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67화 (6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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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이니안은 가부좌를 틀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사흘을 보냈다. 가만히 앉은 그의 몸에 뽀얀 먼지가 쌓인 것이 보통 사람의 눈으로도 식별이 가능할 때쯤 가벼이 감겨 있던 이니안의 두 눈이 뜨였다.

눈을 뜬 이니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섰다. 그리고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자세를 취했다. 손에 검이 들려 있지 않다 뿐이지 그의 자세는 마령천참검의 준비 자세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검은 카르세온과의 대결에서 부러져 버렸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새로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니안은 마치 검을 쥐고 있는 듯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검을 잡고 있는 흉내만 내는 손에 실제 검이 쥐여진 듯했다. 이니안의 손 위로 타고 오르는 기운은 짙은 예기(銳氣)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니안의 두 다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에 따라 어깨도 들썩이기 시작했고 그 들썩임은 팔로 이어져 마지막으로는 손의 흔들림으로 확대되었다.

그렇게 아주 작게 시작한 이니안의 동작은 샘에 떨어진 작은 물방울이 큰 파문을 만들며 퍼져 나가듯 점점 커져 갔다.

그럼에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부드러웠으며 날카로웠다. 검을 뿌리는 동작이 진행됨에 따라 검초의 깊이가 깊어짐에 따라 이니안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그리고는 춤을 추듯 온몸을 너울거렸다.

가히 무아의 경지라 할 수 있는 모습이 지금이 이니안을 통해 펼쳐졌다.

주변을 잊고, 검초를 잊고, 검을 잊고 급기야는 자신마저 잊는 무아의 경지.

이것은 그만큼 이니안이 깊게 자신의 검에 집중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검에만 집중하고 그것에만 파고들었기에 역설적으로 검은 물론 자신마저도 잊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기연이었다. 검을 수련하는 자라면 이러한 경지에 한 번 접어들고 나면 그 성취가 몇 단계는 상승한다. 의도한다고 경험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이니안의 움직임은 어느새 마령천참검의 중반 3초를 지나 후반 3초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마령현신이 펼쳐졌고, 곧이어 마령노후가 주변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마령천참멸을 펼친 후 이니안의 격렬한 움직임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가만히 서서 두 눈을 감고 있는 이니안. 그 모습은 처음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을 때와 같았다. 얼굴에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으며 숨도 고요했다.

이니안은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다는 듯 그에게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처음과 달라진 것이라면 뜨고 있던 눈을 감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시 한 번 이니안의 눈꺼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후우… 이런 것이었나?”

이니안은 한숨과 함께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니안은 새로운 세계를 본 듯했다.

“내가 어리석었어.”

이니안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니안은 사흘간의 고민으로 무언가를 느꼈고 그것을 검으로 펼쳐 보았다. 그뿐이었다.

“대체 내가 소드 마스터라며 기고만장해했던 것은 뭐였지? 단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을 뿐인 것을…….”

이니안은 자신의 예전을 떠올리며 부끄러운 듯 중얼거렸다.

이니안은 지금까지 한 가지 검법에 이토록 몰두했던 적이 없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한 번만 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머리로 이해를 했으면 남은 것은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고 있으면 즐겁고도 기뻤다. 자신이 이해한 대로 검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노라면 무한한 성취감이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검에 오러가 맺혔다. 소드 마스터가 된 것이다. 이니안은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 오러가 자신의 검의 경지를 말해준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은 자만이었다. 이니안 자신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자만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자만은 검을 익히는 그 순간 이미 자리했었는지도 모른다.

검법이란 난해하고 어려운 것이다. 검을 움직이는 간단한 방법들을 모아서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검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검법이다.

간단한 것이 모여 복잡한 것이 되기에 절대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니안은 모든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그것을 한 번만 보면 모두 알 수 있었다. 머리로는 알되 몸이 따라가지 않기에 그 후에는 몸을 수련한 것이다.

