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68화 (6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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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이 동굴에 들어오기 전에 비해 검법의 위력이 배는 증가했어. 아니, 검법의 진정한 위력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겠지.”

이니안은 만족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침식을 잊은 지난 한 달간 이니안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다. 아직 자신의 경지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었다. 실력은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단지 이니안의 마나가 이니안의 경지를 받쳐 주지 못할 뿐인 것이다.

“카르세온, 이제는 완전히 꺾어주마.”

카르세온과의 대결을 떠올린 이니안의 입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정말이지 고마운 대결이었다. 그 대결 결과 이니안의 검은 완전히 바뀌었다.

단지 형만을 익히고 펼친 검에서 이제는 검법에 담긴 오의를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나의 수련을 소홀히 할 수도 없지.”

지난 한 달간 검법에만 푸욱 빠져 있었다. 특별히 마나를 운용해 펼친 적이 없었기에 마나 수련도 뒷전이었다. 벗길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검법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 허우적거린 한 달이었다.

하지만 검법을 펼칠 수 있는 기본 힘이 되는 마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이니안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싸움이 많았다.

소수만을 상대하는 싸움이라면 몰라도 다수를 상대하려면 마나의 양이 중요했다. 자신의 검을 끝까지 움직이게 해줄 에너지, 그것이 마나다.

이니안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마령천참공을 운용했다. 마나 스피어에서 시작한 따뜻한 기운이 천천히 이니안이 지정해 준 길을 따라 돌았다.

마나는 아무런 무리 없이 부드럽게 이니안의 몸을 따뜻하게 덥히며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한참을 움직이던 마나가 멈췄다. 막다른 길이었다.

이니안은 지난 날 막힌 혈을 뚫던 작업을 계속했다. 마나가 멈춘 곳이 혈이 막힌 곳이었다.

‘이번에는 소주천을 완성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예전에는 한정된 시간에 여관에서 혈을 뚫었기에 일정 수준까지 진행하고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니안을 방해할 어떠한 요소도 없었다.

이니안은 마령천참공에 몰입했다. 마령천참공의 구결에 따라 마이너스 마나를 끌어 모아 서두르지 않고 신중히 천천히 움직였다.

혈을 꽉 막고 있는 장벽을 부드럽게 감싸며 아울렀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그 장벽을 조금씩 허물었다. 한 번에 뚫겠다고 무리하지 않았다.

반대로 아주 느릿느릿 천천히 진행했다. 혈을 막고 있는 장벽들은 시나브로 하나둘씩 무너져 갔다.

얼마나 운공에 몰입했을까? 어느새 막힌 혈들은 하나둘 뚫려 소주천 최대의 고비라는 백회혈(百會穴:정수리의 숫구멍 자리에 위치한 혈)에 이르러 있었다. 이니안은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혈의 장벽을 무너뜨리던 마나는 어느새 기세를 타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감싸 안아 조금씩 갉아내 장벽을 뚫어나갔지만 지금은 단번에 하나의 혈을 뚫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력한 힘으로 단번에 부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부드럽게 감싼 후 갉아서 허물어뜨리는 작업의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진 것이다.

그래서 마나가 닿는 순간 장벽은 녹아버리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기세를 탄 마나가 이제는 백회의 장벽에 부딪쳤다.

쿵!

이니안의 머리가 울렸다. 무척이나 부드럽게 감싸 안았지만 그런 마나에도 백회혈이 반응했다. 무척이나 민감한 령이었다. 이 혈을 뚫다가 자칫 잘못하면 백치가 되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니안은 현재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니안은 어느새 자기 자신을 관조하며 무아의 경지에서 마나를 운용하고 있었다. 마령천참공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백회를 뚫기 위해 마나가 다시 몇 차례 장벽에 부딪쳤다.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 시도하다 백회혈의 거센 저항에 번번이 튕겨 나오던 마나가 백회혈의 장벽에 들어붙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그러더니 어느새 튀어나오지 않았다.

백회혈의 장벽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따뜻한 봄볕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백회혈의 장벽은 천천히 사라졌다.

이윽고 백회혈이 뚫렸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소주천에서 가장 뚫기 힘든 혈이 뚫렸지만 그뿐이었다. 어떠한 커다란 충격이나 변화는 없었다. 그저 물길에 자연스레 물이 흘러들 듯이 마나가 흐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 뒤로는 손쉬웠다. 소주천을 이루기 위한 최후의 관문이나 다름없는 백회를 뚫고 나자 마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머지 혈들을 뚫었다.

아니, 애초에 장벽이 있었냐는 듯 너무나 부드럽게 마나가 혈을 타고 흘렀다. 혈을 막고 있던 장벽들은 마나에 닿자마자 스러졌다.

결국 이니안은 소주천을 완성했다. 이니안의 마나는 대운하를 흐르는 물줄기처럼 거침없이 이니안의 혈을 휘감고 돌았다. 우렁차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이니안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그 느낌에 이니안은 내면의 관조를 끝내고 자기 자신을 찾았다.

운공을 끝낸 이니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니안의 눈에서 쏟아지는 정광이 어스름한 동굴을 비췄다. 한순간이나마 이니안의 눈빛이 닿은 곳은 밝은 빛이 쏟아졌다. 하나 그 빛은 이내 사라졌다. 소주천을 막 이룩했을 때 단 한 번 뻗어 나온 안광이었다.

“으음…….”

