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45화 (4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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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쉬어라, 내일 또 힘들게 움직여야 할 테니까.”

자기 자리에 모포를 깔고 빵을 우물우물 씹고 있는 로즈에게 작게 말한 이니안은 그 옆에 주저앉았다. 가뜩이나 좁은 자리였기에 두 사람의 몸은 바짝 붙었다.

“어… 어… 캑캑캑!”

갑작스러운 이니안의 행동에 놀라 무어라 말을 하려던 로즈는 그만 삼키던 빵이 목에 걸렸는지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이니안이 한쪽에 놓여 있는 우유병을 들었다.

이니안이 전해준 우유병을 받아 든 로즈는 급하게 우유를 마셨다. 목구멍을 막고 있는 빵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후아!”

우유가 흘러들어 가면서 목구멍을 막은 이물을 밀어내자 그제야 로즈는 속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모습을 이니안이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음 같은 얼굴 위에 가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뭐예요, 그런 얼굴로?”

그 모습에 얼굴이 빨개진 로즈가 고개를 획 돌렸다.

“아니다.”

이니안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하고 많은 자리 중에 왜 여기에 앉은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좁은 곳에.”

이니안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로즈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팔을 통해 전해져 오는 이니안의 체온이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밤은 조심해야 할 거야.”

이니안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로즈는 정신이 들었다. 이니안은 무언가 위험을 느낀 듯했다. 그러니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알았어요. 지켜줄 거죠?”

로즈는 떨리는 눈으로 이니안을 보며 말했다. 이미 사위는 어둠이 지배하고 있건만 로즈의 붉은 얼굴은 그 속에서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약속했으니까.”

짧게 대답한 이니안은 고개를 돌렸다.

로즈는 이니안의 얼굴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자 무언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먹던 빵을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이니안의 시선은 완벽한 어둠이 덮고 있는 나무 사이로 향해 있었다.

‘대단한 녀석들이다. 살기가 더 강해지는 것 같더니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살기도 기척도.’

이니안은 힘든 싸움이 될 것을 예상했다. 곧 그는 눈을 감고 운공에 들어갔다. 마나를 모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리한 전투로 인해 상해 버린 몸의 내부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호흡에 따라 몸속으로 들어온 마나가 따스하게 몸 내부를 감싸 안았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이니안의 내상을 마이너스 마나가 진정시키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진다.’

운공에 들면 몸의 감각은 최고조에 달한다. 운공 자체가 조그만 충격에도 큰 영향을 받는 아주 위험한 행위였기에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로 몸의 감각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운공에 들자 조금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다섯 사람의 기척을 희미하게나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희미한 기척들은 서서히 이니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니안은 두 눈을 떴다. 더 이상 운공을 하면서 내상을 다스릴 여유가 없었다. 검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휙!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이니안은 왼손으로 그것을 잡았다. 주먹 크기의 돌멩이였다. 마나를 실어서 던졌는지 그것을 잡은 왼손이 찌르르 울렸다.

이니안이 왼손을 들어 돌멩이를 잡는 그 순간 그의 왼손이 정확히 정면의 시야를 가렸다.

“뭐죠?”

놀란 로즈가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것과 동시였다, 달빛을 반사해 차갑게 빛나는 무엇인가가 세 방향에서 이니안을 향해 쏘아진 것은.

이니안은 이미 잡고 있던 검을 들어 그 빛들을 쳐냈다. 어둠 속에 은은히 빛나는 물체를, 새하얀 섬광을 토하며 이니안의 검이 잘랐다.

챙채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니안을 향해 날아들던 빛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검이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단검.

그때였다. 이니안의 3미터 앞의 흙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튀었다. 흙 가루 중 상당 부분이 이니안의 눈을 향해 튀었다. 이니안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검으로 오른쪽을 찔렀다.

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쳇, 눈에 의지하지 않고 감각으로 적을 쫓는다는 거로군.”

자신의 암습이 실패하자 킬은 언짢은 듯 투덜거렸다. 제논이 만들어준 기회를 틈탄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한 암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크리스인가?”

이니안의 시선은 물결 모양의 검날을 가진 단검을 향해 있었다. 그의 가문은 검을 익히는 기사 가문이다. 당연히 검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고, 그 지식 중에는 크리스라는 단검도 있었다.

“다크 크리스로군.”

용병으로서 대륙을 떠도는 이니안이다. 그중 제국 최고의 어새신 길드라는 다크 크리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잘 아네? 그럼 오늘이 네놈의 목숨이 사라지는 날이라는 것도 알겠지?”

킬은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를 모두 끌어올렸다. 그리고 폭주시키듯 마나를 돌렸다. 그러자 마나들은 일정한 길을 따라 세차게 흘렀다. 자신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발동시킨 것이다.

“크리스 챠지(Kris Charge)!!”

사력을 다한 외침과 함께 쭉 뻗은 오른손. 그 손에 들린 크리스의 검극에서 밝은 빛이 토해져 나왔다. 그가 지닌 마나였다. 검극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는 킬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마상전을 치르는 기사의 랜스 챠지처럼 어마어마한 돌격력으로 킬은 이니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리스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는 엄청난 스피드로 돌진하는 킬에게 굉장한 파괴력을 실어주었다.

“쳇, 어새신 따위가 피어스 브레이크라니.”

이니안 자신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검을 익혔다 해도 어디까지나 기사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 역시 일반 기사들이 사용하는 맹격기 피어스 브레이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니안은 즉시 마나를 끌어올렸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령소혼!”

