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71화 (7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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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그렇다면 유희라는 것이…….”

[허허. 이제야 이해했군. 그렇네. 내가 자네의 남은 인생을 지켜보는 것. 어떤가? 물론 내가 자네의 삶에 아주 약간 간섭할 수도 있네만.]

칼의 말에 이니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머어마한 힘을 얻는 대신 이니안은 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버려야 했다. 자신의 몸에 다른 영혼이 깃든다는 것. 그것은 결국 자신을 항시 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이다.

인간은 분명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 서로 만나려 하고 모이려 한다. 반면 또한 인간은 고독을 추구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도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무리와 고독, 그 둘의 조화를 통해 인간은 삶을 영위해 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항상 저와 함께하는 것인가요?”

[자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겠네만… 나는 드래곤일세. 인간과는 달라. 그저 지켜볼 뿐이지. 같은 인간이 지켜본다면 분명 무척이나 기분이 나쁠 테지만 전혀 다른 생물인 데다 인간보다 한 차원 위의 종족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크게 거리낄 것도 없을 걸세.]

칼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역시나 만 년을 산 드래곤다웠다.

[게다가 난 자네에게 내 경험을 살려 충고를 해줄 수도 있네. 물론 그 충고를 따르거나 혹은 거부하거나는 전적으로 자네의 몫이지만. 결코 자네에게 나쁜 일은 아니야.]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칼에게 설득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칼이 보여준 그 어마어마한 힘의 유혹은 엄청났다.

“그런데…….”

[뭔가?]

“흑마법사들은 왜 눈물에 담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지 못하는 거지요?”

[눈물에 담긴 힘은 눈물과 영혼을 이어주는 끈일 뿐이지. 다만 그 끈을 뽑으면 영혼도 그 모든 힘을 잃고 끈에 딸려와. 하지만 눈물을 고스란히 흡수하면 영혼을 자신의 몸에 한 겹의 옷처럼 입는 것이 되네. 즉, 영혼이 가진 힘을 모두 가지는 것이지. 본디 영혼은 살아 있는 세계에 일정한도 이상의 물리력을 가하지 못하네. 그렇기에 내가 가진 엄청난 힘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

그제야 이니안은 칼이 돌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올린 것을 떠올렸다. 그 정도의 물리력은 영혼이 힘을 가지고만 있다면 발현이 가능한 듯했다.

[하지만 자네가 눈물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 내가 자네라는 물질계의 매개를 통해 나의 영혼이 가진 모든 힘을 고스란히 발휘할 수 있지.]

“잠깐만요.”

이니안은 곧 칼의 설명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나를 통해서 칼의 힘을 칼이 사용한다고요?”

[그렇네.]

“그렇다면 그 힘을 내가 가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자네의 동의가 없으면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네.]

“저는요?”

[나의 동의 없이 나의 힘을 1할까지는 끌어 사용할 수 있지.]

상당히 제약이 많은 힘이었다. 결국 자신의 육체에 두 개의 영혼이 서로를 도와가면서 공생하는 것이다.

이니안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엄청난 힘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그 힘을 무조건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다시금 고민이 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결정을 내렸다. 자신에게는 분명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힘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제약이 있는 힘이지만 이니안은 그 제약을 감수할 수 있는 정도라 평가했다.

“알겠어요. 눈물을 흡수하겠어요.”

이니안의 결심에 찬 대답에 칼은 빙그레 웃었다.

[잘 결정했네. 그렇다면 자네는 앞으로 더욱 강해져야 할 것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의 자네는 눈물을 흡수할 수 없네. 나의 영혼을 몸에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 약해.]

칼의 말을 이니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아직은 칼이 주려는 힘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 감당하지 못할 힘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일단 내가 강해지는 것이 먼저겠네요.”

[그렇지.]

이렇게 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이니안은 여전히 드래곤의 눈물 근처에서 열심히 수련에 임했고, 칼은 인간의 모습으로 한쪽에서 그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 이니안이 칼그레이언을 만나기 3주 전.

