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51화 (5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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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렇다면…….”

하론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난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혹시나 했다. 다시는 검에 마나를 실을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의 몸을 망쳤다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 흔적이 말해준다. 그는 이니안 케이 사이몬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많은 피어스 브레이크의 흔적을 설명할 수 없다.”

하이 나이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륙 최고의 검의 가문, 사이몬 공작가.

상대는 그 사이몬 공작가에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자다. 지금은 비록 그렇지 않다 하지만 최고의 경지를 경험해 본 자다. 힘은 사라졌지만 그 경험은 남아 있을 것이다.

강자는 힘을 잃어도 강자다.

그러한 강자가 그들의 목표였다.

“공작 각하께 보고해야 할까요?”

“아니, 이 건은 비밀이다.”

하론의 물음에 카르세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대답에 하이 나이트들의 얼굴에 의구심이 어렸다.

“이번 건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명령이다.”

그의 말에 하이 나이트들이 입을 모아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그들의 대장은 카르세온이었다. 비록 자신들이 칸세르 기사단의 일원이라 하지만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대상은 카르세온이다. 그의 명령이 칸세르 공작의 명령에 우선했다.

‘공작 각하, 당신은 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카르세온은 근래 들어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칸세르 공작가에서 피어오르는 음모의 기운을. 온몸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그 기분 나쁜 느낌에 카르세온은 제대로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다.

그가 비록 칸세르 공작가의 가신이라고는 하나 그 이전에 미오나인 제국의 기사였다.

그는 뼛속까지 기사다.

사실 이번 일도 의문이다. 공작의 저택에 잘 있던 공작의 영애 포르시아 오마 칸세르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증발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다시 본 포르시아 공작 영애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포르시아가 열 살 때부터 보아왔다. 그런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무언가 있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그랬기에 이니안에 대한 일을 보고하지 말라 한 것이다.

그리고 이니안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임무는 포르시아의 신병 확보, 그것이다.

“이번 일, 힘들겠군.”

하지만 카르세온의 얼굴은 그의 말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지금 기대에 차 있었다. 대륙의 신화인 사이몬 가의 검.

곧 그 검과 대결을 펼칠 수 있다.

자신을 평범한 천재로 만들어 버린 이슈데인 케이 사이몬. 그의 동생과 검을 섞을 기회가 곧 찾아온다. 한 명의 기사로서 지금 카르세온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 흥분은 곧 다른 하이 나이트들에게도 전염되었다. 그들 역시 뼛속까지 기사인 인물들. 대장의 흥분에 그들도 몸을 떨었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와 사이몬 가의 인물과의 대결.

이 일이 성사되었던 것은 백 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때는 사이몬 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제국의 치욕.

백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그 치욕을 갚을 때가 찾아온 것이다.

15장. 나는 누구죠?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나가는 두 사람이 있다. 이니안과 케라우다. 나무가 우거진 산속을 바람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이니안은 현재 마령보의 경신법을 전력으로 펼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여놓아야 조금이라도 쉴 수 있었다.

지금 현재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로즈가 준 스크롤 카드로 심각한 외상은 치유했지만 치료 마법이 내상까지 치료해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치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쫓기는 상황이라면 그럴 여유가 없었다. 카르세온이라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는 그런 인물이니까.

그래서 마음이 급했다. 이니안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나를 최대한 끌어내 전력으로 달렸다.

그 때문에 케라우는 죽을 맛이었다. 이니안이 전력으로 달리자 케라우 역시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따라갈 정도였다. 하지만 무어라 할 수도 없었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할라 치면 ‘그러면 오지 마라’라고 말하고도 남을 위인이 이니안이다.

하루를 꼬박 달렸다.

말로 하루를 꼬박 달려가는 거리보다 더 많이 움직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엄두를 못 낼 속도다. 이니안이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쉬어간다.”

이니안은 조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이번에는 식사도 거르고 달린 것이다. 그만큼 그가 긴박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니안이 등에서 내려주자 로즈는 근처의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향했다.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니안의 시선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곳은 위험한 곳이다. 지금까지 다녔던 곳은 몬스터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이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이곳부터는 몬스터의 출몰이 잦았다.

그랬기에 감각을 극대화해 로즈의 주변 기척을 살폈다.

역시 있었다. 좀처럼 인간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인간이 들어오자 몬스터들이 귀신같이 인간의 냄새를 맡은 듯하다. 모두 세 곳에서 몬스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한 방향은 로즈가 있는 쪽이었다.

이니안의 몸이 움직였다 싶은 순간 사라졌다. 이미 로즈가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몸을 감춘 곳을 넘어 이니안은 달렸다.

그렇게 조금 더 달리자 그가 있는 쪽을 향해 나무를 헤치며 다가오고 있는 미노타우루스가 보였다. 미노타우루스도 이니안을 발견한 듯 다가오는 속도를 더욱 빨리 했다.

그의 두 눈은 식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미노타우루스의 두 눈에 맺힌 식욕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생기가 사라졌다. 어느새 이니안의 손에 뽑힌 검이 미노타우루스의 심장을 가르고 있었다.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노타우루스가 쓰러졌다. 이니안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미노타우루스의 뿔을 잘랐다. 이 녀석의 뿔은 트롤의 가죽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부산물이었다.

이니안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이니안이 처음 있던 자리를 향해 다가오던 몬스터의 숫자는 모두 셋. 이제 그중 가장 급한 녀석 하나를 처리했을 뿐이다.

나머지 몬스터 둘은 모두 오우거였다. 역시 바운더리 산맥의 깊숙한 곳이라 그런지 대형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육상의 몬스터 중 가장 강하고 흉폭하다는 오우거가 둘이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물론 이니안은 그들 둘을 손쉽게 처리했다. 마나 스피어를 살린 이상 그는 이제 더 이상 B급 용병 이니안이 아니었다.