그래서 이니안은 검법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이니안과 이슈데인의 결정적인 차이가 거기에 있었다. 이니안 자신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런 이니안이 처음으로 검법의 깊이를 맛보았다. 무공서에 나타난 검의 위력과 자신이 펼친 검의 위력이 달랐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검을 쓴다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단지 강한 위력이 아니야. 얼마나 검의 움직임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는 검로를 찾느냐지. 그것이 진정한 검의 끝을 향하는 길이다. 오러 블레이드니 마나니 하는 것은 그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야. 나는 지금까지 단지 넘치는 마나를 가지고 헛된 칼질을 하고 있었던 걸지도.”

이니안은 양팔을 늘어뜨리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니안은 오늘 새로운 검의 세계를 접했다. 아주 조금 그 끝자락을 접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접점은 이니안에게 검의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금 이니안은 환희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껏 알지 못하던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니안은 검에 미친 아이였다. 가문의 영향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정말 미치도록 검을 좋아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았다. 나는 마령천참검의 심오함을 좀 더 깨달아야 해. 지금까지처럼 대강대강 검법의 형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진정한 검법의 힘을 끌어내야 하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린 이니안은 다시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다시금 명상에 든 것이다. 검법의 구결을 수없이 되뇌며 새로운 경지의 한 자락을 보았다. 그렇다면 다른 자락을 보기 위해 다시 명상을 하면 된다.

이니안은 이제야 진정한 검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명상에 든 이니안을 품은 거대한 동굴의 시간은 이니안이 무얼하든 상관없이 한가로이 그러나 빠르게 흘러갔다.

***

평범하다. 시장 거리를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은 부딪칠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의 중년인이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화려한 외모의 청년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가만히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깊고도 맑았다.

또렷이 빛나는 흑안은 그의 화려한 외모를 신비롭게 변모시켜 주었다.

“그 아이들이 떠난 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었느냐?”

“네, 아버님.”

중년인의 물음에 청년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 좋은 웃음이 맺혀지는 사람들인 듯.

이슈데인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큰 여동생인 로레인이 과연 신랑감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대하는 웃음이다.

“허허, 과연 그 말괄량이가 제 짝을 찾을 수 있을까?”

이슈데인의 아버지. 즉 대륙 최고의 검사인 라이네온 케이 사이몬 공작은 즐거이 기대의 표정을 지었다.

“말괄량이라고 하기에는 로레인의 나이가 좀 많죠.”

“허허, 부모에게 자식은 언제나 어린아이인 법이다. 내 눈에는 너도 여전히 어린아이일 뿐이야.”

믿음직한 큰 아들의 말에 사이몬 공작은 인자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뭐, 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제 아들은 어린아이가 맞으니까요.”

아들이 씨익 웃으며 하는 대답에 사이몬 공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너도 슈마인이 지금 네 나이가 될 때쯤이면 알 수 있을 게다.”

“아버님께서 그렇다시면 그렇겠지요.”

이슈데인은 담담하게 웃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로레인이 이니안을 찾을 수 있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메이린이 함께 움직이니 혹시 모르지요. 메이린은 현명한 아이니까요.”

이슈데인의 대답에 사이몬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쯧쯧. 이니안, 그 녀석은 너무 뛰어난 것이 오히려 화근이었어.”

그렇게 말하는 사이몬 공작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자신이 아는 한 사이몬 공작가 최고의 검의 천재. 그것은 이니안이었다.

“그렇지요. 그 녀석이 저만큼이라도 재능이 떨어졌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허허, 그 말을 이니안이 들었으면 무척이나 화를 냈을 게다. 그 녀석은 아직 너에게 단 일 검도 먹이지 못했지 않느냐?”

현재 자신의 뒤를 이어 어느새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큰 아들이 자랑스러운 듯 사이몬 공작의 얼굴은 금세 걱정이 사라지고 자부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니안 그 녀석이면 순식간에 이를 경지입니다. 다만 아직 눈을 뜨지 못했을 뿐이지요. 겉만 보고 그것을 취하려 하니 껍데기 안에 있는 그 무한함을 맛보지 못하는 겁니다.”

