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70화 (7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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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세상에 존재하는 마나는 사실 두 가지의 성질을 띠고 있지.]

그것은 이니안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이름 붙인 마나. 그중 이니안은 일반인들이 그 존재도 모르는 마이너스 마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반대의 성질을 지닌 마나가 신기하게 융합해 조화하면서 세상에 존재해. 그중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마나와 정반대의 성질을 띤 마나. 그것이 영혼을 구성하는 힘 중 하나이지. 그리고 흑마법사들은 그 마나를 다룰 줄 알아.]

이니안 자신이 처음 영혼을 보게 되었을 때 케라우에게 들은 내용과 비슷한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눈물에 담긴 마나가 가진 성질을 읽었겠지, 자신들의 마법에 사용할 수 있는 마나라는 것을. 게다가 그건 단순한 마나가 아니야. 우리의 영혼이지. 아마도 그들은 그 영혼을 잘라서 피술자의 영혼에 덧씌웠을 거야. 전혀 새로운 영혼을 덧씌웠으니 본래의 영혼은 봉인이 되는 거지. 게다가 덧씌운 영혼은 이미 그 과정에서 죽어버리고 피술자의 생명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영혼이 되어버리는 거지.]

과연 지상 최고의 마법 종족이라는 드래곤이었다. 단지 기억을 조작하는데 쓰인다는 말만을 듣고 칼은 자신의 동족의 영혼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차근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로스가 그 아이에게서 눈물의 기운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일 거야. 쯧쯧. 그 아이도 참 불쌍하구나.]

칼은 진정으로 안타까운 듯 말했다. 로즈의 이야기에 이니안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역시 인간들은 욕망이라는 핵을 가진 혼돈의 존재야. 그 욕망이 어디로 튀느냐에 따라 어떤 존재로 변모할지 모르니.]

칼은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이니안은 그런 칼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런. 내가 괜히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나 보이. 이미 다 지난 일인데… 나와 같은 동족이 그렇게 소멸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나 보네. 살아서는 이런 감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영혼이 되고 나니 살아생전과는 조금 달라지는군.]

칼은 이니안을 보며 잔잔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칼.”

이니안은 자신은 괜찮다는 듯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맙네.]

칼은 이니안을 마주 보며 웃었다.

칼은 오천 년 만에 만난 눈앞의 이 인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유희를 도와줄지도 몰랐다. 단 한 번의 유희를 더하기 위해 세상에 남았다.

눈물을 사용해도 겨우 한 번의 유희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준비를 철저히 했다.

케이로스를 두어 이곳으로 들어오는 이를 거르게 했다. 그 기준은 인간 세상에서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정도의 강함이었다.

하나 눈물로 인해 예외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케이로스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창조주와 같은 냄새를 가진 이에 반응했을 뿐이다.

아니, 그 덕에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보는 이를 만났다.

지난 오천 년 간 이곳에 들어온 이는 이니안 혼자가 아니었다. 몇몇 인간이 들어왔으나 곧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실망하고 돌아갔다.

개중에 눈물을 가져가려 시도한 자도 있었지만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칼 자신이 직접 절대 뽑지 못하게 안배해 둔 것이다.

나름대로 강하다고는 하나 인간의 힘으로 드래곤의 안배를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들어온 이니안이라는 존재는 신기했다. 자신의 기준을 채우지 못했는데 케이로스가 들여보냈다. 분명 연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재미있었다.

이 인간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강해졌다. 자신이 본 적도 없는 검법을 펼치며 나날이 강해져 갔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자신이 기준으로 세운 조건도 충족시켰다. 놀라운 발전이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눈물을 탐하지 않았다. 그게 더욱 마음에 들었다. 거의 모든 조건에 들어맞았다. 자신을 알아보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나도 이제 오천 년을 기다려 온 마지막 유희를 시작해 볼까?’

오천 년을 기다려 온 유희라 하지만 별 것 없었다. 이번 유희는 자신이 주재자가 아니다. 그저 철저한 방관자일 뿐이다.

한 인간의 생을 살게 되는 방관의 유희. 그것은 영혼이 되어야만 가능한 유희였다. 그랬기에 유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드래곤 칼그레이언은 눈물을 남긴 것이다.

영혼이 되어서 하려는 유희였기에 그 대상을 정하는데도 엄격했다. 그리고 이제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니안.]

결심을 마친 칼이 여전히 변함없는 목소리로 이니안을 불렀다.

“예.”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미루어 자네는 힘이 필요하겠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머물며 수련 중입니다.”

이니안의 대답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자네는 상당히 강한 적을 상대해야 할 것 같아. 이곳에서 자네 개인의 힘을 한계까지 단련해도 힘들 정도로. 게다가 그 정도로 강해지려면 시간의 제약 역시 존재하겠지. 인간의 생은 짧으니 말이야.]

칼의 분석은 정확했다.

이니안은 대체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일단 제국의 칸세르 공작가에 의심이 가기는 했다.

문제는 그 공작가 하나의 힘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이니안 개인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이니안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어두운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이니안, 나의 힘을 가지지 않겠는가?]

갑작스러운 칼의 물음에 이니안의 얼굴이 들렸다.

“그것이 무슨 말이지요?”

[말 그대로일세. 내 힘을 가져 보지 않겠는가?]

“그것이 가능합니까?”

칼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에 무한히 가까운 일이지.]

그 말에 이니안은 피식 웃었다. 실망한 마음이 웃음으로 표출된 것이다.

[나는 불가능하다 하지 않았네. 불가능에 무한히 가깝다 했을 뿐.]

