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46화 (46/175)

=======================================

[46]

“용병으로 떠돌면서 지금 미오나인 제국에 있다고 하더라.”

“오빠는 그 녀석을 만나봤대?”

로레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리아는 언니의 화급한 성정을 잘 알았기에 즉시 고개를 저었다. 재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분명 자신을 덮칠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26년 인생을 통한 경험의 산물이었다.

“그래?”

동생의 고갯짓에 로레인은 맥빠진 듯 말했다.

집안의 귀여운 막내 이니안.

제법 건방지고 장난이 조금 심하기는 하지만 남매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자랐다. 물론 장남인 이슈데인은 그 귀여움을 표시하는 방법에 문제가 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냥 사라졌다면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니안이 가진 실력이라면 어딜 가도 잘 지낼 것이라 믿을 수 있으니까.

하나 소드 마스터인 자신의 실력의 근원인 마나 스피어를 파괴하고 몸에 모인 마나를 모두 흩어버리고 사라졌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여전히 건강 상태가 안 좋으시다. 아들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몸을 쇠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멍청한 녀석.”

로레인이 다시 거칠게 중얼거렸다. 이니안이 가출한 후 무척이나 야윈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막내인 메이린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저기… 여기서 이렇게 이 자리에 없는 녀석 원망만 할 게 아니라…….”

찻잔을 입에서 뗀 메이린이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로레인과 이리아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지혜로운 이는 막내인 메이린이었다.

첫째인 로레인같이 검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둘째인 이리아같이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장 지혜로웠으며 성정이 차분해 전체를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찾으러 가면 어떨까? 마침 미오나인 제국에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까.”

“…….”

“……?!”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정반대의 표정을 지었다.

로레인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얼굴을 했고, 이리아는 어이없어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직접 나가서 찾으면 되잖아!”

로레인의 나이는 올해 스물아홉이었다. 이제 며칠 후면 해가 바뀌어 서른이 될 터이다. 혼기를 채우고도 몇 해를 넘긴 나이. 그런 나이답지 않게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이리아와 메이린이 동시에 머리를 가로저었다.

‘저러니… 아직도…….’

‘에휴, 큰언니, 누가 데리고 가려나…….’

두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떠올렸다.

“미오나인 제국이 동네 앞마당도 아니고 얼마나 넓은데. 우리 카일로니아의 두 배는 되는 영토야. 어떻게 찾으려고?”

이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넓고 넓은 땅덩이를 가진 미오나인 제국에서 이니안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인 것이다.

“뭐, 그거야 오빠가 대강 위치를 알지 않을까?”

로레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사이몬 가의 차기 공작인 이슈데인 케이 사이몬. 로레인은 자신의 오빠가 가진 능력과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이니안의 위치를 거의 근접하게 찾았을 것이다. 그가 이니안을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사정이 있어서일 것이다.

로레인의 말에 이리아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리아 역시 로레인의 생각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허락하실까?”

잠시 입을 닫고 있던 이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말에는 로레인도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허락을 안 해주실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여차하면 몰래…….”

“그러면 이번엔 정말 어머니께서 돌아가실지도 몰라.”

이리아가 재차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심약했다. 어떻게 아버지와 만나 결혼을 하셨는지가 의문일 정도로, 아버지와는 기질이 정반대였다.

그랬으니 이니안이 가출했다는 소식에 쓰러지셨지. 이번에 그녀들마저 이니안을 찾겠다는 핑계로 허락 없이 집을 나가면 정말로 어떻게 되실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로레인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때 메이린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리아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하긴, 네가 어떤 앤데. 방법이 있으니까 말을 꺼낸 것이겠지.”

이리아가 한숨과 함께 메이린의 말을 끊었다. 분명 동생인 메이린이라면 아무 마찰 없이 이니안을 찾아 나설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니안을 찾으러 가자는 말을 꺼낸 것일 테고.

막내 메이린은 성공할 가능성이 10할에서 조금이라도 모자라는 일은 절대 입에 담지 않았다.

“방법이 있는 거야?”

로레인은 자신의 얼굴을 메이린의 코앞에 바싹 들이댔다.

메이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 웃음이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이리아는 그 기색을 알아챘지만 로레인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자로 태어났으나 그 성격은 오히려 남자에 가까운 그녀였기에 그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뭐야?”

방법이 있다는 소리에 로레인은 직접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니안을 찾으러 갈 수 없다는 건 알지?”

메이린의 물음에 로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만큼 우리가 부모님의 허락을 얻고 이니안을 찾으러 나가려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해.”

“대가?”

로레인의 물음에 메이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가. 모름지기 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법이야. 이른바 등가 교환이라는 거지.”

메이린은 검지를 들어 보이며 눈웃음을 쳤다. 그 모습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그 대가가 뭔데?”

로레인의 얼굴이 더욱 메이린에게 가까워졌다.

메이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진지함이 자리했다.

꿀꺽.

그 변화에 로레인은 메이린에게서 거리를 두며 침을 삼켰다. 메이린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일 때다. 로레인은 긴장한 눈으로 메이린의 입을 주시했다.

“시.집.가, 언니.”