마령천참검의 1초식이 그의 오른손에서 뻗어나가며 킬의 공격에 맞부딪쳤다.

“소드 크러쉬(Sword Crush)!”

그때 이니안의 등 뒤에서 거대한 외침이 들렸다. 그와 함께 이니안의 등을 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쏘아져 오는 참격. 단검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킬이 이니안을 향해 부딪쳐 가는 순간 제논이 즉각 이니안의 등 뒤를 점하고 자신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전력으로 쏟아낸 것이다.

앞뒤로 상당한 위력의 피어스 브레이크를 마주한 이니안의 손에 땀이 맺혔다. 그의 검은 이미 마령소혼의 초식으로 눈앞의 어새신의 돌격을 막으러 가고 있었다.

13장. 무서웠어요

태양이 내리쬔다.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화려한 정원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분명 한해를 끝내려는 겨울의 한 자락에 있건만 이곳은 그런 자연의 섭리를 비켜가 있었다.

푸른 관상목은 그것을 돌보는 정원사의 정성을 알 수 있게끔 정갈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꽃과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의 모습은 이곳만은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피해 봄의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이 기이한 정원의 비밀은 하늘에 있었다. 반구형으로 정원의 하늘을 덮고 있는 투명한 얇은 막. 마법에 의해 유지되는 막이었다. 그 막이 바깥과 정원을 차단해 정원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마법을 이용해 봄날의 날씨를 유지하는 호사스러운 정원을 한눈에 불 수 있는 커다란 창. 그 창 안쪽에는 수심에 잠긴 눈의 남자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직 소식이 없는 건가, 테이오?”

“네, 송구스럽습니다만…….”

눈부신 백금발의 청년은 그의 뒤에 시립해 있는 새하얀 백발노인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세상 모든 것을 한 번에 담을 듯 푸른 그의 눈동자에 어린 근심은 더욱 깊이를 더한다.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송구스럽습니다.”

테이오라는 이름의 노인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과연 찾고는 있는 것인가?”

“칸세르 공작이 전력을 다해 찾고 있다 합니다.”

노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칸세르 공작이… 말인가? 하긴, 그가 찾아야지. 아니, 그가 찾겠다고 자청했지. 한데 벌써 두 달이 아닌가? 그가 과연 찾을 의지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의 힘이라면 이 두 달이라는 시간이면 제국의 전역을 뒤지고도 남았을 거야.”

청년의 어조에는 은은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찾아야 할 이를 찾지 못한 공작에 대한 분노.

“조금만 더 기다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얼마 전 카르세온 자작이 아홉 명의 하이 나이트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합니다.”

테이오의 말에 창밖을 바라보던 청년이 몸을 돌렸다. 그의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페르마타가 말인가?”

“네, 그러합니다.”

“그래, 페르마타라면 믿을 만하지. 그만한 인물은 없으니까. 칸세르 공작도 그녀를 찾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군. 페르마타와 하이 나이트 아홉 명을 보내다니.”

그제야 청년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만족한 얼굴. 그는 곧 자신이 원하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친구인 페르마타 카르세온은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테이오는 얼마 전 들은 소식은 꺼내지 않았다. 시메티딘의 제자인 테리신이 돌아와 전한 소식. 자신도 칸세르 공작을 찾아가 그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까지 전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그가 모시는 분의 좋은 기분을 망칠 수 없었기에.

조용히 방을 물러나는 테이오의 얼굴에는 가는 걱정이 어려 있었다. 그도 제국의 젊은 검이라는 카르세온을 믿었지만 왠지 불안했다.

“포르시아…….”

막 문을 열려 하던 테이오의 귀에 그의 주인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 중얼거림에는 진득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전하…….’

테이오는 속으로만 안타깝게 중얼거리고 곧 방을 빠져나갔다. 지금 그의 주인 카르발 칼 폰트 미오나인 1황자는 홀로 있기를 원했다.

***

따뜻한 김이 피어오른다.

장미의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화려한 찻잔에 담긴 연갈색의 액체가 피워 올리는 증기에서 청아한 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의 위치를 점하듯 놓여 있는 세 개의 찻잔.

찻잔 앞에는 놀랄 만큼 닮은 외모의, 그러나 놀랄 만큼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운 여인 셋이 앉아 있었다.

셋 모두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에 흑요석과 같이 빛나는 눈동자의 소유자다.

“벌써 삼 년인가?”

“이제 곧 사 년째에 접어들어, 언니. 며칠 후면 새해니까.”

“그렇구나.”

세 여인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몹쓸 녀석, 이렇게 걱정을 끼치다니.”

아름다운 모습과는 대조적인 강한 인상을 가진 여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 말을 내뱉을 때 그녀의 몸에서 무형의 기세가 이는 것이 그녀가 상당한 강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큰언니, 숨 막혀.”

두 눈 가득 지혜로운 현기(賢氣)를 담은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말과 함께 주변에 일던 강한 기세는 씻은 듯 사라졌다.

“작은언니는 몰라도 나는 그런 기세에 견디지 못해.”

이미 얼굴이 상당히 하얗게 질린 여인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에 담긴 현기는 여전했다.

“미안하다, 메이린. 그 녀석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만…….”

강한 기세를 끌어올렸던 여인은 자신의 동생에게 사과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니, 그리고 메이린, 오빠가 그 녀석 소식을 가지고 온 것 같은데, 들었어?”

“뭐?”

“뭐야?”

이 자리에서 둘째인 이리아의 말에 첫째인 로레인과 막내인 메이린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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