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1화 (11/175)

[11]

“하지만 그 녀석, 잘해내고 있었습니다.”

“만나보았느냐?”

“아니오. 용병 일을 하면서 온갖 곳을 떠돌아다니는 모양입니다. 저는 임무 때문에 우리 왕국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간간이 용병들을 통해 소식만 접했습니다. 의뢰인이 아닌 이상은 용병 길드에서 용병에 대한 정보는 제공해 주지 않아서요. 용병들을 구워삶느라고 돈이 제법 들었습니다. 훗.”

청년은 자신이 하찮은 용병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나름대로 그래도 무언가 알아볼 것이 있을까 싶어서 왕국 내의 도둑 길드와 어새신 길드, 그리고 정보 길드를 돌면서 계속 그 일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만… 역시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 이미 저의 정체를 알고 있더군요.”

“하긴, 그들에겐 정보가 제일 중요하니까. 게다가 너 정도의 인사면 우리 왕국에서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겠지.”

그 말을 하는 중년인의 얼굴엔 눈앞의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정말 어디에서나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아들이 너무나 대견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더 의문이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끝까지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더군요. 검으로 위협도 해봤습니다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국 내의 거의 모든 도둑, 어새신, 정보 길드가 일관적으로 그런 태도를 취하니 저는 한 가지 가정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미 아들로부터 결론을 들었기 때문에 중년인은 그 가정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국의 개입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들이 모두 그렇게 입을 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무언가 거대한 힘이 관련되어 그 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좀 낯 뜨거운 말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왕국 내에서는 우리 집안과 근위기사단의 이름이면 위협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사실이다. 국왕 전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힘임에는 분명하니까.”

중년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와 함께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절절이 배어 있었다.

“그런 의심은 조사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때 들기 시작했습니다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사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반년쯤 전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그 녀석이 미오나인 제국에 있다는 소식이 들렸기에 제국으로 갔습니다.”

“만났느냐?”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의뢰를 맡아 떠났다고 하더군요. 개인 의뢰의 경우는 다른 용병들도 자세히 알 수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다만 어떤 물건을 전해주는 일을 맡아 변방으로 떠났다는 것 정도만 들었습니다.”

“그랬구나.”

중년인은 더 이상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 아이가 몸 건강히 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에 걱정을 덜어서인 것 같았다.

“그때 미오나인의 구석진 곳의 허름한 술집에서 우연히 결정적인 사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용병들이 다른 용병의 정보를 타인에게 전하는 일은 그들 사이에서는 금기나 다름없는 일이라 항상 그렇게 으슥한 곳에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같은 술집의 구석진 곳에서 그때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남자가 있더군요.”

중년인의 두 눈이 빛났다. 매사에 신중하고 철저한 자신의 아들이 흉수를 미오나인 제국이라 지목한 이유가 나오려 했기 때문이다.

“용병을 내보내고 계산을 하려고 할 때 제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너한테만 은밀히 이야기하는데, 3년 전에 웬 미친 짓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의뢰가 들어왔었어.”

“뭔데?”

“다른 나라의 귀족가를 쳐달라는 거였지.”

“에이, 그까짓 게 뭐 미친 짓이라고 그러나?”

“충분히 미친 짓이었어.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말 안 해줄 거면 더는 이야기 말아. 궁금해서 술 맛 떨어지니까.”

“그래? 하긴, 이런 말을 꺼낸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난 죽은 목숨이니. 술이나 마시세.”

청년은 그때 들은 대화를 그대로 아버지에게 들려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였습니다. 그들도 설마 누가 엿들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겠지요.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습니다. 그 말을 한 남자가 혼자일 때를 기다려 은밀히 납치해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실토하게 했지요.”

“순순히 입을 열더냐?”

“적당히 위협하고 안전을 보장해 주니 입을 열더군요.”

아들의 말에 중년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적당히란 어디까지나 아들의 입장에서이다. 자신의 아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독해지는지 알고 있기에 그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뭐라더냐?”

“수도의 고위 귀족 중 하나가 자신의 길드에 의뢰를 했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 귀족가를 습격해 달라고.”

“그가 어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 어새신이더군요. 길드에서도 손꼽히는. 그날이 하필 어려운 의뢰를 수행하고 돌아와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술을 사며 일 이야기를 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료는 모르고 자신은 아는 사실을 자랑처럼 꺼낸 것이지요.”

“그렇게 대단한 길드는 아니겠군. 길드 내에서도 손꼽힌다는 어새신이 그렇게 허술하다니.”

“그렇습니다. 아마도 쓰고 버릴 길드를 찾느라 그런 곳에 의뢰를 넣어본 것 같습니다. 그나마 길드 마스터가 머리가 좋은 편이라 그 의뢰를 거절하고 부하들에게 단단히 입단속을 시킨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항상 새는 곳이 있기 마련이지. 비밀이란 혼자만 알고 있어야 비밀이지 다른 누군가가 함께 알고 있으면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없는 법이야. 사람의 입만큼 새기 쉬운 곳은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그자의 안전 문제는 어떻게 했느냐?”