“같은 말 아닌가요?”

이니안은 이해할 수 없는 듯 물었다.

[절대로 다른 말이네. 불가능하다와 불가능에 무한히 가깝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야. 자네 수학을 아는가?]

칼의 물음에 이니안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수학이라면 왕립학교 시절부터 질색하던 학문이다.

[허허, 자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얼굴이 알려주는군 그래.]

칼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내 그렇다면 쉽게 설명해 주지. 0이 큰가? 1이 큰가?]

“당연히 1이지요.”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0이 큰가? 1/2이 큰가?]

“1/2이지요.”

이번에도 이니안은 쉽게 대단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1/2을 계속 잘라가면 어떻겠는가? 1/4, 1/8, 1/16… 이런 식으로 말일세.]

“점점 더 작은 수가 되겠지요.”

이니안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지. 그래, 자네 수학을 싫어하는 것치고는 이해력은 빠르구만.]

칼의 칭찬에 이니안은 머쓱하게 웃었다. 수학에 대한 것으로 칭찬을 듣기는 이니안의 기억에는 태어난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자네가 말한 것처럼 숫자를 계속 잘라가면 점점 작아지네. 점점 0에 가까운 수로 변하는 거지. 그렇다면 그 수를 계속해서 자르면 0이 되겠는가?]

이번에는 이니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수학 지식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이니안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칼은 웃음을 띠었다.

[그렇다면 다르게 이야기해 보지. 자네는 검을 익힌 듯하니 검으로 설명하는 것이 쉽겠군. 자, 여기 하나의 돌멩이가 있네.]

칼은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주먹만 한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니안은 현재 칼의 설명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기에 영혼인 그가 물리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간과했다.

본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영혼은 물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말이다.

[이니안, 자네가 검으로 이 돌멩이를 계속해서 잘라서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겠는가?]

이니안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돌멩이를 아무리 잘라도 돌멩이는 남는다. 설령 그것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하더라도 존재하는 그 자체를 지울 수는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헐헐. 그렇지. 아까 내가 말한 것도 같다네. 수를 0에 무한히 가깝게 자를 수는 있겠지만 0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아!”

칼의 설명에 이니안은 찬탄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크겠는가? 완전한 무인 0과 비록 0에 무한히 가깝다 하더라도 아주 미세하나만 존재가 남아 있는 것.]

“당연히 0에 무한히 가까운 것이지요.”

이니안은 이제 칼이 설명하는 개념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 자신있게 대답했다. 칼은 이니안의 대답에 똑똑한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흡족한 얼굴을 하고는 웃었다.

[허허허. 그렇지. 이게 바로 수학에서 ‘극한’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본 개념이지.]

어려운 말이 나오자 이니안의 얼굴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쯧쯧. 자네 정말로 수학을 싫어하는군.]

칼의 말에 이니안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자, 그럼 0의 자리에 0 대신 불가능이라는 말을 집어넣어 보게. 어떤가?]

이니안은 그제야 칼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연 그의 말대로 불가능과 불가능에 무한히 가깝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허허. 어떤가? 언어가 가진 의미의 차이를 이렇게 수학으로 풀어내 보니? 뭐, 수학을 싫어하는 자네는 재미있지 않으려나.]

칼의 추측대로 분명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불가능에 무한히 가깝다는 말은 결국 불가능하지 않다. 즉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비록 그 가능을 이루기는 무척이나 힘들겠지만.

칼은 손쉽게 그런 이니안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어떤가? 이제 할 마음이 생겼는가?]

칼의 물음에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의 말대로 이니안에게는 힘이 절실했다. 강하면 강할수록 좋았다. 자신이 칼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어마어마한 존재감. 그 힘을 자신이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짜릿하게 저려왔다.

[사실 보통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네. 하나 자네는 그렇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자네를 유심히 살폈어, 자네가 날 알아본 그 순간부터. 자네는 영혼과 같은 마나를 품고 있더군.]

칼의 말에 이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살아 있는 인간은 영혼의 마나를 품을 수 없네, 내가 아는 한은. 유일한 예외가 흑마법사들이지. 하나 자네는 검사야. 그런데 자네는 품고 있어. 그것도 흑마법사들이 가진 탁하고 음울하며 사악한 탁기를 함께 가진 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수한 영혼의 마나를 말이야.]

칼의 설명에 이니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라우는 자신의 마이너스 마나를 어둠의 힘이라 칭했다. 그런데 칼은 그것을 영혼의 마나라 한다. 분명 같은 것을 칭하는데 서로 다른 말이다.

[그 말은 자네가 영혼의 마나를 움직일 수 있는 어떠한 특수한 방법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 특수한 방법으로 이 눈물을 자네의 몸에 흡수하면 되네.]

“그러면 칼이 소멸되지 않습니까?”

칼이 말한 방법은 흑마법사들이 인간의 기억을 조작할 때 눈물을 사용하는 방법과 유사했다. 하지만 칼은 이니안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영혼을 소거한 것이지. 눈물에 일단 깃들면 외부의 힘에 저항할 방도가 없으니까.]

칼의 말은 곧 이니안이 눈물을 흡수하려 하면 자신은 소멸한다는 말과 뜻이 같았기에 이니안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네는 영혼의 마나를 가지고 있어. 내가 나의 힘을 가지고 자네의 힘에 순응하면 나는 내가 깃들 그릇을 나의 눈물에서 자네로 바꾸게 되는 거지.]

그제야 이니안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결국 칼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주는 대신 이니안의 몸에 칼이 머물게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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