오우거를 처리한 이니안은 미련 없이 걸음을 돌렸다. 오우거의 가죽은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 중 거의 최고가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노타우루스의 뿔과는 달리 부피가 컸고 해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그냥 돌아가는 것이다.

이니안이 돌아오자 이미 로즈가 근처 나무 둥치에 앉아서 빵을 꺼내 먹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이니안이 모습을 드러내자 로즈는 빵을 먹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이곳은 몬스터가 많이 나타나는 지역이다.”

“아, 그럼 아까 그 쿵 소리가?”

미노타우루스가 쓰러질 때 났던 소리를 로즈가 들은 모양이다.

“그건 미노타우루스.”

“아아, 그게 미노타우루스였구나? 분명 내가 갔던 곳 앞쪽에서 소리가 났었는데, 오빠가 쓰러뜨린 거예요?”

이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요, 그 멀리 있는 미노타우루스를 알아차리고 가서 쓰러뜨리다니.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해요.”

로즈는 이니안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니안은 몰랐다, 로즈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자신의 입술이 작은 미소를 그리고 있음을.

“아, 잠깐. 그곳, 내가 있던 곳 앞쪽이잖아요? 그럼 내가 있던 곳을 지나쳤을 텐데…….”

로즈의 눈매가 점점 날카롭게 변한다.

“봤죠?”

로즈는 두 눈을 매섭게 치켜뜨고 이니안을 노려보았다.

“뭘?”

이니안은 예의 그 무뚝뚝한 어조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물어요?”

로즈의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 기세만으로도 능히 나무줄기 정도는 자를 수 있을 정도로 자못 사나웠다.

“몰라.”

이니안은 잘라 말했다.

로즈는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러 나무가 우거진 쪽으로 들어갔었다. 자신이 그쪽으로 몸을 감추며 특별히 무슨 말을 남기진 않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니안은 그곳을 지나서 앞으로 나간 것이다.

로즈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화로 인한 것인지 부끄러움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둘 모두가 원인인지 로즈의 얼굴은 사과보다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느새 꽉 쥐어진 로즈의 두 주먹이 미미하게 떨렸다.

“정말 못 본 거죠?”

다시 한 번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물음.

“뭘?”

예의 똑같이 돌아온 대답.

“몰라욧!”

소리를 빽 지르곤 로즈는 옆에 두었던 빵을 다시 집어 들더니 식사에 전념했다. 그 모습에 이니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지금은 쓸데없는 일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니안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곧 마령천참심법을 운용하며 운공에 빠져들었다. 한곳에서는 이미 케라우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운공에 빠져드는 이니안은 결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쓴 얼음 가면에 미세하지만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그리고 그 균열의 원인이 바로 로즈라는 것을.

‘마령현신, 위력이 터무니없었다. 내가 가진 마나의 양이 그 초식을 펼치기에 많이 모자랐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위력이 너무 약했어. 내가 알고 있는 마령현신의 위력이 아니다.’

운공을 하며 이니안은 동굴을 빠져나와 사용했던 마령현신의 초식을 떠올렸다. 마령천참검법의 후반 3초 중 첫 번째 초식인 마령현신. 놀라운 위력으로 그곳에 모여 있던 어새신들을 쓸어버렸지만 그것은 마령현신의 진정한 위력의 3할에 불과했다.

이니안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검초를 펼쳤다고 자부했다. 아직 검법을 제대로 수련하지 못해 그 성취가 미미했지만 그것까지 감안하더라도 위력이 너무 약했다.

마령천참검법의 후반부는 그 정도로 강력한 초식이다.

이니안은 운공을 하는 한편 다시 한 번 마령천참검법의 구결을 되뇌었다. 자신이 무언가 빠뜨린 것은 없는지 차근차근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하지만 완벽했다. 자신이 익힌 마령천참검법과 자신이 외우고 있는 마령천참검법의 구결은 정확히 일치했다.

‘대체 왜 그런 것이지?’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니안이 입은 내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처음 어새신의 피어스 브레이크와의 격돌은 그럭저럭 버텨냈으나 두 번째가 문제였다.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검초로 상대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상대했기에 충격이 그대로 내부를 뒤흔든 것이다. 게다가 옆구리에 허용한 두 개의 단검이 내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중요한 기혈을 단검에 뚫린 채 계속해서 마나를 운용했기 때문이다.

이니안이 운공을 시작하고 네 시간째 접어들 무렵에야 겨우 내상의 3할 정도를 치유했다. 그리고 이니안이 눈을 떴다.

‘안타깝지만 이 정도에서 마쳐야지. 급한 대로 응급처치는 된 셈이니까.’

현재 이니안의 체력은 한계였다. 운공으로 어느 정도의 체력 보충은 가능했다. 운공만 충실히 하면 며칠은 잠을 자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니안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마나 스피어를 되살리자마자 벌어진 급박한 추격전과 무리한 마나의 운용으로 인해 이니안은 현재 안과 밖이 만신창이였다.

‘일단 잠깐은 눈을 붙여야겠지?’

아침에 일어날 걱정은 없었다. 태양 빛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가장 먼저 눈을 떠 호들갑을 떠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지만 그런 것들이 가까이 오면 이니안의 본능이 먼저 감지하고 온몸의 감각을 살린다.

자신의 배낭에서 모포를 꺼낸 이니안은 로브 위에 모포를 덮고 나무 둥치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피를 말리는 도주 중 모처럼의 휴식이었다.

이니안은 몰랐다. 이 휴식으로 인해 그의 도주가 끝나리라는 것을. 그저 지금은 지친 몸을 쉬게 할 필요가 절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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