중년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혹시나 자신의 아들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을까 하는 우려였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아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신의란 충성과 함께 자신의 가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훈이었으니까.

“삼 개월쯤 전에 아마 새로운 하인이 들어왔을 겁니다.”

“그래?”

아들의 말에 중년인은 몰랐다는 듯 말했다. 하인의 수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쯤 집사가 새로운 하인을 한 명 채용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같았다. 그런 일은 집사가 관리했고, 자신에게는 보고만 했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소소한 일은 흘려듣는다는 것이었지만.

“그러면 그 하인이?”

“네, 그자입니다. 이곳만큼 안전한 곳은 없을 테니까요.”

웃음 짓는 아들을 보며 중년인도 함께 웃었다. 분명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곳은 왕국 내에서는 왕궁 다음으로 안전한 곳이었다. 감히 이곳을 습격하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간이 큰 이는 없었기에.

“한데 고위 귀족가라 하니 범위가 너무 넓구나. 더 자세히는 모르더냐?”

“예. 의뢰한 쪽에서 제법 신경을 쓴 것 같았습니다. 습격하는 곳 역시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 왕국 백작 이상인 귀족가의 별장이라는 것만 이야기를 했다더군요.”

“하긴, 그 정도의 치밀함을 지녔으니 그렇게 꼬리를 자르고 숨을 수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구나. 제국 정도 되면 고위 귀족 수만 하더라고 상당히 되니. 뭐, 이 정도의 성과라도 있는 것이 어디냐만. 그리 작은 성과는 아니다. 아니, 큰 성과라 할 수 있어. 일단 흉수가 미오나인 제국의 귀족이란 것은 알아냈으니. 넌 너의 공을 너무 낮게 보는구나.”

처음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의 아들의 얼굴을 떠올린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제국의 황궁이 이 일에 개입을 했느냐, 아니면 귀족가의 독단적인 행동이냐겠죠.”

“그렇지. 여차하면 우리 왕국과 제국과의 전쟁으로도 번질 수 있는 일이야.”

아버지의 말에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 그 일에 대한 국왕의 분노는 그만큼 깊고도 깊었다.

***

얼마나 달렸을까? 수많은 경물이 바람과 같이 뒤로 사라지는 모습에 로즈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높은 저택 위로 훌쩍 뛰어올라서는 자신을 낚아채듯 안고서는 무작정 달리는 이니안.

이니안은 저택에서 처음 자신을 봤을 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았지만 이니안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무거운 분위기가 그것을 막고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숲이 우거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바운더리 산맥의 초입에 도달한 것 같았다.

‘계속 북쪽으로 달린 것인가? 그럼 바운더리 산맥으로 들어가려고?’

겨우 구분이 가는 풍경을 통해서 로즈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작의 저택이 바운더리 산맥을 등지고 정남향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에 산맥이 보이기 시작하자 정북으로 달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도무지 이니안이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만 있으니.

‘그러고 보니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거지?’

가장 먼저 떠올렸어야 할 의문이 이제야 로즈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너무 놀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야 침착함을 찾은 것이다.

점차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니안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이면 대강 괜찮겠군. 쿨럭.”

멈춰 서서 로즈를 내려놓은 이니안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피를 토했다.

“이니안 오빠!”

갑작스러운 토혈에 놀란 로즈가 비명을 질렀다. 이니안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려는 로즈를 손을 들어 제지했다.

“쿨럭.”

이니안은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새하얀 눈이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후우, 이제야 가슴이 좀 편하군.’

무리한 마나의 운용으로 터져 나온 울혈을 뱉어내자 이니안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무작정 달리느라 억지로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울혈을 토해내자마자 이니안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성에서 입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운공을 하려는 것이다.

두 눈을 감은 이니안은 즉각 마령천참심법의 구결에 따라 마이너스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용법에 맞지 않은 마나의 운용으로 인해 생긴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로즈는 걱정 어린 눈으로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니안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다만 이니안이 풍기고 있는 기운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라고 말하는 듯했기에 그러고 있었다.

잠시 후, 이니안이 두 눈을 떴다.

“오빠…….”

걱정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즈를 발견하는 순간 이니안은 흠칫했다.

‘쉐이나.’

다시 한 번 로즈의 얼굴에 겹쳐지는 쉐이나의 얼굴. 자신이 기억하는 쉐이나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의 로즈의 얼굴과 같았다. 슬픔과 걱정이 가득한 채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지난 3년간 모든 것을 잊고자 했지만 그 두 눈동자만은 잊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끄덕.

입을 열면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이니안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왜 자꾸 쉐이나가 떠오르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굳이 그것에 크게 신경 쓰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기분 나쁜 시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만 나와라!”

냉막한 목소리가 잎이 떨어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 사이로 울렸다. 이니안의 목소리만이 숲 속을 공허하게 울릴 뿐,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냉막한 목소리에 로즈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니안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니안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스르르릉!

성에서 병사에게서 빼앗은 검이 거친 소리를 울리며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이니안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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