미오나인 제국의 수고 미오나인에 위치한 칸세르 공작가의 저택 현관 앞에 호화로운 마차가 서 있었다. 그 앞뒤로는 햇빛에 반짝이는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한 기사 열두 명이 칼날 같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차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 뒤편으로 군기가 잘 든 병사들이 창을 곧추세우고 열과 오를 맞춰 엄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 뒤로 시종들로 보이는 이들이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 외 짐마차로 보이는 마차가 세 대는 더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모든 준비를 갖춰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직 아침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아직 태양은 동쪽 하늘 중간쯤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저택의 현관문이 천천히 부드럽게 열렸다. 현관문이 열리자 칸세르 공작과 공작 부인, 그리고 그들의 딸인 포르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딸의 손을 꼬옥 잡은 칸세르 공작 부인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딸의 모습에 그녀는 포르시아가 돌아온 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남편의 말을 믿을 뿐.

마음이 심란한 것 같아서 잠시 여행을 보냈다는 말을 믿었는데 돌아온 모습을 보니 기억을 잃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소중하게 보듬고 키워온 딸이다.

그런 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니… 공작 부인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반면 포르시아는 무덤덤한 얼굴이다. 아니, 그녀도 괴로웠다. 자신을 이렇게 사랑해 주는 어머니가 존재하는 데 자신은 그런 어머니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주변에서 자신을 아는데 자신은 주변을 알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 고통이 포르시아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만들었다. 이니안이 자신의 맹세를 외면하기 위해 차가운 얼굴로 변한 것처럼 지금 포르시아는 자신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포르시아, 잘 다녀오너라. 여기 클레비클 경이 잘 보살펴 줄 것이다.”

칸세르 공작은 따뜻한 눈으로 자신의 딸 포르시아를 지그시 내려보더니 곧 자신의 품에 꼭 껴안았다. 이어서 공작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포르시아를 꼭 껴안았다.

“오래지 않아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게다. 여기 클레비클 경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뛰어난 마법사란다. 영지에 그의 연구실이 있으니 영지에 휴양을 하면서 클레비클 경의 치료를 잘 받도록 하거라.”

칸세르 공작의 말에 뒤에 서 있던 회색 머리칼의 노인이 살짝 앞으로 걸어 나오며 포르시아에게 허리를 숙였다.

얼굴의 주름은 그가 상당한 나이의 노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신기하게도 수염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법사였다.

“본 클레비클이라고 합니다, 공녀님. 앞으로 영지까지의 여정,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클레비클 경.”

포르시아는 클레비클에게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자, 그럼 이만 출발하도록 해라. 영지까지는 먼 길이니 몸조심하고.”

칸세르 공작의 말에 포르시아는 마차에 올랐다. 그녀가 마차에 오르자 그녀의 수발을 들 시녀와 클레비클, 그리고 그녀의 호위 임무를 맡은 기사 한 명이 같이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며 근접 경호를 할 것을 생각해서 그 기사는 마차 주변의 기사들과는 달리 가죽 갑옷의 경장을 하고 있었다.

일행이 모두 마차에 오르고 문이 닫혔다. 하나 마차의 유리창을 통해 안이 들여다보였다. 공작 부인은 딸의 모습을 보며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손수건은 마를 새도 없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선두에 선 기사가 공작에게 다가와 예를 취했다. 공작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곧 선두로 돌아가 크게 외쳤다.

“출발!”

그의 외침과 함께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구르기 시작하는 마차 바퀴.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마차에 달린 칸세르 공작가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이 펄럭였다.

기사들이 조금 속도를 올리자 마부의 채찍질에 마차도 그에 보조를 맞추었고 뒤이어 병사들과 하인들의 행렬도 움직였다.

제국의 공작가의 딸이 움직이는 행렬치고는 무척이나 간소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포르시아의 마차는 어느새 저택의 정문에 도달해 병사를의 예를 받으며 저택을 벗어나고 있었다.

