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40화 (4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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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피어스 브레이크(Fierce Break).

맹격기(猛擊技)라고도 불리는 일격 필살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자신이 익히기를 원한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익혀지는 기술인 것이다. 숙련된 검사가 소드 러너의 단계를 벗어나 소드 익스퍼트의 단계에 접어드는 순간 저절로 익혀지게 된다.

아니, 저절로 익혀지는 것은 아니다.

라칼트 대륙의 검술은 원래 끊임없는 육체의 단련을 통해 몸에 마나를 축적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 검술의 단련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가문이 있었다.

카일로니아의 사이몬 공작가.

그 가문은 호흡으로 마나를 몸에 축적했다. 대체 어떤 원리로 그것이 가능한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그런 소문이 났을 뿐이다. 그때부터다. 대륙의 모든 검사가 호흡을 통해 마나를 축적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일부는 성공했고 일부는 실패했으며, 일부는 부작용으로 폐인이 되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런 수많은 시행착오를 300여 년간 걸치면서 드디어 마나 호흡법이 자리를 잡아갔다. 물론 사이몬 가의 그것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었지만.

그렇게 정립된 마나 수련법은 호흡과 육체적 수련을 병행하는 것이다. 소드 러너일 때는 육체의 단련을 주로 하면서 기본적인 마나를 전신에 고루 받아들인다.

그 후 호흡법을 통해 마나의 양을 점차 늘려 나간다. 그리고 그 양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가 소드 러너에서 익스퍼트의 단계로 접어들 때다.

그 순간 소드 러너는 비전의 방법으로 몸 안의 마나를 폭주시킨다. 그리고 마나의 폭주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이 수백 년의 연구 결과였다. 마나의 폭주를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조정하려 하던 이들은 모두 죽거나 폐인이 되었다. 마나는 자신이 흐를 길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사람마다 마나가 흘러가는 길이 달랐기에 검사들은 마나를 폭주시키고 거기에 몸을 맡겼다.

마나의 폭주가 끝나면 몸은 더 많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에 따라 검에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인 것이다.

그런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면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맹격기라 불리는 피어스 브레이크. 마나의 폭주 때 만들어진 길로 온몸의 마나를 집중해 흘려 넣으면 그 마나의 흐름에 반응해 몸이 움직인다. 인간이라 믿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와 위력으로. 그렇게 움직이는 몸이 펼쳐 내는 기술이 바로 피어스 브레이크인 것이다.

마나의 폭주 경로는 개인마다 다르고 개인이 의도적으로 조정할 수도 없기에 피어스 브레이크는 익혀지는 기술인 것이다. 때문에 피어스 브레이크의 종류와 형태는 무궁무진했다.

맹격기라는 이름답게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보이는 기술이 있는가 하면 고작 보조 정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기술도 있었다.

그런 피어스 브레이크는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소모되는 마나, 사용 횟수, 지속 시간 등 각각이 그 특징에 따라 모두 제각각이었기에 어떠한 기술이 더 우위라 할 수 없었다.

발론이 사용하는 퍼펙트 아이는 지속형 보조 맹격기였다. 시력을 극한의 수준으로 올려주는 피어스 브레이크. 다른 피어스 브레이크에 비해 마나의 소모는 월등히 적고 오랜 시간 지속이 가능했다.

그러나 역시 피어스 브레이크였기에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를 소비했다. 오랜 시간의 지속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전투를 상정했을 때의 일이다. 이렇게 한 목표를 감시하는 데 사용하기에는 그 마나 소모량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말이야…….]

호흡법을 통해 마나를 조금씩 모으던 발론이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미르가 책망 어린 소리로 말했다. 지금 발론은 마나를 모으는 데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런데 정신을 흩뜨리다니……. 호흡법을 통해 마나를 모으는 것은 단순히 호흡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마나를 모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호흡해야 했다.

[두 개의 맹격기를 가진 인간, 있을까?]

[있다. 카일로니아의 사이몬 가.]

발론의 물음에 대답한 이는 라딘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어서 회복에나 신경 써.]

미르가 책망하듯 다시 말했다.

[후우, 아까 이니안이라는 용병 녀석이 쓴 그 기술.]

[아아, 그 맹격기? 무서웠지. 사방으로 그렇게 몰아치다니.]

킬이 넌더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그것, 처음의 기술과 나중의 기술, 전혀 다른 기술이었다.]

[…….]

[…….]

발론의 말에 그들은 일제히 말을 잃었다. 아티팩트는 분명히 자신들의 몸에서 마나를 소량 흡수하면서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뇌리를 울리는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모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들이 보았을 때 두 개의 기술은 비슷했다. 하나의 맹격기를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조금은 변형할 수 있기에 변형된 기술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발론이 두 개의 전혀 다른 기술이라고 했다. 발론의 눈이 그렇게 보았다면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봐, 두 개의 피어스 브레이크라니? 이런, 우리 너무 터무니없는 의뢰를 맡은 것 아냐?]

제논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아니겠지?]

미르가 그럴 리 없다는 의지를 담아 동료에게 물었다.

[그래야지. 설마 그럴 리 없지. 사이몬 가의 사람이 이런 곳에서 용병질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발론이 그녀의 물음에 역시 강한 의지를 담아 대답했다. 하지만 다섯 모두 알고 있었다. 가슴 한곳에서 기분 나쁘게 자라고 있는 불길함의 존재를.

