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48화 (4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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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빌어먹을 놈. 네놈은 역시 뱀파이어다.”

“그걸 몰랐어?”

오랜만에 인혈을 섭취해서일까? 밤인데도 불구하고 케라우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럼 난 다시 잔다.”

오른손의 손톱으로 정확히 발론의 심장을 찔러 생명을 끊은 케라우는 미련 없이 자신의 모포에 몸을 묻었다.

“우라질!”

이니안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누구를 향해서인지 알 수 없는 욕설이.

“오빠…….”

불타는 눈으로 케라우의 모포를 바라보는 이니안의 귀에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로즈였다.

그제야 이니안의 시선이 로즈를 향했다.

“미안하다.”

이니안의 사과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번에 그는 로즈를 지켜주지 못했다.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하였으나 지키지 못했다. 케라우가 아니었다면 로즈는 죽었을 것이다. 자신의 심장을 찔러오는 단검을 보는 그 심정이 어땠을까? 케라우의 흉측한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본 그 심정은 또 어땠을까?

그런 의문이 머리를 맴돌자 이니안은 도저히 로즈를 마주 볼 수 없었다.

로즈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오빠는 절 지켜줬어요. 고마워요.”

로즈는 진심을 담아 이니안에게 말했다.

이니안의 입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이니안은 로즈의 곁에 앉았다. 로즈는 한쪽으로 살짝 물러나 이니안이 편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아, 오빠, 그 상처.”

로즈가 이니안의 옆구리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제야 이니안의 시선도 자신의 옆구리를 향했다.

통증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제야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 온갖 상처에 단련이 된 그였지만 이번 상처는 좀 심했다. 같은 곳에 두 개의 단검이 꽂히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죽었을만한 상처다.

그가 지금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모두 단련된 몸과 몸 안을 흐르는 마나 덕분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인 것은 분명했다.

“후우, 지독한 녀석들.”

“칼, 뽑지 않아도 돼요?”

로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눈에도 이 상처는 굉장히 심각했다.

“뽑아야지.”

이니안의 손가락이 단검이 꽂힌 자리 주변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이니안의 손가락이 상처의 주변을 눌렀다. 출혈을 막기 위해 주변의 혈관을 마나로 막은 것이다.

지금은 단검이 마개 역할을 해서 피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지만 이렇게 처치를 해두지 않으면 단검을 뽑는 순간 피가 분수같이 솟구치리라.

“크윽!”

단검을 뽑으며 이니안은 신음을 흘렸다.

단검이 뽑힌 상처는 보기 흉하게 벌어져 있었다. 단검이 두 개나 꽂혔던 자리이니 당연했다.

“내장까지 상한 것 같군.”

“심각한 거예요?”

이니안의 말에 로즈가 걱정스레 물었다.

“심각하다. 어서 신전으로 가서 치료를 받거나 실력 좋은 치료술사에게 수술을 받아야 해.”

이니안은 배낭에서 응급처치를 위한 도구를 꺼내며 말했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고 말하는 양 태연했다.

“여기.”

그 말에 로즈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주었다.

“그건?”

이니안은 로즈가 내미는 것을 보았다. 스크롤 카드였다. 치료 마법이 담긴 힐링의 스크롤 카드.

“그것을 어떻게?”

이니안이 알기로 로즈의 모든 짐은 바실러스 자작의 저택에 있다. 로즈의 몸만 빼낸 것은 자신이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바실러스 자작의 저택에서 제 짐을 전부 돌려줬어요. 혹시나 해서 그 카드 한 장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어요.”

로즈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대답했다.

“고맙군.”

이니안은 사양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이 카드만큼 훌륭한 치료의 수단도 없었기에.

게다가 자신이 입은 상처는 조금 전 로즈에게 말한 대로 무척 심각한 상태다.