“포르시아…….”

공작 부인은 마차의 흐릿한 잔영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저택의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인, 진정하시오. 포르시아는 꼭 기억을 되찾을 것이오. 클레비클 경은 시메티딘 경 못지않은 마법사라는 걸 당신도 알지 않소. 자, 믿고 기다립시다. 아직은 날이 차니 그만 들어가요.”

칸세르 공작은 부인을 위로하며 저택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공작 부인은 공작의 인도에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저택을 빠져나간 포르시아의 마차는 쉬지 않고 수도의 성문으로 향해 달렸다. 감히 칸세르 공작가의 행렬을 방해할 것은 없었기에 빠른 속도로 수도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마차는 얼마의 시간을 달려 미오나인의 북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문에서 마차는 별다른 검문 없이 수도를 벗어났다.

마차에 달려 펄럭이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사자의 문장이 수놓인 깃발. 칸세르 공작가임을 알리는 그 깃발에 성문의 병사 중 그 누구도 마차를 제지하지 않았다.

드디어 미오나인을 벗어난 마차는 평원을 가로지르며 속력을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고생하는 것은 뒤에서 따라오는 병사들과 하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속보로 처지지 않고 마차의 뒤를 잘 따랐다.

‘확실히 이상하군.’

이들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은밀한 눈의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누구도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로 곁에 그들을 지켜보는 존재가 있음에도.

‘으음… 로즈 양이 칸세르 공작의 딸인 것은 확실한 것 같고…….’

짐마차의 천장 위에 누워 따스한 햇살에 일광욕을 즐기는 케라우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이들을 지켜보는 은밀한 눈의 주인은 바로 케라우였다. 이니안의 부탁으로 로즈, 아니, 포르시아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생각보다 편하군.”

케라우의 중얼거림을 누구도 듣지 못했다. 케라우는 같이 있으되 완벽히 다른 곳에 있었다. 훤히 드러난 마차의 천장에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햇볕을 쬐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은신술. 뱀파이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케라우는 지난 며칠 간 자신이 지켜본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알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어떤 음모가 피어오르고 있는지를 케라우로서는 알아낼 수는 없었다.

“쩝. 하지만 흑마법사라니… 귀찮게 됐군. 저 녀석이 로즈의 근처에 있는 이상 나는 이 이상은 로즈에게 다가갈 수 없는데…….”

로즈가 포르시아라는 본명을 찾았음에도 케라우는 여전히 로즈라고 불렀다. 그에게는 그것이 익숙했다.

현재 포르시아와 함께 있는 클레비클이라는 흑마법사 때문에 케라우는 더 이상 포르시아가 탄 마차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상 접근한다면 그가 알아차릴 것이기에.

자신이 흑마법사의 존재에 민감하듯 흑마법사들도 어둠의 힘을 사용하는 족속들에 관해서는 민감했다. 그 어떠한 사람도 클레비클이 흑마법사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상태다. 현재 그는 일반적인 마법사의 복장이었기에.

“흐음… 드래곤의 눈물로 인해 모든 기억을 잃은 여자와 그와 함께 가는 흑마법사라… 분명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기는 한데… 흑마법사를 붙여준 사람이 그 부친이니… 이거야 원 머리가 아파서…….”

케라우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알아낸 사실들의 퍼즐 조각을 머릿속에서 맞춰보려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확실히 이렇게 머리를 쓰는 건 나한테는 맞지 않아. 후… 그냥 있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그나저나 이니안 녀석도 나와 비슷한 부류로 보였는데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곧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을 지운 케라우는 다시 기분 좋은 햇볕에 몸을 맡겼다.

어차피 자신이 할 일은 로즈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 자신이 괜히 음모를 파헤치겠다고 머리를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부탁받은 일만 해주고 그 대가를 받으면 된다. 케라우는 그렇게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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