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디언 소드-10화 (10/175)

[10]

이니안이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던 케라우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하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은 서둘러 나간 이니안이 모두 처리할 테니 케라우는 기다렸다가 천천히 나갈 생각이었다. 현재의 약해진 몸으로는 일반 병사가 창으로 푹 찌르기만 해도 맥없이 죽을 테니까.

쾅!

“뭐야?”

요란한 폭음에 지하 감옥의 입구를 지키던 병사 둘은 대경하여 감옥 입구의 철문을 바라보았다. 없었다. 감옥의 입구를 막고 있어야 할 철문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전날 밤에 지하 감옥에 감금된 용병 녀석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병사 중 하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알 거 없다.”

바람같이 병사들에게 다가간 이니안은 단번에 병사 둘을 기절시켰다. 얼음같이 차가워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잔인해지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본디 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니안이었기에 불필요한 살인은 가급적 자제했다.

병사 둘을 쓰러뜨린 이니안은 곧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나를 두 다리에 모으고 치달리자 사람의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빠르기로 사라졌다.

가문에서 익힌 경공법이라는 것을 사용하면 더욱 빨리 달릴 수 있었지만 가문의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맹세는 아직 유효했다. 그랬기에 그저 마나의 힘을 이용해 달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침입자다!”

“잡아라!”

영주의 저택을 향해 달리는 이니안을 발견했는지 사방에서 병사들의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니안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영주의 저택을 향해 곧장 달렸다.

“저놈이 영주님의 저택으로 간다! 막아라!”

더욱 거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곧이어 저택의 문이 열리며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을 한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바깥의 소란에 서둘러 나온 듯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바쁘다! 비켜라!”

순식간에 가장 선두에 선 기사의 가슴 아래에 몸을 낮추고 접근한 이니안은 손바닥을 내밀어 기사의 배 부분의 갑옷을 지그시 눌렀다.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크핫!”

비명과 함께 기사는 3미터나 뒤로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에 모여 있던 병사와 기사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니안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습관이란 무서웠다. 일단 마나를 운용하게 되자 이니안은 예전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방법대로 마나를 운용했고, 그 결과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왔다.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차 오른 핏물이 그 대가였다.

‘이젠 가문의 무공은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겠군. 차라리 잘됐어. 크.’

억지로 핏물을 삼킨 이니안은 다시 몸을 날렸다.

마이너스 마나를 사용하면서 플러스 마나의 운용법으로 마나를 움직였기에 기맥이 상하며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서로 반대의 성질을 띤 기운과 운용법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뭐지?”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던 로즈가 몸을 일으켰다. 예상하지 못한 낮잠에서 깬 이후 여전히 머리가 아팠지만 호기심이 통증을 눌렀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자 밖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사와 병사들이 한 남자를 둘러싸고 공격하고 있었다.

“응?”

병사들에게 포위된 남자의 모습이 낯익었다. 로즈는 눈을 찡그리며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했다.

“이니안 오빠!”

겨우 알아본 그 남자는 이니안이었다.

로즈는 반가움과 당혹, 그리고 걱정이 어우러진 외침을 토해냈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이니안은 로즈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니안의 시선이 그 와중에 로즈를 향했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오빠…….”

“거기 있었나? 이제 너희들에게는 볼일이 없다.”

그렇게 말한 이니안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사의 허리에 매달린 검을 간단한 동작으로 검집째 빼앗아서는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3미터 이상 솟구친 이니안은 자신을 막고 있던 기사를 넘어서 저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로즈가 자리한 창의 바로 아래의 벽에 도착한 이니안은 벽을 타고 저택 위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로즈의 눈앞에 도착한 이니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로즈를 품에 안고는 저택을 넘어 사라졌다.

도무지 인간의 움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니안의 행동에 기사와 병사들은 멍하니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 어서 저놈을 쫓아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기사가 크게 외쳤다. 그에 따라 병사들이 저택을 돌아 이니안이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

“응? 왜 이리 소란스러운가?”

막 공작과의 마법 통신을 마치고 서재로 향하던 바실러스 자작은 저택 밖의 소란에 주위의 시종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시종도 밖의 상황은 몰랐기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작님!”

그때 마커가 헐레벌떡 자작을 향해 뛰어왔다.

“마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리 소란스러운 것인가?”

“그, 그것이……!”

보고를 위해 자작을 찾아왔지만 막상 그의 앞에서 이 상황에 대해 보고하려고 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서 말해보게.”

“예, 지하 감옥에 가둬뒀던 그 용병 놈이 지하 감옥 문을 부수고 탈출하여 로즈 아가씨를 데리고는 저택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뭐야?”

마커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자작의 고함 소리가 긴 복도를 울려 퍼졌다.

4장. 너, 대체 정체가 뭐냐?