메이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로레인은 뻣뻣하게 굳었다.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이리아는 진정 감탄했다는 듯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그, 그게 무슨 말이얏! 시집이라니?!”

몇 초간의 석화에서 풀린 로레인이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테이블은 반쪽으로 갈라지고 찻잔은 모두 바닥에 떨어져 깨져 버렸다.

“언니!”

“언니!”

두 곳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외침.

로레인은 자신이 벌여놓은 일에 멋쩍은 듯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어린 노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니안을 찾는 거랑 내가 시집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당연히 있지.”

메이린은 아주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고, 이리아는 그 말이 옳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두 동생의 합동 공격에 당황한 듯 로레인은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 어머니의 근심 중 가장 큰 것이 이니안 녀석이지만 말이지, 언니의 결혼 문제도 그에 못지않다고. 언니, 이제 며칠 후면 서른이야, 서른. 알어? 여자 나이 서른에 아직 처녀라니, 그건 대체 어느 집안 이야기냐 이 말이지. 보통은 스물하나나 둘에 시집들 가는데 언니는 아직 버티고 있단 말이야. 언니 덕에 이제 스물일곱인 작은언니도 처녀고 나도 이 꽃다운 나이에 이러고 있단 말이지.”

“그, 그럼 너희가 먼저 시집가면 되잖아!”

“어머, 그 무슨 말을. 카일로니아 최고의 명문가라는 우리 사이몬 공작가에서 어찌 그런 서열을 무시한 일을 벌일 수 있겠어? 다른 가문에서 비웃어요.”

검지를 치켜들어 좌우로 흔드는 메이린의 정신없는 공격에 로레인은 점점 더 수세에 몰렸다. 거기에는 곁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이리아의 행동도 한몫했다.

“하, 하지만 눈에 차는 녀석이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남자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약해 빠져서는…….”

로레인은 자신이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약해 빠진 남자들이 문제라는 듯 소리를 질렀다.

“어머, 언니, 그거 진심이야?”

메이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 그래. 적어도 남자라면 아내보다는 강해야지!”

이번에는 이리아마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언니는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인데, 언니는 중급의 소드 마스터야, 소드 마스터. 그것도 겨우 스물아홉의 나이에 말이지. 뭐, 며칠 후면 서른이지만.”

메이린의 말 중 ‘서른’이라는 말이 묘하게 로레인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 그래서!”

얼굴이 벌게진 로레인이 질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대륙에 소드 마스터가 과연 몇이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게다가 언니 또래에서 소드 마스터를 이룬 사람이. 응? 언니보다 강한 남자 찾아서 결혼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 것 같아?”

“우, 우우우!”

메이린의 말에 로레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만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러니까… 중요한 건 바로 그거란 말이지.”

“뭐가?”

“언니 신랑감 찾으러 간다고 말하고 셋이서 같이 나가는 거야. 우리나라에는 이미 언니 짝이 될 만한 사람이 없으니 다른 나라에서 찾겠다는 거지. 그러면서 겸사겸사 이니안도 찾고 말이야.”

메이린의 말에 로레인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녀 자신도 요즘 집안의 눈치를 느끼고 있던 차다. 오빠인 이슈데인은 벌써 가정을 이루어 이미 귀여운 아들까지 둔 상태다. 그러니 만큼 자신도 어서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나이는 이미 혼기를 꽉 채운 지 오래였으니.

자신이 그리 말한다면 분명 아버지는 허락할 것이다. 허락 안 할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 세 자매면 어디를 가도 안심이다.

소드 마스터 중급의 검사와 7서클 익스퍼트의 마법사, 게다가 소현자라 불리는 메이린까지 있다면 어디서 험한 꼴을 당할 일은 없었다. 모험가로 본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파티인 것이다.

“게다가 말이야, 찾으러 가는 거란 말야. 즉, 반드시 시집을 갈 필요는 없지. 온 대륙을 뒤졌는데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으면 별 수 없는 거 아니겠어?”

메이린의 마지막 말에 로레인은 귀가 솔깃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신랑감을 찾으러 가겠다는 말이 곧 결혼을 하겠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좋아,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려 볼게.”

그 화끈한 성격답게 결심을 하자 그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사라지자 이리아와 메이린은 서로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이제 그만 나와, 오빠.”

이리아의 말에 정원의 아름드리나무 뒤에서 이슈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다.”

이슈데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은 어떻게든 로레인을 시집보내려는 세 남매의 음모였다. 물론 이 음모의 배후에는 아버지가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언니 마음에 들 만한 남자가 있긴 있을까?”

메이린이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없어도 어떻게든 시집을 보내야지.”

이슈데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미오나인에는 제법 쓸 만한 녀석이 하나 있어. 카르세온이라고, 로레인보다는 좀 어리긴 하지만 뭐, 그만한 녀석 찾기도 힘들지.”

이슈데인의 말에 두 자매는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이슈데인이 장래의 매제감으로 점찍은 카르세온이 그의 막내 동생인 이니안을 죽이려고 쫓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서로 다른 꿍꿍이를 가진 막내동생 찾기 겸 큰언니 시집보내기 여행은 그날 결정이 내려졌다.

로레인의 말에 사이몬 공작이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