[그렇다면 방법을 달리 해야지. 저놈들이 길리안 길드의 녀석들을 모두 쓸어버릴 때까지 우리는 대기한다. 삼천 명이나 몰려왔다. 머릿수밖에 믿을 게 없는 녀석들다워. 아직 이천 정도 남았다. 어제의 전투를 보면 이천을 모두 쓰러뜨리면 저 녀석도 분명 한계가 온다. 아니, 이천을 모두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아무리 많은 피어스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어도 마나가 없다면 소용없겠지. 우리는 그때 친다.]

라딘이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나머지 네 사람 모두 라딘의 의견에 수긍했다. 길드의 마스터는 미르였지만 이렇게 암살에 있어 작전을 짜는 머리는 항상 냉정한 라딘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의 작전은 늘 암살을 성공시켰다.

이번에도 그의 작전을 믿고 따른다.

***

날이 밝았다.

결국 길리안 길드의 어새신들은 이니안을 동굴 밖으로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사이 이니안은 마나와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야말로 만전의 상태인 것이다. 케라우도 벽에서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 그의 몸에도 힘이 서서히 차오를 터. 어제와는 달랐다.

“다시 가는 건가요?”

로즈도 정신을 차렸다. 넋이 나간 상태로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더니 케라우의 움직임에 잠이 깨어 어느새 이니안의 뒤에 와 있었다.

“그래, 가야지.”

이니안은 돌아보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런 이니안을 바라보는 로즈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그녀는 어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을 살아도 한 번을 볼까 말까 한 처참한 모습을 셀 수도 없이 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죽이려다가 오히려 이니안에게 죽었다.

로즈는 이제야 조금 이니안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로즈는 아이라의 죽음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없이 머리를 맴돌고 두드린 번민과 상념의 결과였다. 그녀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죽이지 않으면 죽고 마는 모습을.

약하기에 죽인다는 말.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라고 덤벼든다. 아니, 죽기 위해 덤벼든다. 죽여야 했다. 잔인함을 운운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운운하며 손에 사정을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죽여 달라고 덤벼들지도 못하게 만들 정도의 압도적인 강함이 없다면 결국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로즈는 이제야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겪고 나서야.

그녀의 옷은 곳곳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니안과 케라우의 손에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 튄 피였다.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어제의 격렬함을 말해주었다.

그런 어린아이까지 죽여야 했는가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에 의문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이해를 해가고 있었다. 생명이 넘나드는 장면을 보았기에.

이니안은 분명 자신에게 말했었다. 자신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싫다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것이라고. 따지고 보면 이니안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것도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니안이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보낼 일도 없었다.

결국은 자신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그를 비난하다니.

그녀는 이제야 지신이 이니안을 비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오빠.”

이니안은 로즈의 부름에도 동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하늘로 떠오르는 태양이 동굴을 비추고 있었다.

정동향으로 입구가 뚫린 동굴. 동굴은 붉은 열광(烈光)으로 가득 찼다. 이니안도 로즈도 케라우도 붉은 광휘에 휩싸였다.

“미안해요. 제가 아무것도 몰랐어요.”

붉고 뜨거운 빛줄기 속에서 가늘고 작게 새어 나온 로즈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순간 이니안은 빛줄기를 헤치고 가는 미소를 지었다.

“가자.”

이니안의 목소리는 어딘가 번뇌를 떨친 듯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가는데 그의 걸음은 어울리지 않게 가벼웠다.

“로즈.”

이니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도 이제야 그것을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이니안은 동굴을 나섰다. 그 뒤에는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로즈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12장. 잃어버린 것은 찾으면 된다

검이 춤을 춘다. 푸른 하늘 아래 하얀 빛이 번쩍인다. 이니안은 동굴의 입구를 막아선 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어새신들을 베어 넘겼다. 그의 곁에는 케라우가 손톱을 길게 뽑아내고는 역시 자신에게 달려드는 어새신들을 베어냈다.

이니안은 계획을 변경했다. 이렇게 무식하게 수로 밀어붙인다면 이곳에서 모조리 처리하고 가기로 한 것이다. 로즈를 지키며, 또 이동하며 싸우기는 힘들었다.

차라리 이렇게 로즈를 안전한 곳에 두고 그 입구를 지키며 싸우는 것이 훨씬 편했다. 지켜야 할 공간이 절반으로 준 것이다.

어느새 태양은 하늘 높이 떠 있었다. 겨울이기에 태양이 조금 빨리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벌써 다섯 시간이 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전날과는 달랐다. 전날에는 그저 갑작스러운 사태에 고집으로 버티려 했지만 이제는 이성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지킬 이를 지키면서 베어야 할 이를 베는 방법.

다만 이러한 선택에 대한 불안 요소는 카르세온 일당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자신들을 쫓고 있을 것이다.

“크윽, 괴물들…….”

이번 의뢰의 총책임자인 브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려 삼천 명이 동원되었다. 길드 역사상 최다 인원 동원의 기록을 깬 의뢰다. 자신이 그 책임자로 왔다. 이것은 실패할 수가 없는 의뢰다. 삼천 명이면 작은 영지 하나를 집어삼키고도 남는 병력이니까.

그런데 이제 자신을 따라온 어새신 중 사 할이 이미 명을 달리했다. 목표는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 역시 몸을 드러내고 공격하고 있었다. 이건 이미 어새신의 암습이 아니었다. 병사들의 돌진일 뿐.

어마어마한 인원의 돌진. 그 속에서 단지 호흡이 조금 거칠어지고 얼굴에 땀이 제법 많이 맺힌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 없이 버티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괴물이라는 말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브롤의 머리는 온통 불길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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