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7화 (17/175)

[17]

“뭐라 하는가?”

“둘 모두 저희와 같은 상황입니다.”

카르세온의 물음에 하론은 통신을 멈추고 대답했다.

“돌아간다. 둘에게도 그리 전하도록. 우리가 헤어진 그 갈림길의 입구에서 만나자고.”

“네.”

카르세온의 결정을 즉시 두 사람에게 정한 하론은 말머리를 돌렸다. 나머지 기사들도 말머리를 돌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것은 테리신이었다. 지금까지 일행의 끝을 따라오는 것도 벅찼는데 이제는 선두에서 달려야 할 판이었으니.

“출발한다.”

카르세온의 무미건조한 말에 일행은 즉시 말의 허리를 찼다. 선두에 선 테리신은 죽을 맛이었다. 뒤에서 무섭게 말을 몰아오는 하이 나이트들의 말은 전장을 누비는 단련된 전마였기에 이런 산길도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다.

하나 자신의 말은 바실러스 자작에게 빌린 그저 그런 말. 게다가 자신의 승마술 또한 전장에서 닳고 닳은 하이 나이트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연히 뒤에서 노도와 같이 몰려오는 기사들에게 쫓기는 꼴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추적을 위해 헤어졌던 곳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여섯 명의 기사도 도착해 있었다.

“늦었군.”

가장 나중에 합류점에 모습을 드러낸 카르세온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찔끔한 얼굴을 한 것은 테리신이었다. 자신 때문에 늦어졌으니 괜히 가슴 한구석이 찔렸던 것이다, 누구도 자신에게 무어라 하지는 않았지만.

“이 주변을 다시 살핀다. 분명 이곳에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말보다 빨리 달릴 순 없다. 게다가 혼자 몸도 아니고 여성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산길을 말보다 빨리 벗어난다는 것은 소드 마스터라도 불가능하다. 그 용병이 이곳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하다.”

카르세온의 말에 아홉의 하이 나이트는 즉시 말에서 내려 주변으로 흩어졌다. 이번에는 카르세온 역시 말에서 내려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상황이 그러했기에 테리신도 말 위에 있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 괜히 이곳저곳을 휘적휘적 돌아다녔다.

“자네, 할 일 없으면 말 위에서 가만히 있게!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흔적을 지우지 말고!”

마이어의 입에서 터져 나온 날카로운 목소리의 지적에 찔끔한 테리신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그의 머리를 번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서 무시하고 지나갔던 느낌. 그 용병이 이곳에서 무슨 수작을 부렸다 하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그래도 역시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음인지 테리신은 우물쭈물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소리에 찌릿하는 시선이 쏟아졌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신을 집중하여 머리털 하나의 흔적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뭔가?”

테리신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은 카르세온이 물었다.

“네, 카르세온 부단장님. 사실 아까 이곳을 지날 때 이상한 기운을 느꼈었습니다.”

“뭐야? 그럼 그때 말을 했어야지!”

그의 말에 가뜩이나 그를 안 좋게 보던 마이어의 입에서 언성이 터져 나왔다.

“마이어!”

찌릿한 눈빛과 차가운 목소리에 마이어는 즉각 입을 닫았다. 지금은 부단장인 카르세온이 테리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 갑작스레 그 대화에 끼어든 자신의 잘못이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간단히 사과 한마디를 남긴 그는 한쪽으로 물러서 있었다.

“하지만 마이어의 말이 맞아. 그때 즉시 이야기해야 했어. 왜 말을 하지 않았지?”

카르세온의 날카로운 시선에 테리신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그것이…….”

전신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들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똑바로 말해라.”

낮은 목소리였지만 조금 전의 마이어의 언성에 비할 바가 아닌 힘이 담겨 있었다.

“네, 넵. 그때 제가 느낀 이상한 기운은 암흑 마나라는 것입니다.”

“암흑 마나? 마나가 아니라? 그런 것도 있었나?”

테리신의 말에 하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카르세온은 눈빛으로 거기에 대한 설명을 촉구했다.

“네, 암흑 마나란 마법사들 사이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일반적인 마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마나와 비슷한 성질을 띠었기에 마나라 부르지만 그 기운을 사용하는 이들이 흑마법사입니다. 즉, 흑마법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마나를 암흑 마나라 부르는 것이죠.”

테리신의 설명이 끝나자 열 명 기사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들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절대 작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설명을 끝낸 테리신은 자신의 얼굴을 흠뻑 적신 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 흑마법사라는 것인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B급 용병이었기에 당시에는 제가 잘못 느꼈다 생각하고 무시한 것입니다.”

한숨을 돌리는 사이 들려온 카르세온의 물음에 테리신은 즉시 대답했다.

“어디쯤에서 느꼈지?”

“이 부근입니다.”

걸음을 옮겨 이니안이 로즈를 데리고 몸을 숨겼던 나무 근처에 이른 테리신이 그 부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일은 이니안의 마령천참공에 대한 성취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었다. 마령보의 마령귀은술은 자신의 마이너스 마나를 온몸과 주변에 둘러 주변과 동화하는 술이다. 성취가 올라갈수록 주변과 동화하는 정도가 높아져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누구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하나 이니안은 겨우 몇 시간 동안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익힌 것이었기에 테리신 같은 마법사도 그 기운을 눈치챈 것이다.

카르세온은 테리신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유심히 살폈다.

