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41화 (4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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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빌어먹을, 더 많이 달려들어! 적은 겨우 두 명이다!”

검은 복면을 한 그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어서 달려들지 않고 뭐… 큭!”

다시 한 번 무어라 외치려던 브롤이 자신의 목을 잡고 쓰러졌다. 어느새 이니안이 날린 단검이 그의 목을 꿰뚫고 있었다.

그의 외침에서 이니안은 그가 제법 지위가 있는 어새신임을 알아보았다. 전쟁에서는 머리를 먼저 잘라야 하는 법.

이니안은 이미 이 전투를 전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어새신의 습격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아닌 다수 대 소수의 전투. 그러니 지휘관을 먼저 죽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브롤이 이니안의 단검에 목숨을 잃자 더 이상 무어라 외치는 어새신은 없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무어라 지시를 내리면 그 순간 단검이 자신의 목을 뚫을 것이라는 걸. 어차피 달려들어 죽을 목숨이지만 미리 자초해서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의 간사한 심리인 것이다.

“쳇, 아깝군.”

케라우는 자신의 손톱에 목이 잘려 쓰러지는 어새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목이 잘리며 어새신의 경동맥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비릿한 혈향이 풍긴다.

“흐음, 이 신선한 피의 냄새를 맡고만 있어야 하다니. 젠장.”

케라우는 자신의 에너지의 원천이 수없이 눈앞에서 버려지는 상황에 욕설을 뱉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자신에게 그냥 피를 주면 오죽 좋겠는가.

이미 생명을 다한 자의 피는 뱀파이어에게 독이었다. 눈 깜짝하는 시간에 에너지의 공급원이 독으로 바뀌고 있다. 뱀파이어인 그로서는 이보다 안타까운 일도 없었다.

“시끄럽다! 입 놀릴 시간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이놈들을 처리해!”

“너야말로 잘해라, 이 얼음탱이야!”

이니안의 말에 입을 비죽인 케라우의 손이 순간 십여 개의 잔영을 만들며 눈앞을 덮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어새신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흥!”

케라우는 이니안에게 보란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손을 놀렸다. 거기에 질 수 없다는 듯 이니안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빨랐으나 부드러웠고 힘이 있었다.

이니안의 검 앞에 어새신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대단한데. 아직도 움직임에 흐트러짐이 없어.]

발론은 진정으로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자신들의 목표물은 생각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그래도 아직 천칠백은 남았다.]

라딘은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그냥 지금 살짝 돌아가서 찔러 버리는 게 어때?]

킬이 지루한 듯 말했다.

[저 녀석, 아직 움직임에 흔들림이 없어. 지금 들어가면 오히려 죽는다.]

제논은 냉철한 눈으로 이니안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니안과 케라우의 행동반경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동굴의 입구 주변은 그들의 손에 죽은 어새신들의 시체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 적들 역시 마찬가지.

자신들이 조금 더 입구에서 떨어지더라도 어새신들이 입구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점점 이니안과 케라우는 넓은 범위를 움직이며 어새신들을 베어냈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흘렀다.

밤이 오자 이니안과 케라우는 동굴로 들어갔다. 케라우가 입구를 지키는 동안 이니안은 동굴에 두었던 배낭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허기를 대강 달랬다.

동굴 안에는 로즈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앉아 있었다. 이니안은 로즈를 잠시 바라본 후 다시 입구로 향했다. 케라우는 이제 쉬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니안이 통로의 중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지만 어새신들은 어제와 달랐다. 오늘 낮 동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한 명씩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어김없이 이니안의 검의 제물로 목숨을 잃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어새신들의 시체로 동굴의 입구가 막혔다. 비릿한 혈향이 동굴 안을 맴돈다.

이니안은 한쪽 발에 마나를 모았다. 그 발로 시체 더미를 힘껏 찼다.

푸억!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시체들은 동굴 밖으로 퉁기듯 날아갔다. 그제야 바깥의 신선한 밤공기가 동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바깥 공기에도 비릿한 혈향이 묻어 있었다. 이미 이 주위는 시체로 둘러싸여 있다. 그 시체에서 솟아나는 피 냄새가 주변 공기에 배어 있었다.

어새신들은 쉬지 않고 들어왔다. 자신들의 수로 이니안이 쉬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 분명했다. 뻔히 보이는 전술이지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했으니까.

밤새도록 동굴로 들어오는 어새신들을 베어 넘기는 동안 동굴의 입구로 강렬한 빛이 들어왔다. 태양이 떠오르며 동굴의 입구와 정확히 일직선상에 놓인 것이다.

“아함, 아침이군.”

케라우가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온몸을 감싸는 태양 빛에 케라우는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마치 집 안의 침실에서 막 일어난 듯한 여유로운 행동이다.

“이제 네 차례다.”

피곤에 지친 이니안의 목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케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니안이 있던 자리에 섰다. 이니안은 곧 동굴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스물네 시간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지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이미 마나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저 녀석들,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가나 보군. 어차피 머릿수로 밀어붙이겠다면 그 작전에 충실해야지. 쓸데없이 잔머리를 굴리니 상대가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지.]