이니안은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몸의 상태가 달랐다.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소주천을 이루자 몸에 도는 활력이 달랐다. 무엇이든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니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잠시 자신의 양 손바닥을 바라보는 이니안. 그의 입에는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소주천을 이루어냈다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의 미소다.

“후우. 다시 소드 마스터인가?”

이니안은 알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에 스스로 버린 힘을 이제 되찾은 것이다.

하나 그뿐이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에 감격에 떨기에는 이미 이니안의 검의 경지가 너무 깊었다. 게다가 이미 과거에 한 번 이르렀던 경지. 이니안은 그저 무덤덤했다.

“훗. 이런 힘이 무어라고.”

주먹을 쥐락펴락하면서 이니안은 허무한 듯 중얼거렸다. 누구나 바라는 소드 마스터의 힘. 이니안은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듯 중얼거렸다.

지금 이니안이 느끼는 흡족함은 소주천을 완성했다는 것에 대한 것이지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되찾았다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군.”

며칠이나 운공에 빠져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어서 음식물을 넣어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위장의 느낌으로 보아 상당한 시일이 흐른 듯했다.

자신의 내면의 관조에 들어간 동안은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 이니안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량 창고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식량 창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닭고기를 집어 든 이니안은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 창고에는 날고기도 많았지만 이미 요리가 되어 보존 마법이 걸린 요리도 상당했다. 지금 이니안이 집어 든 닭고기도 그것들 중 하나였다.

금세 닭 한 마리를 먹어치운 이니안은 음료수대에서 물을 한 병 집어 들어 마시면서 식량 창고를 벗어났다. 이제 소주천도 이루었으니 자신의 성취를 시험해야 할 때였다.

단지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그때를 조금 늦춘 것뿐이다.

동굴로 들어서는 이니안의 걸음은 기대에 차 있었다.

이 넒은 동굴에서 이니안이 주로 머무는 곳은 드래곤의 눈물이 박힌 동굴 중앙 근처였다. 자연 다시 동굴에 들어선 이니안은 그곳으로 향했다.

하나 이니안은 곧 걸음을 멈추었다.

이니안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이다.

“응?”

물을 마시기 위해 입에 대고 있던 물통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자유로운 나머지 한 손으로 눈을 비볐다.

하나 그대로였다.

절대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존재의 모습이 이니안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오연히 이니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주천을 이루었을 때는 이니안이 그것을 등진 상태였다. 그 자리에서 식량 창고로 가는 길 역시 그것에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식량 창고에서 나오는 길은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니안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잠시 자신이 헛것을 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였다.

툭.

이니안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떨어뜨렸다. 힘없이 떨어진 물병의 입구에서 새어 나온 물이 동굴 바닥을 천천히 적시고 있다.

“어… 어떻게…….”

이니안은 눈앞의 존재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제야 이니안은 눈앞의 존재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오연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존재와 두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 존재의 커다란 눈이 희번득 빛났다.

20장. 나의 힘을 가지지 않겠는가

거대한 눈동자가 데구룩 구른다. 노른자위 한가운데 세로로 갈라진 검은 동공. 그 동공은 정확히 이니안을 향하고 있었다. 이니안이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도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의혹이 어렸다. 그와 동시에 호기심도 떠올랐다.

이니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은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증거가 이곳에 있었다. 하나 그것은 죽음의 증거. 절대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이곳에 있었다.

거대한 동굴의 절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몸집. 천장의 마법등에서 어스레 비치는 빛을 완전히 가리는 칠흑의 동체. 차곡차곡 접혀 있는 거대한 날개. 사람 크기의 거대한 이빨.

어딜 보나 완벽했다.

완벽한 드래곤이다. 그것도 흉포하기로 따지면 붉은빛의 레드 드래곤과 일이위를 다툰다는 검은 피부의 블랙 드래곤.

소문은 진실이었다. 소주천을 완성한 이니안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위용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문을 지키는 케이로스의 힘은 눈앞의 존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못했다.

이니안은 멍하니 전설과 신화에만 나오는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그때 드래곤의 머리가 움직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고 고민하는 듯 머리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그대는 내가 보이는가?]

그때 이니안의 머리를 파고드는 드래곤의 목소리. 이니안은 살짝 몸을 떨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무증유의 압력에 몸이 반응한 것이다.

[보이는가 보군.]

이니안의 반응을 드래곤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흐음… 케이로스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 들어온 존재도 오랜만이지만 나를 보게 될 줄이야……. 내 생을 끝낸 후의 유희도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인가?]

이니안이 알 수 없는 말을 드래곤은 혼잣말하듯 이니안의 뇌리에 흘려 넣었다. 이니안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으음… 분명 나를 보고 있고 나의 말을 듣는 것 같은데… 이보게 상대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네.]

눈앞의 블랙 드래곤은 섭섭한 기운을 담아 이니안에게 말했다.

현재 이니안의 정신 상태는 공황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냈지만 그동안 드래곤의 낌새는 없었다. 그런데 소주천을 완성하고 식량 창고에 들어갔다 나오니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드래곤이라니.

게다가 그 드래곤이 자신에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친근하게 말까지 걸고 있었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니안은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조절하며 입을 열었다. 드래곤이 뿜어내는 존재감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것인지 이니안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신화나 전설 고유의 과장이라 생각했건만 오히려 신화와 전설이 진실에 미치지 못했다.

[나 말인가? 나는 이 레어의 주인이라네.]

이니안의 대답이 기뻤는지 드래곤은 살짝 웃음을 띠우며 대답했다.

“어떻게…….”

드래곤의 대답에 이니안은 믿을 수 없다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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