“다르군.”

“네?”

카르세온의 말에 나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 나무의 굵기가 아까와 다르다. 아까는 더 굵었어.”

카르세온은 정확히 이니안이 숨어 있던 나무를 가리켰다.

‘어찌 저런! 스치며 지나가듯 본 나무의 굵기를 기억한단 말이야? 말도 안 돼!’

테리신은 카르세온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은 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전폭적으로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마이어가 다가와 물었다. 깊은 고민에 잠긴 듯 카르세온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이 나이트들은 카르세온이 생각을 끝내고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하론.”

“네.”

“너라면 말이야, 산속에서 말을 몰아 자신을 쫓는 열 사람을 몸을 숨겨 따돌렸어. 그 와중에 자신을 쫓는 이들의 실력을 면면히 살폈지. 그 다음 넌 어떻게 하겠는가?”

카르세온은 하론을 자신들이 쫓는 도망자와 같은 상황 속에 있다고 가정하게 만들었다. 그런 카르세온의 물음이 하론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다른 이들도 각자 자신을 그 상황에 놓고 어떻게 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굳이 카르세온이 하론을 집어서 이야기한 것은 그가 이런 때에 상황 판단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이었다.

“저라면 분명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제가 우리 동료들에게 이렇게 쫓긴다면 말이죠. 일단 말을 탄 기사에게 쫓기면 거리를 벌이기 힘듭니다. 그러면 잠시도 쉬지 못하고 쫓기죠. 도망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정말 피를 말리는 고통입니다. 도망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단 숨을 돌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내 생각도 같다.”

카르세온은 울창한 바운더리 산맥의 중심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곳을 뒤져야 하는 건가요? 우리 열 명이서?”

“젠장, 여우같은 녀석이군. 우린 기사지 레인져가 아닌데 말이야.”

카르세온의 말에 마이어와 나르트가 투덜거렸다.

“후후, 별 수 없지. 이번 사냥은 상당히 재미있어, 사냥감이 강하고 영리해서.”

낮게 중얼거리는 카르세온의 눈이 번득이며 빛났다.

“일단 공작 각하께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론의 말에 카르세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흑마법이라… 상당히 성가시겠군.”

카르세온의 혼잣말은 바람을 타고 바운더리 산맥 깊은 곳으로 조용히 퍼져 나갔다.

***

앞으로 나아갈수록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우거진 산속. 누구도 발을 들인 적이 없어 보이는 곳을 이니안은 로즈를 안아 든 채로 빠른 속도로 달려나 갔다.

“이봐, 이니안! 좀 천천히 가자구! 헥헥헥!”

나무들 사이의 간격이 좁아짐에 따라 날아가는 것이 어려워진 케라우도 뒤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장시간을 달려본 적이 없었기에 점점 이니안의 뒤를 쫓는 것이 힘겨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니안이 그런 케라우의 사정을 봐줄 리 없었다.

케라우의 애원에 가까운 말을 무시한 채 이니안은 주변을 번득이는 눈으로 살피며 여전히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적당한 곳이 없군.”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왔지만 나무만 무성할 뿐 이니안이 찾는 곳은 없었다.

“어디를 찾는데? 헥헥헥!”

힘겹게 쫓아오는 케라우가 궁금한 듯 물었다.

하지만 이니안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의 말을 무시했다.

“헥헥! 그러지 말고 말 좀 해보라고! 내가 도움이 될지 누가 알아? 너, 무려 300년을 넘게 살아온 뱀파이어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야?”

“동굴. 이삼 일 정도 몸을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위치에 있는.”

이니안은 케라우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필요한 사항만 대답했다.

“동굴? 그런 곳이면 진작 말했어야지. 기다려 봐.”

케라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멈춰 섰다.

“이삼 일 정도 숨어 있을 만한 은밀한 곳을 이렇게 달리면서 잘도 찾아내겠다. 에이그, 멍청한 녀석.”

그의 말에 이니안이 눈을 번득였지만 케라우는 그것을 무시하고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가까운 곳에 네가 말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있군. 따라와라.”

케라우는 이니안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날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이니안은 케라우를 따라 몸을 날렸다. 그의 말대로 이런 식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동굴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케라우가 달리는 방향으로 따라가자 나무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넓어졌다. 그렇다고 산기슭으로 내려가거나 바깥쪽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방향은 산 정상을 향해서인데 다른 곳과는 다르게 나무의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달렸을까? 깎아지른 듯한 암벽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암벽의 모습이 확연해지는만큼 나무의 수도 줄어, 주위에는 한두 그루 정도가 듬성듬성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케라우는 마치 이곳에 이런 지형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방향을 잡아 달려왔다. 아마도 출발한 곳에서 최단 거리로 이곳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니안은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가 이곳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감옥에 갇히기 전인 150년 전이다. 150년이면 산속의 지형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바뀐다. 그도 이니안처럼 이 산속에는 처음 온 것이나 다름없는 셈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재빠르고 정확히 길을 찾아가다니. 이니안으로서는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었다.

“빨리빨리 오라구!”

이니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케라우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사라졌다. 서둘러 케라우가 있던 자리로 가보니 그곳은 절벽이었다.

“대단하군.”

차갑고도 낮은 목소리였지만 감탄임에 분명했다. 이토록 절묘한 장소를 손쉽게 찾아낸 케라우의 실력에 이니안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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