사이몬 공작은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니안은 너무 뛰어났지. 가문의 검법은 모두 한 번만 보면 그 형을 완벽히 이해했으니까.”

“오히려 그게 독이었습니다. 형은 어디까지나 형일 뿐인데 그 녀석은 형이 마치 검법의 모든 것인 양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더 높은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단지 그곳에만 머물러 있었지요.”

“그렇지. 오히려 너는 그렇지 못했기에 검법을 더욱 파고들었고 덕분에 검법의 진정한 오의에 한 걸음씩 다가갔는데 말이다.”

아버지의 말에 이슈데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불과 열다섯에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천재지요. 단지 형만을 반복해 익혔는데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는 소드 마스터라니.”

“진정 검을 위해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것이겠지.”

사이몬 공작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이제 그 천재는 없었다. 스스로 마나 스피어를 파괴해 다시는 가문의 검법을 익힐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니안 정도의 천재라면 대륙의 일반적인 검을 익혀 어느 정도의 경지에 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소드 익스퍼트의 수준을 넘으려면 마나 스피어가 온전해야 했다.

대륙인들은 마나 스피어를 사용할 줄 모르지만 마나 스피어는 스스로 살아 있는 생물처럼 몸 안의 마나를 움직였다.

다만 그 움직임이 비효율적인 길을 따라 돌기에 그들의 검이 체계적인 사이몬 가의 검에 비해 턱없이 약한 것이다.

대륙인들이 부르는 피어스 브레이크. 그것이 마나 스피어가 만들어내는 마나의 움직임의 결정체였다.

단지 마나 스피어가 본능적으로 몸에 마나를 움직이는 것이기에 보통 사람은 그 하나의 경로로 마나를 움직이게 된다. 포장되지 않은 산길과도 같은 울퉁불퉁한 통로로.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마나 스피어가 온전할 때 이야기였다. 이니안은 그나마 울퉁불퉁한 길로 마나를 움직일 수 있는 마나 스피어를 완전히 파괴했다. 검을 익히는 자로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그것도 그 녀석이 택한 길이니까요. 이니안은 너무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약했지요.”

“후우… 안타깝구나, 녀석이 그리도 약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으니. 다 나의 불찰이다. 몸만 무사히 돌아왔으면…….”

사이몬 공작은 빈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걱정에 찬 소리를 중얼거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특히나 막내인 이니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식이다. 그런 아이가 일신의 힘을 잃고 대륙을 떠돌고 있다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사이몬 공작이 평생 후회하는 단 한 가지는 그날 이니안의 결심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

동굴에 들어온 지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이니안은 마령천참검법에 대단한 성취를 올렸다. 그는 타고난 천재였다. 다만 그 재능에 만족해 더 깊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하지만 일단 한 번 그 세계에 발을 들이자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빠르게 성장해 갔다.

“대단하군. 이치를 담은 검법이란 것의 깊이가 이렇게 깊은 줄은 몰랐어. 익히고 익힐수록 그 깊이는 끝없이 더해가니. 예전에 내가 가문에서 익힌 검법들도 모두 이랬던 걸까? 그리고 형은 이런 사실을 알았던 건가? 그래서 나와 그런 차이가 났던 건가?”

이니안은 수련을 하면서 자신과 이슈데인의 결정적인 차이를 하나씩 깨우치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이슈데인과의 차이뿐 아니었다. 사이몬 공작가에서 검을 쥔 이 중에서는 이니안이 검법의 깊이가 가장 얕았다. 그 얕은 깊이로도 가문에서 상대할 수 없는 자는 이슈데인과 사이몬 공작 단 둘이었다.

더 깊은 검법의 경지를 맛본 이도 이니안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기에 이니안은 더 깊은 경지를 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깊이는 누군가가 말을 해준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느껴야 했다. 지금이 이니안이 바로 그것을 느낀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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