대신 이니안의 머릿속에 무수한 무공의 초식과 구결들이 흘러들어 왔다. 그와 함께 무공을 펼치는 동작들도 생생히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니안의 내면세계의 변화와 함께 외부도 변화를 시작했다. 머리끝 정수리에서 솟아오른 오색찬란한 기운이 이니안의 몸을 서서히 감쌌다. 바닥에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이니안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이니안의 몸을 감싼 기운은 천천히 이니안의 배꼽 아래로 스며들어 갔다.
그러한 과정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이니안의 몸을 감싼 기운이 완전히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갔을 때, 그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니안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그 순간. 이니안은 두 눈을 떴다.
눈을 뜬 이니안은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한 멍한 얼굴. 이니안은 아직 자신이 겪은 일을 확실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였지? 그 경험은?’
정신을 차릴수록 찾아오는 혼란. 이니안은 천천히 혼란을 수습했다. 분명히 일어난 일이고 겪은 현실이다. 받아들여야 했다.
이니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양손을 쥐었다 펴보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기도 했다.
“변했어, 확실히.”
이니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해졌어.”
[그게 무슨 말인가, 이니안?]
그때 옆에서 칼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은 이니안의 몸에서 일어난 신기한 현상에 지금까지 이니안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야. 난 약해졌어.”
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번 이니안이 오랜 시간 동안 명상에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는 분명 강해졌었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깨어났을 때 반대로 약해졌다고 한다. 분명 이번에는 확연히 강해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해진 것 같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지난번보다 오랜 시간 명상에 잠겼었고 또 지난번에는 없었던 신비한 현상까지 일어났음에도 약해졌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훗.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마. 약해져야 해서 약해졌으니까.”
칼의 모습에 이니안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