마나로 어떻게 출혈은 막고 있지만 단검에 내장까지 찔렸다. 단검에 찔린 내장 부분은 혈액 공급이 되지 않기에 서서히 괴사될 것이다. 내장의 일부가 괴사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내장 전체로 퍼져 목숨이 위험해진다.

“힐링.”

이니안은 상처 부위에서 카드를 찢으며 시동어를 외웠다. 밝고 따스한 빛이 이니안의 상처를 감쌌다.

“놀랍군.”

스크롤 카드에 담긴 힐링 마법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이니안의 상처가 아물 정도로 고위의 마법이었다.

치료 마법인 힐링은 시전하는 마법사의 서클에 따라 그 효과가 달랐다. 이니안이 사용한 스크롤 카드는 상당한 고위 마법사가 만든 것이 분명했다. 내장까지 미친 상처를 순식간에 치료했으니.

당장 응급처치를 할 요량으로 카드를 사용했던 이니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처 부위를 바라보았다.

“하아, 다행이다.”

깔끔하게 상처가 사라진 이니안의 옆구리를 본 로즈는 한숨을 쉬며 이니안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정말 다행이에요, 다행…….”

로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흑흑흑, 무서웠어요, 무서웠다고요.”

이제껏 참았던 것들이 이니안의 상처가 치료되면서 터져 나온 것일까? 모포로 감싸인 로즈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로즈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이니안의 팔을 타고 흘렀다.

“흑흑흑!”

로즈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무서웠던 걸까?

자신의 생명이 사라질 뻔한 순간을 눈앞에서 보았다. 타인의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을 눈앞에서 보았다. 로즈는 이제 겨우 열여덟의 어린 여자일 뿐이다. 이러는 게 정상이다.

이니안은 조용히 로즈를 안아주었다.

이니안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로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니안은 그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14장. 그는 이니안 케이 사이몬이다

커다랗고 둥근 테이블이 가운데에 놓여 있다. 테이블의 가운데에 놓인 순금 촛대를 중심으로 갖가지 먹음직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여섯 명의 사람은 기품 있는 동작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수프를 먹고 있었다. 그 주위로는 세 명의 시녀가 그들의 식사 시중을 들고 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입구로 보이는 곳에서 나타났다. 흑발과 흑안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미소년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모인 사람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발에 흑안을 가지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온 소년은 곧 테이블에 앉은 이들 중 유일하게 흑발이 아닌 금발의 귀부인 옆에 앉았다.

“늦었구나, 이니안.”

“네.”

근엄한 얼굴의 중년인의 말에 이니안은 고개를 숙였다.

“이니안, 왜 이렇게 늦었니? 엄마가 걱정했잖아.”

금발의 중년 여인은 정녕 걱정 가득한 얼굴로 옆자리의 소년을 보고는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이니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들의 대답에 여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니안, 어머님이라니? 어째서 그런 딱딱한 호칭으로 이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하니. 응? 2년 전만 하더라도 엄마라고 잘만 불렀는데……. 그렇게 귀엽던 아이가 왜…….”

호칭이 문제인 듯했다, 이니안과 그의 어머니 사이에서는.

엄마와 어머니.

명망 있는 귀족가에서는 엄마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엄마는 평민들 사이에서나 사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엄마라는 말에 더욱 정겨워하는 듯했고, 이니안은 엄마라는 말이 싫은 듯했다.

엄마와 아들의 작은 소요 외에 식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녀들이 수프 그릇을 치우고 새로운 요리로 테이블에서 덜어 각자의 앞에 적당한 양을 놓아주었다.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익숙하게 놀리며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테이블 중간의 촛불이 너울거리며 그림자들이 흔들린다.

“참, 아버지. 슬슬 이니안도 왕립학교에 입학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서글서글한 눈동자를 가진 흑발의 여인이 나이프를 움직이던 중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로레인 누나!”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이니안이었다. 질겁한 표정을 하고 자신의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동생의 시선을 받은 로레인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학교라……. 하긴, 이제 다닐 때도 되었지.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니안?”