발론이 동굴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이미 퍼펙트 아이를 발동한 상태였다.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탈진할 것이다. 아직 길리안 길드의 어새신들은 천삼백이 남아 있었다.

“흐음, 대단하군. 저 녀석들.”

동굴의 입구에서 열심히 손을 놀리는 케라우를 지켜보는 눈빛이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케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병신 뱀파이어 주제에 말이야. 제법이군.”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글 아이라는 마법으로 시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이는 바실러스 자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사인 마커가 돌아와 그간의 상황을 보고하자 호기심에 뒤를 쫓았다. 이제 일신의 실력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 생각하던 차였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그는 카르세온을 앞질러 이곳에 도착했다. 도보로 이동하는 기사와 마법사의 차이였다.

“어차피 수도로 들어갈 생각이니까. 칸세르 공작에게 좋은 선물이 되려나?”

바실러스 자작은 눈을 빛내며 동굴 주변을 관찰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동굴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나무 위다. 동굴에서는 그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 없는 위치다.

하지만 자신은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침 마법의 재료가 잔뜩 있었다.

“뭐,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이것은 이것대로 재미있으니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바실러스 자작은 결정한 듯 눈을 빛내며 길리안 길드의 어새신들과 케라우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

“어떻게 되었나?”

“아직 전투 중이라 합니다.”

“전투?”

“예, 매복하여 암습을 하다가 안 되겠는지 닥치는 대로 덤벼들며 싸운다고 합니다.”

“허, 삼류 어새신들답군.”

“이틀째입니다. 삼천이 가서 이제 겨우 천오백 정도 남았다 합니다.”

노인의 보고에 사내의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천오백의 인간을 베어 넘기고 아직도 전투 중이라니 상당한 실력이었다. 아니, 괴물같이 놀라운 실력이다. 어쩌면 그 안배 속에서 살아남을지도 몰랐다.

“곤란하군. 어쩌면 돌파할지도 모르겠어. 다크 크리스 쪽은 어떤가?”

“다크 크리스 길드는 일단 의뢰를 받으면 그 후 의뢰를 완수하기 전까지는 의뢰의 진행 사항을 알 수 없습니다.”

노인이 공손히 대답했다.

“하긴, 그건 익히 아는 사실이지.”

사내 역시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가슴속에 솟아 오른 불안 때문에 확인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다.

“추가로 더 보낼 수 있는 자들은 없나?”

“카르세온 일행과 불과 하루거리입니다. 더 이상의 투입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허, 벌써 거기까지 갔단 말이지? 카르세온 녀석, 역시 방심할 수 없군.”

소파에 몸을 묻은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카르세온의 실력과 집념을 익히 알고 있는 터였지만 벌써 거기까지 추격했다는 소리에 다시 한 번 놀란 것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런 속도로 추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보내진 이들만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거로군.”

“네.”

사내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소파의 팔걸이 부분을 두드렸다.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이거 어쩌면 기껏 사냥해서 오크 가져다주는 꼴이 날지도 모르겠어.”

노인은 자신의 주인이 염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하루거리라……. 흐음, 길리안과 다크 크리스의 손에서 살아남는다면 딱 그쯤에 카르세온 녀석들이 도착하겠군. 이거 정말로 운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인가? 절호의 기회였는데…….”

사내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노인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알았어. 이만 나가보도록.”

“예, 그럼.”

노인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허리를 숙이고 그 방을 나섰다.

***

[이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킬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뇌리에서 뇌리로 이어지는 대화이기에 누가 엿들을 일도 없건만 그는 버릇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이지?]

미르가 물었다. 일단 그녀가 마스터였기에 대표로 물은 것이다.

[근처에 목표물과 길리안 녀석들 외에 다른 녀석이 하나 끼어들었다.]

[마법사야?]

킬이 지닌 특이한 능력 중 하나는 마법사에게 민감했다. 누구도 그가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그저 특이 체질이려니 하고 넘어갈 뿐. 사실 킬 본인조차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그래. 게다가 흑마법의 냄새까지 난다.]

[어디지?]

[동굴 입구의 남쪽 5킬로미터 지점이다.]

발론의 물음에 킬이 대답했다.

[분명히 있군. 중년인이 한 명.]

발론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바실러스 자작을 확인했다.

[젠장, 어디서 저런 녀석이 끼어들어서는.]

제논이 투덜거렸다.

[확실히 마법사라면 골치 아프다. 더욱이 이런 원거리라면.]

라딘이 곤란한 듯 중얼거렸다.

[발론, 그 녀석 표정을 볼 수 있어?]

[물론. 무언가를 즐기는 듯 웃고 있는데. 저 녀석, 사람이 저렇게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 저런 기분 나쁜 얼굴이라니, 변태 아냐?]

바실러스 자작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 발론이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작전 변경이다. 일단 이곳에서 후퇴해서 계속 몸을 숨기고 관찰한다. 어쩌면 저 마법사, 우리와 같은 목적일지도 모른다. 이왕 손쉽게 일을 처리하기로 했으니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지.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 말과 함께 라딘이 가장 먼저 몸을 움직였다. 분명 이동하고 있는데 어떠한 기척도 없었다. 그야말로 감쪽같았다. 라딘이 움직이자 나머지 네 사람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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