긴 복도를 평범한 중년인이 걷고 있었다. 경갑의 무장을 하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지 않았다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정말 친근한 웃음을 지어주는 편안하고도 평범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긴 복도를 지나갈 때 그를 발견한 인물들은 모두 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는 그런 인사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하면서 자신의 걸음을 계속했다.

이윽고 목표하는 곳에 도착했는지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옆에 있는 커다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오자 그 방의 소파에 앉아 있던, 역시 그 중년인처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의 청년이 얼른 일어섰다.

“아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3년 만이로구나. 그간 성과는 있었느냐?”

청년의 얼굴은 중년인의 물음에 살짝 어두워졌다. 중년인은 그 모습에서 그의 아들이 그렇게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아는 큰아들은 항상 당당했기에 어지간한 일로는 저런 얼굴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들의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후우, 별다른 소득이 없었나 보구나.”

중년인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몸을 의지했다.

“죄송합니다.”

송구스러운 대답을 한 아들은 아버지가 소파에 앉자 자신도 살며시 소파에 몸을 걸쳤다. 그의 눈은 아버지의 무장을 보고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오신 것 같습니다.”

“후후, 그래. 집에 오니 집사가 오늘 네가 도착해서 서재에 있다 하더구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왔다.”

청년의 입가로 쓴웃음이 작게 떠올랐다. 자신의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는 아버지가 왜 저리 서둘러 자신을 찾았는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아버지와 같은 심정이었기에. 하지만 그렇게 큰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녀석을 찾아 멱살을 붙잡아서라도 질질 끌고 오려 했습니다. 예전이었어도 문제는 없겠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찍소리도 못할 테니까요.”

아들의 말에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말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 아이는 이제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을 테니까.

“후우, 다 나의 잘못이다. 하지만 네가 3년간 왕궁을 떠나 있었던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니지 않느냐?”

아련한 눈빛으로 한숨을 쉰 중년인의 얼굴에 엄한 기색이 내려앉았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공적인 일로 떠난 아들이 가장 먼저 사적인 일부터 이야기하자 그에 대한 훈계였다.

“어차피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묘하게 두 가지 일이 한곳으로 연결되어 있더군요. 그 녀석이 알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

“예.”

아들의 대답에 중년인의 눈이 진지하게 빛났다. 그의 머리가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말해보거라.”

“어느 것 먼저 말씀드릴까요?”

하지만 곧 청년은 자신의 물음이 부질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곤 자신이 3년간 맡은 임무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아버지의 얼굴은 근위기사단장의 얼굴 그것이었기에.

“3년 전의 그 일을 일으킨 흉수는 무척이나 치밀한 자였습니다. 제가 은밀히 조사를 한다고 하였지만 도통 그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죠.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었냐?”

“그때의 그 일을 사주한 이가 미오나인 제국에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말에 중년인의 눈이 번쩍이며 무서운 안광을 흩뿌렸다.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두 눈이 그가 얼마나 분노해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중년인의 눈에는 분노 외에도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당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이례적으로 근위기사단까지 동원되어 그 일의 조사에 착수했었다.

본디 근위기사단은 왕궁과 왕족을 수호하는 일만을 수행하는 수호기사단이다. 그런 근위기사단이 국왕이 명령으로 움직였다. 그때 그 일로 국왕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왕궁을 수호하는, 곧 왕국을 수호하는 근위기사단은 그야말로 왕국 최고의 전력이었다. 그런 전력이 투입된 만큼 처음에는 곧 흉수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은 오리무중이었다. 당시의 참극에 관여했던 자들은 잡히면 잡히는 족족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추적 끝에 알아낸 사실은 단 하나. 왕국 최고의 어새신 길드라고 소문이 난 미스트(Mist) 길드가 이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내는 와중 미스트 길드는 괴멸됐다. 모든 길드원이 잡히자마자 자살을 했기에.

끝내 잡지 못한 이는 단 한 명. 바로 미스트 길드의 길드 마스터였다. 그만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사건의 연결 고리가 끊겼기에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그리하여 유야무야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중년인의 큰아들이 그 사건에 대한 조사를 명받고 3년간 수도를 떠나 있었다.

“우연이었습니다. 그 사건을 조사하던 중 진척이 없어서 겸사겸사 알아보려고 그 녀석의 행방을 쫓았죠.”

아들의 말에 중년인의 눈에 아픈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가슴의 상처였기에.

“아무래도 용병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 몸으로 말이냐?”

“예. 그래도 기본은 있기에 B급 용병 정도의 실력은 된 모양이더군요. B급 용병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으니.”

“고생이 많겠구나. 용병 일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닌 것을……. S급 용병이면 모를까 겨우 B급이라니…….”

아버지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서 청년은 충분히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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