아버지의 시선에 이니안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저어… 그게… 학교에 들어가면 앞으로 수련을 할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서요.”

이니안은 핑계를 대며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돌려 대답했다.

“물론 수련하는 시간은 줄어들 거야. 하지만 너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 텐데……?”

그때, 여태껏 조용히 식사에만 열중하던 흑발청년이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자 이니안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슈데인 형.”

그는 이니안의 형이었다.

“너, 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는 마쳤니?”

다시 입을 연 이슈데인. 그의 말에 이니안의 표정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질겁한 얼굴, 그리고 서서히 배어 나오는 식은땀.

“이슈데인의 말이 맞구나, 이니안. 그래, 공부는 어느 정도 끝냈니? 너도 학교에 들어가야 다른 귀족 가문의 아이들도 사귈 것 아니냐. 나는 가끔 네가 친구들을 데리고 왔으면 한단다. 언제나 검만 부둥켜안고 지내는 네 모습을 보면 가끔 안쓰러워.”

그때 이니안의 곁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이슈데인의 말에 동조하면서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이니안은 더욱 당황했다. 어머니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이니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학교에 다닐게요.”

어머니의 눈빛에 항복한 것일까? 이니안은 체념한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니안은 어머니의 그런 눈빛에 약한 듯했다.

“그러니까 학교 갈 실력은 되냐니까?”

그때 이슈데인이 다시 한 번 이니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이니안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이니안을 향했다. 이슈데인의 물음에 답하라는 무언의 압박.

“그게…….”

이니안은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설마 아직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거니?”

어머니가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옆에 앉은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슈데인의 걱정이 사실인 모양이구나.”

이니안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가만히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니안.”

아버지가 이니안을 조용히 불렀다.

“네.”

이니안은 아버지에게는 전혀 힘을 못 쓰는지 순한 양과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검을 가져오너라.”

“네.”

아버지의 지시에 대답을 한 이니안은 식사를 멈추고 일어나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식당을 떠난 이니안은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한눈에도 명검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검이 들려 있었다.

“이니안.”

이니안이 검을 가지고 들어오자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네.”

대답을 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 아버지의 눈에 엄격한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니안은 그런 아버지의 변화를 알아본 듯했다.

“우리 가문은 카일로니아 왕국, 아니, 라칼트 대륙 최고의 기사 가문이다. 그것은 너도 잘 알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은 우리 가문 최고의 긍지요 명예다. 기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열심히 검을 수련한다는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다.”

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에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자신이 열심히 검을 수련하는 것에 대한 칭찬이었기 때문일까? 이니안의 얼굴에 살짝 화색이 돌았다.

“단.”

그때 아버지의 어조가 단호하게 끊겼다. 얼굴에 어린 엄격한 기운도 더욱 강해졌다. 눈에는 노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안은 분명 기사 가문이다. 그리고 기사는 단지 검만 잘 휘두른다고 되는 그런 하찮은 신분이 아니다. 검술이 뛰어난 이들은 오히려 기사보다는 검사나 용병이다. 그들은 검에 생사를 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하지만 기사는 그들과 다르다. 기사라면 기사로서의 명예와 의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신분에 맞는 교양과 지식을 갖춰야 한다. 한데 지금 너의 모습은 어떠냐? 열다섯이나 된 녀석이 다른 가문에서는 열둘이면 능히 들어가는 왕립학교 입학을 위한 지식조차 제대로 쌓지 못했다니!”

아버지의 호통에 이니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도 아버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아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분명 너는 검의 천재다. 네가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은 이미 수도의 세력 있는 귀족이라면 다 알고 있다. 국왕 폐하 역시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런 모습에 나는 네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이니안. 하지만 나의 바람은 네가 단순한 검의 천재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뛰어난 검술 실력에 걸맞는 교양과 지식을 갖춰 진정한 기사로 태어나길 바란다. 그것이 이 아비의 소망이다.”

이니안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자신은 지금의 상황에서 무어라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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